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
예(禮)를 묻다
게재 일자 : 2011-06-30 13:52
은미희/소설가
참 세상이 무섭다. 무언가 잔뜩 헝클어진 느낌이랄까.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없어 보인다. 그저 바로잡을 시기를 놓쳐버린 이 뒤늦은 각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도대체 웬 엄살이냐고? 차라리 엄살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요즘 들어 심심찮게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에 심사가 무척 복잡한데, 모르긴 해도 꼭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해치고, 연인이 연인의 목숨을 빼앗고, 홧김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종종 일어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을 폭행하고, 제자를 올바른 길로 계도해야 할 스승은 감정에 따라 제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기도 한다. 이러니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이웃과는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고, 식사하셨느냐는 인사로 이웃의 형편을 걱정하고 헤아리던 그 베풂과 나눔의 인정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예(禮)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유독 효(孝)를 강조하고 예의 덕목을 중시했던 민족이 우리였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상청을 차리고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조석으로 메를 올리며 문안인사를 여쭙는 민족이 우리였다. 그 예가 지나쳐 조선 효종 시절에는 나라가 휘청할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던가. 소위 예송논쟁이라는 것인데, 효종의 어머니인 조대비가 돌아가시자 그 복상기간을 두고 남인과 서인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 예라는 것이 너무 지나쳐도 불편하겠지만, 요즘처럼 너무 없어도 문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박정하고, 야박하고, 사박스럽게 만들어버렸을까. 오히려 지나쳐 답답해 보이던 그 예의 풍속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세계가 우리를 부러워한다는데, ‘한강의 기적’이라며 우리의 경제성장을 놀라워하고, 한류라며 우리의 대중문화에 다들 환호한다는데, 정작 우리가 지키고 자랑하고 싶은 미풍양속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런다지 않은가. 개발도상국에서는 우리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부러워하며 롤모델로 삼고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온다지 않은가. 그들에게 우리의 미풍양속까지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던 우리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세계에 방영됐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지 외국인들은 그런다. 어디서 왔느냐는 그들의 물음에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그들은 손뼉을 치며 “대∼한민국”을 연호한다. 한국이 4강 신화를 일궈낸 것은 몰라도, 대한민국 응원의 박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의 예의범절을 세계에 소개한다면 그 예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겠는가? 게다가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기’라는 말이 전혀 없는 태국에서 우리 때문에 ‘사기’라는 죄목이 생겼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었지만 내심으로는 참 많이 씁쓸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각성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게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 구성원 전체가 경쟁에 내몰리면서 집단 히스테리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과도한 공부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시한폭탄처럼 굴고,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에 걱정만 늘어서 인상이 펴질 날이 없다. 또 교사들은 대학진학률에 예민해져서는 목청 높여 아이들을 다그치기 일쑤다. 그러니 곳곳에서 경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봉변할지 모르니까 타인의 일은 모른 체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니 어찌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잘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정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예를 실천한다면 세상이 다시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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