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4_해월의딸용담할미

해월의 딸, 용담할미(2회) - 평생제자 김연국을 만나게 된 사연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8. 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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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고은광순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읽어보니 흥미진진 합니다. 어쩌면 토지나 혼불에 버금가는 대하소설이 되는건 아닌지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하여 고은광순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그분의 소설을 연재합니다. 활자화된 책으로 나올때 까지 이곳에서나마 갈증을 풀어보기 바랍니다. [퍼와 편집한 이 주]




(이필제의 난의 여파로 피신하면서 해월은 첫째 부인 손씨와 헤어져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고 둘째 부인 김씨와 살게 되는데...) 

이곳 단양 도솔봉 아래 사는 날부터 연화는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갔다. 어린 동생들, 솔봉이와 윤이도 생겨났다. 이젠 스무 살의 과년한 처녀가 된 연화는 11살, 14살 터울의 솔봉과 윤에겐 어머니 같은 누이요 언니가 되었다.

김 씨도 연화와 둘이 살 때엔 이런 행복이 다시 오리라 생각지 못했다. 새로 만난 남편은 한없이 어질고 부지런했으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점잖았다. 남편에게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묻고 말씀을 듣는 표정들은 더 없이 부드럽고 온화했다.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층 평화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손님 뒤치다꺼리가 많아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양식이 부족할 때는 물론이고 넉넉히 있을 때에도 남편은 가족이 먹는 것은 죽을 끓이라고 했다. 농사짓는 이들도 제대로 못 먹는데 양곡을 얻어먹는 처지에 쌀밥을 먹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먹는 것뿐일까. 입는 옷도 항상 무명일 뿐, 간혹 찾아오는 제자들이 비단이나 가는 모시로 만든 좋은 옷을 가져와 권해도 모두 물리치고 입지 않았다.

정해(1827)생이니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48세였고 지금은 57세가 되었다. 그러나 김씨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편이 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남편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개 낮에  조금 멀리 떨어진 제자들 거처에서 머물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찾아왔다. 그리고는 새벽 동트기 전에 집을 떠났다. 남편은 항상 하루가 바뀌는 해시와 자시(밤 11시~1시) 사이에 청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렸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남편이 동학 선생이라는 최제우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은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 해월 최시형이라는 것을 오라비로부터 듣기는 했으나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북도중주인을 북접주인(北接主人)이라고 간단히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도를 전수 받던 당시 남편이 살던 곳이 최제우가 살던 용담의 북쪽에 있었고, 또 최제우가 해월에게 북쪽으로 세를 뻗치라고 그리 이름 붙인 것이라고 했다.

김 씨가 처음 그 주문 외우는 모습이 낯설어 놀라는 표정을 지었을 때 최시형은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내 나이 35세에 동학을 세운 수운 스승님을 만났지요. 주문은 그 가르침의 고갱이라오. ‘지극한 한울기운 지금 여기 크게 내리소서. 내 가슴속 한울님 모시니 조화가 자리 잡고, 영원토록 잊지 않으니 만사가 다 깨달아지리다.’ 이런 뜻이라오. 지금은 낯설어도 차차 이해가 될 것이오. 스승의 가르침은 내 차차 전해 드리리다.”

그 뒤로 더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말과 행동거지가 여느 사람들과 달랐다. 모든 존재가 안에 한울을 모시고 있다며 아내인 김 씨와 연화 그리고 솔봉과 윤,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도 나이나 신분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그윽한 공경심으로 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집에 기르는 가축은 물론이고 풀 한 포기, 나무 하나까지 마치 귀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대하였다. ‘하늘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저런 사람인가 하여 김씨는 남편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깊은 감사의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 날, 김 씨가 연화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김연국이 해월을 모시고 목천에서 돌아왔다. 목천에서 도인들이 경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에는 공주에서도 경전을 만든다고 하니 해월은 포덕 하랴 경전 판각에 관여하랴 바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했다.

연국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왔다. 연화는 남정네가 부엌에 들어오면 못쓴다고 바가지로 물을 떠 주며 연국을 떼밀어 밖으로 보냈다. 둘이는 오누이처럼 지내다가 언제부터인가 남다른 눈빛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 둘 사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건 김 씨 부인이었다. 처음 단양에 왔던 날 그때도 연국은 남편 곁에 있었다.


2. (평생제자 김연국을 만나게 되는 사연)

공주 사람 이필제가 있었다. 해월보다 두 살 많은 그는 자기 말로 일찍이 수운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몰락해 가는 양반 세상, 조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각 고을마다 탐관오리의 횡포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이미 3~40년 전 사람 정약용이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지어 백성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지 않았던가. 관속들의 수탈은 도무지 끝이 없었다. 죽은 사람, 갓난아기, 동네를 떠난 이웃, 거동을 못하는 늙은이에게까지도 세금을 매겨댔다. 세금을 독촉하는 관리가 떠난 다음에 방에 들어온 남자는 자기의 양물을 칼로 베었더란다. 정약용은 유배 간 동네에서 실제 일어났다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통 속에 죽지 못해 사는 백성들의 참상을 시로 썼다. 그러나 조정이나 고관대작들은 백성의 고초를 생각하기는커녕 매관매직으로 곡간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돈을 받고 벼슬을 내주는데, 수시로 갈아치우면 수시로 돈이 들어왔다.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자들은 언제 자리가 뒤집힐지 모르니 빠른 시간 안에 본전 이상을 챙겨야 했다. 파는 놈이나 사는 놈이나 눈이 벌겋게 되었다.

그 통에 죽어나는 것이 백성이라, 걸핏하면 끌려가 매타작을 받고 가진 것을 빼앗겼다. 가는 곳마다 수령들의 탐학은 입에 단내가 나게 했고 발길 닿는 곳마다 백성들의 참상은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이놈의 세상, 누구라도 나서서 확 뒤집지 않으면 안 되리라.’ 하는 마음들이 밤마다 마을 골목과 들판을 떠돌고, 낮에는 골짜기 바람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갔다.


이필제는 공주, 천안, 진천을 다니며 사람을 모았다. 그러나 밀고자가 있어서 진천 관아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간신히 몸을 피한 이필제는 학정에 시달리다 악에 바친 사람들이 넘쳐나는 진주, 남해 인근에서도 사람들을 모았으나 역시 밀고자가 있어 진주 관아 공격도 실패했다. 든든한 조직,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는 최시형을 떠올렸다. 착실하게 포덕을 하여 신망이 높다고 했다. 믿을 수 있는 조직은 그가 갖고 있다! 그는 영양 일월산 아래 살고 있는 최시형에게 사람을 보냈다.

최시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동학이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한울마음을 품고 세상만물을 한울처럼 대하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후천개벽이 되니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포덕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폭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스승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이필제는 두 번째 사람을 보냈다. ‘좋은 세상 만들자고 동학을 세운 우리의 수운 스승님은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하셨다. 신원 운동을 하는 것이 제자 된 도리가 아니겠느냐.’ 간곡한 뜻을 전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세 번째 사람을 보내 거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해부사 이정은 삼척부사로 있을 때에도 탐관오리였고 영해부사로 와서도  생일날에 떡국 한 그릇에 30금씩 거두어들인 무자비한 놈이다. 동학 도인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어쩌겠는가.’ 역시 해월은 요지부동이었다. 네 번째 사람을 보냈다. ‘제세안민. 우리가 탐관오리들을 벌주면 조정은 매관매직의 농단을 혁파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래야 개벽의 새 하늘이 엽전만큼씩이라도 열리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사람을 보냈다. ‘이미 많은 동학도가 가담의 뜻을 밝혔다.  3월 10일 수운 스승께서 참형당한 날에 맞춰서 영해 관아를 점거하고 부사를 징치하겠다. 어찌 하겠는가?’ 이필제는 해월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흔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말을 전하는 도인들은 해월과도 안면이 있고, 해월로부터 도를 받은 도인들도 있어 제의를 언제까지고 물리칠 수만은 없었다.


해월은 마침내 고개를 끄떡였다. 거사일 전에 집을 떠나 영해 병풍바위 앞에서 천제를 지내고 결사 도록에 서명했으며 식량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미 많은 동학도들이 참여하고 있으니 그가 감당해야할 몫이 있었던 것이다. 거사일 직전. 해월의 양자인준과  매부 임익서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5, 600명의 동학도들은 밤이 깊어지자 관아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한 뒤 부사를 죽이고 죄수를 풀어주었다. 이필제는 드디어 뜻을 이루고 관아 돈 150냥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필제는 비로소 세력을 움직이는 귀한 경험을 얻었다. 이필제에게 이번 거사의 실제목표는 수운의 신원보다는 성공의 신화를 백성들에게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필제는 조령을 다음 목표로 그다음 문경, 괴산, 연풍, 충주 그렇게 여세를 몰아 조선반도를 휩쓸 생각으로 영해를 떠났다. 그러나 관리들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필제는 영해부사의 처단을 거사의 성공이라 여기며 자신감에 넘쳤지만 해월에게 불어 닥친 후폭풍은 참담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추격해 온 관군에 양아들 준이를 포함한 수백 명의 동학도들이 잡혀 끔찍한 고문 끝에 처형당했다. 대구에서 참형당한 수운 스승님의 주검을 경주까지 모시고 올 때 힘썼던 매부 임익서도 희생되었다. 아내 손 씨와 두 딸의 행방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스승이 돌아가신 후 7년간 공을 들여 보석처럼 가꾸었던 동학도 백여 명이 처형되었고, 수백 명이 유배를 갔다. 마음속에 한울을 모셔 개벽 세상을 가져올 동학도들이 초토화되어 버렸을 뿐 아니라, 동학도는 이후로도 계속 끊임없는 지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아, 이 일을… 이 일을….

(평생제자 김연국을 사위로 맞게 되는 사연이 다음 회 해월의 딸 용담할미(3회) - 김연국이 사위가 되고... 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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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8 -해월의 딸 용담할미(1회) - 어마 돌나물이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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