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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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天池가 나에게 말했다 / 2015년 01월 30일(金)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2. 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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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天池가 나에게 말했다 / 2015년 01월 30일(金)


은미희 / 소설가


새해 들어 백두산 천지(天池)에 갈 기회가 생겼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그 정상에 들어앉은 천지. 그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마냥 가슴이 설?고, 벅찼다. 겨울에 산행이라니. 그것도 백두산이라니. 아서라, 관둬라, 위험하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평소에도 천지는 사계 중에 겨울 풍경이 으뜸이라 여겨왔기에 그대로 천지를 향해 떠났다.


매섭게 몰아치는 북풍한설과 혹한은 범인(凡人)들의 접근을 경계하는 천지의 자기방어라 여겼고, 순백의 설산에 부닥쳐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햇빛은 그 자체가 신비롭고 신령하다고 믿었다. 또 그것이 겨울 천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겨울 천지를 보고 싶었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살아 있는 천지를. 그런 터수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아마도 내게 천지행을 권유하는 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으리라.


드디어 단단히 짐을 꾸려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백두산 천지를 보게 되는구나, 그것도 새해 벽두에.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고, 각별했다. 그곳에 가서 내 삶을 돌아보고 다시 마음가짐을 정비해 앞으로의 삶을 살리라는 기특한 각오도 들었다. 그 와중에도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지를 못 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천지를 보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해줬지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천지를 보지 못할 거라고 할 때마다 천지는 분명 내게 그 민낯을 보여줄 거라는 터무니없는 확신도 들었다. 그래서 마냥 가슴이 설레고 부풀었다.


가는 코스는 이른바 북파라고 하는 북쪽 능선이었다. 정상 부근까지 버스와 지프를 번갈아가며 타고 올라가는 코스였다. 눈 쌓인 백두산을 차로 이동하다니…. 그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고, 십중팔구 올라가지도 못할 거라며 코스를 설명하는 내게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차로 이동하는 그 코스가 산을 잘 타지 못하는 내게는 가장 쉬운 길이었고, 그만큼 체력 소모도 덜했다. 천지 등정을 하루 앞두고 일행과 함께 이도백하(二道白河)라는 백두산 자락에 하룻밤 짐을 풀었다. 한데 야속하게도 눈발이 흩날렸다. 금방 그칠 눈이 아니었다.


웬걸, 다음 날 아침 천지를 향해 가는데, 거짓말처럼 눈발이 그치더니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눈 쌓인 비탈길을 차들은 체인도 감지 않고 거침없이 내달렸다. 천지는 꼭 보려는 사람에게 제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천지를 만났다. 그것도 겨울 햇살이 금빛으로 내리쬐는 천지를. 신비롭기 짝이 없었다. 살을 에는 추위였지만 그마저도 달콤한 통증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저쪽에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허술한 철책으로 가로지른 경계 초소였다. 거기서부터는 북한 땅이라고 했다. 그 작은 경계선 하나만 넘으면 우리 땅인데, 우리는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온 것이었다. 중국에서 백두산이란 명칭은 금기어였고, 곳곳에서 만나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는 중국 한자 표기는 아쉬움을 더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새로운 기운을 얻고 다시 살아보리라는 애초의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고 진행 중이었지만,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중국의 비상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과 부러움을 느꼈다. 그랬다. 천지에서 만난 중국이 무서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주변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역사가 고친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이 아닌데도 그들은 미래의 중국을 위해 차근차근 역사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달 탐사 우주선의 성공 신화를 틈틈이 내보내면서 그들의 오늘과 미래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 거만한 자신감이 불안했고, 그 중국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런 적이 있었다. 세계가 극동의 작은 나라에 놀라던 시절, 우리는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근면 성실함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식민지 시절과 내전의 피폐함에서 벗어나 세계 주요 경제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한데 요즘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활력이 없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고 긴 한숨이 흥감스럽기만 하다. 정말, 보이지 않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개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런 터수에 쉬운 말로 힘을 내라는 격려는 무력하고 오히려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천지행의 일정 가운데 포함된 용정(龍井)에서의 숙연함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힘을 내 나가보자는 것으로 귀착된다. 용정!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자 그 척박한 곳으로 모여든 독립투사들의 치열한 삶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 땅 어느 깊은 계곡에 백골로 누워 있을 그 선조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 땅에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련을 넘어서는 수많은 선조의 투쟁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역시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줘야 할 책임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한 사람만의 책임일까. 국가와 조직, 그리고 개인, 이 모두가 하나의 톱니바퀴로 맞물려 있는 것을. 굳이 무게를 따지자면 개인은 조직과 국가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만을 생각하며 움직일 때 그 톱니바퀴는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톱니들인 것이다. 이번에 얻어온 이 천지의 기운을 나눠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다. 웃어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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