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 가게를 하기 시작하다
한 1년 남짓 노점을 하다가 가게 하나가 전세 25만원에 싸게 나왔다고 하여 들어 갔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성격이 괄괄해서 우리보다 먼저 살던 사람들은 3개월을 못 넘겼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거기서 30개월을 살았습니다.
가게는 시장통에서 벗어난 철도 건널목(땡땡이 골목) 바로 앞에 있어서 목이 좋지 않아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장사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거기서 장사를 하다가 곧 비가 오거나 저녁에만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평소에는 깡시장에 나가서 노점을 계속하였습니다.
가게 안쪽에 2평쯤 되는 방이 있고, 부엌은 주인집과 같이 썼는데, 방은 절반이 온돌이지만 나머지는 개울 위에 철골을 세우고 그 위에 판자를 걸쳐 지은 방이라서 개울에서 냄새도 많이 나지만 특히 겨울에는 춥기가 말도 못했습니다.
막내가 동갑내기인 주인집 손주와 한 번씩 싸우는데, 네 살 밖에 안되지만 세들어 사는 걸 아는지 몇 대 맞아주다가 참다 못해 한 대만 때리면 손주가 ‘으왕’하고 울면서 할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집을 비우라고 성화를 해서 막내를 언니에게 맡겼습니다. 언니는 처음에 막내가 엄마가 가고 나니 하도 울어대서 나무에다 묶어 놓았더니 그 다음부터 울지 않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매일 새벽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해오고 나서 아이들 밥먹이고 선희를 자전거에 태워 등교시켜주고 언니네로 가서 막내에게 군것질거리를 주고 왔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막내한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주인집 아들이 우리 가게 옆에서 의상실을 하다가 동양방송 연말 노래자랑에서 금상을 받아 가수를 하게 되면서 주인 할아버지가 의상실을 만화방으로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이 주인 눈치를 보면서 그 집 텔레비전을 한 번씩 가서 보는 것도 못마땅했는데 만화방이 생기니, 아이들이 마음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 눈치를 보고 공짜로 만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서는 얘들 망치겠다 싶어서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4. 덧버선으로 대박이 나다
우리 식구는 전세 25만원에 공장(중앙공업사)에 붙어 있는 직원 숙소로 이사를 갔는데, 낮에는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창고 같은 가게나마 그만 두고 다시 노점을 하게 되었지만 막내를 데려와 식구들이 합쳐 살게 되고, 주인 집과 떨어진 곳에 살게 되어 간섭도 안 받고 아이들도 활개칠 수 있게 되어 마음은 편했습니다. 집주인들은 시골에서건 소사에서건 왜들 그러는지 부엌에 와서 뭘 먹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시시콜콜이 간섭을 하여 참 귀찮았습니다.
어느 날 영등포에서 생선을 사오다가 구로동 입구에서 어떤 아줌마가 덧버선을 한 바구니 사서 버스를 타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급히 아줌마를 붙잡고 덧버선 두 컬레를 50원에 사고 “이거 어디서 사옵니까” 하고 물어보니, “나 차 와서 타야 하는데” 하면서 가버렸습니다. 부천에 와서 생선을 팔다가 해떨어지기 전에 덧버선 공장 위치라도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남은 생선을 큰 아들에게 팔라고 맡겨 놓고 구로동 입구에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내려 문래동까지 걸어가면서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덧버선 공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한참을 길에 서 있다보니 연탄 배달 다니는 집에서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탄집에 가서 물어보니 바로 덧버선 공장을 알려 주었습니다. 기리바시 덧버선은 옷쪼가리로 만드는지라 덧버선 공장도 문래동, 구로3동, 신도림동처럼 옷 공장 근처에 한 두 개 있지만 미싱 몇 대 있는 작은 공장을 찾아내기는 힘들었습니다.
덧버선을 어른 것 15원, 아이 것 10원에 사다가 ‘무조건 두 컬레 50원’하고 파니 장사가 정말 잘 되었습니다. 매일 짊어지기도 힘든 덧버선 자루를 몇 개씩 들고, 이고 나가도 밤이면 다 팔려서 돈이 수북히 든 자루를 머리에 이고 왔습니다. 평생에 그 때보다 돈을 많이 번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유시장 상인들은 “덧버선을 어디서 해 오냐”고 물어보고, 선물 공세도 폈지만 가르쳐 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심성이 착해서 누가 어려운 사정을 말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지라 남편에게까지 덧버선 공장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뒤를 밟는 상인들을 따돌리려고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변장도 하고 엉뚱한 곳으로 택시타고 도망가기도 하면서 옛날 야당운동하면서 경찰을 따돌리던 솜씨로 사람들을 피했습니다. 하도 덧버선을 많이 사가니까 공장에서 택시로 물건을 실어다 주기도 하고, 땡처리하는 것은 어른 것 10원, 아이 것 5원에도 주었습니다. 매일 밤 돈 세는 재미에 빠져 커다란 가게 주인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큰 얘가 부천중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 반 친구들이 하교 길에 노점에 찾아와서 담임 선생님이 학교에 쌀자루하고 도장을 가져오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쌀을 주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갈 판에 부르는데 안 갈 수 없어서 자루도 도장도 없이 빈 손으로 찾아갔습니다. 담임인 여선생님이 불우이웃돕기로 모았다면서 쌀과 보리를 섞어 놓은 것을 가져가라고 해서 “노점을 해도 먹고 살만하니까 더 어려운 학생 주세요”하니,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엄마에 그 아들이네요. 어제 동섭이한테 가져가라고 하니 ‘저는 수업료를 잘 내 잖아요. 다른 어려운 친구 주세요’ 하대요. 그래서, 친구들 시킨건데. 아무튼 이건 동섭이 몫으로 나온 것이니 가져 가세요” 하고 권했습니다. 제가 ‘아들도 나하고 생각이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뿌리치고 학교를 나오는데, 선생님이 기어코 학교 소사를 시켜서 정문까지 자루를 가져와서 미안한 마음에 받아 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큰 얘한테 학교에 도장 가져가라고 했다가 어미인 제가 혼났습니다.
남편은 원래 말수가 없고, 저도 큰 얘나 둘째는 열 살 때부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왜 공부를 안하냐’ 하는 간섭을 않고 어른처럼 키웠습니다. 얘들이 중학생이 되면 일주일에 얼마씩 용돈을 주고 그걸로 학용품을 사건 만화를 보건 일체 간섭을 안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할 말은 하고, 금전 관리도 잘하는 편입니다.
5. 경인약국 앞에서 마지막 노점 생활
덧버선으로 재미를 보다가 6개월 정도 지나니 덧버선을 파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여 1년 지나서는 집집마다 덧버선을 팔았습니다. 다른 걸 해야 되겠다 싶어서 경인약국 앞에 노점 자리를 얻어 업종을 바꾸어 메리야쓰, 양말 등을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점도 급수가 있습니다. 정해진 자리도 없이 아무데서나 하다가 가게 주인, 시장 경비, 시청 직원에게 쫒겨다니는 사람도 있고, 시장통 한가운데나 거리에서 일찍 자리잡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게 주인에게 돈을 주고 안정적으로 장사하는 노점이 제일입니다. 가게 주인들은 앞에 노점이 있으면 몇 푼 자릿세를 받을 수 있지만 장사에 방해가 되서 더 손해라고 생각하여 노점을 잘 안 줍니다.
경인약국 주인은 사람이 좋아 약국 앞에 노점을 세 개나 주었는데, 그 중 가운데에 있는 우리 노점 자리의 뒤쪽에 우체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편지를 넣으려고 하면 좌판 때문에 불편할 것 같아 도와주었습니다. 1976년 겨울에 부천우체국장이 좌판이 우체통을 가리우니 노점을 중단하라고 통보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다른 장사꾼들이 우체국에 투서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한 20여일은 낮에는 딴 데 가서 장사하고 밤에 덧버선을 담은 바구니만 들고 가서 몰래 팔았습니다.
그 때 마침, 중3인 큰 아들이 인천 고입 연합고사에서 공동 수석을 하였습니다. 기자가 큰 아들에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내무부장관이 되고 싶습니다.”하여, 기자가 “왜 하필 내무장관이냐”고 묻자, “부모님이 노점을 하는데, 우체통에 편지 넣기가 불편하다고 못하게 했습니다. 없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정일섭 교장선생님이 바로 부천우체국장에게 전화하고 기자도 우체국에 찾아가서 부탁하여 경인약국 앞에서 계속 노점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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