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11_小說家殷美姬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나를 만나러 가는 길 / 2015년 03월 06일(金)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3. 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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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나를 만나러 가는 길 / 2015년 03월 06일(金)


은미희 / 소설가


환한 햇살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람이 가지 앙상한 나무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그 바람에 겨우내 잠들어 있던 크고 작은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어디 깨어나는 것이 나무들뿐이겠는가. 나날이 햇살은 금빛으로 여물어지고, 얼었던 대지도 기연미연 푸른 물이 돌기 시작한 것을.


자연은 늘 감탄사를 끌어낸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선은 묵고 둔해져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는데, 저만치 다가온 새봄은 그 감정선을 건드리며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안겨준다. 언제 그렇게 봄이 저만치 다가왔던 것일까. 비에 진눈깨비가 섞여들고, 바람결에서 칼끝 같은 매서움이 느껴졌는데, 그 속에서도 봄은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어느새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앞다투어 꽃 소식이 날아올 것이다. 성급한 꽃들은 제철 아닌데도 서둘러 피었다가 아뿔싸 낱장으로 떨어질 테고, 게으른 꽃들은 철 지나 필 것이다. 늦으면 늦은 대로, 이르면 이른 대로 다 예쁘고 고맙다. 꽃 피우느라 저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긴긴 겨울, 추위와 바람을 견뎌내야 꽃을 피울 수 있으니, 그 꽃 속에, 그 개화의 시간 속에 지난 시간의 사투와 인내가 오롯이 쟁여져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결로, 혹은 품새로, 색깔로, 그 시간들은 그대로 무늬가 져 드러나는 법.


사람도 그러하다. 늦으면 늦는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다 예쁘고, 귀하다. 그 긴 겨울과 시련을 이겨내고 꽃을 피웠으니 대견하다.


그 바람과 나뭇가지의 춤사위에 마음이 동했다. 저 봄을 마중하러 나가자. 그렇게 집을 나섰다. 베란다 통유리 너머로 보는 바람과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과는 차이가 났다. 아직 바람결에 겨울의 위세가 남아 있었다. 어디 목적지를 정하고 나선 것이 아니었으므로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봄을 보자고 나왔으니 어두컴컴한 실내를 찾아 들어가는 것도 마뜩잖았다. 이 봄, 증인이 되리라고 마음먹었으니 기어이 봄이 오는 길목을 확인하고 들어가리라, 작정했다.


그때 문득 내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집이 떠올랐다.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다녀오자 생각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서도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참에 가 보기로 했다. 거리와 소요되는 시간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기왕에 나선 길이니 그냥 가기로 했다. 버스터미널로 가 지방으로 가는 티켓을 끊어 차에 올랐다. 다소 즉흥적이긴 했지만 인생도 그러하지 않던가. 이것저것 따져 계산하고 계획해도 느닷없는 장애물에 좌초하거나 넘어지지 않던가. 그러니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떠나온 길이었고, 봄 마중이었다.


찾아간 곳은 유년의 집이었다. 야트막한 동산의 중간을 깎고 들어선 집은 마당에 서서 내려다보면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과 후면 나는 그 동산에 올라 진달래, 개나리, 구절초나 이름 모를 꽃들을 꺾어다 병에 꽂아놓기도 하고, 마당 앞, 장독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저물어가는 해를 배웅했다. 기억에 제법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레퍼토리는 참으로 많았다. 유행가에서부터 가곡, 오페라 아리아와 동요까지. 그 노래와, 꽃과, 뒷산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네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렇게 고속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내 유년의 삶을 기름지게 해준 집을 찾았다. 그런데 무언가 자꾸만 어긋났다. 그 집으로 가는 길은 내 기억 속에 있던 풍경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길가의 도랑도 말끔히 복개돼 길이 넓혀져 있었고, 대문으로 이어지던 나무 계단은 옛날의 운치를 잃은 채 콘크리트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진달래, 개나리가 만발하던 뒷산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었고, 마당은 비를 피할 수 있게 새시로 덮여 있었다. 내 유년의 집은 더 이상 세상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머리에 이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그 크던 교사와 운동장은 어디로 가고, 작은 교사와 좁은 운동장이 나를 맞았다. 추억은 추억만으로 아름다울 텐데, 왜 그걸 굳이 확인하려 들었을까. 하지만 그 틈에도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세월에 따라 커가는 몸피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세월만큼 나도 큰 사람이 되었을까. 그냥 체격이나 욕망의 부피만 커진 것은 아닌지.


운동장 한편에 있는 키 작은 그네에 앉아 발을 굴렀다. 나를 받은 그네는 삐걱대며 힘겹게 움직였다. 정말 나는 나이만큼 성숙한 사람일까. 아니면 내 나이만큼 고집스럽고 고약한 사람일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때까지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해는 망치고, 어느 해는 열심히 살아 얼마만큼의 수확도 거두었을 것이다. 그 세월만큼 나는 물러졌거나 단단해져서는 오늘의 나로 여기 있을 것이다. 미운지, 예쁜지, 잘 살았는지, 욕심만 사나운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봄 마중은 핑계였는지 모른다. 봄, 새로운 시작 앞에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한 번쯤은 정리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저 나무들이 새 움을 준비하듯 나도 그렇게 새로운 활기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마주하고 싶었을 것이다.


창가에 마중 나온 봄이 내 발을 간지럽혔다. 다시 길을 떠날 때다. 잘 갈지, 못 갈지 그건 알 수 없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는 봄 앞에서 나도 새로워져야겠다. 새 물이 도는지 내 몸이 자꾸만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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