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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천사는 많다 / 국민일보 [2011.10.26]
신체장애 후배의 결혼
어쨌거나 그 바쁜 와중에 짬을 내 한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단풍 고운 계절에 결혼을 하는 그 후배가 부럽기도 하고, 장하기도 했다. 그 후배는 정말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찌된 게 그 후배는 여자친구 하나 변변히 사귀지 못했다. 매사에 열심이고, 선후배들에게도 깍듯하게 잘하고, 자기 분야의 일에 실력도 있는데 이상하게 여자에게 만큼은 숙맥이었던 모양이다. 기껏 만나다가도 반년 이상 가지 못하고 번번이 여자친구에게 차이니 그 친구의 실망과 상처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저러다 결혼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긴 남의 말을 할 처지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안다. 나 역시 아직껏 혼자 몸이니 그 후배를 걱정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아니, 그래서 그 후배가 더 마음에 쓰였을 것이다. 행여 저러다 나처럼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헌데 다행히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을 때 나는 내 일처럼 야호,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갈 거면서 그동안 엄살은 무슨 엄살. 살짝 얄밉기까지 했다.
나는 얼른 그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부가 뭐하는 사람이며, 언제 만났고, 사귄 지는 얼마나 됐는지 신문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후배에게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귀는 여자친구가 없었고, 그런 만큼 느닷없는 결혼 소식에 나는 그의 평생 반려자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는 내 물음에 조금은 달뜬 음성으로 대답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사회단체에서 일을 하는 마음씨 착한 아가씨라고 그녀를 소개했다.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만나는 동안에도 그녀는 후배의 형편을 생각해 알뜰하게 챙겨주고, 이것저것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후배를 두고 인연이 따로 있는 모양이라며 다들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정말, 신부는 그동안 후배가 만나왔던 다른 여자친구들보다 훨씬 예뻤고, 훨씬 마음씨도 착해 보였으며, 다른 사정들도 훨씬 나았다. 후배가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후배는 웬만큼 나이가 들어 하는 결혼이었던 만큼 식이 진행되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친구들의 짓궂은 농담에도 웃음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결혼이었고, 금상첨화로 신부까지 예뻤으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신부는 예쁜 천사였다
그 신부는 천사였다. 그 후배에게는 신체적 장애가 있었다. 그 신체적 장애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후배는 장애 때문에 살아오는 동안 많은 손해를 입고 지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배는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장애가 없는 친구들보다 더 활달하고 제 일에 열심이었으며 내일에 대한 꿈으로 활기가 넘쳐나는 친구였다. 이 세상에는 그 후배보다 더한 장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든가. 겉으로는 멀쩡한 신체를 지녔으면서도 속으로는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탐욕으로 물든 사람이 많은 것이다.
어쨌거나 그 친구는 행복해보였다. 행복해 얼굴이 단풍잎처럼 발그레 물이 들어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그 후배가 아들 딸 쑥쑥 낳고 오래도록 행복하길 기도했다. 애가 셋이 될 때까지 절대 선녀 옷을 내놓지 말라고 주문했다. 헌데 나는? 나는 어떡하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을 때는 분명 짝을 지어 살라고 하신 것인데, 나는 지금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고 있지 않은가. 이봐요. 내 짝. 지금 어디에 계신거요?
■ 은미희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01년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받았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나비야 나비야’ 등 다수. 광주(光州)순복음교회를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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