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부 고 이성구 선생은 8살(1915년) 때 할아버지(성우 이명직 대감)가 고종 측근 제거할 때 일제에 독살당하고 11살(1919년) 때 아버지(이철규 금광국기수, 평북 동 면장, 충주문성금광주)가 고종 독살 의문에 항의하자 일본 헌병에 척살 당하고 혈혈단신 수원태광보통학교와 수원농림을 졸업하고 만주에서 미곡수집회사에 근무하다 만주국이 들어서자 만주국 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만주 길림 전곽기에서 미곡검사관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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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지운 김철수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를 오갈 때 안전한 은신처와 군자금을 조달했다. 지운 김철수 선생은 이곳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한다. 그런 인연으로 해방 후 지운 김철수 선생은 창경궁 식물원을 책임지고 있던 그 아들인 방원 이성찬 선생을 만나 작고할 때까지 긴 인연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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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만주 길림성 전곽기에서 내 부친 방원 선생은 경성의 봉래고등소학교로 유학 올 때까지 소학교를 다녔다. 그때의 사진이 방원 선생 유품 서화 보따리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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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에 본인이라고 화살표를 남기셨다. 그리고 사진을 설명했다. 滿洲(만주) 吉林省(길림성) 前郭期(전곽기) 昧掱(매수?)小學敎(소학교) 五學年生(5학년생)때 學挍實習地(학교실습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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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실습 중 점심을 먹는 거 같군요. 목이 긴 선생님이 반팔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여름 같구요 머리를 빡빡 깎은 남학생이 일곱, 꽃무늬와 드레스 모양의 옷을 입은 여학생 다섯은 남녀가 유별해서 각기 다른 줄에 마주보고 앉았구요. 남자 일곱 중 둘이 안경을 썼으니까 상당한 번화가였던 듯 하구요. 찬은 보이지 않고, 물주전자만, 선생님 앞에 놓인 그릇이 하나 밖에 안보이니 찬은 한두가지에 불과했을 듯. 책을 걸려놓는 것도 보입니다. 디귿자 모양의 나무가 세개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비닐하우스 같은 곳 아니었을까요? ㅎㅎ
생전에 만주 사람들은 생파를 들고 다니면서 씹어먹더라는 이야기를 하셔서 만주하면 촌구석일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윤선생님이 느끼시는 느낌엔 '번화가'가 놓여있군요. 소학교 5학년이면 10살이나 되었을까요? 관찰하신 점을 염두해 두고 보니 또 새롭게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하하하

지구 건너편에 계시는 분이 갖고 계신 사진이다. 아트웤을 하고픈...
그 시절 고창의 고등학생들은 금강산까지 수학여행을 갔나 보다. 흰 비늘을 두른 바위들은 옹골차다. 게 전라도 고창에서 간 학생들이 각반을 차고, 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한명은 야구베팅을 하는 폼을 잡았다. 롱코트를 입은 분은 선생님일까?
등산복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 교복 그대로다. 그렇지만 감회에 젖은 표정들은 어지간 하다. 앞줄에 앉은 이들은 쟈니윤 촬영스타일. 바위 위에 올라서 단추를 풀고 있는 저 이는 아마 여학생들 좀 울렸을 듯.
잉크자욱,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도 나는 정겹다.
이분의 사부곡은 '몸에 새긴 역사'다.
나비 한마리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몰아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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