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91 지운서화

[7/11 - 지운 선생의 역사 속의 공적과 과오]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1. 1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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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8폭병풍 7/11 작품

 

지운 김철수 선생의 8폭 병풍 4가지 버전 내용을 달리하는 11폭으로 남은 그분의 인생이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11가지 내용 8폭병풍 중 7번째 작품 [지운 선생의 역사 속의 공적과 과오]이다. 해설은 양금섭 교수님의 해설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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纔渡東江 淚自衿

只存碑閣 老松深

子規何事 啼留客

最憶(?)端王 曉月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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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을 건너자마자 눈물 흘러 저절로 옷깃 적시는데

다만 노송 숲 깊은 곳에 비각만 있구나.

두견새는 무슨 일로 울어 나그네를 붙드나

가장 슬픈 건 단종의 새벽달 마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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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辰五月二十日 獨訪寧越古跡 而宿於淸泠浦津頭賣店 初夜一巡深林 卽翌夜未明更渡東江 飽聞杜宇之聲 卽切憶幼王之悲哀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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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20일 홀로 영월 고적을 찾아가 청령포 나루의 매점에 유숙했다. 첫날 밤 깊은 숲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음날 밤 어두울 때 다시 동강을 건너 실컷 두견새 소리를 들고 보니 곧 어린 임금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 매우 우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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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의 역사 속의 공적과 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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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지운 선생이 주축이 되어 1916년 일본에서 조선과 중국 유학생의 비밀결사조직 신아동맹단을 조직한다. 이 조직의 조선인들은 지운 선생이 주축이 되어 1920년 조선에서 사회혁명당(일명 상해파 사회혁명당)을 창당했고 중국인들은 1921년 중국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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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명당은 러시아 코민테른에서 동양권에서 창당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추인받아 금괴 200만 루브르가 넘는 공산혁명자금을 조선공산당 단독으로 수령받는 업적을 만들었다. 이 공산혁명 자금은 김구의 임시정부는 물론이고 조선의 항일독립단체에 골고루 나누어져서 독립운동에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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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미국에서 모집한 미국교민들의 독립운동자금을 횡령하고 김구의 사살명령이 떨어진 이승만의 횡령자금을 대납하여 이승만의 목숨을 구명하는데도 사용되었다. 길림에서 임시정부 개조를 위해 소집된 '국민대표회의'의 제반경비로도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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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임시정부는 코민테른의 공산혁명자금을 내놓으라고 겁박하여 지운 선생은 조선공산당의 최소 활동비 5만루브르를 제외하고 남은 돈 모두 김구의 임시정부에 넘겨주었다. 하지만 김구는 나머지 5만루브르도 자신들에게 내 놓으라고 겁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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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그 5만루브르마저 탈취하고자 지운 선생을 비롯한 조선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백주 대낮에 지운 김철수 선생의 눈앞에서 동지 김립이 사살되는 모습늘 지켜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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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임시정부의 이동휘는 김구에게 공산혁명을 위해 사회주의정당에 지급한 돈을 어찌 갈취하려하느냐고 항의했지만 김구는 이동휘 마저 임시정부에서 제명시켰다. 바로 이점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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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운 선생은 김구에게 복수하자는 동료들에게 '김구는 사회주의의 사짜도 모르는 무식쟁이이다. 오로지 독립하겠다는 그 뜻이 가상하다. 서로 원한을 품지말고 합심하여 독립을 쟁취하자'고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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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구는 집요하게 나머지 5만르부르도 내 놓으라며 지운 김철수의 조선공산당은 가짜공산당이라고 코민테른에 제보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5만르부르 갈취 사기공산당 사건'이다. 코민테른은 자체조사를 거쳐 근거없음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고 러시아계 귀화학자 박노자는 비밀해제된 그 서류를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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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무식하게도 백범일지에도 조선공산당이 5만르부르를 횡령했다고 남기기도했다. 지운 선생은 통크게 김구조차도 품으려했지만 김구의 무식함은 끝이 없었다. 그 와중에 1930년 지운선생은 조선에서 검거되어 해방될때까지 죽음을 넘나드는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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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

해방정국에 공산당과 신민당 그리고 인민당이 3당합당햐려는 것에 반대하여 지운 선생이 중심이 되어 '사회노동당'을 결성한 사실은 1국1당 정책에 위반되는 명백하게 잘못된 일이었다고 그 과오를 반성하는 삶을 살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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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조차 김구 조차 넓은 가슴으로 품었던 민족적이고 선비적인 사회주의 혁명가 지운 김철수는 한민족의 거인이었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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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선생이 1차 출옥 후에 형제들과 유성온천에서 몸조리 할때 - 193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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