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46]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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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52&n=46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46] - 김여화

 


제목  [46회] 운암강 가는 길
등록일  2001-12-02
운암강 가는 길


"아버지 운암으다 전화는 허ㅅ싯지요?"
"아먼 진작 히 놨었는디 아적으 또 허싯지 이따 갈랑게 준비허라고"
"뭘 준비를 해요. 있는 그대로 먹으먼 되는데요."
"아이고 너그 아버지는 기냥 엊저녁으 부터 잠을 안주무시더라. "
"왜요?"
"좋아서 그러시지 왜그려 ? 아, 그리서 부자간에 댕기 오시랑게 부득불 같이 가자고 안 저러시냐 ?"
"혼자 여기서 뭘하시게요. 같이 가셔서 놀다 오시지요."
개방된 입식부엌으로 거실과 함께한 아파트에서 진필과 거둔댁은 아침일찍 서울에서 출발했던 기수를 맞아 나누는 대화이다. 거둔댁은 굽은 허리를 펴면서 마른수건에 손을 닥으며 앉는다. 가스렌지에는 주전자가 올려져 있다.
"참 머 차 끓여주랴?"
"아뇨 오면서 커피랑 마셨는데요."
그러다가 기수는
"어머니 늘 드신다는 그거 주세요." 한다.
"이 둥글레차 그려"
진필은 건너방에서 낚시도구가 들어있는 묵직한 가방을 꺼내오고 가지고 갈 짐들을 챙겨 거실에 내 놓는다.
여름이다. 언젠가 잿말이 물 찰 때와 같은 아직은 때로 보아 좀 이르기는 하지만 모를 내는 들녁 길가에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이 기린봉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전주시내의 풍경은 아름답다는 한마디뿐이라. 성심여고 자리에 리베라 호텔이 들어서고 몇그루 남은 희말라야시다의 진한 초록과 전주 공전 옛 영생학
교 근처에 집마다 붉은 줄장미가 흐드러졌고 완산칠봉에 녹음도 막 무르익기 시작한다.
엘니뇨 현상이라던가 따로 봄이 없는 요즘의 시절은 겨울 옷을 벗으면서 바로 여름인양 반소매 옷을 챙겨 입는 그 옛날 잿말에서와는 다른 계절의 양상이다. 옛 잿말의 지금쯤은 마당벌 구름들에 보리가 누렁 방울이 들기 시작하고 농우소 풀 잡혀서 한창 바쁜 철이라.
"아버지 불재로 넘어갈까요?"
둥글레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던 기수가 불쑥 꺼낸 말이다.
"어디면 어떠냐? 가다가 맹자네 집이랑 들릴라먼 불고개로 가고 글안허먼 마근 댕이로 가먼 되지"
"하이고 마근댕이도 얼매나 달라졌는지 알어? 대교 생기고 거그는 겁나게 발달 되얏어야. 저그 박흔이도 글고"
"어머니도 가 보셨어요?"
"느 아버지 혼자 가먼 심심허다고 히서, 야 글고 너그 아버지는 나 위혀서 가자고 가는게 아니라 밥 끼릴라고 �고 가는 거다?"
"같은 말이먼 같이 놀로 간다고 허지"
"내가 가서 펜헌밥 먹었가니요? 맨날 심부름만 시키싯지"
"오늘은 가시면 제가 밥이랑 전부 할께요. 저 밥 잘해요."
모처럼 진필과 거둔댁 기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참 누님들이랑 연락 허셨어요? 매형이나"
"아이고 냅둬라 너그 매형은 시청으서 요새 솔찮이 바쁜 모양이더라. 너그 누 덜도 전화헝게 머 회다냐 머다냐 핑계대는아 어쩡가 진짜로 그렁가 하도덜 바�게로"
"그려 가덜은 불를 것 없다. 가덜이 언지 우리 식구였가니?"
"아이고 참 너그 아버지는 안적도 저러신다. 너그 매양보고는 머란종 아냐? 아들 소용없다고 사우가 질이라고 안 허시냐?"
"그리야 가 덜이 좋다고 허지 사우헌티 아들자랑만 허먼 좋다고 허겄능가"
"맞어요 아버지, 사실은 매형들이 저보다 아버지한테 잘 하시잖아요."
"야야, 그리도 우리 두 늙은이 죽으먼 너그 매양이 쥔이 아니라 니가 쥔이여. 맷동도 니가 깍어야 히여"
"거 쓸데없는 야그 난중으 허고 어여 가자 짐 내려! 차는 앞에 있쟝"
진필이 기수가 운전을 하는 옆에 타고 거둔댁은 뒷자리에 앉았다.이게 얼마만
인가 아들과 함께 운암을 가는 것이 어쩌다 추석명절에 내려와 함께 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바쁜 관계로 서둘러 성묘만 드리고 게다가 기수는 외조부외조모의 산소를 거의 갈수 가 없었다. 갈공절 높은 곳이라 시간이 바쁘니 산에 올라갈 겨를이 없이 조부님 산소만 성묘를 하고 그냥 올라가곤 했던 때문이라.
"가다가 저그아래 큰 수퍼 있는디서 잠간 쉬었다 가자?"
"왜 또 멀라고?"
진필은 역정을 내듯 하니 거둔댁은 못들은척 차를 세우게 한다.
"아, 맹자네 머시라도 조께 사가지고 가야지라우 기냥 갈라요?"
"예, 어머니 그래야죠. 그리고 모지굴도요."
"가바라 참 많이 변힛다야. 그때 딱지 안 팔어먹은 사람은 지금 그냥저냥 살만 허고 모다덜 죽도 못끓있어 우리도 그릿는디 머 "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우리라고 벨수 있냐? 논이 다 들어가 버릿응게 농사 진 것은 한 해 두 해지계 화도 논을 언지 받었가니? 그때 꺼정 지우 밭 일궈서 두태 조께씩 심어갖고 쌀 팔어 먹었잖여?"
"아버지 저는 첨 알었어요. 우리가 양식 없어서 그랫다능것은요"
"너그 오매가 워낙 말이 없응게 너 보고는 한 번도 말 안힛을거다. 너헌티 쌀 보낼 때 마다 그거 장에가서 팔어다가 갖다 주었어"
"저는 물 찬뒤에는 설에 갔으니까요."
"그려 너는 명절때만 지우 왔다가 지양만 모시먼 바로 갔응게"
"아버지 저한테 많이 섭섭허셨지요?"
"그려 많이 섭섭힛지 글도 인자 이렇게 안 왔냐?"
거둔댁이 비닐에 넣은 것을 들고 오는 바람에 기수는 문을 열고 받아 싣는다.
"멋을 그렇게 많이 사 간단허게 허지"
"글도 모처럼 우리 아덜이랑 함께 간디 보암직 히야지라우. 글고 우리 아덜도 멕이야 허고 별걸 다 가지고 역정이시우 "
"잘허셨어요.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나 그러셨지요. 자 타세요."
진필과 거둔댁을 실은 자동차는 소리없이 시내를 벗어나 평화동 형무소를 넘는다. 평화동은 이제 들판이 아니다. 흙석골서 부터 도로가 넓혀져서 산아래 빼곡이 들어찬 아파트 밀림이 형성 되어있다. 길가에 더러 미나리꽝 이던 논들은 흙을 채우고 건물을 신축 중이거나 들어 앉았다.
운암을 가는길은 이제 예전처럼 불고개만 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관촌을 거쳐
신평으로 율치를 넘거나 북창리서 귀바우골로 바로 넘어가도 되었고 마근댕이에서 순환도로를 끼고 돌아 갈 수도 있다.
만일에 관촌에서 임실을 거쳐 갈담을 거쳐 운암대교에 가는 길이나 신평으로 운암으로 순환도로로 대교까지 간다면 시간은 똑같이 소요 되니 아마도 비슷한 거리라. 하나 기수는 먼저 불고개를 넘어 운암으로 가기로 한다. 그가 작은 불재를 넘어 전주로 나 다니던 그길은 이제는 사람이 넘어가지 아니하고 그대신 소금밭재를 포장하여 구이에서 곧장 넘어가고 큰 불재를 넘는다고 보면 구이 저수지 못미처에서 좌측으로 꺽어 들어야 한다.
큰 불재는 30여년 전에는 신덕의 새터라는 곳에 어떤이가 한씨 성을 가진이가 밤나무 단지를 만들면서 길을 넓히는 작업을 했던 기억도 난다. 보통은 버스로 들어가고 나갔지만 버스를 놓쳤거나 했을때는 곧잘 재를 넘어 가던 길이라.
또는 임실까지 버스로 가서 현곡리 거멍굴 앞으로 학산이 앞으로 돌아 월맹이로 넘거나 선거리로 넘어 간좌터로 가는 길도 있었다. 기수는 돌아보니 꽤나 오랜날 잿말을 잊고 살아왔다. 어린시절의 객기라고 볼수 도 있지만 그때는 절망 그것이었다.
"인선이.... "
야윈얼굴에 수심 가득했던 그녀의 절망, 허나 그녀는 담담 하다고 말했었다. 기수는 전주에만 내려오면 성심여고 앞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 소망은 마음에만 간직 되었을뿐 바로 아버지가 계시는 아파트에서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되련만 그리움만 물머리 회호리 치듯 그러다가 쫓기듯 다시 서울로 올라가곤 했었다.
잿말 구성물앞 어쩌면 인선이 흰 수건을 쓴채 핏기없는 모습으로 강수면에 떠오를까 겁나던 운암강 잿말은 운암강의 중심부라. 국사봉 책이살이를 허리를 뚝 끊어버린 순환도로 그곳에서 보면 외안날이 다도해 이듯 드문드문 배가 오가는 마당벌을 바라볼 수 있건만 성묘하러 왔을 때마다 비암 바위 지나듯 쫓겨 돌아오곤 했었다. 기수의 처가
"당신 참 이상해요? 서울서는 잿말이 어떻고 머 국사봉이 어떻고 하더니만 막 상 오면 서둘러 가자고 성화를 대는 것이 이해 할 수가 없어요. 그지 애들아?"
기수는 그 자신도 모르는 무엇이 그를 그렇듯 잿말에서 밀어내는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범 국사봉에 한 번도 못 올라 가봤쟈?"
"예? 예에 맨날 바쁘다고 그냥 갔었죠."
"아이고 참말로 인자 한 번 올라가봐라. 질로 꼭대기에 가서 내리다 보먼 아래
가 얼내나 존지"
거둔댁의 말에
"어머니도 거기 올라가 보셨어요?"
"하먼 여러번 갔었지 너 아버지 따러 댕기니라고 내가 얼매나 고상 헌종아냐?"
"고상이여 그게? 나 땜시 건강헌종이나 알고 고맙다고 히야지 이이이.. 여자덜은 여직 �고 댕김서나 구경시켜중게 "
"그건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어머니도 산에랑 다니시니까 건강허시잖아요?"
"맞당개 내가 그말이다."
진필은 기수의 말이 썩 맘에 들었던지 얼른 받아 대답한다.
"거그 올라가먼 오봉산 봉우리가 발건너 같이 뵈이기는 헌디 겁나게 멀다고 허 더라. 그 아래 대교도 다 뵈고 나 올라 갔을 때는 잘 안 뵈덩만"
기수는 구이면 장명교를 건넌다. 덕천리 원덕천을 지나 노루목재를 돌면 원광 곡 입구에서 부터 불재가 시작된다. 포장이 되고 지금은 버스도 다닌다는 불재다. 불재는 경각산 뒷편 북측을 말함이라.
경각산의 남쪽은 신덕의 조월리인데 불재 정상에서 바라보면 바로 눈아래 구이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한마장쯤 달려 내려오면 새터라는 신덕면에 이르는 것이라. 새터는 경각산과 치마산의 홈태기이듯 물염 마을과 숲안 마을 앞을 지나고 사기소를 지나 상사암을 두고 돌아 운암에 이르는 것이라.
예전에는 이 먼길을 걸어서 다녔건만 지금은 버스도 힘이드 다 하는 곳이다. 구이 저수지를 두고 저수지 아랫쪽에서 올라가면 큰 불재요. 저수지 상류에서 넘어가면 작은 불재이지만 잿말사람들은 주로 작은 불재를 많이 이용한거라. 그러나 지금은 작은 불재는 사람이 다니지 않고 그대신 소금밭재를 넘는길이 708번의 지방도로가 포장이 된 것이라.
운암을 들어가는 길목 노적봉과 상사봉 사이에 오늘은 모텔이 들어서 있다. 주유소가 길목에서 이정표를 대신하는데 예전의 흥왕하던 그 시절의 운암이 아닌 쇠락하고 빈한한 촌락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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