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유성태(庾星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중에서 뚝섬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8. 5. 11:39
반응형

뚝섬(纛島)유원지 이야기

글:유성태


    일정시대와 해방후, 서울사람들이 모쳐럼 노는 날 찾어가는 곳이 몇군데 있었다. 첫째는 전차(電車)를 타고 한강(漢江) 중지도(中之島)에서 내려 인도교 아래로 내려가면 애인하고 둘이서 타기 좋은 ‘보-트’가 기다리고 있었고, 친구들이 모여서 전세내서 놀 수있는 뱃사공이 달린 ‘놀잇배’(유선遊船)들도 있었다. 놀잇배 안에서는 술상을 차려놓고 기생들이 장구(杖鼓)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노는데 한강에서는 상류급(上流級)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수영 잘하는 젊은이들이 뽑내며 한강을 건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한강은 전차가 다니므로 교통이 편리하여 사람들이 많이 뫃여들었다.


   다음 놀이터는 뚝섬유원지다. 여기에도 보트와 놀잇배가 있었으나 전차가 안다니므로 교통이 불편하여 조용하기는 하나 한강보다 인기가 없었다. 또 마포(麻浦)강도 조용한 편이었고, 다음은 성북구 정릉동 정릉(貞陵:조선 태조의계비 신덕황후神德皇后의 능)계곡(溪谷)이다. 여기를 찾어가는 사람들은 계곡에 흐르는 물에 발이나 담그고 슾속에서 밥이나 해먹고 쉬는 조용한 사람들이다. 다음은 창경원동물원이나 덕수궁이다. 동물원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특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가족동반이 많았으며 고궁은 그져  한바퀴 돌아보는  코스(course)에 해당됐다.


기동차의 앞부분

 

   필자는 1938년부터 40년까지 약 3년간 동대문 근처에 있는 경성부창신정 (京城府昌信町)449-15에 살았다.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동대문에서 뚝섬으로 다니는 기동차(汽動車)가 있었는데 시발(始發)역이 바로 이 곳이고 지금의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 바로 앞에 이스턴 호텔(Eastern Hotel)자리이며 기동차 사무실이 있었던 자리다.


   당시의 교통편이라고는 서울시내에 전차가 있었고 드문 드문 Bus가 디니고 있었으나 뚝섬에는 교통편이 아무것도 없는 점에 눈똑을 드린 한 일본인이 개인사업으로 기동차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기동차의 생김새는 앞에서 뭉뚝하게 생긴 차량을 끄는 동차(動車)가 있고, 뒤에 전차같이 생긴 유리창도 없는 목조(木造) 차량을 5~6량을 끌고 다녔다. 차 안에는 간이의자가 있고 대부분 승객은 서서 갔는데 허리 높이까지 나무로 막았고 그 위는 드믄드믄 기둥이 서 있고 유리창은 하나도 없었다.  


   기동차가 인기를 끄는 시절은 봄부터 가을까지다. 정거장은 용두, 왕십리, 성동, 서뚝섬, 동뚝섬, 유원지로 이어지는데 편도가 약 40분 걸리고 한창 성수기에는 일정한 운행시간이 없이 승객이 몰리는대로 편리하게 움직였다.


   하루는 뚝섬에서 친구들하고 놀다가 해가 저서 부랴부랴 유원지역에 나와보니 한꺼번에 몰리는 승객때문에 만원열차가 되서 타지를 못하고, 앉을 자리도 없는 유원지역내에서 약 두시간동안 기다리다 되돌아온 기동차를 타고 동대문으로 온 일도 있다. 상당히 고생한 날아었다.
   
   그런데 기동차기 유명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episode) 때문이다. 왕십리에서 출발하여 뚝섬으로 기동차가 지나가면 눈에 들어오는 시계(視界)는 모두 배추밭이다. 서울 사람들이 먹는 배추는 모두 왕십리에서 난다. 그 것까지는 좋은데 배추밭에는 비료를 줘야 하는데 지금같은 좋은 비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사람들이 싸는 인분(人糞)이 모두 우마차나 분뇨수거차량에 실려 왕십리로 실려와서 배추밭에 뿌려진다. 그러니 배추밭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기동차 승객들은 얼굴을 찌그리고, 눈도 못뜨고 다 통과할 때 까지 참아야 한다. 또 냄새 뿐이 아니다. 기동차 안에는 천정(天井)과 기둥에는 새까맣게 똥파리떼가 붙어 다녔다. “왕십리 똥파리”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949년 8월 8일,  뚝섬에서 연세대 친구들과
  

   당시에는 젊은이들이 술을 먹으려면 술집은 주택가에 널려 있었는데 어느집이 아가씨들이 좋은지, 안주가 좋은지 서로 상의해서 술집을 골라서 간다. 손님들이 몰려들어오면, 우선 방으로 모시고,  술 따라주고 노래를 불러주며 흥을 돋아주는 아가씨들이 몇사람씩 들어온다. 그리고 우선 술상(床)을 편다. 그런데 상머리가 숫가락 젓가락으로 두드려 깨져서 엉망이다.


 이 걸보고 “이집에는 술손님이 어지간히 많이 오는구나” 하고 평가한다. 술은 한 되(1.8리터)짜리 양은 주전자로 막걸리를 먹을때이고 술안주는 술집에 따라서 달랐는데 손님들이 술이 최면 한 되가 들어 올 것이 90%, 80%로 양을 줄여 들여 보내고 심할때는 반 주전자도 들어온다.  노래는 주로 뽕짝 · 유행가를 많이 불렀는데 한사람이 부르고 끝 날때를 맞춰서 같은 장단의 노래나 가락이 맞는 곡조를 이어받는다.


  여자가 부르면 남자가 이어받으며 합창하면 술은 주전자로 몇개씩 이어 들어오고 숫가락으로 상머리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니 흥이 오를대로 오른다. 아무리 큰 소리로 합창해도  요새같이 소음공해(騷音公害)로 시비하는 이웃이 없었다. 취중(醉中)에 혹여(或如) 여자가 엉덩이를 손님앞으로 돌리면 “왕십리 저리 돌려”하고 핀잔을 주며 폭소가 터진다. 이 것이 ‘왕십리 똥파리’에서 생긴 말이다.


 또 한가지... 떠돌이 악사(樂士)가 돌아다녔다. 한창 흥이 나서 합창을 하고 있을때, 문밖에서 "짜자자장"하는 기타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깜짝 놀라 창문을 열어보면 기타를 메고 서있는 집시(Gypsy)같은 젊은 사람이 서 있다. 기타로 박자를 맞춰주겠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다. 악사에게 후래삼배(後來三杯)라고 술 몇잔을 권하고 기타 반주에 맞춰 한바퀴 돌고나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stress)가 말끔히 날라간다. 몇 시간동안  실컨 놀고, 마시고 술값과 약간의 ‘화대’(花代)를 주고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만만하고, 순진무구(純眞無垢)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