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49]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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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57&n=49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49] - 김여화

 

 


 

제목  [49회] 운암강 가는 길-4
등록일  2001-12-02
운암강 가는 길-4

"예 아지매 지들 걱정 마시고요. 먼자 드세요. 우리가 반찬도 장만히야헌디 시상의 명자야 큰아지매가 전부 괴기랑 사 외깃다."
"냉장고에 고기랑 있는디요 이"
"알어야. 그리도 금방 사 가지고 오신 것이 좋아서 그걸로다 힛어"
"그건 잘힛어어어. 기냥 모지굴로 갈라다가 왔더니 번거롭다 이 그쟈?"
"아이고 큰 아지매 그러싯으먼 난중의 내가 가만 안 있지요?"
"그럴랑가?"
거둔댁이 말하고 웃자 진필은
"그러고도 남지. 맹자는 애리서 부텀 솔찮히 암팡졌응게"
"그럼요오? 맨날 기수오빠가 기냥 간다고 고시랑거릿는디"
박서방네는 막내딸 명자를 가리키며 거든다.
"그리도 우리 엄니가 물고기 하나는 잘 끓이네요? 나보다 더 맛있게 허거든 요?"
"아이고 지랄 너어매 솜씨가 매워야"
거둔댁이 명자에게 이르자
"아이고 솜씨는요. 큰 아지매 앞으서 솜씨 자랑허먼 큰 일나게요?"
밥상 앞에서 한바탕 웃는다.
"참 잘 먹었습니다. 어릴 때 잿말에서 먹던 그 맛이에요. 왜 테레비젼에 나오 죠? 음 바로 이 맛이야 하는거 "
기수는 그 말을 하고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다. 옛날 잿말에서 먹던 맛 학교에서 돌아와 출출한 김에 불무터기 매운탕에 정신없이 고봉으로 담긴 밥 한사발을 비워내던 그때는 박서방네가
"아이고 도령 찬찬히 먹어야혀 체허겄어라우"
숭늉을 가져다 주면서 그렇듯 걱정 되는 얼굴로 말했었다.
기수는 이제 뜯어보니 박서방네도 많이 늙어있다. 몇 세월인가. 어린 기수의 뜻을 다 받아주던 그네는 머리가 희어 모시 바구리를 쓰고 있는 듯 하다. 얼굴은 깊게 주름이 패이고 손등은 마른 장작개비 같다.
다른사람은 모두 시커먼 보리밥을 먹어도 언제나 기수의 밥그릇은 흰 쌀밥이었던 어릴적에 솥에 보리쌀을 넣고 한 번 끓인후에 쌀을 가운데 소복이 부어 가운데서 흰 쌀밥을 떠낸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의 정성에 감격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기수는 그래야 하는걸로 알었더니 그렇게 어머니가 정성을 들인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때 늘 기수에게 마른 누른밥을 긁어주던 박서방네 두 어머니이듯 기실 박서방네도 기수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던 분이라. 어머니 거둔댁한테는 못하는 억지 떼를 쓰는 것도 그네에게는 할 수 있었던 것을... ...
진필과 기수 거둔댁은 점심을 먹고도 오래도록 앉아 지난 이야기에 정신을 팔고 명자는 아예 기수와 함게 모지굴로 가기로 하여 따라 나선다.
"아이고 너는 일 안허고 모지굴 꺼정 갈래?"
거둔댁이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모처럼 오빠랑 왔는디 따러가서 놀다 올라는디요. 여보 갠찮지? 해 전에 오께 엄마?"
명자의 남편도 그러라는 듯 말리지 못하고 그들은 함께 기수의 차에 오른다.
"글먼 이따가 전화히여. 내가 저녁때 댈로 갈텅게"
명자의 남편은 사람좋게 너른 가슴을 내밀고 웃는다. 차는 두언동으로 가는 새로 놓인 큰 다리를 넘어 아직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린다. 오른쪽은 산이요. 왼쪽은 우리가 흔히 유휴지라 부르는 들판이라.
이곳은 물이 닿지 않으면 다행이 농사를 지어 먹고 여름에 물이 두언교 까지 올라오면 강 수면이 되는 곳으로 오늘은 이곳에 잡초가 무성한 것이 그동안 이곳은 큰 물이 닿지 않았다는 증거라. 보리가 패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더러는 논에 모를 심기 위해 트렉터로 경운을 하는 중이다.
"아이고 저 보리조께바. 옛날이는 보리서리 많이 힛는디 이"
"요새는 누가 보리서리 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 들이 있어야 허지요. 다 지각각 나가 있응게요."
명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글도 너그 아버지가 그만허니라고 참 다행이다. 이?"
"예에 내가 펜헐라고요. 참 지난번에 신문 안 보셨지요? 수몰민헌티 경작권을 양여헌다는"
"으으 그래 나도 본 것 같기는 허다."
진필과 기수가 동시에 대답하고 명자는
"그게 36년간 고질 민원이었잖아요. 그래서 나라에서 전라북도로 무상 양여를 한다고 그런 것 같애요."
"진작 그랬어야 혀 진작"
"인제라도 된다니까요. 얼매나 좋아요."
명자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기수는
"그럼 동생네도 해당 되는 것이 있어"
"예에 있지요. 시집쪽으로요. 근디 저는 댐 준공이 될 때 어려서 잘모르겠어요. 그냥 물속에서 이사짐 날르던 생각만 나요 "
"그려? 참 다행이다. 이? 기수나 너그덜은 잘 몰르지. 그때는 어른들이나 댕김서 힛응게 "
거둔댁도 거든다.
"그 유휴지 문제는 말여 말허자먼 댐에 필요헌 땅보다 더 많이 사들였기 때문에 생긴거여. 본래는 1천1백만평이 넘는 땅을 갖다 사 놨는디 실제는 8백만평만 사용힛응게 나머지 3백만평이 넘는땅이 놀리게 된것이지. 그리서 나중에 2백8십2만평은 도에 양여를 혔는디 나머지 1백12만평은 그대로 놔둔거여. 긍게 우리는 그것도 농사를 짓게 히 주라 허고 민원을 올린거다 이말이여"
"예에 그랬었군요. 실제 댐은 65년 12월로 알고 있는데요?"
기수의 말에 진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려 정확허게 12월 20일에 그날이 아메 월요일 이었어. 그때 신문에 사진이랑 났으닝게. 그리갖고 유휴지를 1차 양여 헌 것이 85년일 것여. 지금 현재 댐 주변에 사는 정착민들이 정읍허고 임실 합쳐서 1714세대 해서 약 6천여명이 된다더라. 머 앞으로 단계적으로다 불하를 히준다 그말인디 필지마다 세목 조사를 혀서 연고자헌티 매각헌다고 힛는디 봐야 알지. 근디 안적도 홍수선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땜시 문제가 되는거여"
"그럼 아직도 수몰선내에 사람들이 살아요?"
기수가 놀라 반문하자
"아, 모지굴 만수네도 그런경우지 거그도 물 차먼 마당꺼정 찬단다"
"그럼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요?"
"긍게 답답허지 그리서 거그는 집을 높이 올라가 짓기는 힛지만 말여 이따가 보먼 알지만 참 우습게 산다. 어디로 오도가도 못헝게 그러능겨 게나마 다시 들어 온지가 얼매나 되간디? "
"대처 늙어 갖고 어디로 가겄어그 집을 조립으로다 지었는디 인자는 그게 불법 건축물이라는 거야 말허자먼 철거 대상이라는 거지 "
"그려 그때 물찰 때는 기냥 아무디나 국유지 머 가릴 것 있었가니? 펀펀헌디다짓고 보는거지 시방은 못짓게 허고 먼 보호구역 지정을 헌다냐 어쩐다냐 근다더라"
거둔댁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라.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아마 지정을 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신문에 보도 되기를 운암과 산내면 일부 섬진댐 홍수선 11만평이 건설 교통부로부터 전라북도에 양여가 됨으로써 수몰민들의 숙원이 30년만에 해결되게 됐다고 하고 군은 이에따라 도와 협의 원 소유주들에게 환원해 주기 위한 세부 시행계획을 세운 뒤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등을 확인 권리 보존 조치는 물론 실태조사를 통해서 분할측량 및 지목변환등으로 연고자에게 유상 분양할 예정이라 하였다.
매각 대금 결정은 관련 법령에 의해 결정하며 전북도와 군당국에서는 홍수선내의 거주세대 130여호를 홍수선 밖으로 이주시킬 계획이며 운암소재지는 침수 방지를 위한 배수 펌푸장과 유수지를 설치한다고 되어있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양여 토지 매각 대금으로 충당하고 부족한 재원은 도비로 보충하여 수몰민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여줄 계획이라 하였다.
"그럼 전기나 전화는 어떻게 쓴대요?"
"아, 모지굴에 다섯집만 살어도 군에서 전기를 놔준다고 헌단디 말그대로 모 지굴 아니냐 거그를 누가 와서 살라고 허겄어. 센바우터 아는 사람네 집이서 끌어다 쓰는디 그리도 전기제품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전화는 모지굴 넘어서 끌어옹게 그집 전화는 전주로 되야 있단다. "
진필은 그말을 하고 소리내어 웃는다.
"애들은 학교를 어떻게 다녀요."
"어 오빠 그건 학교 행정선이 따로 있어서 태우러 가고 태워다 주고 그래요."
기수는 한숨을 쉰다. 자신이 너무나 돈담무심 고향 잿말을 외면해왔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수치심으로 밀려온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도 떠오른다.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무궁무진 묻혀있는 것을 어느해 한발이 심하던 여름 박물관팀이 조사를 했었다는 보도였다. 운암강 물밑에는 너무나 많은 유적과 잿말사람들의 한이 수장되었다는 생각에 너무 부끄러웠다.
마치 그 모든 잘못이 기수 자신에게 있다는 무거운 책임과 자신이 이제라도 그걸 발굴하는데 죽을힘을 바쳐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차를 두언동 전주최씨 세거지라는 커다란 비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운다.
"왜 여그 들렀다 갈래?"
진필이 차에서 내리면서 하는 말이라.
"예"
그는 저만끔 사양리 앞에 떠 있는 배를 바라본다. 바로 턱밑에는 낚시객들이 색색의 비치파라솔을 세워놓고 낚싯대를 내리고 있다.
예전같으면 지금의 이곳은 소롯길이었다. 잿말 살적에 여기 선산에 성묘를 올 때면 령재를 넘어 어리동 앞으로 돌아 한참이나 내려와야 했다. 그 길이 지금은 넓은 2차선 도로로 다지기 공사를 했던 것은 곧 포장이 된다는 말이다. 이제는 모지굴도 갈공절도 자동차로 그냥 지나갈 수가 있는 것이라.
저만끔 어리동 앞 골짜기 다랑이 논에서는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는 모양이다. 그 주변 조금의 공간만 있으면 낚시객들이 타고온 자동차로 길을 메우고 있다.
"오빠 갠찮아? 우울해 보여서"
종산 작은 언덕 뒤로가 앉아 담배를 꺼내고 있으려니 명자가 다가와 앉는다.
"난 참 나쁜놈이다. 그지?"
"왜 오빠가 부모님헌티는 잘 허셨잖여?"
"내가 지금껏 고향을 내방쳐 두었다는 생각에 참 부끄럽다."
"왜 그런 생각을 해 나름대로 사느라고 그런거지 머 그리고 오빠가 나선다해도 그렇게 쉽게 해결이 되거나 형편이 좋아지란 보장은 없잖여 겨우 부장 정도의 말에 움직일 사람이 어딨어?"
"내가 오빠를 너무 무시했능가?"
"아니? 동생말이 맞어 내 주제에 무슨? 근데 아버지 뵐 면목이 없는거 있지"
"우리세대는 그때 너무 어렸어 지금 세상은 너무 바뀌었고 오빠 너무 자책하지마 어? 오빠 어떤사람의 시가 생각나네 나도 시인이 되고 싶었는디 이러고 사네. 그 사람도 수몰민이었대.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있어. 들어바 이?

물 밑 고샅에서
나는 꾀벗쟁이 였어라.
풋사랑 벙글적에
물머리 휘돌아 삼키고
내 기르던 파랑새
고향 숲을 떠나
이젠
고샅을 잃어
돌아가지 못하더라.
난 이 시를 생각하면 꼭 오빠 생각이 나대?"
기수는 담배연기를 한모금 길게 마시고 내 뿜으며 먼 강수면에 눈을 박는다. "그래 그 고샅에 갈 수가 없지. 풋사랑?"
기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한 번 되 묻는다.
"그게 풋사랑일까? 으으 그렇구나. 인선이가 지금 어디있다고 했지?"
"글쎄 강원도라는 것 같은디 참 인선이 언니네 엄마가 풍 맞어서 그 언니가 데려 갔다능 것 같혀 애초에는 여그 나가서 군산인가에 살었는디 원래 인선이 언니한테 남동생이 하나 있었잖여 근디 뺑소니 차에 치여서 죽었다지? 오빠 그게 누군지 알어?"
"아니 몰라 인선이 동생이 둘 있었지 않었냐?"
"글쎄 그게 막내 말이야. 바로 밑에 동생은 나가서 한번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었대. 막내가 엄마랑 같이 있었던 모양여 그 막내가 그사람 애라고 어른들이 그러드라구 우린 몰랐잖여?"
"뭐? 장가는 갔었구? 아니 그럼 그걸 인선이 알었구?"
"몰라 인선언니가 알고 있는지 어쩐지는, 혼인날 받어놓고 그랬다던가? 아무튼 그 어머니 혼자서 벌어먹고 살다가 오갈데가 없었던가봐 말은 군산 경찰서에서 누가 왔더랑가?"
"연고자를 찾으러 왔던 모양이구나"
"그렁게벼 동네 사람덜이 딸 하나가 수녀원으로 갔다고 갔디야 아메 수녀원을 죄다 알어봤다는 것 맹이여"
"그래 그랬구나 불쌍하게 다른 일가들이 없었을까?"
"누가 있어요? 애초에 잿말 사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사를 왔다면서? 아무도 그집 내력을 잘 모르지 거기다가 여기 살면서도 그 언니네 아버지 죽고 사람취급이나 힛간이? 혹 오빠네 어머니께서는 아실지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가?"
"어-어, 머 말은 큰아지매가 수녀원 가기 전 까지 뒤를 봐 주었다는 말은 있었지만 내가 아지매보고 한번도 물어보던 안힛어. 울오매가 그런식으로다 말했던 기억이 나 그것도 내 어릴적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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