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3_미국이야기

[실리콘밸리의 明과 暗]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12. 15.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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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학 남쪽 페이지밀 로드의 휴로패커드에서 시작된 실리콘밸리는 닷컴 기업들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기존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일확천금을 안겨주며 평범한 사람이 도저히 자리 잡을 수 없는 금단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리콘밸리는 2017년이 저무러가는 지금 현재 유명 IT기업 엔지니어나 되어야 연봉 30만 불 되는 삶이 보장되는 곳이다. 연봉 20만 불 이하의 어지간한 의사, 변호사, 교수, 공무원도 이곳에서는 도시 빈민 수준에 불과 하다. 

고액 연봉의 유명 IT기업 엔지니어들을 들여다보자. 이들의 평균적인 직업수명은 길어야 5년이다. 잘리건, 몸값 높여 이직하건 이들과 친분을 맺으면 뻔질나게 바뀌는 명함으로 이들의 소속이 헷갈리기 일수이다. 

30만 불 연봉이면 100만 불 정도의 집을 은행 모게지끼고 장만할 수가 있다. 팔로알토 주변이나 변두리 집값을 올리는 주범이다. 그러다 몇 년 뒤 잘리면 집 팔고 이 동네를 떠나도 오른 집값으로 딴 곳에 가면 한동안 돈 걱정 없이 산다. 

실리콘밸리에 와서 상상을 초월한 집값 때문에 변두리 지역에 집을 장만한 사람들도 집을 팔고 이 지역 삶을 정리할 때는 크게는 몇십만 불씩 수익을 올리며 기쁘게 이곳을 떠난다. 그.런.데 팔로알토에 기를 쓰고 집을 장만한 사람들이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 100만 불 이상 주고 집을 샀지만, 최저 260만 불에서 560만 불까지 웃돈을 주겠다고 달려드는 매수자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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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를 살다 주인 부부가 사망하여 자식들이 팔아버린 그 허접스러운 집이 복덕방에 200만 불에 내놓은 지 이틀 만에 경쟁이 붙어 260만 불에 팔려버렸다. 내가 팔로알토에 처음 왔을 때 80만 불이라고 살 테면 사라던 주인 노부부에게 콧방귀를 뀌던 나 자신을 한탄하면서 나는 팔로알토를 떠나 이스트 팔로알토로 이사를 왔다. 

나처럼 가난한 공무원이 장만할 만한 집은 이스트 팔로알토나 오클랜드나 리치먼드처럼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모여 사는 곳의 몇십만 불 하는 집이었기에. 그리곤 이곳이 팔로알토처럼 집값이 미친 듯이 올라주길 꿈꾸면서 말이다. 

실리콘밸리에 왔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팔로알토 같은 곳에 집을 장만한 사람들은 아무리 고액연봉이어도 백만 불이 넘어가는 모게지 갚아나가기에 사는 꼴이 말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집안의 도움을 받을 만 하거나, 처가의 신세를 질만 하거나, 그도 아니면 손꾸락 빨며 부부가 날고 기어 몇 년이라도 유지를 하고 버티다 버티다 팔아도 이곳을 떠나면 역시 돈 걱정 없이 산다. 

실리콘밸리에 근거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부동산은 그들의 은퇴연금인 셈이다. 팔로알토에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 중에는 그 집을 세를 놓고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어 사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팔로알토 집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을 쉽게 포기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내가 이 지역에 오던 2003년에 "아니 내 살던 동부에서는 5만 불이나 할 이 허접스러운 집이 80만 불이나 한단 말이야! 내가 설사 돈이 있다 손처도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어찌 그 많은 돈을 들여 이런 집을 산단 말인가?" 했듯이 2017년 오늘도 중부에서 애플로 30만 불 연봉에 계약하고 온 내 터키 친구 조카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피눈물로 배워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IT 종사 고액연봉자가 되지 못하면 자신이 나고 자란 이곳 자신들의 고향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지린내 풍겨가며 살아야 하는 홈리스신세를 면치 못한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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