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⑩ 제주 성글라라수도원
<한국경제 2006/10/19/목/문화TVA33면>
목장안의 봉쇄수녀원
주일미사가 시작되자 어디선가 맑고 투명한 성가 소리가 들려온다.
시골 성당이라 미사 참석자 가운데는 할아버지,할머니가 많은데 누가 부르는 성가일까.
소리의 주인공은 성당의 제대 왼편에 숨어 있는 수녀석의 수녀들.제대를 중심으로 일반 신자들이 앉는 자리와 수녀석이 ㄱ자 형으로 배치돼 있어 서로 보이지 않도록 격리된 구조다.
제주시 금악리 이시돌 목장 안에 있는 제주 성글라라수도원.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봉쇄수녀원이지만 외부 성당은 일반 신자들에게 개방돼 있다.
수도원 성당인 동시에 제주교구 금악성당이기도 하다.
미사가 끝나자 몇몇 신자는 성당 왼편으로 돌아 들어가 수도원 현관에서 수녀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신자들 틈에 섞여 현관에서 어슬렁거리자 수녀 한 분이 낯선 방문객을 면회실로 안내한다.
면회실은 서울 가르멜수도원처럼 격자창으로 구분돼 있지 않고 그냥 트인 방이다.
미리 전화로 연락이 닿았던 터라 "점심 때가 됐으니 밥부터 드시고 얘기를 나누자"며 밥과 된장찌개,나물반찬과 김치 등의 소박하지만 정갈한 음식을 내왔다.
식사 후 마주 앉은 수도원장 이글라라 수녀(49)는 갈옷 수도복 차림이다.
갈옷 수도복은 덥고 습기가 많은 제주 지역의 기후 특성을 고려해 올해 처음 만들어 입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 성글라라수도회는 121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에 의해 창립됐습니다.
성녀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복음적 가난'의 이상을 본받아 귀족 가문의 안정된 생활과 부유함을 버리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지요.
저희도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주 성글라라수도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68년.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진출해 있던 글라라수도회가 그해 미국인 수녀 3명을 한국에 파견해 한국어 교육을 받게 한 뒤 4년 후 제주 이시돌 목장 연수원에서 수도회를 설립했다.
이시돌 목장은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가난한 제주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드넓은 황무지를 목초지로 개간해 1961년 개장한 곳.
"제주에서도 가장 황무지에 수녀원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다들 웃었다고 해요.
지금은 수도원 일대에 나무가 울창하지만 그때만 해도 돌과 잡초만 무성했으니까요.
그러나 창설 멤버로 오셨던 수녀님이 땅을 보는데 수도원 입구 쪽의 '삼뫼소 은총의 동산' 자리가 그렇게 마음에 들더랍니다.
미국 수녀님이 참 터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지요.
삼뫼소 은총의 동산은 현재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례 코스거든요."
성글라라수도원은 교회생활과 형제애,가난,관상을 복음적 생활양식으로 삼는다.
비록 봉쇄구역 안에 살지만 교회 전체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영적으로 봉사한다.
또한 말 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 달려 맨 몸으로 떠난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난과 겸손의 생활을 지향한다.
"외적 가난도 중요하지만 내적 가난이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한 집 아들로 말구유에서 나시고 십자가에서 내 것 없이 가신 데서 비움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지요.
나의 소유물은 물론 재능마저도 하느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니 함께 사는 가운데 나눠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이 글라라수녀는 "수도생활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나 나누고 돌려서 쓴다"면서 "수도원에선 기본적 필요는 충당하되 여유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사실 제주 글라라수도원은 땅이 넓은 편이지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 산다.
수도원으로 봉쇄된 구역이 2만평가량 되지만 22명의 수도자들이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활용한다.
700평가량의 알로에 농장과 자급을 위한 채소밭이 노동공간이다.
"20여년 전에는 자급자족 및 지역주민과의 연대감을 위해 소규모 목축업도 했으나 여건상 그만뒀어요.
그 대신 1991년부터 알로에 농사를 짓고 있지요.
노동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 기도와 함께 실천적인 면에서 요구되는 부분인데,가난한 이들의 수고를 함께 함으로써 복음적 가난과 단순함의 길을 걷는 것이지요."
그런 가난과 단순함의 생활이 몸에 밴 까닭일까.
글라라수도회의 수녀들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게 이룩하려고 매달리지는 않는다.
알로에 농사만 해도 매일 돌아봐 줘야 할 만큼 손이 많이 간다.
자급을 위한 야채 재배에다 정원 가꾸기 등 여러 일거리가 만만찮다.
하지만 시간의 리듬만 잘 잡으면 일에 쫓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하고 못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면 돼요.
주님은 그걸 기뻐하십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노동이 중요하긴 해도 기도를 못 하면서 노동할 수는 없거든요.
저희들은 고정수입 없이 생활하지만 굶어본 적은 없어요."
왜 봉쇄수도원에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원장 수녀는 "봉쇄구역 안에서 살지만 이 안에서 더 많은 세상과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봉쇄수도원이라고 해서 세상과 담 쌓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신문도 보고 담당 수녀가 인터넷도 본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이나 사고 등 현 시대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기도한다는 얘기다.
"믿음 안에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 아니라 아집이 됩니다.
사랑에서 일어나는 많은 기적이 사랑의 힘을 말해 주지요.
내 작은 사랑을 나누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수도원에서 나와 초입의 '삼뫼소 은총의 동산'에 들어서자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숲속을 적신다.
커다란 연못 둘레를 돌거나 언덕 위 '십자가의 길'을 따라 묵상하는 사람들과 뛰노는 아이들,그리고 맑은 자연.온전한 평화가 여기에 있다.
제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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