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많은 건지 주위에 판검사 된 선후배가 제법됩니다. 어린시절 부터 동네에서 가족끼리 형제끼리 살같이 지내던 ㅎ 선배는 판사시보가 되면서 운동권인 제가 부담스러웠던지 아는체 하는 제게 이런 말을 하며 아직도 가까이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판사인 나는 너와 신분이 다르고 사는 세상이 다르니 어디가서 아는체도 하지 말거라." 머리가 부족한 저는 그 선배가 대법 연구관 기획관등을 거치고 나와 변호사를 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동부살때는 하바드로 연수를 나와 만나자 하였지만 아는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바드 법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에서 연수오는 법관들에게 1년뒤 돌아갈때는 법학석사를 한장씩 주는데 그건 정식 학위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미국에는 법대가 대학원 과정으로 따로 있고 졸업하면 J.D.(법학박사)가 정식학위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골프치며 1년 잘 놀다가는 과정이라는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한심한 인간들의 섭섭함에서 벗어나게 한 단 한명의 판사가 있었습니다. 판사 한기택!
판사 한기택은 제 고등학교 3년 선배입니다. 당시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학교로 제가 5회졸업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들은 전혀 비빌언덕 없는 선배들은 후배사랑이 지극합니다. 살인마 전두환이 같은 악인은 벽에 똥칠할때까지 살고 의인들은 정말 일찍 거두어갑니다. 판사 한기택은 신실한 천주교인이었지만 농이긴 하지만 농같지 않은 저는 좀더 살려고 나이롱 신자입니다. 잠시 눈을 들어 우리시대에 함께 숨을 쉬다 먼저간 판사 한기택을 소개하니 머리 속에 기억하시고 어린 자녀분들에게 이런 판사가 대한민국에 있었다고 꼭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 한기택
2006년 한기택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1주기 기일에 맞춰 출간된 추모 문집 '판사 한기택'.
올해는 여름 휴가 도중 외국 휴양지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진 한기택(1959∼2005) 전 대전고법 부장판사의 10주기가 되는 해다. 한 전 부장판사는 100명 안팎에 불과하던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300명 이상으로 급증한 1981년 제23회 사시를 거쳐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이 그의 사시 및 연수원 동기생이다.
한 전 부장판사는 육군 27사단과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1986년 서울민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법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지법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법) 판사, 대전지법 강경지원(현 논산지원)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05년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중 가족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4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생전에 한 전 부장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통했다. 퇴근할 때마다 사건 기록을 싸들고 집에 가 이튿날 출근하기 전까지 읽고 또 읽었다고 가족은 기억한다.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사법부에도 개혁의 기운이 몰아칠 즈음 그는 동료 소장법관들과 함께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제2차 사법파동이 일어나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이 스스로 물러나고 법원 내부는 물론 법조계 전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해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한 전 부장판사는 평소 지인들에게 "나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진정한 판사로서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하며 욕심없이 청빈하게 살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늘 '내가 하는 재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딜 가나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성품 때문에 한 전 부장판사가 다녔던 성당 수녀조차 그가 숨질 때까지 판사란 사실을 몰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가 학창시절에 쓴 일기, 부인 이상연씨와 주고받은 연애편지 등은 2006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추모 문집 '판사 한기택'(궁리)에 고스란히 실려 지금도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유족으로 부인과 큰딸 동연(30), 둘째딸 동아(29), 막내아들 동균(25)씨가 있다.
10주기 추모 행사는 그가 각급 법원 합의부에서 부장판사로 일하던 시절 배석판사로 만나 인연을 맺은 황진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이정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고홍석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정욱 변호사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고인과 더불어 개혁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한 박시환 전 대법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부정매입 사건 특별검사를 지낸 이광범 변호사 등도 참여한다.
최근 세계일보 기자 칼럼 <'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 한기택>이 SNS, 블로그 등으로 공유되며 잔잔한 감동이 퍼지고 있습니다.
2015년 7월 24일은
故 한기택 판사 10주기입니다.
한기택 판사는 누구인가?
사회소수자 권익 보호에 힘썼으며
재벌에게는 엄격했던 한기택 판사,
그가 내린 판결을 소개합니다.
부귀, 출세를 멀리하며
세상의 불합리와 싸웠던
판사 한기택.
그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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