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멸사봉공 (滅私奉公)]

忍齋 黃薔 李相遠 2021. 12. 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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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올릴 카테고리가 없어 여기에 올렸는데 카페지기님, 잘못되었으면 지적해 주세요. 

아직 조석으로는 쌀쌀하지만 이제 한겨울의 추운 동장군은 물러 간 듯 합니다. 집근처 뚝에서 개나리 꽃도 볼 수 있고 옆집 담 위로 얼굴을 내민 봄의 가인 목련화도 볼 수 있습니다. 헌데 모든 창조물은 그  창조 목적이 있을 진대 과연 꽃의 창조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싶은 것일까요, 계절의 변화를 알려 주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둘 다 일까요.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까요, 남에게 보이려고 할까요, 아니면 둘 다 일까요. 보디가드는 돈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치려 할까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둘 다 일까요.

영국에서 보디가드의 마지막 테스트가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지친 상태에서도 자기가 지켜야 할 대상을 지켜내면 이 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고요. 자기(사)를 생각않고 남(공)을 먼저 돌보는 멸사봉공의 자세라고 할까요?    

멸사봉공(滅私奉公), 오늘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합니다. 이 말의 출전은, 시인으로 유명한 당나라 원진(元稹)이 쓴 '최릉수상서호부시랑제(崔稜授尙書戶部侍郞制)'라는 글입니다. '최릉에게 상서호부시랑을 제수한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벼슬을 내리는 것은 황제이지만(황제가 칙명(勅命)을 내릴 때 제(制)"라고 하므로) 원진이 대신하여 글을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직책은 엄격하고 결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물건을 제멋대로 쓴 자는 도망치다가도 들어갈 수 없으며,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변됨을 받드는 자만이 스스로 명백함을 얻을 수 있다.

 참으로 공과 사를 가림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선공후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이야기 입니다. 조(趙)나라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환관 우두머리인 무현(繆賢)의 사인(舍人)(하인)이었습니다. 이때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화씨벽(和氏璧= 유명한 옥)을 손에 넣었는데, 진(秦= 강국 이였음))나라 소공(昭公)이 이를 알고 진 나라 성 열다섯 개와 바꾸자고 요청했습니다. 화씨벽을 주자니 진나라 성을 받지 못할 것 같고, 화씨벽을 주지 않자니 진나라가 쳐 들어올까 걱정이었는데 인상여가 이를 해결하였으니 혜문왕은 기뻤습니다. 진 소왕과 조 혜문왕과의 회담에서도 진 소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귀국하여 혜문왕이 인상여를 상경(上卿)을 삼으니 지위가 염파(廉頗= 조나라의 명장군)보다 높았습니다. 그러자 염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성의 요새나 들에서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인상여는 겨우 혀와 입만을 놀렸을 뿐인데 지위가 나 보다 높습니다. 또 인상여는 본래 미천한 출신이니, 나는 부끄워서 차마 그의 밑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내가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인상여가 그 소리를 듣고 염파장군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조회 때 마다 늘 병을 핑계 삼아 염파와 더불어 서열을 다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출하다가 염파를 바라보면 일부러 피하니 인상여의 사인(하인)과 식객(食客)들이 다 그러한 인상여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인상여에게 항의하며 떠나고자 한다고 하자 인상여는 그들을 말리며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나라 왕 가운데 누가 더 무섭소?” “진나라왕 입니다. 염파장군이 진나라 왕에 못 미칩니다.” 인상여가 말했습니다. “저 진(秦)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 싸우면 결국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以先國家之急而後私讎也) 때문이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와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여 죽음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벗(刎頸之交)이 되었답니다.

공사양전이란 말도 있습니다. 춘추시대에 진나라에 조문자라는 이름 높은 재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수괴라는 사람과 함께 벼슬아치들의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그가 '옛 사람 중에 모범이 될만한 좋은 분을 한분 말 해보시오'라고 하자 수괴는 양초보라든가 구범이란 분 등을 거명했습니다. 그러자 '양초보는 지혜가 부족했고 구범은 어짐이 부족했으니 차라리 순자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순자는 군주를 이롭게 했고 자신의 몸을 잘 돌보았을 뿐 아니라 벗을 저버리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이었습니다. 조문자는 자기가 천거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았으며  자식을 남에게 부탁하지도 않았습니다. 공과 사를 확실히 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불법 정치자금이니 뇌물공여니 말이 많습니다. 조문자의 행실을 따랐다면 하늘색 옷을 입고 고생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멸사봉공, 좋은 말입니다. 선공후사, 역시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오늟을 사는 사람에게 좋은 말은 공사양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풍기나 에어콘을 가동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 열대의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만 그런 분들에게 적용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환자도 돌보고 내 몸도 돌보는 것이죠. 

간혹 봉사활동에 조건(댓가)이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가하면 어떤 댓가를 주겠다는 조건이죠. 한의학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하신 분이 있습니다. 방학 때면 무료로 사암침도 가르쳐 주고 의료봉사도 하는 분이죠. 얼마 전에 그분의 문하생이랄까요 아무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의료봉사를 가서 거절하지 못하고 잠자리를 대접받는 일이 있었답니다. 그분은 해외에 계셔서 참석을 못하셨고요. 그 일로해서 주도적인 일을 했던 사람이 몇 배로 물질적으로 되갚는 벌을 감수해야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큰 공과를 배우게 하는 글 이었습니다. 봉사를  갔을 때는 어떤 대접도 받아서는 안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분 이었는데 잠자리를 대접 받는다는 것이 가당챦았겠습니까.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편한 잠자리는 자신(사)을 위한 것이니 봉사(공)하러 가서 사(자신)를 위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소위 관리라는 사람들이 그것도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부적절한 대접을 받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공과 사를 분명히 인식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요. 윗 물이 아랫 물까지 흐려 놓았으니 우리같은 아랫 사람은 앞이 잘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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