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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먹는 즐거움 / 문화일보 [2012-06-07]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7. 12.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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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먹는 즐거움 / 문화일보 [2012-06-07]



은미희/소설가


먹는다는 건 무얼까? 살아가면서 먹는 것을 해결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먹기 위해 일한다거나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하는 궁극의 목표는 먹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니 먹는 것은 곧 생존의 문제다.


한데, 생존을 위해서 먹는 이 행위에도 사치와 기술이 따른다. 삶을, 살아있음을 보다 더 유쾌하고 자극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당장 끼니를 때울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한 끼 식사에도 번거로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때 영국의 귀족들은 티브레이크 때 비스킷과 차를 두고 무얼 먼저 먹어야 하는지, 그 순서를 두고 점잖게 설전을 벌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터라 비스킷을 먼저 먹어야 차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느냐, 아니면 차부터 먼저 마셔야 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설전은 호사(豪奢) 중의 호사였다. 하긴, 서태후는 한 끼 식사에만 150개 이상의 요리를 차려 놓고 먹었다니, 그 호사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다. 이는 당시 청나라 농민 1만 명이 하루 먹을 수 있는 식비에 해당되는 비용이었다고 한다.


먹는 것에 대한 불평등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진흙쿠키로 배고픔을 달래거나 그마저도 없어 부황 들린 얼굴로 시름시름 죽어나갈 때 지구 어느 편에서는 비만을 걱정하고, 버려지는 음식물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세상에는 살기 위해 먹는다는 사람이 있고, 먹기 위해 산다는 사람도 있다. 살기 위해 먹거나 먹기 위해 살거나 간에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같다.


나는 살기 위해 먹는 축에 든다. 일을 하다 배가 고프면 대충 허기만 때우는 것이다. 그러니 늘 영양부족이나 위장장애에 시달리곤 한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먹는 즐거움을 아는 것 같다. 혼자 먹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살다보니 삶에도 위안이나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위로의 수단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통해 얻는 위안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소박하지만 정성이 깃든 음식으로 그날 하루의 삶을 치하하고, 내일의 에너지를 얻는 그 행위야말로 어쩌면 가장 신성한 의례라는 생각도 든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프로이트는 먹는 것을 리비도와 연관시켰다. 그는 나름대로 요리를 개발하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남기곤 했다. 타나토스 비프, 욕망충족 수프, 나르시시즘 소스 같은, 그가 남긴 요리법은 실제 요리에 접목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어쨌든 요리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음식을 보면 그 지방의 기후나 환경, 정주민들의 습속까지 유추할 수 있다. 음식물은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음식은 곧 그 지역의 문화이며 우리의 정신이기도 하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한 궁중요리집에 갔다. 그곳은 순종 황제를 모신 상궁으로부터 궁중 요리법을 전수해 그대로 재현한다는 요리집이었는데, 내심 기대가 컸다. 맛들은 좋았다.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하나같이 자극적이지 않고 뒷맛이 깔끔했다. 그 정도면 외국 사람들도 좋아할 만했다. 한데 나오면서 무언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맛은 좋았으되 어딘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맛만으로는 감동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


언젠가 일본 교토의 전통 있는 가이세키 요리집에 간 적이 있다. 만만찮은 가격이었지만 먹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계절마다 바꾼다는 실내도 실내였지만 음식재료와 그릇, 담는 모양까지 어느 하나 소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연을 함께 먹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음식 하나하나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궁중요리집은 정갈한 하얀 접시 하나에 네 가지 음식이 조금씩 담겨 나왔다.


한식의 세계화를 고민하는 만큼 좀 더 다방면에 걸친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음식은 오감이 만족해야 가장 맛있지 않던가? 그래서 말인데, 푸드스타일리스트, 그거 괜찮은 직업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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