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the Salkantay Inca Trail to Machu Picchu 5 Days (10/07~10/12/2021) Trip 2/2
5일간(2021년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살칸타이 잉카 트레킹을 통해서 마추픽추 구경하기 전 고도적응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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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살칸타이 잉카 트레일을 거쳐 마추픽추를 둘러보는 5일간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2일동안 고도적응도 할 겸 쿠스코를 관광하는 프로그램을 예약해서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sacred valley of the Incas)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고도적응도 하고 쿠스코 인근을 관광하는 그 두 번째 날의 과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날 쿠스코 시내 관광을 안내했던 후 안이라는 관광안내원과는 달리 두 번째 날은 머리 꽁지를 한 28살의 다소 능구렁이 같은 청년이 관광 안내를 맡았습니다. 픽업해야 할 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해서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함께하는 다른 일행들도 그리 썩 좋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우선 무난히 영어 소통이 되는 관광안내원이라 다행이라 여기고 출발을 했습니다.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sacred valley of the incas)은 쿠스코의 우루밤바(Urubamba)강을 따라 마추픽추에 이르는 협곡에 자리 잡은 다양한 잉카의 유적지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관광안내원이 처음으로 인도한 곳은 친 체로(Chinchero)라는 동네에 있는 페루 아태(Peru Arte)라는 곳으로 잉카의 천연염색 방법을 설명하고 어떻게 천을 직조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이미 첫날 이런저런 직조 물을 샀고 제 각시에게도 300불에 육박하는 쇼 울로 사주었는데 제 각시는 그건 가짜고 이곳이 진짜라고 구매 의욕을 보였습니다. 역시 관광지답게 장사수완들이 대단하긴 하더군요. 고도가 3,800m 라는 이 친첼로라는 동네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교회가 볼만하다고 하는데 비도 내리고 하루 일정상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페루 아테에서 코카차 한잔 대접받고 그곳을 나와 본격적인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여행에 나셨습니다.
차장을 밖으로 펼쳐지는 협곡은 마치 예전 강원도의 산골 계곡을 달려 동해로 넘어가던 풍경을 연상시켰습니다. 협곡 분지에 자리잡은 마을들은 짓다 만 건물들이 한집마다 인 듯 지붕에 철근 콘크리트 기둥의 녹슨 철근들이 삐죽삐죽 삐져나와 볼 상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원주민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이어 짓느라 처음에는 1층만 짓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2층을 짓고 또 3층을 짓는다고 하더군요. 콘크리트 기둥과 벽체의 두께도 그렇고 철근의 양과 규격이 언뜻 보기에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노파심도 100t이 넘는 돌덩이도 산에 올려 잉카건축을 했던 사람들이니 알아서들 잘 하겠지 하고 관심을 넘겨버렸습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우루밤바(Urubamba)라는 마을을 차창 밖으로 지나쳤습니다. 그 우루밤바는 잉카의 전통적인 도자기들이 많이 생산되기도 하더군요. 페루의 도자기 문화를 살펴보려면 이 우루밤바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 도착한 곳은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라는 동네였습니다. 그곳의 계단식 농업 유적지에 입장하기 위해서 표는 직접 끊으라고 하더군요. 마침 어제 쿠스코와 쿠스코 근교의 모든 유적지표를 다 입장할 수 있는 표를 구매해서 그 표로 입장을 했습니다. 굳이 표를 사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곳은 계단식 농지가 그대로 남아있어 계단을 오르며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어제 후안처럼 전문적이고 박식한 관광안내원이 아니어서 만족할 만한 답변을 충분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안내서를 참고해서 보니 이 오얀타이탐보 계단식 농작지는 농업의 신에게 왕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군요. 또 이 계단식 농작지에서 이 마을에서 사용할 감자며 모든 농산물이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나라가 관리를 하여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계단식 농작지를 왼쪽으로 시작해서 올라갔다 돌아 오른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맨 아래 두 개 다 정도에 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더군요. 그곳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동네 사람 중에 신청을 받아 경작하게 하는 계단식 농지라고 하더군요. 농사에 사용되는 물은 잉카 수로를 통해 아직도 물이 끊기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족히 수십 톤은 될 것될것 같은 돌덩이들이 반듯반듯하게 재단되어 바위와 바위의 아귀를 빈틈없이 맞춘 체 계단 옹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얀타이탐보 정상에 이르면 미처 완성하지 않은 제사를 지내는 성전 석조 건축물들이 보입니다. 그 옆으로 산 밑에서부터 거대한 거인이 가지고 올라왔음직 한 거대한 석조용 돌덩이들이 네모반듯하고 또 레고처럼 끼워 넣을 홈과 돌출부들이 보입니다. 아마도 성전 건축이 완성되기 전에 스페인이 정복하는 바람에 그대로 방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석벽의 재료는 저 건너 멀리 보이는 돌산의 채석장에서 옮겨 왔다고 하는데 현대의 기술로도 만만한 일이 아닌데 그 옛날 무슨 재주로 옮겨왔을까요? 대듦 제 각시와 함께 관광하던 여자아이가 “외계인”이라고 동시에 답을 하더군요. 글쎄요? 안내서에 의하면 “석축을 옮길 때 라마 떼에게 허밍을 하면 라마들이 괴력을 발휘하여 석축을 옮겼다”고 하는데 이 설명도 전혀 납득이 가질 않더군요. 이런 신비한 힘의 원천을 가진 잉카가 맥없이 스페인에 멸망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아무튼 저 건너다보이는 채석 정도 시간이 남는다면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 하더군요. 그리고 안내서를 유심히 보니 잉카라는 말도 나라 이름이 아니고 귀족계급을 일컫는 말이라는군요. 그러니 잉카제국은 귀족계급의 제국이었다는 말이겠지요. 문득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북한 같은 세상의 모든 독재국가를 보면 잉카의 돌 땡을 산 위로 옮기는 일쯤은 사실 왕이나 귀족계급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런 것일 터이고 러시아의 우주여행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고 서방세계의 압박에도 떼거리 아사를 불사하며 버티는 북한만 보아도 어쩌면 잉카의 돌 땡이 옮기는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일쑤 있을 겁니다.
오얀따이땀보 유적지를 내려오니 관광안내원이 그 앞 노천 상가로 이끌었습니다. 호객행위나 구걸 행위가 인도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양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있기는 하더군요. 잉카 전통복장을 한 아이들과 사진찍기를 강요할 때쯤 일행에서 벗어나 길가에서 오렌지를 직접 짜서 주스로 파는 아줌마에게로 향했습니다. 유리컵으로 한잔에 3솔이라고 하니 달러로 75센트꼴입니다. 한잔 짜는데 오렌지가 4개 이상이 들어가더군요. 제 각시와 한 잔씩 마시니 조갈도 가시고 기분도 상쾌해졌습니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오렌지를 손질해서 손으로 압축기를 눌러가며 주스를 짜준 잉카 아낙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더군요. 원래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의 전형적인 관광 스케줄은 이곳 오얀따이땀보 기차역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가 있는 이구아수 칼리엔 테스까지 가서 이 관광코스의 정점을 찍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5일간의 살칸타이 잉카 도보여행을 통해 마추픽추를 돌아볼 예정이라 저녁에는 쿠스코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고 관광안내원은 우리를 뷔페식당으로 안내를 하더군요. 이 뷔페는 지불한 관광 비용에 페루 음식 체험이라는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신 음료수는 함께 관광하던 일행들이 돈을 모아 사 마셨습니다. 원래 잉카에는 팁 문화가 한국처럼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식당 종업원은 미국 관광객들이 팁 맛을 들여놓아서인지 아예 대놓고 팁을 달라고 하더군요. 식사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페루의 전통피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악기로 한 악단이 열심히 페루 빈 곡을 연주하고 있더군요. 악단의 일행인듯한 노인이 열심히 식당 테이블을 돌며 그 악단의 CD를 팔고 있더군요. 이제는 컴퓨터에조차 CD플레이어가 사라진 마당에 CD를 산다는 게 이상했지만 제 각시는 음악이 좋다며 3가지 몽땅 구매를 하였습니다. 돌아와서도 며칠 지난 지금도 어디에 처박아 두었나 할 뿐 CD플레이어를 찾아 들어보지 않고 처박아두고 있지만 말이지요.
관광안내원의 실없는 이야기들에 실증을 느낄 즘 운전하는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영어 소통이 전혀 안 되더군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보았는데 자신이 쿠스코 출신인 것 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들은 제법 스페인 어를 구사해서 이런저런 소통도 하긴 하더군요. 하지만 첫날처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두 번째 날은 소득이 별로 없었습니다. 날씨는 점점 우기의 본색을 보이기 시작해서 밖을 나서 돌아다닐 때는 벼락 비도 맞아야 했고 우비를 필수로 챙겨야 했습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살칸타이 잉카 도보여행이 빗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 무척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우중 하이킹을 즐기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첫날은 함께 여행하는 일행이 없어서 안내하던 후 안이라는 청년과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게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번째 날 관광은 젊은 남녀 커플과 미국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한다는 사람과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한다는 사랑해서 4명이 함께 하여 관광내용을 깊이 있게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한다는 사람은 제 각시가 염두에 두고 있는 킬로만 자로 등산을 이미 예약해서 이 여행이 끝나면 간다고 하더군요. 제 각시는 그 친구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열심히 캐묻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부인이 생전 이런 여행에 따라나서지 않는데 킬로만 자로는 가겠다고 했다며 너스레를 떨더군요. 부부가 함께 힘든 하이킹을 한다는 건 축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식사 후에는 협곡을 굽이굽이 돌아 18,000피트(6000m)급 산들로 둘러싸인 성스러운 작은 마추픽추라는 피삭(Pisaq)으로 향했습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피사크 유적지 입구에는 비를 가리려 좌판에 덮어놓은 토산품 장사꾼들이 물건이 보이도록 펼치고 닫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또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씨알 굵은 옥수수들로 허기진 관광객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입구에서 입장표와 여권을 확인하고 입장을 하여 층층이 계단을 이룬 비어버린 농작지를 바라보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빗속을 우비를 걸치고 오르는데 숨이 금세 차오르는 게 고산지대임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위쪽에는 잉카의 귀족들이나 제사장들이 살았을 것 같은 두꺼운 석조물로 건축된 거주 터가 보입니다. 그리고 석조로 된 여러 개의 샘물 구멍에서는 아직도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거주 터 앞쪽으로는 계단식 경작지가 잘 정돈되어 산기슭을 따라 있었고 뒤편 계곡의 반대편 자락에는 수없이 많은 무덤 굴들이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어지럽게 있었습니다. 마치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이 다다르기 쉽지 않은 반대편 그 경사면에 어떻게 그 많은 무덤 굴을 만들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곳도 역시 그 무거운 석제들을 어찌 옮겨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했다면 잉카의 백성들은 정말 살기 힘든 삶을 살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이 피사크 유적지가 작은 마추픽추라 불리는 이유는 정상의 주거지에 이루러니 알 것 같았습니다. 주거지를 보호하는 방어목적의 요새가 적이 침범할 수 없도록 자연석 기단 위에 족히 2,000피트 한 200미터쯤 되는 성벽을 쌓았던 흔적이 완연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제사를 지냈을 법한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의 석조물은 제법 멋을 내어놓았습니다. 페루의 석조물 중에 가장 멋진 석조물이라고 안내서에도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 저 아래 보이는 피사크 마을에 있는 토속적인 시장도 볼만 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관광 안내하며 이동하는 밴이 동네를 가로질러 피사크 유적지 입구까지 내려주고 또다시 우리 일행을 싣고서 떠나야 해서 가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외에도 제가 산 전체 입장권에는 800m 돌 수로가 늘어선 잉카의 관계시설을 보여준다는 후추에 코스코가 우리가 들렀던 우루밤바와 이 피사크사이에 있다고 하는데 지나쳐 온 모양입니다. 또 전체 입장권에는 잉카의 유적지로 농업시험장 역활을 했던 모라이라는 곳도 나옵니다. 원형 대칭형 테라스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 옥수수나 감자가 고도에 따라 그 성장상태를 관측하여 품종을 개량했다고 합니다. 그 원형 계단식 경작지는 맨 아래 경작지와 맨 위의 경작지의 온도 차이가 2도 정도 난다고 합니다. 잉카인들이 과학적으로 많이 발달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모라이와 가까운 곳에는 살리나스라는 소금 광산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5,740개의 계단식 염전을 만들어 1개의 염전에서 한 달에 150킬로 그램 가량의 소금이 난다고 하니 대단한 염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페루의 음식이 맛깔스러운 것이 간수의 쓴맛이 없는 이곳 살리나스의 소금으로 만들어져서 그렇다는 걸 다시 떠오르게 했습니다. 이곳 역시 시간 관계상 관광 일정에는 포함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다음날 4시부터 시작되는 5일간의 살칸타이 잉카 트레일을 통해 마추픽추로 가는 일정의 예비소집이 오후 5시부터 살칸타이 여행사 건물에서 있어서 쿠스코로 돌아와 예비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우리 일정을 안내할 후안이 일정을 소개하고 필요한 물품도 점검하고 포터와 조랑말이 가지고 갈 물품을 담을 더플백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 더플백 번호가 저녁에 찾기 좋아지라고 570이라고 큼지막하게 더플백에 새겨져 있더군요. 함께 갈 인원들도 저를 포함해서 미국에서 9명 그리고 캐나다에서 2명이 참가해서 모두 11명으로 팀이 꾸려졌습니다. 앞에서 도보여행을 선도할 안내원은 후안이 맞고 일행 뒤에서 따라줄 안내원으로 레오라는 37살 먹은 총각 등 안내원 2명이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또 음식이며 텐트 침이랑 그리고 일행의 더플백을 가지고 갈 말들을 부리는 마부 1명과 일정 내내 음식을 책임질 조리사 1명과 조리 보조 2명도 정해졌습니다. 예비소집 뒤에는 드디어 “사랑채”라는 한국식당에 가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었습니다. 설렁탕이 메뉴에 보여서 물어보니 뼈를 3일은 고아야 한다고 도보여행 마치고 오면 제공하겠다고 하더군요. 식당 구석에는 중1 정도의 아들 초등학생 정도의 딸 그리고 그보다 어려 보이는 아들 2남 1녀가 놀고 있더군요. 한국말을 잘하는 게 신통해서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도자기를 전공해서 페루에 도자기 제작 지원을 위해 코이카를 통해 10년 전에 와서 이곳에서 만난 같은 동료와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5일간의 살칸타이 잉카 트레일을 통해 마추픽추로 가는 일정을 소개하는 편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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