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바지 사랑 받는 자식이 아닌 줄 알았다. 교육감상을 받고 졸업한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내 아바지는 없었다. 대신 설대 의대를 합격한 내 큰 엉아가 참석해서 내 졸업식은 내 졸업 축하가 아니라 내 큰 엉아 설대 의대 합격 축하식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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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 졸업식때는 내 부친은 커녕 집안 식구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에서 녹화사업 받다 무릎연골이 작살이 나서 통합병원에 장장 6개월을 입원했어도 집안 식구 아무도 면회 한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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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엉아는 한술 더 떠서 남들 다 하는 군생활 꾀병부려 병원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한다고 소문을 낼 정도로 사랑받지 않는 군 식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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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아바지가 딱 한번 졸업식에 참석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박사학위 졸업식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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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방원 선생 유품 서화보따리에는 옥산(沃山) 김옥진(金玉振, 1927 ~ 2017) 선생의 작품도 있다. 액자나 족자로 보관되어 있던것들은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챙겨가고 남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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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사학위를 받았을때 오랜 친구분인 옥산 김옥진 화백에게 받아 놓으셨던 축하 水仙花(수선화) 부가 있다. 재작년에 내 누나가 액자 족자를 행기다가 찾았다고 알려주었던 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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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盤露積珠襦重(금반로적주유중)
금반에 이슬이 쌓이니 구슬져 고리가 무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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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佩風生翠帶長(옥패풍생취대장)
옥매에 바람이 생기니 푸른 띄가 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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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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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 뒤에는 옥산 선생 필체로 휘호 설명도 잊지 않고 하셔서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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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날 주려고 받아두셨다가 깜박하고 잊어버리셨거나, 그 사이에 부친에게 치매가 찾아왔나 보다. 이제 학위 받은지도 많은 세월이 흘러 가물거리는데 내 아바지 방원 선생이 미국까지 와서 많이 기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내 아바지가 유일하게 참석한 내 졸업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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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은 일본유학시절부터 절친이셨다. 내 부친 방원 선생은 지운 선생의 수행비서(?)로 옥산 선생은 의재 선생의 수제자로 2대에 걸쳐 절친의 인연을 맺었다. 옥산(1927~2017) 선생은 2017년 내 부친 방원(1927~2018) 선생은 2018년에 세상을 등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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