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진범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blog.daum.net/enature/15852401)는 사실 제가 쓴 글도 아니고 가슴이 먹먹하던 차에 같은 실리콘밸리에 살고 애플에 전문가로 있는 김영재 박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잘 설명된 글이라 하여 읽어보니 이해가 되지 않던 그 멍청한 인명 상실의 구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던 일을 이해하니 그나마 숨이 좀 쉬어져서 같은 한국 동포라면 이심전심일 것 같아 그 글을 퍼다가 올렸더니 밤새 많은 분이 같은 심정으로 공감을 해주셨더군요.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어도 한국인의 피와 정서는 진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출근하여 미국에선 이런 일에 성금기탁이 습관화되어 있어 온라인으로 위로 성금도 맡기고 커피 한 잔 하며 일과를 시작하려고 직장 이메일 열고 업무적으로 온 이메일 확인하고 답장하고, 그리고 개인 지메일을 열었습니다. 100개씩 세팅한 INBOX 3페이지가 넘어가니 줄 잡아 3백 개가 넘는 욕설과 공갈·협박을 하는 이메일이 싸여 있더군요. 비슷비슷한 계정에서 온 것을 보니 서로 협동하여 '요이 땅' 한게 분명했습니다. 뭐 80518 카페운영 하면서는 이보다 더한 꼴을 보았는데 하면서 눈길 가는것 몇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좀 달라진 양상이 있더군요. 고도의 심리전 교육을 받은 듯한 자들의 글들이 눈에 띄더군요. 제가 한때는 국방성에 근무하기도 해서 미국 고도 심리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들이 있는 걸 느끼겠더군요. 적에 가해야 할 심리전을 국민에게 행한다는 게 섬뜩해지더군요. 비록 미국 교민이지만, 미국동포도 마음에 안 들면 심리전 대상이 되는 적이라는 말이지요.
어차피 미국으로 유학 오던 1980년대, 저는 살고자 도망치는 마음으로 살인마 전두환 군부독재의 손아귀를 벗어나듯 미국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리고 자식을 키워보니, 대학 1학년으로 내가 겪었던 살인마 전두환의 광풍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그 나이에 고문과 구타로 종아리 인대가 끊어지고, 머리 뒤통수가 깨지고, 살아서 고문받던 보안대 문밖을 나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고 한국을 떠나오던 그 순간까지도 언제 또 불려가 잊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닦달을 받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단수여권을 손에 들고 넉넉하지 못한 여비로 떠난 미국유학은 공부와 인연이 멀었던 사람이지만 살인마 전두환의 졸개들을 피하여 살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2003년 5.18 민주화 유공자로 제 명예가 회복되던 그 순간까지 저는 한국을 향해서는 고개조차도 돌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유 없이 고문을 가하던 보안대 중상사 같은 모든 한국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고 사는 건 공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비록 살인마 전두환이 희희낙락 떵떵거리며 살아있는 체 5.18 유공자로 명예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저는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도망쳐야만 했던 대한민국과 화해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온라인입니다. 많은 위로도 받았고 내 자식에게 한국을 배우게 할 용기가 생겼고 무엇보다 한국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걸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저 미소와 검은 눈동자 뒤에 보안대 중·상사들처럼 괴물로 변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이제는 한국사람도 만납니다. 씩씩하게.
그 힐링의 시간도 잠시, 이명박이 집권하면서부터 세상이 돌변하더군요. 내심 조마조마했습니다. 박근혜가 집권하자. 꿈속에서 5.18 유공자 증을 뺏어가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 사람들이 접촉하여 오면 정강·정책에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넣어주면 한나라당의 충견이 되겠다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비록 머리 꼬랑지 묶고 소개 사진이 허접스럽게 보여도 미국연방공무원으로 한국의 3급직에 상당하는 검사관으로 재직하고 있어 함부로 대접받는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대통령이든 고위공무원이든 국민이 볼 때는 "So, what?"일 뿐이지만 한국사람들은 높은 거 좋아하니 제 급수를 아는 한국사람들에겐 제법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분 상하진마시고요.
나이가 들어가는지 욕설과 공갈 협박들이 이제는 제법 상처가 됩니다. 제 각시도 골병만 들게 한 한국이 뭐 좋다고 맨날 한국걱정에 한국 인터넷만 하느냐고 핀잔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난 한국사람입니다. 비록 이제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순간과 시간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더 많이 존재하지만 난 한국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희생된 아이들이 대부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라고 하니, 안산에 사는 친구들이 떠오르고, 천주교 안산 대리구 내의 아는 신부님들이 떠오르고, 또 어린 시절 이모할머니 아드님들이 살던 안산 김씨 집성촌 안산 '노리울'이 떠오르는 그런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헛것이 보입니다. 욕설에 공갈·협박을 해대는 이메일들이 꿈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생깁니다. 공갈·협박을 해대던 자들이 지닌 비수가 배 속의 창자를 후비고 깨졌던 뒤통수를 철퇴가 가격합니다. 잔인한 북한을 보면, 살인마 전두환의 졸개들이 아직도 활개 하는 걸 보면 이게 꿈속에서만 그칠 것 같지가 않아 사실은 두렵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마치 일본사람 아니면 중국사람 또 아니면 필리핀 사람처럼 살아가는 게 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군요. 이번 주말은 영 우중충한 날씨처럼 찝찝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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