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_091 지운서화

[己未回羊(기미회양) - 지운 선생과 2.8독립선언서]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2. 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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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芝雲) 김철수(金綴洙, 1893~1986) 선생 '己未回羊(기미회양)' 작품

지운 선생의 이 작품은 '기미회양(己未回羊)'이다. 지운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 유학생 동지들과 함께 1919년 동경 YMCA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할때가 1919년 기미(己未)년이었다. 다시 기미년이 돌아온건 1979년이다. 60갑자의 기미년을 다시 맞이하신 1979년이 의미가 크셨을 거다. 그러니 '기미회양(己未回羊)'을 여러장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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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지운 선생은 용서하기 힘든 미운 놈 하나를 들라면 정읍의 나용균(羅容均)이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나용균은 함께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는데 인간이 되어 동지로 사귀었다고 한다. 미적거리는 춘원 이광수도 달래고 또 나용균도 달래서 2.8독립선언도 함께했다. 글 잘 쓰는 춘원은 강권하다시피 이름을 올렸고 나용균은 겁이 많아 이름을 올리는데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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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송진우(宋鎭禹, 1890~1945)가 병에 걸렸는데 문등병으로 오인되어 아무도 찾지 않아 굶어 죽을 판인데 나용균이만 먹을 것을 들고 문병을 와서 인간이 되었다 생각하고 뜻을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2.8독립선언서도 주도 안하고선 마치 자기가 주도 한것처럼 자랑하다 일경에 잡혀갔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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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균이 잡혀갔다 온 이후부터 좀 이상하더니 상해 임정에 가서는 지운 선생의 죽을 고비마다 나용균이 있더라는 거다. 그래서 지운 선생이 나용균을 상해에서 직접 만나 따졌더니 김구의 임정도 잊어버리고 영국유학을 떠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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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군자금 중에 인재 유학용으로 영국유학 비용과 영국행 배 승선수속도 불편함 없이 해주었는데 실제 학교에 입학해서 다녔는지 조차 보고도 없었다고 했다. 또 해방후에는 이승만 하다못해 박정희 편에 붙어 호의호식만 하더라는 거다. 그런 인간을 동지로 두고 마음을 주었다는게 지운 선생 자신이 용서가 되질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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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8독립선언문 원본을 찾아보니 나용균은 대표서명자칸에 지운 선생 말씀데로 그 이름이 없었다 (사진 참고). 그런데 나용균은 ... 나용균 같은 인간과 친교를 나누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내 인생에도 그런 인간이 더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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