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일본군으로 일제에 봉사(?)하고 해방후 국군의 지휘관으로 1950년 한국전쟁을 치루었던 정일권 백선엽 장도영 같은이들이 3~4개 중대규모의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했다고 1956년 육군본부가 편찬한 공식기록인 <후방전사(後方戰史)>(인사편)에 기록되어 있고 2002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 <한국군도 '위안부' 운용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7241>로 소개된 바가 있다.
위안부대가 공식적으로 운영되었던에 비해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던 일명 <사모님 부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은 한국전쟁에 참여 하여 2등중사로 수류탄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6사단 00연대의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사단과 연대의 전령업무도 하였던 바 일본도를 휘두르며 지휘를 하던 사단장 장도영의 꼴도 자주 볼수 있었다 한다.
그중에 군복만 입은 반반하고 학식이 있어 보이는 여고 또는 여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을 예하부대 연대장 대대장 등의 장교에게 배급하였다 한다. 어떤이는 여대생으로 어쩔수 없이 인민군에게 부역한것이 빌미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마침 나의 부친이 인계 받아 소속대대장에게 배급한 이는 북에서 선생을 하다가 피난길에 스파이용의가 있다는 구실로 잡혀와 배급되는 길이었다 한다.
마침 나의 부친 자신도 교직에 있다 입대한 처지라 안스러워 했더니 '난리 통이니 목숨 부지한건만 도 다행이'라며 체념하더란다. 행군할 때 솜이불 침구와 여자 화장품 상자를 전투 소대원에게 분담시켜 이동지로 나르게 하고 각 대대마다 계급없는 군복을 입은 사모님들이 함께 행군해 이동했다고 한다. 이런 슬픈 현실을 목도하고 분노했지만 부친이 속해 있던 연대는 전멸을 하고 수류탄 부상 속에서 구사일생 살아나 나를 이세상에 있게 만드셨다.
김희오 장군의 회고록('인간의 향기(2000)')에서도 등장하긴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것은 나의 부친이 작은 스트록을 두번 맞으셔서 정신도 그리 맑지 못하시다. 그리고 혹시 생존자 중에 그 당시를 기억하는 분이 있어 용기있게 증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친은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전쟁터에서 사모님을 배급받는 그 정신 상태였으니 전멸을 하지'
그때의 사단장들의 정신 상태나 2014년의 사단장들의 정신상태는 하나도 바뀐게 없다. 육군 17사단 사단장 송ㅇㅈ(http://jjanggaa.tistory.com/165)이가 아주 웅변을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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