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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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드림 노트 / 국민일보 [2012.06.06]

忍齋 黃薔 李相遠 2012. 7. 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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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드림 노트 / 국민일보 [2012.06.06]



며칠 전의 일이었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는데, 드림노트라는 화면 속 자막이 내 시선을 끌었다. 드림노트라니? 말 그대로 꿈을 적은 노트인데, 화면에서 보여주는 노트는 스프링이 달린 두툼한 작은 수첩이었다. 그곳에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별 모양으로 중요표시가 돼 있거나 ‘이루어지다’ 라는 메모가 들어있었다. 


수첩은 손때가 묻어 모서리가 닳아있었다. 그런 만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무슨 꿈이 그리 많을까? 뭐가 그리 많아 노트까지 필요할까? 나는 적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 드림노트의 주인공이 궁금해 하던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반바지·반팔 입는게 꿈이라니…


그 드림노트 속에 들어있는 항목들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반바지 입기, 반팔입기, 등산하기. 반바지를 입고 반팔 옷을 입는 것이 꿈일 수도 있다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영위하고 있는 일상들이 왜 이 드림노트의 주인에게는 꿈일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하찮은 것들이 꿈이 될 수 있을까. 


화면 속에 비친 사람은 듬직해 보이는 평범한 30대 청년이었다. 한 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직장이 있는 탓에 그는 출근길 내내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바깥을 보며 서있었다. 건장한 청년이므로 사람들은 서서가는 그를 당연하게 여겼고 나 역시 그게 이상해보이지는 않았다. 헌데 가만 보니 어딘지 움직이는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계단을 올라갈 때나 직장에서 일을 할 때 그의 움직임이 자꾸만 삐걱거렸다. 알고 보니 그는 팔 하나만 온전할 뿐, 두 다리와 팔 하나가 없었다. 어릴 때 기차사고로 크나큰 장애를 입은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서울의 한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그는 육신의 장애를 가지고서도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반바지를 입고 반팔을 입는 것이 꿈이었구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짠한 마음보다는 그가 믿음직스러워보였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반바지를 입고 등산을 감행했다. 건강한 사람도 오르기 힘든 그 바위산을 의족으로 한발 한발 오를 때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하나 꿈을 이뤄가고, 보다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그가 이 시대의 진정한 작은 영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진 것을 당연시한 부끄러움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감사할 줄 몰랐다. 게다가 요즘의 나는 매사에 힘들어하며 짜증을 부렸다. 누적된 과로로 연신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링거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보니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고, 생각한 것만큼 양에 차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내가 아무생각 없이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그 청년에게는 소중한 꿈이고, 꼭 도전해야할 모험들일 때 나는 내 욕심을 좇아 아슬아슬하게 나를 내몰았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감사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근면함이나 성실함이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에 쫓기듯 그렇게 살았을 뿐이었다. 삿된 탐욕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툴툴거리는 나에게. 세상에는 요행같은 운이란 없다고. ‘운’이란 글자를 뒤집어보면 ‘공’이 되는데, 모든 일은 공을 들여야 운도 찾아온다고. 그러면서 지지리 운도 없다며 세상과 내 자신을 탓하는 나를 점잖게 나무랐다. 덧붙여 그 사람은 나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일념, 생각 하나에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스스로 지옥 헤매지 말아야


언제가 한 공익광고에서 컵에 담긴 절반의 물을 보고 어떤 이는 절반이나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절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절반밖에 없다고 말하는 부정적 인간이었다. 일념, 그 생각하나에 천국과 지옥이 구분된다는데 스스로 지옥을 헤맬 필요가 있을까. 한 청년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멀쩡한 사대육신을 가졌으니 나는 다 가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니 감사하자. 감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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