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91 지운서화

[유한정정(幽閑靜貞) - 한인 여성혁명열사]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1. 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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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유한정정(幽閑靜貞)'서화 작품

 

동양 최초 공산주의 여성사상혁명가로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한 한인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

지운 선생의 지갑 속에 늘 간직했던 조선의 혁명 여걸 김마리아

1956년 박헌영과 함께 숙청된 미국간첩 현앨리스

 

유한정정(幽閑靜貞)은 그윽하고 한가하며 고요하고 정숙하다는 말로 유교적 여성상인 '여성의 인품이 높고 얌전하고 점잖음'을 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오랜세월의 갈등이 있었다. 조선에서도 부녀자는 유한정정(幽閑靜貞)이 지고의 부덕이며 이러한 부덕의 유지를 위하여 외출을 엄격히 규제하여 쓰개치마를 쓰고 나들이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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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여성은 열등하고 종속적인 존재이므로 아버지‧남편‧아들에게 의존하여 일생을 사는 것으로 족하고, 세상살이‧인간사를 경영하는 일은 남자들에게 맡기고 다만 아이를 기르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만이 여성의 가당한 역할이라 여겨 결국 여성은 ‘내조자‧보조자’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이러한 기능을 천직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식이나 교육은 불필요하며, 오히려 여자의 재주는 ‘집안 망친다. 무재주 상팔자’ 등의 속담 속에 억눌려 왔다. 조선의 사회주의 혁명사에서도 여성을 차별하는 마초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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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초의 공산주의 여성사상가이자 레닌과 함께 1917년 2월과 10월의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한 한인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도 여성이었다. 비록 1919년 9월 우수리전투에서 백군과 일본군 그리고 체코군의 연합군에게 생포되어 처형되었지만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역사는 김 알렉산드라를 위대한 여성혁명열사로 기록하고 있다. 또 지운 선생의 지갑 속에 늘 간직했던 조선의 혁명 여걸 김마리아도 한평생 독립에 헌신한 3·1운동의 투사였다. 일제의 참옥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해방을 1년 앞두고 사망했지만 일본과 미국유학을 한 조선의 사회주의 혁명가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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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체코를 거쳐 북한을 오가며 박헌영에게 미국 CIA의 지령을 전달하던 이중간첩 현엘리스, 현엘리스는 미국 CIA가 200% 만족할 정도로 그 임무를 수행했다. 1956년 박헌영과 함께 숙청된 현앨리스도 거창한 조선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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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보다 더 파란만장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어도 이 조선의 여성혁명가들은 진정한 의미의 유한정정(幽閑靜貞)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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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초의 공산주의 여성사상가이자 레닌과 함께 1917년 2월과 10월의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한 한인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도 여성이었다. 비록 1919년 9월 우수리전투에서 백군과 일본군 그리고 체코군의 연합군에게 생포되어 처형되었지만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역사는 김 알렉산드라를 위대한 여성혁명열사로 기록하고 있다.
지운 선생의 지갑 속에 늘 간직했던 조선의 혁명 여걸 김마리아도 한평생 독립에 헌신한 3·1운동의 투사였다. 일제의 참옥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해방을 1년 앞두고 사망했지만 일본과 미국유학을 한 조선의 사회주의 혁명가로 이름을 남겼다.
1921년 겨울 상하이에서 중국에 유학온 한국학생들 사진 -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헌영, 둘째줄 오른쪽 끝 여인이 박헌영의 아내 주세죽, 그 왼쪽이 현앨리스이다. 현앨리스의 동생 현피터는 맨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있다.
1948년 9월 현앨리스의 아들 정웰링턴이 체코로 떠나기 전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왼쪽부터 현피터, 현안나(피터의 부인) 현데이비드, 현데이비드균(데이비드의 아들), 현앨리스, 현순, 현메리함(데이비드의 부인), 현프릴랜드탄(데이비드의 아들), 현마리아(현순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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