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027. 가르시아 마르케스(García Márquez)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

忍齋 黃薔 李相遠 2022. 4. 2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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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1LcSJaNIQQ

02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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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책 100권 중 그 스물 일곱번째 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년 3월 6일 ~ 2014년 4월 17일)의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 를 시작합니다. 남미의 철권통치 고발한 `콜롬비아의 솔제니친'으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를 통해 전염병 방역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와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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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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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호세 데 라 콘코르디아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José de la Concordia García Márquez, 1927년 3월 6일 ~ 2014년 4월 17일)는 1927년 3월 6일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마그달레나 아라카타카란 작은 도시에서 12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바랑키야로 이주하자 마르케스는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8년간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는 부모가 있는 바랑키야로 가서 다녔습니다. 12세때에는 장학금을 받고 보고타 근처의 시파키아에서 중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6년 18세까지 다녔습니다. 그후 수도 보코타의 콜롬비아국립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지만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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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는 어려서부터 괴이한 용모와 억센 고집으로 부모의 속을 무척 썩였습니다. 식구들 중에서 누구 하나 마르케스에게 애정을 품거나 귀여워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마르케스는 집에 정을 붙일 수 없어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이때부터 마르케스는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마르케스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고 안 가져 본 직업이 없었습니다. 군인이 되어 전선에 나가 싸우기도 했습니다. 마르케스가 결정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서였습니다. 그 소설을 읽고 마르케스는 이런 일들도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라면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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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시작했습니다.그후, 카르타헤나 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공부했지만 역시 중퇴했습니다. 2차 대전 후인 19세 때인 1946년부터 ‘콜롬비아 데일리’라는 지역 신문에서 '발로 뛰는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1947년 ‘세번째 체념’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48년 가족과 함께 까르따헤나로 이주한 후, 자유파 계열 신문인 ‘엘 에스펙타도르’의 기자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54년 보고타의 신문 ‘관객’에 연극비평과 시대평론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콜롬비아 전국 단편소설 대회에 ‘토요일 하루 뒤’라는 작품으로 국가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해 ‘관객’의 유럽 특파원으로 로마에 파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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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르케스는 본국 콜롬비아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것과 1955년 콜롬비아의 실권자 ‘구스타프 로하스 피니야’ 장군의 밀수 행위로 인해 카리브해에서 10일 간 표류한 콜롬비아인 선원의 고통스런 체험에 대해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군사정권은 마르케스가 콜롬비아 해군을 비판하는 기사로 국격을 실추시켰다며 ‘관객’ 신문사는 폐간 되었고, 마르케스는 실업자가 되었으며, 국외로 추방당해 콜롬비아로 돌아갈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인 1955년에 첫 소설집 ‘낙엽(La hojarasca)’을 발표했습니다. 또 그해 마르케스는 공산당에 입당하여,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 남미가 혁명과 폭력으로 혼란을 겪자, 좌익단체 ‘산디니스타’를 지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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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도 명성이 알려져서 콜롬비아 자유당 및 콜롬비아 내 여러 좌파정당들이 정계진출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르케스는 이런 제안을 거절했고, 소설가 및 시사평론가로 남았습니다. 그후 멕시코에서 창작 활동을 했습니다. 쿠바 혁명 이후, 쿠바 혁명을 지지하여 1958년부터 쿠바 통신사인 ‘프렌사 라티나’ 보고타 사무실을 열었고 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로마,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쿠바 아바나 특파원을 지내면서 작품 창작을 이어갔습니다. 1958년 ‘메르세데스 바르차 파르도’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평생을 함께 살았습니다. 마르케스가 14살때 9살의 파르도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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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1살에 파르도와 결혼을 할 정도로 일편단심인줄 알았지만, 마르케스가 죽은지 8년만인 2022년 1월 16일, 30여년전 멕시코 작가 겸 언론인 수사나 카토와 사이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는 혼외자 딸 인디라 카토가 있음을 콜롬비아 매체 ‘엘우니베르살’이 보도하였습니다. 1961년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를 출간했고, ‘프렌사 라티나’를 그만 두고 멕시코로 이주했습니다. 이듬해인 1962년 두번째 장편 ‘불행한 시간’과 첫번째 단편집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을 출판했고, ‘어려운 시간’으로 에쏘 문학상 수상했습니다. 1967년에는 바로셀로나로 이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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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르케스는 너무 가난하여 부인인 파르도가 헤어드라이어를 전당포에 맡겨 1965년부터 써오던 ‘백년 동안의 고독(Cien a os de soledad)’의 원고를 출판사에 발송하는 비용을 마련하여 ‘백년 동안의 고독’을 출간하였습니다. 1970년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바르셀로나 주재 영사직을 제의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1974년 극우파 정권에 대항하는 ‘저항 문학가 협회’를 주도했고, 좌익 성향의 ‘라 알떼르나띠바’지를 창간했습니다. 1975년 ‘족장의 가을’을 발표했습니다. 1981년에는 ‘신고된 사망자 연대기’가 라틴아메리카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그해 콜롬비아 좌익 게릴라들에게 쿠바로부터 무기를 공급해 준다는 혐의를 받자 당국의 수사를 피해 멕시코로 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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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 이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1985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출판했습니다. 1989년 ‘미로 속의 장군’을 출판했습니다. 1992년 조국 콜롬비아로 귀국한 후 폐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열두 개의 순례하는 단편들’,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에 관하여’ 등을 발표했습니다. 1995년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에 관하여’의 불어판을 파리에서 출간하였습니다. 1996년 ‘납치일기’를 출간했습니다. 1998년 ‘캄비오’지를 인수하여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99년 림프암 진단을 받았고, 2014년 4월 17일 향년87세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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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라틴 아메리카를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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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출간된 `납치일기'는 콜롬비아 최대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에게 납치된 언론인들이 겪는 공포의 기록입니다. 1990년 8월부터 1991년 6월까지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실제 납치사건이 소재입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닌 `사실적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기자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작품입니다. 그는 1940년대부터 `엘 에스펙타도르' 등 리버럴 신문들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문학은 저널리즘과의 사랑행위"라고 말할 만큼 다큐멘터리적 글 쓰기에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반면 그의 초기작들은 `제3의 은퇴', `큰 엄마의 장례식',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등에서 보듯 프란츠 카프카의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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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통치 고발한 `콜롬비아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남미 독자들에게 `가보'라는 애칭으로 통했습니다. 그는 반세기나 되는 작가 생활을 대부분 정치적 이유로 조국을 떠나 유럽, 멕시코, 쿠바 등지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명작 `백년 동안의 고독'은 그를 망명작가로 내몬 남미의 정치, 사회사를 반영했습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연설문 `남미의 고독'을 통해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그리고 독립 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자들의 철권 통치를 겪어야 했던 남미인들의 `고독'을 전 세계에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족장의 가을’을 출판한 이듬해인 1976년 마르케스는 멕시코로 이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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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에서 칠레에 독재자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고 있는 이상 더 이상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인 아옌데 정권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쿠데타로 전복하고 쿠데타 기간 동안 3만여 명의 시민을 학살했습니다. 이것은 스페인 내전 당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스페인에서 독재자 프랑코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일화와 비슷했습니다. 그는 이미 1973년에 피노체트 쿠데타 당시에 "칠레 민중은 미제국주의의 하수인인 당신들과 같은 범죄자 집단이 통치하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쓴 전문을 칠레 군부에게 보낸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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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수년간 그는 정치적 활동에만 전념했습니다.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1979년 구속된 사람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아베아스재단의 창설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정치적 이유로 구속된 수감자와 고문을 고발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활동을 벌였습니다. 출판 거부를 한 이후에도 기자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에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고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반동이 극에 달했습니다. 엘 살바도르에서는 로메로 주교가 군부의 암살부대에 살해당하고, 한국에서는 5. 18학살이 벌어졌습니다.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한 마르케스는 1981년 4월에 정치적 환경이 변했다며 이 약속을 깨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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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마르케스(Gabriel Márquez)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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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가 좋아했던 작가들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와 같은 리얼리즘 작가들이었습니다. 마르케스의 청년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카탈란의 현자'로 묘사되기도 했던 학자 ‘라몬 비녜스’였습니다. 이 문학적 스승이 주재하는 소모임에서 그는 현대적인 작가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존 스타인 벡, 테어도어 드라이저,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영미작가들 이었습니다. 마르케스의 문학 주제와 본질적 기교는 그의 성장 배경과 삶의 과정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마르케스는 기괴한 것을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주의와 결합시키는 자신의 서술 방식과 지역 신화 및 전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모두 외할머니 덕분으로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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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외할아버지는 1890년대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내전에 참가했던 인물로서 외손자인 마르케스가 위대한 등장 인물을 창조하는 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폭력으로 점철된 20세기 전반기의 콜롬비아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살아온 마르케스는 금세기 최대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품에서 중남미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신화적인 수법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현대의 중남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혈육들의 모습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르케스는 소설가,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운동가입니다. 생애의 대부분을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보냈습니다. 생전에 피델 카스트로와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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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공석에서 카스트로에 대한 비판을 일축하면서까지 옹호했기 때문에 카스트로의 간신배나 피델의 입이라는 야유를 받았습니다. 여타 소설가들이나 예술인들에게도 독재정권을 옹호한다느니 피델의 궁전작가 아니냐는 식의 비판이나 비아냥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경력만 본다면 일방적으로 카스트로를 추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카스트로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쿠바 체제에 대해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거나 쿠바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 수시로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카스트로는 비록 마르케스의 조언을 다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받아들여서 정치범을 석방시키거나 개혁의 제스쳐로 계급장 없는 옷을 벗고 양복과 과야베라를 입고 공식석상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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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쿠바 체제의 경직성을 완화시켜주었습니다. 반대로 마르케스가 작품 초고를 낼 때마다 문학적 소양이 있던 피델이 초고 작품에 대해 이런 저런 면들을 비평해주면서 고칠점을 알려주었습니다. 절친한 친구로서 서로의 잘못에 대해서 무조건 감싸안기 보다는 서로에게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생산적인 관계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미국행 비자를 받지 못해서 미국에 방문하지 못했다가 빌 클린턴 때 와서야 비자를 받고 미국에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남미의 여러 독재자들을 비판하는 우화 소설인 ‘족장의 가을’을 마르케스가 썼을 때는 피텔과의 사이가 잠깐 서먹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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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문학 평론가들은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일컬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호 카르펜티에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훌리오 코르타사르와 함께 20세기 남미의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또한 그를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라고 일컫게 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공의 땅을 무대로 하여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입니다. 세계적으로 무려 2천만 부가 팔려나간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작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로서 마르케스보다 더 인기 있는, 혹은 책이 많이 팔린 작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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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와 함께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손꼽힙니다. 그의 소설에는 현실과 환상, 역사와 설화, 객관과 주관이 황당할 정도로 뒤섞여 나옵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현실을 보다 날카롭고 깊이 있게 드러내 주는 것이 마르케스 문학의 마력입니다. '개가 제 꼬리를 무는 듯한' 치밀한 구조를 자랑하는 마르케스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어린 시절부터 연마되었습니다.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그는 외갓집과 고향 아라카타카 마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 얽힌 신기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문학과 상상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마르케스는 유명한 정치적 행동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일관되게 지지해 왔으며, 중남미의 독재정권 및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 반대하는 글을 쓰거나 행동에 나선 것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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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일관되게 지지해 왔으며, 중남미의 독재정권 및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 반대하는 글을 쓰거나 행동에 나선 것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생존시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마르케스가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선거 판세를 가늠하는 중요 변수의 하나였습니다.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집권하자 1975년 마르케스는, '피노체트가 권좌에 있는 한 더 이상 소설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후 피노체트를 지원했던 미국계 다국적 기업 문제를 다룬 러셀위원회에 참여했으며, 중남미 각국의 정치범과 실종자들을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벌였습니다. 1981년이 되어서야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소설을 출판하는 것이 칠레 민중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고 새 소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출판했습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화장실에 비치한 비누한장으로 쫀쫀하게 싸우던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당시 가장 유명한 전염병 학자이자 방역선(防疫線)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소설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아드리앵 프루스트의 제자였다"고 설명하며 인류의 전염병 방역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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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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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를 상징하는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이 겪는 일을 긴 호흡의 문체로 이어나갑니다. 제목 그대로 백년 동안 한 가문의 고독이 넘치는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로 소설의 초기에는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리고 후기에는 그의 이름과 성격을 물려받은 고독한 청년 아우렐리아노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흐름은 저 둘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편 중간중간에 백년의 고독에서 빼놓을수 없는 '마술적 리얼리즘' 요소가 잘 드러나는, 집안의 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년간에 걸친 이야기인 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등장 인물의 이름이 거의 ‘호세 아르카디오’, ‘아우렐리아노’, ‘레메디오스’가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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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의 행동이나 사건들은 바로 이 아우렐리아노라는 한 인물로 수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 유일한 배우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바이블의 모든 사건들이 한 사람의 신, 예수의 등장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라고 해석하는 것이 예형론적 해석이라면, 마콘도의 창건자로부터 바나나 공장의 기계공인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로 마지막 ‘아우렐리아노’의 아버지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의 출현을 예고하는 부차적인 인물들입니다. 배경인 마콘도는 초기에는 거의 무슨 신화속의 도시처럼 죽은 이도 없고 마을 사람들간의 반목이나 불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으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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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가에서 시장을 파견하고, 그로 인해 자유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창궐되고 내성적인 청년이었던 아우렐리아노가 대령으로 나서서 일생동안 수많은 전쟁을 벌이며 자유파의 중요인물로 부각됨에 따라 마콘도는 수많은 불화에 휩싸이게 됩니다. 여담으로 백년의 고독이 남미의 역사 혹은 정치적 상황과 깊게 관련된 소설인 것을 감안하면 마콘도의 역사에서 작가의 역사관을 엿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쌍둥이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가 전철을 놓아서 바나나 농장이 설립되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부엔디아 집안 내적으로나 마콘도 자체로나 파멸을 향해 굴러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나나 농장에선 수많은 노동자를 고용했다가 낮은 임금과 대우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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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변호사를 고용해 노동자들을 조롱하고, 종국에는 정부와 결탁해 폭동을 일으키는 이들을 싹 죽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교과서에도 싣지 않고 역사적으로 없애 버리는등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비꼬는 듯한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종국에는 홍수로 초토화된 마을에서 바나나 농장이 아예 철수해 버립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콘도를 떠나간 끝에 결국 부엔디아 집안도, 마콘도도 망해 버립니다. 부엔디아 집안은 호세 아르카디오와 우르술라가 마을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였습니다. 더하여, 아우렐리아노 대령이라는 유명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렀듯 집안에 개성이 독특한 인물이 많기 때문에 작중 마콘도에서는 꽤 유명하고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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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가 건강한 시절에는 손님맞이를 하고 집안을 꾸미는 등 분주한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집안의 마지막 자손인 아우렐리아노가 사는 시점에서는 부엔디아 집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뒤에서 움직이고 조종하는 사람으로, 통합과 실현의 조건들을 부여하는 사람으로, 멜끼아데스로서, 마치 엘리어트의 ‘황무지’에 등장하는 티레시아스처럼, 부엔디아 가문과 마콘도의 창조에서부터 종말까지를 위에서 훤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젊었다가 늙었다 자유자재로 변모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히브리서7장3절을 보면 멜키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느님 아들을 방불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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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제사장으로 있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전통적으로 예수의 예형으로 간주되어왔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왔던 빵과 포도주의 선물에 기인합니다. 멜키세덱이건 멜끼아데스건 둘 다 인간의 얼굴로 위장한 성령으로서 신의 도래를 알리는 주의 천사인 것입니다. 멜끼아데스는 마콘도를 방문하여, 부엔디아 집안의 모든 면모를 말끔히 제거한, 유리로 지은 집들이 가득 찬 위대하고 빛나는 도시를 예견합니다. 그는 어린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를 향해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이가 백 살이 될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 원고의 내용을 알아서는 안된다.” 이 말은 소설 끝 부분에 나오는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의 출현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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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멜끼아데스는 백년간이나 그의 신성한 계획을 실현해줄 가장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인물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5장11절에는 멜키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가 어려우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멜끼아데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결국 ‘백년 동안의 고독’의 이야기 전체는 이 멜끼아데스의 신비를 캐는 일입니다. 범위를 좁혀서 말하면 양피지의 비밀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수많은 인물들의 편력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맨 마지막 장에서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멜끼아데스의 원고를 해독할 때 소설도 끝납니다. 이런 점에서 멜끼아데스와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동일한 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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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마콘도의 백년간의 흥망성쇠의 역사가 기록된 멜끼아데스의 원고는 바로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의 창조부터 종말까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의 중심이 예수의 재림에 있다면 ‘백년 동안의 고독’의 그것은 사라진 멜끼아데스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대감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콘도가 유리로 지은 집들이 가득 찬 위대하고 빛나는 도시가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사실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현시(顯示)입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전개는 기상천외하고 환상적인 사실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언뜻 보기에는 환상적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환상 속에서의 현실성이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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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한 모든 것이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이성적 감각으로는 환상으로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이 작품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사촌 여동생 우르술라와의 근친상간적 결혼 생활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은 남미의 처녀림 속에 마콘도라는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려 합니다. 이 원시적인 마을은 물질 문명의 혜택을 잔뜩 누리는 번화한 도시로 발전하였다가 무지개처럼 하루아침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 환상적인 무대에서 고독을 운명으로 타고난 한 집안의 백년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역사 속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얼마만큼이 환상적인지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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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에서부터 완성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만큼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르케스가 환상과 현실을 격리시키고 있는 벽을 제거하는 데 무척 고심한 작품입니다. 마르케스는 조부모의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외할머니는 미신을 많이 믿고 신비적인 것을 아주 좋아하여 죽은 자나 죽음의 신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민화나 전설에 있어서는 극히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외할머니는 마르케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특히 외할머니는 환상적이고도 터무니없는 일들을 아주 자연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곧 마르케스는 환상과 경이로 가득 찬 옛날 이야기의 세계에 흠뻑 젖은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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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고민하던 마르케스는 바로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타이프를 두드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완성시켰습니다. 흔히 작가들은 미리 세워 놓은 계획에 의해서 작품을 쓰면서 그 속에 분석과 증언을 열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르케스는 자기대로의 분석과 증언으로서의 태도를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대신에 유년기부터 들어 온 전설이나 신화로 포화되어 있는 잠재의식의 인도를 받아 붓 가는 대로 매일 매일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 생활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어디까지가 실제 현실이고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환상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현실과 비현실 또는 사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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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새로운 하나의 문학적인 경향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데서 마르케스의 작가적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환상적 작품에 역사적인 현실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자기 특유의 제3의 현실을 창조합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바나나 농장의 참살극은 실제로는 13명이 죽은 걸3천 명으로 과장했습니다. 이러한 과장에 대해서 마르케스는 백년 후에는 3천 명이라는 환상적 숫자가 역사적 숫자로 믿어지고 13명이라는 역사적 숫자는 믿기 어려운 환상적 숫자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곧 사람들은 자기의 픽션(fiction)을 믿지 역사를 믿지 않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마르케스는 이렇게 해서 역사적 사실을 그 사실과 유사한 이미지들을 통해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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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창작 행위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제 3의 현실은 개념적 세계를 환상적 세계로 만듭니다. 이러한 세계가 신비하고도 마술적인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술은 독자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작품은 신비와 역사와 서사시의 교류입니다. 작품상에 나타나는 외국 회사가 중미에서 어떤 일들을 자행했는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년 동안의 고독’은 소위 증언 문학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숙명적인 교차를 복합적으로 시도했습니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의 이중성을 파헤쳐 비극성과 희극성을 알게 했습니다. 한편 중남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혈육들의 모습을 이 작품의 등장 인물에게서 다시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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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에 있는 마술적 구조는 현대소설 기법의 실험과 감각적 표현으로 흐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주 고전적인 형식입니다.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종횡무진 발휘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색입니다. 이 작품에는 환상적이고 현실적인 요소가 작가의 독특한 문체로 자연스럽게 꾸며져있습니다. 예를들면, 수수께끼처럼 집에서 죽어버린 ‘호세 아르카디오’의 피가 ‘우르술라’가 있는 곳까지 흐르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미녀 ‘레메디오스’가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이사벨 신부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메르키아데스’와 ‘푸르덴시오’를 비롯해서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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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돼지 꼬리가 달린 ‘아우렐리아노’가 태어나 개미떼에게 끌려감으로써 부엔디아 집안의 고독의 역사가 끝나게 되는 등,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에피소드들이 현실적인 요소들과 뒤섞여 있습니다. 작품 전편을 통해 '고독'이라는 주제 의식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분필로 지름 3미터의 원을 그려 놓고 그 한복판에 선뒤 어머니마저도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마란타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일생 동안 그리며 자신의 수의(壽衣)를 짜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령의 형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 그리고 메메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등 모두가 고독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고독은 애정의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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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결여된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가 백년을 흐른 다음 처음으로 애정에 의하여 갓난아기 아우렐리아노가 태어납니다. 불운하게도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나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는 마콘도의 운명과 더불어 메르키아데스의 예언대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백년동안의 고독‘에 마술적 장치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성을 실감 있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 작가입니다. 그의 문학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했습니다. 시분야에선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라틴 아메리카를 세계화 시켰습니다. 작가 의식 세계와 라틴 아메리카라는 실체의 사실성을 총 정리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소설로서 그 대륙을 체계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 결과 1982년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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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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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은 아르헨티나의 수다메리카 출판사에서 1967년에 처음 펴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이며, 이는 제3세계 문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선 ‘백년 동안의 고독’은 역사적 의미가 아주 강하게 부각되어 있는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콜롬비아의 과거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남미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선두적으로 구현한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인정받는 명작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콜롬비아의 역사는 곧 식민지 종주국들의 지배와 억압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역사나 크게 다름없었습니다. 콜롬비아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와 통치 아래에서 패배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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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엽부터 콜롬비아는 뉴그라나다라는 스페인 식미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세기 초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페인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독립 국가로 발돋움하였습니다. 마콘도를 처음 건설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본디 콜롬비아 내륙 지방에서 담배를 경작하던 부지런한 본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계 상인 가문의 우르슬라 이구아란을 만나 결혼함으로써 처음으로 외지인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 작품에는 우르슬라 말고도 ‘카탈로니아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사람이 한 명 등장합니다. 내란 중 마콘도에 들어온 그는 이 마을이 폐허가 되기 직전까지 서점을 경영하면서 이 마을에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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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더미 속에 묻혀 많은 양의 원고를 집필하던 그는 콜롬비아에 대한 스페인의 정신적 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비록 잠시나마 콜롬비아는 스페인 말고도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지배는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경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우르슬라 가족이 리로아차로 피신하여 온 것도 바로 드레이크경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백년 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가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콘도 마을은 목가적인 낙원과 같은 평화스러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부터 평화스럽기 그지없던 이 마을은 점차 폭력과 타락에 시달린 채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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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서구 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에 시작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콜롬비아에 진출한 미국의 바나나 회사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콘도에 바나나 농장을 건설한 미국 회사들은 원주민 노동자를 고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 등으로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은 마침내 극한적인 파업을 단행하였습니다. 미국 회사 편을 드는 정부는 파업에 맞서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행위를 폭로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고발 소설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과 쇠퇴는 단순히 외부의 힘 탓만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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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부엔디아 가문의 내부안에 이미 몰락과 쇠퇴의 씨앗이 뿌려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콘도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존경을 받으며 근면하게 일하던 ‘호세 아르카디아’는, 집시가 전하여 준 문명의 도구에 크게 고무된 나머지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족장으로서의 모든 일상적 의무와 책임을 포기한 채 오직 무익한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과학적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서른두 차례나 반정부 봉기에 참여하여 그때마다 패배하는 그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적 혁명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릿광대'나 '단순한 모험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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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추상적 이념을 위해 많은 생명을 쉽게 희생시키는 비인간적인 인물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저자는 “그는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는 이념들을 가지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폭력뿐’이라 가르치며 자유파의 승리를 위하여 정부군라고 합니다. 20년에 걸치 내란이 끝난 다음 그는 사회와의 모든 교통을 차단한 채 골방에 들어앉아 황금 붕어 장식을 만들며 이른바 '삶 속의 죽음'을 영위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형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를 비롯하여 부엔디아 가문의 다른 후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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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좋은 나날' 또는 '좋은 시대'라는 뜻을 지니는 '부엔디아'라는 스페인 이름은 이 작품에서 반어적으로 사용됩니다. 무엇보다도 근친 상간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타락은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재촉하는 견인차 구실을 합니다. 그들은 근친 상간을 수없이 되풀이 합니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 동종 교배가 열등한 자손을 낳듯이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 또한 근친 상간이라는 동종 교배를 통하여 점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자손을 낳습니다.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으르러, 이모와 조카 사이인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관계를 맺어 마침내 돼지 꼬리가 달린 자손을 낳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기형아를 낳음으로써,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은 선조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종말을 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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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자폐적인 순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을 제외한 나머지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에 고유한 이름다운 이름 없이 오직 선조의 이름 가운데에서 오직 일부만을 되풀이하여 물려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뒷받침됩니다. 집시들이 마콘도 마을에 가져온 '끓고 있는 얼음'처럼, 일종의 모순 어법에 해당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은 역사적 · 문학적으로 큰 혼란을 겪어 온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창안해 낸 독특한 문학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장치나 세계 인식을 통하여 그들 특유의 경험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여러 행태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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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작중 인물들 가운데에는 죽은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활약하는가 하면, 어떤 사내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다가 뱀이 되어 버립니다. 부엔디아 집안의 한 선조는 돼지 꼬리를 달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레베카라는 인물은 흙과 벽에서 긁은 석회를 먹고 삽니다. 한 작품 인물이 항해 도중 바다에서 바다용을 잡았는데, 그 뱃속에는 십자군 병정의 투구와 허리띠 그리고 무기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난로에 얹어 둔 우유가 끓지 않아 주전자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립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작중 인물들은 담요나 양탄자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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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년 3월 6일 ~ 2014년 4월 17일)의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를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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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책 100권 중 그 스물 여덟번째 책,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년 1월 5일 ~ 2016년 2월 19일)의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 1980)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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