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RE} 안녕하세요. 5.18관련에 문의 드리려고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05. 5. 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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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으신 분이 이처럼 518에 관심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517, 즉 전두환이 계획적으로 학살을 시작한 518 바로 직전 예비검속으로 잡혀가 상상을 초월한 고문과 곤욕을 치루고 감옥생활을 하여 그에 대한 보상으로 2003년 한국정부로 부터 518민주유공자로 인정 받은 이상원이라는 사람입니다. 1980년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 1988년 도망치듯 미국에 유학하여 환경공학박사를 했고 현제는 미연방공무원으로 샌프란시스코지역에 살고 있답니다.
518 항쟁이 있었던 기간 보안대 중상사 준위들이 빨갱이로 날조하기위한 고문과 가혹행위로 저는 오물을 흘리며 보안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518항쟁을 직접 목도할수 없어 드라마틱한 현장을 증언하기에는 한계가 있답니다. 하지만 질문하신 내용을 제 입장에서 설명은 해드릴수 있을 것 같군요.
518이 일어나기 직전 대학생등 민주화주동세력들은 이런 저런 경로로 전두환이가 광주학살을 준비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다들 안전하게 도망을 쳤지요.
 
윤상원 선생같으신 분은 바로 그학살이 일어날것을 알고도 518민중항쟁의 중심에 남으셨다는데 우리가 감히 범접할수 없는 그분의 정신세계가 잇엇던 것입니다.
 
그당시 도망치고 후일 자신들이 마치 항쟁의 주역인양 국회의원하고 민주화명망가로 설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저역시 분노를 금할수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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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시신들은 '쓰레기차'에 운반되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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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전두환의 졸개군인들에게 학살 당하신 분들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학살당하신 분들이 있는 가족들은 학살당한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연좌제로 인한 다른 가족의 앞길을 염려하여야만 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시신들은 가족들에 의해 몰래 야밤에 염을 하여 아무도 몰래 숨을 죽여가며 시신을 옮겨야 했습니다.
 
전두환의 반란군이 광주도청을 장악하고 난 뒤, 쓰레기차를 동원하여 항쟁시민들의 시신을 망월동 야산에 쓰레기 매립하듯 묻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전두환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용납할수 없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 2. 4컷의 연속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의 첫번째 컷은 어느 이동 수단에
>>> 실린 시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둘째 컷 부터는 그 이동수단이

>>> 무엇인지에 포커스가 맞춰있었다. '한 개에 200'이라고 씌여있는 팻말이 달린
>>> 노란색 손수레. 셋째 컷 역시 손수레의 옆모습에 초점이 맞춰있었다.
>>> 마지막 컷은 그 손수레에 담긴 시체들이 태극기에 싸여져 수레와 함께
>>> 시민들이 모여 있는 곳 중심부체 위치해있는 것을 멀리서 찍었다.
>>> 혹시 이 시신들이 광주운동이 항쟁으로 거듭나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 한 것이었나요?
>>>

 
솔직히 어느 사진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도 많은 분들이 무고하게 무참하게 돌아가셔서 419처럼 어느 한두 장의 사진이 항쟁으로 거듭난다든지 하는 상항이 아니었답니다. 살인괴수 전두환의 권력참탈에 항거한 그 시민정신이 항쟁일수 밖에 없었던거지요.
 
>>>
>>> 3. 군과 시민 간에 시신을 ! 다루는 데 있어 많은 차이를 보였나?
>>>

 
군은 시신을 폭도들의 시신으로 쓰레기취급을 했고 시민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억울함을 가질수 밖에는 없었지요. 이 질문을 하시는 분의 친인척이 그때 그 지역 사셔서 무고하게 돌아가셨다면 어떤 마음이 드시겠습니까? 그 차이겠지요. 전두환 반란군은 518학살이후 국난극복훈장을 자신의 졸개들에게 남발하였답니다
 
>>>
>>> 4. '오월 광주'사진집에서 정면 두부를 포커스로 한 시신 사진들이
>>> 유독 칼라인가? 찍을 때부터 의도적으로 칼라로 찍었는가? 아니면 찍은 후에
>>> 칼라로 현상한 것인가?
>>>

 
당시 사진촬영을 할수 있었던 분들은 특수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권력에 빌붙기 시작한 언론사의 기자들이었고 몇몇 정의감에 불타던 외국언론사 특파원들이었습니다. 또 항쟁기간 내내 전두환 반란군에 소속된 정보사 보안사 사진병 사진무관들이나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기록사진들은 바로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보도의 사명감에 불탔던 해외 언론사 특파원이 촬영하여 해외에서 발간된 언론매체에 실렸던 사진들입니다. 그분들이 칼라사진을 사용했습니다.
 
한국 언론사의 사진에는 위험을 무릅쓴 근접사진이 거의 없답니다.
 
정보사 보안사의 사진촬영 담당자들이 입을 열면 더 진실된 사진들의 소재를 알수 있겠지요  

>>>
>>> 질문이 염치없게도 너무 폭력적인 잔상인 시체위주로 흐른 것 같지만,
>>> 시각적으로 분석을 하려다보니, 이상하게도 잔인함에 대한 명증성을 추구한 

>>> 것처럼 보인 '시신' 사진들에 눈이 많이 가더군요.
>>>
>>> 여기 까페에 많은 자료가 있어 좀 더 많이 둘러보고
>>> 또 궁금한 거 생기면 연락드려도 되겠지요?
>>>
>>> 부탁드립니다

>>>
 
이카페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전두환의 졸개분들이 몇분 죽치고 모니터를 하고 있답니다. 그분들이 이 카페를 제공한 다음컴뮤니케이션에 항의하여 많은 사진자료들을 삭제하도록 만들기도 했답니다.
 
상당히 많은 사진자료들이 그 자혹한 영상 때문에 올려져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자료들은 각종 518 전시회 기념관에서 직접 보실수 있을 겁니다
 
해마다 5월이면 살아남은 우리 518유공자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많은 분들이 5월뿐 아니라 다른 계절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518의 살아남은 증인들에게 그 당시를 물어 보신다면 더 자세하고 이성적으로 답해 드릴수 있을 겁니다.
 
영국의 살인 독재자 크롬웰은 그가 죽어서 무덤에 묻혔서도 시민들이 죽은 시신을 파내어 처단을 내린 사실이 있습니다. 부관참수라 하지요. 하지만 전두환 노태우는 아직도 부와 권력을 누리며 한국의 중심부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럴수는 없는 법입니다
 
다시 한번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노란장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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