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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부터 파리, 함부르크, 밀라노, 런던, 뉴욕 등 서양제국의 대도시에서는 식민지로 개척한 후진국 사람들을 동물처럼 데려와 구경시키는 '인간동물원'이 크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인간동물원'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칼 헤겐백(Karl Hegenbeck)은 남태평양과 아시아에서 데리고 온 사모아 족과 사미인 부족을 유럽 각지에 전시했고, 인기에 힘입어 이누이트 족과 이집트 및 수단의 누비안 족을 전시했습니다. 후진국 주민들은 급조된 가짜 촌락에서 나체 상태로 야생 동물과 함께 지내며 사냥 등 서양인이 시킨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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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일본도 일본의 인류학자 츠보이 쇼고로(坪井正五郎)의 주도로 1903년 오사카에서 열린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에서 대만인 4명·아이누인 5명·류큐인 2명·중국인 3명·인도인 3명·인도 기린인 7명·자바인 3명·방글라데시인 1명·터키인 1명·아프리카 1명·조선인 2명 등 총 32명의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1000명 이상의 관람객을 맞았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중국은 자국민 3명의 전시에 분노하며 조선인 등은 자국을 통치하지 못하고 역사대대로 중국의 속국인 것으로 미개하여 전시할 수 있으나 중국문화는 선진국과 같다고 격렬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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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본격적으로 19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권업박람회’에서도 조선인 남녀를 전시하였습니다. 난간을 사이에 두고 일본 관람객이 조선인을 구경하는 서양식 ‘인간동물원’이 연출됐었습니다. 이처럼 파렴치한 일을 자행한 일본은 서양제국주의가 1870년대부터 시작한 '인간동물원'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겁니다. 서양 열강들은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었고, 아프리카, 칠레, 필리핀 등지에서 원주민을 납치해서 신기한 볼거리로 만들어 '인간동물원'에 이들을 전시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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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인 예로는 메디슨 그랜트(Madison Grant, '위대한 인종의 쇠망 : 유럽 역사의 인종적 기초'의 저자로 그 책은 후일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사상의 근거가 되었습니다.)가 주도한 1904년 미국 미주리주 새인트 루이스(St. Louis)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아프리카 콩고에서 아프리카 탐험가 Samuel Verner에게 붙잡혀 온 피그미족 몇 명이 '진화가 덜 된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오타 벵가(Ota Benga)라는 이름을 가진 23살의 젊은 흑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미국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다가 전시회가 끝난 후 콩고로 돌아갔다가 재혼한 아내가 죽자 190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과 브롱크스 동물원(Bronx)에 전시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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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벵가는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원숭이 우리 안에서 원숭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강제로 춤도 추어야 했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그를 보기 위하여 동물원에 줄을 섰지만 오타 벵가는 구경꾼들의 야유와 장난에 고통은 심해져만 갔고 성질은 사나워져 갔습니다. 이런 동물원 측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반대하는 항의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동물원 측에서는 오타 벵가를 풀어 주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타 벵가는 버지니아주의 린치버그에 있는 담배 공장에서 한동안 일하게 되지만, 그가 동물원에서 받은 깊은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1916년, 자살로 그의 짧은 일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가 35세로, 미국으로 잡혀 온 지 12년이 지난해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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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또 한 번 원주민 전시가 열렸고, 6개월 만에 3천4백만여 명이 관람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일가족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엄마와 아기를 우리 속에 데려다 놓고 머리를 만지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프랑스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앙 카랑뵈(Christian Karembeu)는, 자신의 증조부 역시 외교사절이라는 말에 현혹돼 프랑스로 건너왔지만, 파리에서 우리에 갇힌 채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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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잔혹한 인간 전시의 행태는 1958년, 벨기에의 콩고 주민 전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 시인 겸 평론가며 하버드 대학교수였던 스페인 출신의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반복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2011년, 파리에서는 ‘인간 동물원: 야만인의 발명(Human Zoo: The Invention of the Savage)'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려 '인간동물원'의 잔인한 역사를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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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의 '인간동물원'은 선정적인 뉴스 미디어의 교묘한 기만 속에 뉴스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망각 속의 '인간동물원'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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