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원제 『1876년에서 1894년까지』) 1981년 전주초연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11. 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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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김민기가 전주에서 실질적으로 제작 연출 감독을 한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원제: 1876년에서 1894년까지)'에서 나는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하면서 일본천황만세를 외쳤다. 관객에게 몰매 맞아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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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잡혀가 고문과 구타를 당하던 나로서는 김민기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한다는 건 많은 걸 각오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참여하였던 건 정보부 프락치로 의심하던 주변에 나는 그런 놈이 아니라는 절규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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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서울대 출신들과 술자리가 마련되었을 때는 나의 열등의식이 발로하여 토사곽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그렇게 1981년 김민기와의 인연은 스쳐 지나갔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한심한 문화사업(?)에 나의 사랑했던 사람까지 참여시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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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김민기 - 김민기의 모든것

 

 

 

1. 출처: https://namu.wiki/w/김민기(가수) 중에서

 

...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사태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절했다.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는 김제에서 경기도 연천의 전곡으로 옮겨가 참깨 농사를 시작했는데, 이 때 비료 회사에서 사익을 챙기기 위해 규정량보다 많은 양의 비료를 권장량으로 속여 판 것을 알고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배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민통선 이북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청년회를 조직해 농산물 직거래에 나서기도 하는 등, 구체적인 사회 운동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2년 전 비공식 발표했던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가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상연되었는데, 극단 연우무대 대표 오종우를 각본가로 기재하고 자신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다. 이 때까지도 김민기는 주로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12월에 전곡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때마침 9년 전 소리굿 '아구'를 같이 공연했던 김석만이 김민기를 찾아와 공연 활동을 다시 재개하자고 설득했고, 결국 농부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와 김석만, 오종우와 함께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2. 김승현 "문화를 경영하다" 김영사간 중에서

 

 

 

3.  임진택 "민중 연희의 창조" 중에서

 

 

 

4.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작품/자료명: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장르구분: 1980년대
작/연출: 오종우
공연단체: 극단 연우무대
초연장소: 문예회관 대극장
 
출연/스태프
 
* 출연: 임진택 배태일 이태환 정희섭 최아란 곽상근 김명곤 엄경환 김경란 이은재 임명구 박용수 김혜숙 오인두 한윤경 나영민
 
* 스태프: 미술/박광수 조명/김의중 음향/나영민 음악/김영동 의상/임정희 소품/최훈근
 
내용
 
1. 정한론(征韓論) : 거대한 일장기가 조명으로 비추이는 가운데 한 일본 정객이 정한론을 펴고 있다. 1867년 메이지유신 이후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급격히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은 다른 자본주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필요로 하게 되고 정부는 막강한 군비증강예산을 요청하게 된다.
 
2. 광인(狂人) : 무리들을 배경으로 한 미치광이가 질병과 가문과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소문과 함께 전하고 다닌다.
 
3. 수탈 : 무리들 모습이 벼베기 동작으로 이어지고 땅주인이 나와 감독을 하며 자기몫을 일방적으로 거두어 간다. 다시 남자들은 부역에 끌려가고 노인과 아낙들만 남아 힘없이 노래를 부르며 김매기를 한다. 안 받겠다던 물세를 물리고 사또 모친상이라고 또 다시 이천냥을 거두라 하니 노인이 이를 거부하고 매를 맞아 죽는다. 무리들은 힘없이 ‘씨뿌리는 노래’를 부른다.
 
4. 개항 : 척신, 개화파, 위정척사파들의 개항에 대한 논쟁과 수호조규의 내용들이 얘기된다.
 
5. 난리 : 다시 무리들 곡소리가 울리고, 죽은 노인의 아들이 주창자로 선정되어 난을 일으킨다.
 
6. 감영 : 난리를 맞아 속옷바람으로 도망친 사또는 감사에게 영병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나 영장의 반대로 뜻을 못 이룬다. 다만 감사는 영병 50명을 변장시켜 무리들 중에 잠입해 들어가 주모자를 체포해 오도록 한다.
 
7. 자객 : 난을 일으킨 무리들이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과격파는 그대로 한양까지 쳐올라가자고 하고 대부분은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다. 한편 담배장수를 가장하여 들어온 자객들은 탄로가 나서 죽임을 당한다. 이에 위기감을 ......More
 
예술가
 
오종우(1945~ ): 서울대 치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분에 <조각가와 탐정>이 당선
1980년부터 1989년까지 극단 연우무대의 대표를 역임하면서 극작과 연출을 병행하였다. 주요 희곡으로는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와 <칠수와 만수>가 있다. 현재 치과의로 일하고 있으며, 극단 ‘연극을 사랑하는 치과의사 모임’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 대표작품: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칠수와 만수>
 
김민기 (1951~ ): 전북 이리 출생.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입학해 1977년 졸업하였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과 예수>에 참가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였다. 1974년 남사당 덧뵈기중의 먹중과장의 기본골격을 원용하여 정리한 <소리굿 아구>과 이애주의 무용극 <땅굿>에 참가하였으며, 1978년 디스크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을 제작하였으나, 판매 금지가 되었다. 1978년 겨울 노래굿 <공장의 불빛>의 작사와 작곡을 맡아 발표하였다. 1981년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발표하여 전주에서 초연을 했으며, 1983년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로 각색한 후 연출을 맡았다. 1994년 극단 학전을 창단하고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하여 <개똥이> <모스키도> <의형제> 등을 연출하였다. 1995년 <개똥이>로 백상예술대상 음악상과 한국평론가협회 음악극 부분 연극상, 1996년 <지하철 1호선>으로 서울연극제 극본상과 특별상, <의형제>로 1998년 한국연극협회 우수공연 단체상과 번안상, 1999년 제35회 동아 연극상 작품상,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대상 및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 대표 작품: <소리굿 아구>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니>
 
리뷰: 이 작품은 김민기가 전주에서 만들었던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의 대본을 손질하여 대한민국 연극제에 출품한 작품으로 당시 평론가들로부터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김민기의 명성에 힘입어 대학생층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문예회관 대극장 개관이래 최대의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수상현황: - 1982년 제6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
 
평론: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는 20여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일종의 서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84년에 일어난 갑오동학 농민전쟁이 그 주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으며 개항때부터 갑오경장때 까지의 고난의 움직임과 외세와의 역학관계가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셰익스피어극처럼 끊임없는 장면 변화가 이번 공연의 주요 골격을 이루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나 기승전결식의 사건 전개방식은 가능한 배제되어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근대사의 일부분을 농민, 조정, 외세와의 갈등에서 재조명하려 하였기 때문에 각 장면이 하나의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무대기술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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