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 내일을 위해 / 문화일보 [2012-02-09]
은미희/소설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두(話頭)는 무엇일까.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한 책의 제목 가운데 ‘닥치고’라는 말을 차용해 ‘닥치고’ 경제일까? 그러고 보니 닥치고라는 말이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경제가 중요하긴 하다.
며칠 전 일본에서는 한 조사 결과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의 내로라 하는 전자회사들의 적자 규모가 상상을 넘어, 전자 강국으로서의 체면을 구긴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그 결과를 보고 탄식을 내지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원인으로는 한국의 ‘삼성’이 지목됐다. 정말, 삼성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윤은 그동안의 분기 영업 이윤 가운데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그 방송을 보고 있던 나는 내심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한때 워크맨 같은 일본산 전자제품들을 우쭐한 마음으로 들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전벽해(桑田碧海), 우리 제품이 세계를 지배하고, 소유를 갈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렇게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형편은 그다지 좋아진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엥겔계수도 높아진 듯하다. 정말,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얼마전 나를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며 푸념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맥주를 수입해 직매장을 운영하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최근 들어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냥 내일을 기다려보고 있지만 고민이 깊다고 했다. 하긴 늘어나는 적자에 오늘이 아슬아슬한 사람이 어디 그 사람뿐이겠는가. 사업을 하는 사람도, 샐러리맨도 내일이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제가 바닥인 줄 알았더니 오늘은 지하로 내려가더라며 자조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주변에는 많다.
지난해 가을에, 일본은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자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진단한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비정규직 양산이 내수를 위축시켰고, 내수 부진에 따른 영업이윤 감소는 기업을 어려움에 빠뜨렸으며, 소득이 없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바람에 노동력까지 줄어들어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옛날처럼 평생직장을 보장하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없이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어딘지 익숙한 말이 아닌가? 결코 이웃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시 귀담아 들을 내용이었다. 한데 주변을 둘러보면 어째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보다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들 탓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화된 시스템과 네트워크로 더 이상 사람들의 손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는 징수원 대신 하이패스가 대세고, 곳곳에 설치돼 있는 은행 자동입출금 기계는 은행원들을 대신하며, 치솟는 기름 값을 이유로 셀프 주유소가 인기를 끌고 있으니, 지금 자리에서 밀려난 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한데 경제가 나아지려면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기업과 정치는 결탁해서도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정치와 경제는 ‘따로 또 같이’인 것이다. 정치를 신뢰할 수 없다면 정직한 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다. 정직한 자본의 투자를 가져올 수 없다면 더 이상 일자리를 기대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에릭 바인하커가 쓴 ‘부의 기원’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가 함께 나란히 갔을 때, 미국이 가장 큰 번영을 누렸다고 했다.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부디 잘 살고 싶거든, 지금 가지고 있는 일자리를 지키고 싶거나 새롭게 일자리를 찾고 싶거든 선량한 일꾼을 뽑아 보다 더 잘 사는 내일을 기다려 보자. 소망만으로는 부자가 되지 않는다. 부디 정리(情理)에 이끌리지 말고, 사람 됨됨이를 보자. 그게 우리가 살 길이고, 후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인이 될 것이다.
자, 그러니 지금부터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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