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부끄러운 과거]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5. 4.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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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을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부끄럽고 민망했던 삶들이 부지기수이다. 특히 이번 한국 대선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 발가벗겨져서 도저히 당선권에 들지 않을 선거축제를 보내고 있어서 보기 좋다. 마치 내 초등학교(국민학교)시절 전교 어린이회장을 뽑는 선거를 보는 듯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국민학교)는 서울근교 복숭아로 유명했던 소사읍(현재 부천시)에 있던 소사북국민학교(현재 부천북초등학교)였다. 한 반에 육십몇 명씩 한 학년당 남학생 3반 여학생 3반 모두 6반이 있었다. 매년 초에는 4, 5, 6 학년을 상대로 전교 어린이회장(남학생)과 부회장(여학생)을 뽑았다. 유권자가 대충 1080명 정도. 

나는 일찍이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 전 부터 국회의원 선거를 쫓아다니며 나름 승자의 선거를 분석했었다. 그 당시 부천군 소사읍(부천시) 국회의원은 공화당의 오학진이었다. 줄기 장창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비결은 막걸리와 고무신 그리고 청자 담배였다. 유권자들은 막걸리와 고무신 그리고 담배 때문에 모이고 손뼉 치고 오학진이 또 국회의원이 되었다. 

월사금을 줄 생각을 안 하는 아버지 때문에 농장 한 곁에 애호박을 키워 손수레로 새벽마다 소사극장 옆에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에 내다 팔았다. 시장에서 칼국숫집을 하는 할머니며 단골도 여럿 거느린 애호박 장수를 하며 월사금과 기성회비를 벌었고 또 상당한 돈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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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한 평당 5원 하던 논이며 밭을 사려고 돈을 모았는데 땅을 한 평 두 평으로 팔지 않고 몇천 평 필지로 팔고 또 땅값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50원 500원으로 오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6학년 초 유권자 한 명당 5원씩 1,000명에게 뿌릴 5천 원은 충분히 모았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친구들을 풀어 각 학년 담당부터 조직도 운영했다. 5원 상당의 초콜릿이나 왕 눈깔사탕 또는 현금을 뿌렸다. 그리고 정견발표 때는 "나 말고도 훌륭한 후보들이 많이 있지만 나를 뽑아주신다면 좋은 학교 만들겠습니다."라는 그럴듯한 연설도 했다. 

여러 명의 후보 중에 나의 경쟁자는 중동 쪽에 사는 똘똘한 민명기였는데 몇 명이 공책을 자른 종이에 공약 같은걸 연필로 적어서 아침 등굣길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걸 보았고 아이들이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걸 보고 당선을 직감했다. 

당연히 전교어린이회장에 당선이 되었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교무부장 선생님의 싸늘한 눈초리와 한마디는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어린 녀석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선거를 치러"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횡무진 이런저런 추억을 만들며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은 흘러가 버렸다. 

혼분식 검사한다고 보리 알을 쌀밥 위에 위장한 도시락을 적발하여 공무원 하던 그 아이 아빠를 파면시켰던 일이며 유신의 충견 노릇도 죄인 줄 모르며 저지르기도 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정도의 죄라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버렸지만. 

나는 금권선거(?)로 전교 어린이회장에 당선되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대선전에 나서는 초등학교(국민학교) 어린이 회장출마수준의 대권 주자들은 알았으면 한다. 내가 그 부끄러운 선거를 얼마나 부끄러워하면서 사는지 말이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전이나마 정정당당하게 임하길 바란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말이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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