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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종교를 우습게 생각하는 과학자입네 하는 나도 종교 신세를 참 많이 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신부님 수녀님들에게 받은 신세는 내 목숨이 몇 번은 구제를 받은 정도입니다. 특히 군시절 녹화사업으로 무릎이 결딴나서 대구통합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그곳 파견 보안대 중사로부터 나를 보호하여 준 분들이 군종신부님과 수녀님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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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대에서 부르지 못하게 신부님 비서처럼 데리고 다녔고 수녀님 봉사할 때에는 수녀님 비서 노릇을 했으니 보안대에서 닦달할 시간이 나질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박유식 안드레아 신부님이 계급은 무려 중령. 봉사오시는 옵타다 수녀님은 연로하셔서 내가 부축하며 신자 환자들을 찾아 성물도 주고 치유의 기도도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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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옵타다 수녀님은 독일 귀족 집안의 따님으로 내가 불러드리는 린댄바움(보리수)을 그리도 좋아하셨습니다. 제2외국어를 독일어로 해서 사용할 틈이 없었는데 틈틈이 독일어 회화지도를 해주시면서 제대하면 독일 유학을 하라고 격려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원산수녀원 시절 공산당이 감금했던 지옥의 옥사독에서 살아오셔서 독재자에게서 내 목숨 살리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농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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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쁜 처녀에 눈이 멀어 6개월 만에 허겁지겁 퇴원을 해버려서 옵타다 수녀님과의 인연을 잊지는 못했지만, 복에 겨운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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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툿찡포교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관련 사진에 옵타다 수녀님 이름이 보였습니다. 옵타다 뮬러 수녀님은 마침내 주님의 세상에서 행복에 겨운 사랑과 은총을 받고 계신답니다. 세월이 이처럼 많이 흐르기 전에 한번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다음에 한국에 가면 병원 보안대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주셨던 박유식 신부님께 술 한잔 대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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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박유식 안드레아 신부님도 은퇴하셨을 것이니 무척 외로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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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이 "옥사독" 귀환 지 에른스트 신부, 오른쪽 앞이 베르비나 체살 수녀, 오른 쪽 뒤가 스위스 출신 오트라마 원장 수녀, 왼쪽 앞이 "옥사독"에서 주방 담당으로 희생적인 활약을 한 옵타다 수녀, 왼쪽 뒤가 역시 귀환한 양치기 아르사시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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