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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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대중 대통령 연설 중에서..............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0. 2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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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직) 대통령
생몰1924년 1월 6일 ~ 2009년 8월 18일
출생지대한민국 전남 신안군
신체A형
경력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수상2011년 제1회 동학농민혁명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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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연설중에서 ..............

1) 이 김대중은 돈을 돌보듯 합니다.(1967)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 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1967년6월4일 오후 2시 목포역전 광장에서 행한 DJ의 국회의원 선거 유세). 이 때 거물간첩 김용규 등 통혁당 간첩단이 대거 목포로 몰려가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한 바람잡이 공작을 했다.

 

2) 1980.3.26일 김대중의 YWCA 초청 연설문이다. 이 연설은 5.18 직전의 것이기에 전문을 게재한다.

나는 내 일생의 교훈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배반하지 말고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국민의 편에 서라는 것, 이것이 내 인생과 정치의 신조입니다. 우리 집 가훈이 세 가지 있는데 그 중 첫째가 하느님과 국민에게 충실 하라 입니다. 둘째는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야 된다 이며, 셋째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마라는 것입니다(박수, 옳소! 환호). 나는 내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돈과 하느님은 같이 섬길 수가 없고, 돈과 양심을 같이 섬길 수가 없다. 돈은 먹고사는 데 부족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부를 가지게 되면 부의 노예가 되고,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국민으로부터 격리되고, 그리고 교만해지고 타락한다. 따라서 만일 너희들이 경제계에 나가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는 등등 경영자가 되는 것은 좋지만, 만일 부자가 되면 아버지와 너희들과는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을 나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정치인으로서의 최대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둘째, 셋째입니다.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내 양심에 충실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내 양심에 충실하다가 기회가 있어서 대통령을 맡게 되면 봉사할 것입니다(박수, 환호). 그러나 국민과 양심을 버리고 무슨 수단을 쓰든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이것은 내가 죽으면 죽었지 추구할 수 없는 길입니다.(옳소! 박수) 여러분에게 솔직히 얘기한다면, 나는 다음 정권, 그렇게 대단한 매력이 없습니다. 왜? 첫째, 경제만 보더라도 박정희씨가 아주 망쳐 놓았습니다(박수. 옳소! 환호). 이것을 맡아 놓고 수습한다는 것은 마치 다 파먹은 김칫독에다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옳소! 박수).


남북문제, 노동문제, 청년·학생문제, 군대를 통솔하는 문제 등등 다음 대통령의 짐이 여간 무겁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하면,「누가 한 4년쯤 해서 실컷 고생하고 난 뒤 그때쯤 내가 맡는 게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박수, 환호) 여러분! 나는 아직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여기서 공개할 수 없는, 그 동안 많은 치욕과 고통과 괴로움을 당했지만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나를 바다 속에 상어밥이 되게 던지려고 할 때도,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국민은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법정에 섰을 때도 판사를 향해, 검사를 향해, 당신들이 나를 지금 재판하지만 역사와 국민은 내 편이라는 것을 얘기했습니다(옳소! 박수). 누구에게 천대를 받건, 누구에게 멸시를 받건, 누구에게 박해를 받건, 아니 오늘 생명을 잃건, 내 국민만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국민만 나와 같이 있고, 내가 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한은, 김대중에겐 불행이 없고 김대중에겐 슬픔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박수, 옳소!) 따라서, 나는 지금 게딱지같은 국민주택에 살고 있지만(웃음), 국민을 배반하면서 부를 얻는 것보다는 하느님과 우리 국민을 택했습니다. 국민을 배반하면서 안전을 택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이 신념은 내가 죽는 그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박수)여러분!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입니다. 예수는 내 스승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수는 나의 형님입니다. 나는 그의 제자이기 때문에 스승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나의 스승 예수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행복을 위해 싸운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박수). 북한은 한쪽으로는 대화를 하면서도 간첩선을 내려보냅니다.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 남한을 뒤집어엎겠다는 소위남조선 해방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국가의 안보와 반공의 태세를 조금도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강조합니다(박수, 옳소!).

나는 반공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넘치는 자유와 정의와 안정을 줌으로써 국민들이 이 땅에 정을 붙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이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공산당 침투의 여지가 없는 반공과 안보를 주장하는 것이 나의 정책이요 박정희씨와 다른 점인 것입니다(박수). 국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이 있는 곳에, 김대중이가 있습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데에 이 김대중이는 있습니다. 김대중이는 천 번 죽어도 국민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필요로 하면, 우리 민족의 혼이 내게 명령하면, 나는 다시 열 번 납치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백 번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천 번 연금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옳소! 환호, 박수)



3) "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 가족은 무재산 가족이 될 것입니다"(1997)

"저희는 이번에도 저희자식들 재산까지 다 공개했는데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자식뿐 아니라 형제의 재산까지도 공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정말 무소유가 되겠습니다. 정말로 내 자식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가족은 무재산 가족이 될 것입니다.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됩니다. 이번에 영등포의 땅과 경기도 수원의 땅은 장애인을 위해 내놓았고요 저희 집 현재 살고 있는 것도 가족회의에서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1997. 10. 8일 관훈클럽)

 

4) "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가 국정을 농단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1997).

"하나 첨부하면 제가 집권하게 되면 청와대 비서실을 대폭 축소해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비서실로 만들고 모든 국정은 국무위원들과 협의해서 하겠습니다. 지금 보면 이 나라에서는 청와대 비서관 회의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국무회의라는 것은 있으나마나 해요. 청와대에서 국민이나 누구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 장관에게 전화 한통하면 쩔쩔매고 그대로 따라가야 해요. 이건 이 나라 헌법 질서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도 앞으로 시정할 것이기 때문에 비서들 자신들이 정치를 농단하는 일은 저희 집권 하에서는 없을 것이다, 이것도 말씀드리겠습니다"(1997.10.8일 관훈클럽)


5) 이 김대중은 일생동안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적 없습니다.(1997).

"저는 일생에 거짓말한 일이 없습니다.(청중들 폭소) 저는 거짓말한 일이 없어요. 이것은 약속을 못 지킨 것이지 거짓말 한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한 것하고 약속했다가 못 지킨 것 하고는 다릅니다." (1997.10.8일 관훈클럽)

6) 국민 여러분, 이 김대중은 이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 가족들이 모두 도둑질을 했습니다.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2002)  

"저는 지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 . 국민 여러분의 성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저는 자식들이나 주변의 일로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드렸으나 결국 저는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2002.6.21 일간지 일동)

7) 국민 여러분께 한없는 죄송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2002.7.10.)

이 말은 김대중이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차남 김홍업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알선수재, 조세포탈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되고 그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가 발표된데 대해 한 말이다. 검찰은 홍업씨가 기업들로부터 48억을 받았다고 공소했다. 현대에서 16억, 삼성에서도 5억을 받았고, 이 2개 업체들로부터 매달 5천만 원씩을 받았다고 했다. 임동원한테서도 때때로 2,500만원, 신건한테서도 1,000만원씩의 상납을 받았다고 했다(2002.7.11 조선, 중앙).

김홍업은 10억 원의 현금박스를 아파트 베란다 창고 안에 숨겨 놓고 그 앞에는 가구를 쌓아 놓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부정한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반복해 오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6.11일 오전,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이한동 총리가 법무장관에게 했다는 말을 소개한다. "어른이 매우 섭섭해 하십니다. 어떻게 한 집안에서 두 자식을 구속할 수 있느냐고 하시더군요. 불구속 수사는 도저히 안 되는 건가요?"


노벨상
1) 이 김대중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 상금을 국가에 내놓겠습니다(2000),

"노벨평화상은 한국국민 모두의 업적으로 받은 상이니 만큼 저는 상금(11억2,222만원)을 노벨상 취지에 맞게 사용하겠습니다."(중앙일보 2000.12.11)

2) "노벨평화상 상금은 이 김대중의 것입니다"(2001)

3) "노벨 평화상 상금은 아태재단에 넣어두었다".(2001. 12.10 조선일보).

4) "노벨평화상금을 김정일에 바치려 합니다"(2002).

5)"노벨상금과 그 이자를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기탁할 것이다. 그들은 6.15 기념관을 지을 것이다." (2002.5.20 중알일보, 세계일보, 신동아 2002.6월호)

 

 

 

김정일

1) "김정일은 나쁜 놈입니다"(1997).

"저는 김정일을 대단히 위험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사람, 어렸을 때부터 안하무인으로 컸고 71년부터 막강한 권력을 장악해 왔고 그래서 대단히 위험한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위험한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정말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저는 김정일에 대해서 조금도 방심하지 않습니다."(1997.10.8 관훈클럽)

2) "김정일과 담판하여 노동당 규약을 개정시키겠습니다"(1997).

"저는 집권하면 북한에 대해서 분명히 따질 것 따지고 짚을 것 짚고 그래가지고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남북정상회담을 하겠습니다. 그 가장 전제조건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서 그러한 자세를 우리가 분명히 믿을 수 있게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노동당 규약은 북한에 있어서 헌법 이상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1997. 10. 8일 관훈클럽)

3) "김정일은 식견 있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지도자입니다"(2000년)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 등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2000년 2월9일 도쿄방송)

4) "김정일 총비서는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2000. 2.28. 독일 슈피겔지)

 

 김대중 전대통령 인생사/최장국회연설 등| 자유기고

秋菴(추암) | 조회 109 |추천 0 | 2008.12.25. 23:47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생사를 한눈에.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시기념관인 김대중전시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이용섭 행자부장관,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정창연 연세대총장등 5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었다.

 

개관식에서 한명숙 국무총리는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지키며 살아오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기념하는 뜻 깊은 공간으로서 의미가 크며

우리 후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메모속에서

통일과 평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개관식 기념식을 마치고 축하객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전시실을 둘러본후

기념촬영을 끝으로 개관식 행사를 마쳤다.

김대중 전시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증한 각종 사료 500여점,

대통령 재임 때 해외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 183점,

김대중 전 대통령 기증 장서 3000여권, 각종 영상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개관식이 열리기 전 김대중 도서관에서 배포해준 참고자료를 보며

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피는  인동초라 불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동초'인생사를 돌아봤다.

 

 

 

 

꿈을 가진 소년.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어린 시절 바다를 좋아한 섬 소년이었다.

넓고 푸른 바다는 그에게 큰 이상을 심어 주었고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았던 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6년 9월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한 어머니의 결정으로 김대중 집은 목포로 이사했고

부모님의 뜻에 부응하듯 김대중의 학업 성적은 우수했다.

1945년 해방이 된 이후

청년 김대중은 중도적 노선에 입각한 정치활동을 하며 1947년부터 해운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에 성공해 청년 사업가로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민주화 : 고난과 승리의 길.

 

김대중은 이승만 독제체제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자 김대중은 올바른 정치 실현을 위해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

처음으로 1954년 총선에서 목포로 출마 했다.

그리고 56년 민주당에 입당한 김대중은 연이은 낙선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1961년 5월 13일 실시된 선거에서 3전 4기끝에 처음 당선 되었으나

5.16 군사 쿠테타로 인해 헌정이 중단되어

국회의원으로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고 적혀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게 기네스증서인데 1964년 김준연 의원이 한일국교협상과 관련해

박정희 정권이 비밀회담을 통해 일본자금 1억3000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발언을 해

박 전 대통령이 국회에 김대중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를 요청했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구속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무려 5시간19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을 했는데

이게 '최장시간 국회연설'로 기네스북에 오른 것이다.

 

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김대중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40대 기수를 내세운 김대중의 당선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고

온갖 부정선거 속에서도 46%를 득표한 그는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국가 리더로서 부각 되었다.

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당시 일본에 체류중이던 김대중은

해외에서 반유신 운동을 하기 위해 망명한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동경에서 김대중은 납치 실종된다.

생사를 알수 없던 김대중은 8월 13일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해외에서 김대중의 반유신 활동이 성공을 거두게 되자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대중을 납치 살해 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국의 개입으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이 사건은 한국의 비 민주적인 현실을 국제적으로 알리는데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은 5번의 죽을고비(50년 한국전쟁당시,71년 의문의 교통사고,73년 2번의 납치사건,

80년 사형선고)를 넘기면서도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항상 강조 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김대중은 정치활동을 하면서 5차례에 걸쳐서 6여년동안 감옥 생활을 하였고

10년 여의 망명및 연금 생활등의 고난을 겪었다.

 

전시실에는 김대중이 80년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감옥 생활을 할때 사용한 옷과 물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극단적인 고난의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위한 집념.

 

4차례의 도전끝에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헌정사상 첫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외환위기 속에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4대개혁(금융,기업,공공,노사)을 강력히 추진하여 성공적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정보화 추진등으로 한국을 경제 우등생이라는 국제적 평가를 받게 했다.

재임중 국가인권위원회법,의문사진상규명법,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법률의 제정,

여성부 신설등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재임 기간중 남북화해정책(햇볕정책)을 꾸준히 펼쳐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킴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는데

이는 김대중 대통령 인생사에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실에는 남북공동선언문 사본과 서명에 사용되었던 만연필이 전시되어 있으며

뉴스위크지와 북한 로동신문등이 보도한 자료들과 북한에서 발행된 기념우표,

기념주화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빌게이츠 회장이 선물한 휴대폰과

서태지가 선물한 CD,스티븐호킹박사가 선물한 책,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의 싸인이 든 축구공등이 전시장 한켠에 전시되어 있다.

 

 

 

 

 

 

글로벌 김대중 노벨 평화상과 인류가치.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일반적으로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별히 지적하자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점을 인정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에서 수십년간 독재통치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차례의 생명 위협을 받고

오랜기간 국외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지도적인 대변자로 점차 부상하며,

한국과 버마,동티모르등 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

남북화해정책의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코너를 돌아 들어서게 되면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 받은 훈장들과

세계 각국 정상과 정치지도자들과 찍은 사진이 한쪽벽에 전시되어 있고

맞은편에는 각종 상들이 걸려있다.

맨 끝 코너에는 노벨 평화상 상장과 기념주화,우표,메달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2층에 마련된 특별 전시실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각국의 국가원수나

유명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국가 재산이지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대여해 전시하고 있으며,

국정운영,한반도 평화통일,민주주의 인권에 관련된 사료전시실,취임이전 각종 연설,언론인터뷰,

대외발언등의 구술자료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고

지하1층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기증한 장서 16.000여권의 자료등을 열람하여

민주,평화,통일 및 한국학 등의 연구를 할수 있는 공간으로서

국제 학술회의 장소로도 사용이 가능하게 돼 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관람은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곤 관람이 가능하며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 대상에 상관없이 관람할 수 있다.

 

찾아가는길은 신촌역 8번출구나 홍대입구역 5번출구에서 직진으로 10분 거리에 있다.

 

홈페이지 http://www.kdjlibrary.org.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김 대 중 金大中 (1924 01.06 ~ 2009.08.18)

대한민국 최초 노벨 평화상 수상

"김대중 노벨상 그거 로비로 받은거 아닌가?"

노벨재단의 김대중 로비설에 대한 답변-

'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

‘이상한 한국’

난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말라고 한국인들에게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게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

(모두 경상도에서 날아든 편지였다)"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

반대를 표시하는 편지가 날아온것은. 그것이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그 지역의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벨상중에서도 가장 노벨의 염원을 담고있는 평화상이 로비로 받아 낼 수 있는 상이라면

과연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노벨상은 로비로 얻어낼 수 있는 상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이 얼마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이해할수 없을 뿐이다"

노벨상을 받으려고 김대중이 로비를 한 것 아니냐며 집요하게 묻는 월간조선 기자의 질문에,

앞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동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노벨상심사위원회 비상임간사인 노르웨이 스팔니치뇨 박사(노르웨이 국립대학 종신교수)는
공평하고, 공정한 심사결과에 따른 노벨상수상을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불공정하고 부당한 수상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에 또다시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은
노벨상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라 판단하여

대한민국에 '다시는'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설명.

한편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지금까지의 역대 수상중 가장 빛나는 수상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정부 집권시기 1998~2002년 경상수지 흑자 906억 달러 증가,

연평균 181억 4천 400만 달러로 역대 최다

김영삼 정부 말기 외한보유액 '204억 600만달러'

김대중 정부 말기 외환보유액 '1천 214억 1천 300만달러' 약 5배 증가

이로 인해 세계 4대 외환보유국 진입

이는 한국이 2008 미국발 경제위기 등의 위기상황을 잘 넘기게 해준 든든한 버팀목이 됨

1999년 5월, 홍콩의 시사주간 아시아위크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1위 선정

IMF를 3년 8개월만에 극복, 전세계서 유일

2009년 8월 18일, 도널드 그레그, 코라이소사이어티 이사장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로 얼어붙은 북미관계를 풀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결심했다"

2009년 초 도널드 그레그는 김 전 대통령에게 북미관계에 난항을 겪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조언의 편지를 써달라고 요청,

이에 따라 지난 5월 북한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편지가 전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김 전 대통령께서 늘 하셨던 일을 발판 삼아 했을 뿐이고, 제가 할 수 있었다는 건 큰 영광이었다”

최근 방북으로 억류됐던 여기자 2명을 데려온 것이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

이어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나를 지원해준 친구였다”고 애도를 표하고

“김 전 대통령을 평생의 친구로 생각할 것”이라

2009년 9월 23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을 이끈 11인의 지도자 '트랜스포머'로 김대중 선정

2009년 12월 19일 뉴스위크 인터넷판

‘올해 세상을 떠났지만 잊혀지지 않을 36명의 저명인사'에 김대중 선정

국민의 정부 때 만들어진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한류의 바탕

마이클 그린, 미국 정치학자

“DJ는 주변 4강과 모두 친하면서 대북관계를 개선하는,

한국에 꼭 필요하나 실현하긴 힘든 난제를 풀어낸 전무후무한 지도자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1980년 필자의 대담에서 일부 고위 군 관련 인사들은 김대중이 과거에 북한의 사주를 받았거나

현재까지도 사주를 받는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대중과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해온 필자로서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1980년대 말 CIA 전문 요원 출신인 제임스 릴리 주한 미 대사는 김대중의 과거 행적을 면밀하게 조사한 뒤

그가 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앨빈 토플러, 미국 미래학자

“아내 하이디와 저는 대통령께서 최근에 아프시다는 소식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쾌차하셔서 내외분과 저희 부부가 다시 만찬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수년 전 대통령과 가진 첫 만남 이래 대통령님을 계속 깊이 존경해 왔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을 세계의 모범국가로 변화시키신 분이다.

무슨 일이든 저희 부부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저 없이 불러주시기를 기대한다”

노엄 촘스키, MIT 언어학과 교수

"오랜 기간 존경해왔다. 그는 남다른 용기를 갖고 일관되게 한 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과 세상 모두에 위대한 공적을 남겼다"

에즈라 보겔, 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

“햇볕정책을 만들어낸 비전, 남북한, 중국, 일본, 그리고 서구 세계와의 화해 추구 노력을 존경한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위인 가운데 한 분이다"

로버트 루빈, 前 미 재무장관

“한국이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미국 경제가 위기상황인데)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면 어떻겠느냐?"

헨리 키신져, 前 미 국무장관

“위대한 비전, 위대한 상상력을 가진 인물이다"

다이안 파인스타인, 미 상원의원

역사 속의 인물인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비전을 가진 분을 지도자로 가진 한국민은 행복하다

제임스 울펀슨, 前 세계은행 총재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킨다

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김 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다”

미셸 캉드쉬. 前 IMF 총재

한국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 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마이크 디버, 레이전 前 미국대통령 특보

“김 대통령은 메이크 업이 필요 없는 논픽션 드라마의 인생을 살아왔다.

이름 석자만 갖고도 국제사회에 영향을줄 수 브랜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펴낸 '대중경제론''3단계통일론'

하버드 대학교의 교재용으로 번역 출간

리오넬 조스팽, 前 프랑스 총리

“김대중 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

요하네스 라우, 前 독일 대통령

“김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오마에 겐이치, 미국UCLA대학 교수, 경제평론가

“김 대통령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을 마음으로부터 감사해야 한다.

세계에서 단임 5년에 지금처럼 많은 변화를 이뤄낸 대통령은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5년 사이에 한국 경제를 V자 회복 시킨 김 대통령은 희대의 명대통령이다

블룸버그,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

“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며,

77세의 김대중은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김대중"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그 자체를 살아오신 분"

에리크 손하임, 노르웨이 환경개발주 장관

저의 개인적 영웅이다. 다른 나라에서 하지 못했던 평화에 대한 많은 일을 하셨다”

요한 갈퉁, 평화학자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이며 대단히 인도주의적인 인물이다

리하르토 폰 바이츠체커, 前 독일 대통령

친구를 넘어 인류애를 갖춘 인격자

노르베르트 람머트, 前 독일 국회의장

“독일에서 김대중만큼 영향력 있는 한국인은 없다”

에곤 바르, 前 독일 경제협력부 장관

“김대중 대통령이 지구 상에 마지막 남은 최악의 분단을 극복해 냉전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평화와 긴장완화,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온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며,

남한과 북한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족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정책을 끝까지 추진하는

김 대통령의 끈기에 탄복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은 이에 대한 국제적 인정의 증표다"

하르무르트 코쉭 독일 연방하원의원은

김 대통령의 개혁 성과, 남북화해를 위한 기여를 기리고자 책자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퇴임 후 적절한 시기에 독일과 유럽을 방문해 강연 등을 해달라고 요청

폴커 뤼헤, 독일 하원 외무위원장

“유럽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비교될 만한 인물은 '하벨'과 '바웬사'정도일 것,

그러나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은 김 대통령이 일관된 원칙을 세워놓고 꾸준히 추구해온

김 대통령의 인생에 관해 엮은 책을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한다

코트프리트 카를 킨더만, 뮌헨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최근 한국 내에서 김 대통령이 이 획기적 계기 마련을 위해 물질적 수단을 투입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나

과거 서독 정부도 동서독 관계를 완화하고 생활수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독에 물질적 지원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 사회학자

“분명한 분석, 설득력 있는 주장에 놀랐다. 많은 정치가들을 만나보았으나

이렇게 명확한 비전을 가진 분은 만나지 못했다. 완전히 설득당했다

20011년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공개한 김대중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평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치적 인물로, 외교 정책의 모든 측면에서 능숙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해마다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와 지도자들과

신년 우편을 주고 받아 왔으며 2009년에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아키히토 일왕,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교황 베네딕토 16세,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 부부,

미국 하버드대의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 등에게 연하장을 받았으며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새해 선물을 보냄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전세계 저명인사들의 애도 -

교황 베네딕토 16세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영혼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맡기시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평화와 힘을 주시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진심으로 간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용기있는 민주화와 인권 투사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슬픔에 빠졌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운동을 일으키고 이끌어 오는데 목숨을 바쳤다

그의 조국에 대한 헌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자유를 위한 개인적인 희생은 고무적이며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켈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

"김 전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에 영감을 일으킨 지도자이자 상징이었다"

빌 클린턴, 前 미국대통령, 김대중짱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감하고 강력한 이상을 가진 지도자였다.

한국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넘어서게 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닦고 국제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 나는 남북한의 화해를 위해 그와 함께 일하는 영광을 누렸다.

햇볕정책이 한국 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도 영속적인 평화에 대한 희망을 제공했다

부인 힐러리와 나는 우리의 좋은 친구였던 김 전 대통령을 그리워할 것이다"

에드윈 퓰너, 미국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 대표

“김대중은 진정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오늘 한국은 거인을 잃었고, 나는 절친했던 벗을 잃었다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 소장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비단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뿐아니라

한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통찰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의 비범한 삶 전체가 기억될 것이며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보여준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역사적인 평양방문은

그가 남긴 현란한 유산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도널드 그레그, 前 주한미국대사

“50여 년간 아시아와 관련된 일을 해오면서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아시아인 3명이 바로

김 전 대통령과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였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에 강력한 민주주의를 가져왔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화해를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뤄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제임스 레이니. 前 주한미국대사

“평생을 민주화와 한국의 발전 그리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헌신해온 분이며

노벨 평화상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었다고 본다.

김 전 대통령은 삶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한 삶이었으며,

특히 수십 년간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우며 투옥을 당하는 등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고, 영웅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

“김 전 대통령의 1998년 런던방문과 그 다음 해 이뤄진 저의 공식 방한 당시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김 전 대통령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분이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정말 기뻤다”

고든 브라운, 영국총리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김 전 대통령은 격동의 시기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아시아 금융위기 시에는 한국의 빠른 경제 회복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며,

김 전 대통령은 2000년도에 한반도 평화 조성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최근에도 김대중 평화센터를 통해 세계 인권수호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영국 정부를 대신해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아소 다로, 前 일본 총리

“김 전 대통령의 업적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

김 전 대통령과 일본 정계 지도자들이 합심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포함해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가와무라 다케오, 前 일본 관방장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비약적으로 진전시킨 대통령으로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고 문화교류를 진전시켰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前 일본 총리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일본 국민을 대표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한다.

특히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를 계기로 노벨 평화상을 받는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한일 양국의 외교관계 개선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 前 대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며, 한국 근대화에도 큰 공헌을 하신 분이다.

김 전 대통령의 비보를 듣고 놀라움과 슬픔을 가눌 수 없다"

코노 요헤이, 前 일본 중의원 의장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친구였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중국 정부와 국민은 그가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쏟았던 노력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장쩌민, 前 중국 국가주석

“김대중 선생님은 나의 오랜 벗으로 중한관계 발전을 위한 그분의 공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민주주의자였다.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독일과의 오랜 인연으로 독일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독일연방공화국은 좋은 친구를 잃었다.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 양국관계의 심화와 교류강화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前 독일 대통령

“나의 오랜 친구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쓰라린 아픔으로 작별하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불굴의 용기,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한민족 전체의 평화를 위한 탁월한 기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됐다”

베르나르 누슈네르, 프랑스 외교부 장관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쳐 지칠줄 모르고 투쟁한 용기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중요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前 소련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저명한 정치인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어 매우 애통하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형성, 한반도의 평화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평화,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랬기에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김 전 대통령을 알아왔고 그의 용기와 선견지명을 매우 높게 사 왔다.

그는 대통령 임기 말 건강에 문제를 겪으면서도 한반도를 재결합시키면서 남북문제 해결책을 계속해서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포럼 공동 업무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前 대통령의 만델라 재단

"우리는 그가 인권을 위해 싸우고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기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찬양하자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 정부, 대통령으로서의 김대중, 당연히 완벽하진 않습니다. 못한 부분들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친일, 남로당, 독재의 역사를 가진 박정희 조차도 찬양하고 그의 업적은 인정해주자면서

김대중과 같은 인물을 제대로 보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왜 우리는 이런 위대한 인물을 가졌음에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것입니까,

국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세계인들에게만 인정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최근 들어선 일부 넷상에서 슨상님 따위로 비하되며 희화화 될 인물 정도로 밖엔 인식을 못하는

이 한국민의 수준이 참으로 애통합니다

출처 : 김택천의" 지속가능한 지역자치사회만들기
글쓴이 : 지속가능소나무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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