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47]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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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54&n=47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47] - 김여화

 


 

 

제목  [47회] 운암강 가는 길-2
등록일  2001-12-02
운암강 가는 길-2


우체국과 면사무소 파출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면을 형성하고 있지만 480둑 사이 들을 제외한 운암의 시가지는 길가로만 몇 몇 집들이 옛 영화를 말해주듯 초라한 몰골로 서 있을 뿐이라. 기수의 집이 있던곳은 지금의 중학교 근처라. 기수는 차를 빙돌아 삼길교 앞에서 좌회전하여 480둑 우회도로를 돌아간다.
이 둑에서 바라보는 운암은 옛날 잿말동네 하나만도 못한 고향 운암 그러함에
도 이곳에 오면 왠지모를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던 기수다.
"왜 저집 안 들리고 기냥 갈라간디?"
"아니요 가야죠 한바퀴 돌아보니까 더 좋잖아요.?"
"집에 사람덜이 있을까 모르겄다. 맹자 적어매도 인자 늙었어야 일도 못허겄다 고 허더라."
"그러면요. 연세가 꽤 드셨지요.?"
"칠십 다 되�을거여 맹자 적아버지가 중풍으로 지우 변소질이 댕긴다고 허더 라. 맹자 신랑이 쟁인 장모헌티 그렇게 잘헌다고 소문났어 "
박서방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명자까지 여우살이 시키고 따로 살었지만 박서방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함께 사는 것인데
"맹자 고것이 참 착히서 신랑도 잘 얻었어 촌에서 농사짐서 고상헝게 글지 재 미나게 산다더라. 전주다가 아파트랑 한채 사 놨더랑만"
"잘했네요. 살기는 어디 살고요."
거둔댁과 기수가 나누는 대화에 진필은 대꾸도 않고 앞만 바라본다. 삼거리에 차를 멈추자 그제야
"우리집으로 가거라. 맹자가 우리 집으서 산다. 그 앞에 까지 차가 들어간다."
명자네가 그네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우리집에서 살아요? 그럼 우리집이 그대로 있단 말씀이세요?"
"하먼 있지 어디로 가아?"
"그때 그집이 얼매나 좋았던 집이라고 너그 조부님이야 그 집 지심서 얼매나 돈을 많이 딜이�다고"
"안적도 좋을거여 글지라우? 영감"
"지금이사 좋기야 허겄어? 오래되야서"
"그럼 벌써 그집이 한 팔십년은 되었나요?"
"그렇게는 안되고 60년 가찹게 되�지 너그 큰 누가 �살이냐? 가 몸가졌을 때 지었응게"
기수는 삼거리를 벗어나 차를 세웠다. 그는 옛집 고샅을 둘러보기라도 할 량으로 내린 것이라.
"이거 다 가지고 가야지?"
"예 어머니 제가 들고 갈께요. 앞에 가세요"
명절이면 억지로 오기 싫은듯 왔다가 쫓기듯 떠나가던 그 고샅 기수는 알수 없는 회한이 밀려온다. 안천 용담 사람들이 수몰되기전에 함께 모여 생활하던 지난
겨울이 생각난다. 마지막 모정초등학교의 졸업식도 생각나고 그들은 며칠이라도 더 정을 나눈다하여 얼마나 아기자기하게 모였던가?
"용담댐 사람들은 여기다 대면 행복한 거지요? 아버지"
"하먼 거그는 우리허고 댈 수가 없어야"
고샅을 들어가던 진필이 하는 말이다.
"우리야 참 보상금 더 받을라고 유실수를 심기를 혀 머. 신문에 봉게 거그는 늦게사 꽃단지네 과실 나무네 심었담서 긍게 �년 이후로 딱 잘러버�잖여 그 리도 그놈들은 조께 준다고 안 허대?"
"맞어요. 거기다 지금은 비디오가 있으니까 다 사진으로 찍어놓고 전시회도 허 고 안천출신 어떤 화가는요. 날마다 시간만 나먼 와서 그림을 그려요. 나중에 물 차버리먼 소중한 것이 된다고요."
"우리야 그때는 사진기가 있어 머시 있어 참 억울허지 기냥 물이 찰 때꺼지 방 에 앉었다가 기냥 물창게 정신없이 몸댕이만 빠져 나왔지"
"아이고야 그때 정신 없던거 말도 마라 아이고 쑤악히라 너그 수천 큰오매네 마당에 물이 찬디 너그 큰오매가 유명허잖냐 "
진필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려 그 형수씨가 참 유명�지"
그랬다.
신문마다 용담댐 수몰예정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 마을을 특집으로 다루었고 그곳에 터잡고 누대로 살던 씨족들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물에 잠기는 실향민들의 전과 오늘 훗날의 이야기를 다루며 실향의 아픔을 같이 나누자는 뜻을 보도하였다.
그들이 보상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문제만해도 자세하고 세밀히 보도하여 전 도민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여론을 조성 하였는데 이러한 보도 자료들을 볼때마다 사실 진필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30년전과 오늘이 다르긴 하겠지만 시대적 배경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애꿎게 희생양이 되어버린 잿말 사람들만 생각하면 먹은 것도 게을러져 올라오는 충동을 참아야만 하였다.
"용담사람들은 우리기다 대먼 존시상에 사는거지 안그냐? 그리도 맨날 부족허 다고 대모나 히쌌고, 참 운암사람들은 병신이었지 암. 나가서 잘 되야갖고 큰 사람하나 없고 누구 말 한마디 거들어 줄 사람도 없이 "
"그래요 거긴 출세 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감사원장도 그렇고"
담 넘어로 들려오는 너털웃음과 사람들의 도란거림에 누군가하여 내다보던 박서방네가 깜짝 놀라며 대문쪽으로 달려나오는 것이 고샅에서도 보인다.
"아이고 아지매 이게 어쩐 일이시다요? 아이고 되렌님도 이 "
"도렌님은 무신 되렌님이여"
진필이 웃으며 먼저 대문안으로 들어가고 박서방네는 장작개비 같이 야위고 뻣뻣한 손으로 기수가 들고 있는 물건을 받아 땅에 내려놓고 기수의 손 등을 어루 만진다.
"아이고 시상으 이게 먼 일이디야 전화라도 허시고 오시지라우. 아이고 시상 에"
"들어가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려 시상에 맹자 아버지가 보먼 얼매나 좋아 헐꼬 이?"
"편찮으시다면서요."
거둔댁은 그러는 박서방네를 사람좋은 웃음으로 바라본다.
"아녀 좋아졌어 첨보담 아주 좋아져 어여 들어가십시다 이. 아지매도요."
그들이 들어가니 박서방은 방문을 열고 기어서 막 문턱을 넘고 있다.
"아이고 영감 기수 되렌님이 왔어라우 시상의 죽기전이 한 번 봤으먼 좋겄다고 허더니만 외�네라우"
"어여 아아"
박서방은 혀가 돌아가지 않는 말로 팔을 들어 그를 반기는 시늉을 한다. 진필도 마루에 걸터앉아 박서방을 건너다보고
"아이고 올라 가셔 예 올라가시랑게"
"그려 올라와라"
거둔댁도 마루로 올라가면서 들었던 짐은 마루 한켠으로 놓는다.
"아이고 머디리야 허까이 어르신 커피 잡수시지요."
"커피? 있음사 주먼 좋지"
"아, 가덜이 노상 그놈에 커피를 마�쌌더만요. 첨에는 나도 잠 안온다고 안먹 었는디 시방은 밥그럭으다 타 먹어요."
기수는 눈을 들어 서까래를 바라본다. 오래되어 그을기는 하였어도 본시 좋은 배목이라 곧고 굵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어려서는 한 번씩 오면 집이 꽤 넓고 크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 그렇지 않다.
"어머니 어려서는 이 집이 꽤 컸었는데요. 지붕도 웅장하고"
"그때는 니 눈이 작었고 시방은 어른이 되었응게 보는눈이 커져서 그렁겨 우리
도 다 경험히 본 것이다."
기수는 아버지 진필과 박서방이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집안을 둘러본다. 뒤곁으로도 가보고 마당끝에도 서 보고 옛날에 그 마당 끝에 서서 저아래 사양리 물 찬 곳을 바라보면 앞이 툭 트였는데도 기수는 답답했다.
해서 그렇듯 전주로 나가버리고 말았더니 오늘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저만끔 두언동 앞 냇가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손을 기다리고 있다. 물가상에는 자동차를 세워놓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인지 물가양으로 드문드문 빨갛고 파란 비치파라솔이 보인다.
그 옛날 어머니 거둔댁이 심었음직한 봉선화 채송화가 마당 끝에 오보래기 잘라고 있고 자두나무는 병이들었던지 굵은가지를 중등이 잘려나가고 잔가지 몇이 알맹이를 매달고 서 있다.
"맛이 있을랑가 모르겄네요."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체육시간인 듯 시끌짝한 소리를 들으며 기수는 커피잔을 든다.
"아이구 맛이 아주 좋네요."
"늙은이가 탔는디 머시 맛나 기냥허는 소리지"
"머시 기냥허는 소리여. 잘 탔고만"
거둔댁이 핀잔을 준다.
"맹자네는 지금 댐배 밭이가고 나는 기냥 저냥반땜시 암디도 못가요."
"글도 먼자보다 좋아졌고만"
"예에 인자 일어나서 걸어 댕깅게요. 아이고 죽기전이 기수보고 헐말 있는디 안온다고 �쌌더만 인자 왔응게 허라고 히야겄네요."
"먼 말을 히여?"
거둔댁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기수는 더욱 영문을 모르고 진필도 박서방을 바라보며
"그려어? 헐 말 있으먼 인자 히여"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박서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기수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르 한줄기 흐르더니
"기수 되 레엔니믄 이이 지입 주이잉게로 이자 와서 여그서 대에김서 사어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저씨?"
진필과 거둔댁은 아무말도 없이 박서방내외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버지 무슨 말씀허시는 거애요? 아저씨가"
"예에 그게 먼 말이냐 허먼요. 인자 주인이 왔응게 집을 돌려 준다 그말이지라 우"
"예? 이집은 아주머니네가 사셨다면서요?"
"사실은 우리가 여적 공짜로 살었어라우"
"공짜는 무신 농사 지어서 고추 다 주어 양념거리 주어 그게 무신 공짜여?"
거둔댁이 박서방네의 말을 끊는다.
"그려 박서방이 시방 허는 말이 틀린말은 아니다."
"아이고 글먼요. � 십년을 기냥 살었는디요. 그게 먼말이야 허먼 기수 되렌님 이 난중에 운암에 오던 안 오던 언징가는 와 볼 것이라고 이집을 그때꺼정 살 으라고 허�지요. 긍게 저냥반이 죽기전에 그 말을 기수 도령헌티 허고 죽어얀 디 한번도 안 온다고 성화를 댔어라우. 요새는 전화한번 히 갖고 어르신이 � 고 내리 오시먼 좋겄다고 히쌌어요."
기수는 정신이 몽롱했다. 아니 눈물이 핑돌았다. 박서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믈을 바라보니 더욱 그랬다. 도저히 입을 열어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황당함이었다. 이제금 아버지 진필의 모습이 위대한 선인 같고 현인같고 어머니 거둔댁 조차도 지금껏 한 번도 그러한 내키를 하지 않으셨던 두 분의 모습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가슴이 뻐게어 지는 듯 압박이 밀려드는데 뭐라고 표현할 말을 잃었다. 이러하여 부모의 자식 사랑은 하해와 같다고 했더란 말인가?
그렇기로 저렇듯 죽기까지 충실한 노복의 소임을 다 하려는 박서방은 또 누구인가? 옛 조선 시대에나 있음직한 주인과 노복의 관계가 아니런가 그런 기수 자신은 누구인가? 오로지 출세만을 위하여 공부를 했고 발버둥치며 살아온 자신이 이 네분의 지난날과 오늘의 모습이 차라리 그림이라 하자. 이런일은 차라리 꾸며낸 소설이라 하자. 그는 저멀리 사양리앞 강 수면에 떠 있는 배를 바라본다. 문득 그 옛날 돌성이가 마루짝을 타고 물위에 나타나 동네사람들은 기겁하게 만들었다던... ...
기수는 정말 기겁 할 뻔 하였다. 지금껏 아버지 진필은 이곳 집은 팔아버렸다했고 그 집에서 박서방이 산다는 것도 오늘에야 안 사실이다. 진필은 기수가 고향 잿말을 사그리 잊도록 하려던 것인지 일체 운암에 대해서는 말을 피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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