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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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 2015년 01월 02일(金)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2. 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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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 2015년 01월 02일(金) 


은미희 / 소설가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가 아직 귀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묵직하면서도 둔중한 소리.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생체의 시각은 저마다 다른 법. 그러나 새로운 출발 앞에서는 조심스럽고 설레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2015년 올해는 다른 해와는 좀 다르게 특별하다. 어느 한 해가 다사다난하지 않았을까만 그래도 지난 한 해는 우리들의 시름이 깊었다. 그러니 마음가짐도 특별할 수밖에. 한 해의 시작 앞에서 품어보는 내 소망은 소박하다. 우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더 좋은 글을 많이 썼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다. 글 쓰는 일. 그것도 좋은 글을 쓰는 일, 그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은 없다. 내 소망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의 새해 소망은 뭘까. 어떤 이는 평생의 직장을 구하는 일일 테고, 어떤 이는 물질적인 풍요일 테고, 어떤 이는 가족의 건강일 것이다. 좋다. 무슨 일이든 좋다. 부디 그 소망들이 다 무탈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내게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봉이라도 있다면 주문을 외워서라도 들어주고 싶다. 사회가 뒤숭숭하고, 개인의 살림살이가 팍팍할수록 꼭 필요한 것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꿈 하나로 당장의 지난함과 신산함은 어느 정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안다. 꿈 하나로 오늘을 견뎌내는 사람 말이다. 그 지인은 일찌감치 남편을 여의고 홀로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는 주부였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 별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직장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생기는 대로 일을 하며 힘들게 두 아이를 키워낸 강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 사람은 내가 지도하는 글쓰기 대학의 수강생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출석하지 않는 날이 늘어나면서 종내에는 장기 결석자로 남아 우리에게 잊어진 사람이었다. 한데 어느 날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만나기를 청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아도 만나서 얘기하겠다며 한사코 만나자고만 했다. 나는 다른 할 일이 있었지만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음성에서 어떤 다른 기미는 느끼지 못했고, 무엇엔가 끌린 듯 그와의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카페 테이블에 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그는 몸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나는 묻지 못했다. 그가 말하지 않는 것을 물어보는 일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 동안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주저하며 나를 만나자고 한 용건을 꺼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몸이 아파 출석할 수 없었노라고, 아쉬워하며 원고 하나를 내밀었다. 자신이 힘든 삶 속에서도 틈틈이 글을 썼는데 보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신산한 세월을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의례적인 몇 마디 말로 그의 삶을 위로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그 힘든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꿈을 잃지 않은 사실이 놀라웠을 뿐이다. 게다가 그가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고 난 뒤, 그가 한 말은 잊히지 않고 내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무시로 튀어나왔다. 그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하게 해준 것은 소설가에 대한 꿈이었다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소설가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고. 그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자신은 아마이 자리에 없었을 거라며 연신 발음이 새는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때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뭉쳐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힘들어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의 꿈일 수도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에게 밥이 되지 않고, 아이들 등록금이 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해주지 않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그 소설이 그녀를 살아가게 만드는 의미가 되는구나 싶어 그동안 무심코 내뱉은 나의 푸념들이 부끄러워졌다. 어디 나만 그럴까. 우리는 싫증을 내며 마지못해 영위해 나가는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저 욕심껏 따라주지 않는 삶에 아무렇지 않게 불만을 토로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는 지금도 소설을 생각하며 당장의 힘든 삶을 견뎌낸다. 가끔 자신의 글을 보여주거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나는 그런 그가 고마웠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삶을 살아내는 그 자세와, 꿈을 잃지 않는 그 견고함이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는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꿈이 있는 한 자신을 잃지도 않을 것이며 삶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꿈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감내해낼 수 있는 그런 강인함도 덤으로 선물해준다. 그러니 그처럼 꿈을 간직하면 어떨까. 정말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 평생을 두고 몸을 달게 만들고 나이가 들어서도 설레게 하는 일, 그런 꿈 말이다. 그 꿈이 별처럼 가슴속에서 반짝일 때, 우리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그 미소가 자신을 충만하게 하고,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그 꿈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꿈들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발전하게 하는 중요한 동력일 터이다. 그러니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이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 것처럼, 지금이 그 꿈을 품기에 딱 좋은 때다, 새해 벽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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