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푸른광장> 조고각하 (照顧脚下) / 문화일보 [2011-10-20]

忍齋 黃薔 李相遠 2011. 11. 3. 03:31
반응형

조고각하 (照顧脚下)

 

 

 

은미희/소설가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조금만 무리를 할라치면 금방 여기저기 아프고 결리는 것으로 과속 신호를 보내오며 주저앉게 만든다. 아직 마음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한데, 몸은 그런 생각과 마음에 경고를 보내며 정지신호를 작동시킨다. 그러니 하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출 수밖에. 게다가 요즘 들어 느닷없이 받는 부고가 곤혹스럽기조차 한데, 그게 마치 눈을 가리고 제비뽑기를 하듯 순서도 없고 뜬금없다. 때문에 과장되게 말하자면 요즘 삶은 덤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천명 운운하며, 욕심을 버리고 남은 삶을 잘 경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반성도 든다.

 

그러나 사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이런 진중한 각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세상에 대한 욕망들이 반성을 앞질러 내달리면서 고약스러운 욕심이 생긴다. 그 욕심에 마음 또한 분주해진다. 벌써 이렇게 욕심을 덜어내고 뒷짐진 채 유유자적하는 것은 엽렵하지 못한 나 자신과의 타협이 아닌가 하는 혐의마저 든다. 그 혐의에 미적거릴라치면 또 한편에서 달콤한 유혹이 싹튼다. 이제 한창 일할 나이이니, 세상 것에 더 욕심을 내라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치열하게 삶을 경영하는 올바른 자세이며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나를 부추긴다. 정말, 그럴 때면 곁눈가리개를 한 질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리고 싶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싶다.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시선과 염려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무리수라도 두어 얻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리 만만한 것이던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나이에 순응해 자신 안의 욕망을 덜어내며 사는 삶이 아름다운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사람일진대 도통 그 시기를 알 수 없다.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는 한 대선배는 자신을 살아있는 전설로 만들지 말라고 그랬다. 자신의 존재 증명은 끊임없이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지만 왠지 웃는 그 표정이 비장했다. 정말 그 대선배는 아직도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한다. 한참 나이가 어린 후배들이 엄살을 부리며 삶에 게정을 부릴 때 그 선배는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며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그 삶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또 한 선배는 환갑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암벽등반을 즐긴다. 그 나이에 무슨 암벽등반이냐고, 걱정을 할라치면 그 선배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선배 역시 아름답다.

 

그 선배들을 보며 나 역시 세상 것에 욕심을 부려보지만 어쩔 수 없이 뒷머리가 뜨뜻해지곤 한다. 남이 보기에 혹여 내 행보가 탐욕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닐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나대는 건 아닌지, 스스로가 먼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선배들이야 현명해서 세상과 자신의 열정을 조화롭게 잘 운용해 나가지만 나는 그런 주변머리도 없다. 그러고 보면 참 어중간한 나이인 것 같다. 세상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기와 호기로 살아가기에도 마뜩치 않으니…. 고백하거니와 아직 내 안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 그 ‘또 다른 나’들은 무시로 튀어나와 서로 자신의 나이로 살라고 나를 부추긴다. 그것들을 지혜롭게 잘 엮기만 한다면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을 텐데, 어쩌랴, 그게 쉽지가 않은 것을.

 

지금도 내 안에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미처 못다 이룬 꿈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영롱하게 빛을 발하며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니 어떡할까. 한데 얼마 전에 짙푸른 바다를 끼고 절벽에 들어앉은 낙산사 홍련암을 가는데, 그 길목에 소박한 팻말 하나가 이정표처럼 서 있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자칫하다간 넘어질 수 있으니 발밑을 살펴 가라는 말이었다. 그 낡은 팻말 하나가 세상 욕심으로 어지러운 내 마음과 눈을 밝게 해주었다. 그 팻말 속 경계신호처럼 발밑을 살펴 걷는다면, 그리고 가끔 멈춰 서서 뒷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며 나아간다면 남은 삶이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다.
 



Samuel Sangwon Lee | Create Your Badg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