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율곡시 '山中採薬詩' 작품
지운 선생의 작품 중에는 병풍으로 액자로 그리고 족자로 제작된 것들이 있다. 이 역시 대부분 한국에 있는 내 두형과 누나 여동생이 가져다 잘 보관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고도 남아 있던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유품 중에 지운 선생 족자가 있다. 이 또한 양금섭 교수님이 그 해설을 해주셨다.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자.
採藥忽迷途(채약홀미도)
千峯秋葉裏(천봉추엽리)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
약초 캐다 문득 길잃었는데
온산 봉우리들은 단풍이 한창.
산 속 스님은 물 길어 돌아가는데
숲 가에는 차끓이는 연기가 이네.
戊午之旦 錄栗谷先生 山中採藥詩 爲芳山花伯 淸賞 八十六翁 芝雲
무오년 새아침 방산화백(芳山花伯)의 감상을 위하여 율곡선생의 <山中採薬詩>를 기록하다. 팔십 육 세 노인 지운
양금섭 교수님은 "画伯 대신에 花伯을 써서 이 박사의 선친을 지칭했음을 짐작하겠다."고 방산화백(芳山花伯)의 의미도 설명해 주었다.
지운 김철수 선생의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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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전에 지운 선생은 누가 꼬치꼬치 캐어 물으면 김성수 덕에 유학도 가고 했다고 김성수를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사실 김성수 집안은 터무니 없는 구실을 걸어 지운 선생댁의 논마지기 절반을 절취해 갔다. 그로인해 오랜세월 김성수 집안과 송사를 버렸다. 지운 선생댁을 위해 김성수 집안과 힘든 법정 싸움을 벌일때 허헌(許憲, 1885~1951) 변호사가 송사를 도와주었다. 그때 지운 선생은 허헌 변호사를 통해 함흥의 지성인 그룹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아무튼 김성수는 자신의 집안 욕심으로 지운 선생댁에 피해를 입힌것에 미안하여 지운 선생이 일본유학을 떠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운 선생은 생전에 김성수 일가의 사욕만 없었다면 지운 선생댁이 곤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늘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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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전에 지운 선생은 용서하기 힘든 미운 놈 하나를 들라면 정읍의 나용균(羅容均)이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나용균은 함께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는데 인간이 되어 동지로 사귀었다고 한다. 그래서 2.8독립선언도 함께했다. 더구나 유학생 송진우(宋鎭禹, 1890~1945)가 병에 걸렸는데 문등병으로 오인되어 아무도 찾지 않아 굶어 죽을 판인데 나용균이만 먹을 것을 들고 문병을 와서 인간이 되었다 생각하고 뜻을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2.8독립선언서도 주도 안하고선 자랑하다 일경에 잡혀갔다 온 이후부터 좀 이상하더니 상해 임정에 가서는 지운 선생의 죽을 고비마다 나용균이 있더라는 거다. 그래서 상해에서 만나 따졌더니 김구의 임정도 잊어버리고 영국유학을 떠나겠다고 도와달라고 해서 군자금 중에 인재 유학용으로 영국유학 비용과 영국행 배 승선수속도 불편함 없이 해주었는데 실제 학교에 입학해서 다녔는지 조차 보고도 없었다고 했다. 또 해방후에는 이승만 하다못해 박정희 편에 붙어 호의호식만 하더라는 거다. 그런 인간을 동지로 두고 마음을 주었다는게 지운 선생 자신이 용서가 되질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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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8독립선언문 원본을 찾아보니 나용균은 대표서명자칸에 지운 선생 말씀데로 그 이름이 없었다 (사진 참고). 그런데 나용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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採藥忽迷途(채약홀미도)
戊午之旦 錄栗谷先生 山中採藥詩 爲芳山花伯 淸賞 八十六翁 芝雲 무오년 새아침 방산화백(芳山花伯)의 감상을 위하여 율곡선생의 <山中採薬詩>를 기록하다. 팔십 육 세 노인 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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