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48]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5:32
반응형
[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56&n=48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48] - 김여화

 


 

제목  [48회] 운암강 가는 길-3
등록일  2001-12-02
운암강 가는 길-3

뒷산에선가 저 건너 480둑 건너 두언터 골짜기에선가 뻐꾸기가 구슬피 울어 잦힌다. 그 소리는 기수를 마치 비웃는 것 처럼
"그려요. 이집을 조부어른께서 잿말에다가 앉힐 때에 우리덜 보고 그러싯잖이요. 아무리 잿말이 다 잼겨도 이집은 절대로 물 밑에 썩게 허지는 말라구라우.
난중에 기수도령헌티 물려 주라구요."
"아- 할아버지 호랑이 같으시던 할아버지"
기수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를 불러본다. 그리고 아버지 진필을 바라본다 영락없는 할아버지 생전의 모습이다.
"그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그러싯지 이건 너 살라고 짓는게 아니라 기수 살라고 짓는거라고"
기수는 마루 가운데 기둥을 만져본다. 통나무를 사각으로 깍아세운 기둥마다 볼그레 하게 물든 것이 그것은 세월의 때꼽이라.
아버지와 박서방, 주인과 노복의 대를 이은 묵은 정이 베어든 거라. 부모 은중경에 부모는 아들이 팔십이 되어도 걱정이 된다 했거늘 기수가 비록 부모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고향을 떠난 것은 틀림없었으니 운암은 그렇듯 기수를 기다리는 부모라 하리...
집은 아버지 진필앞으로 되어있다 하였다. 이제 기수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간에 그집의 명의를 기수에게로 양도한다 하였다. 허나 절대로 이곳에서 살으라 하고 강요하는 건 아니라 하고 거둔댁은 여러번 다짐을 하였다.
박서방은 집을 옮겨 지를 때 이야기와 처음 잿말에 기수의 조부님이 지을때의 이야기를 참으로 어렵게 어렵게 이야기 하고 기수가 얼른 알아듣지 못하는가 싶으면 박서방네가 해석을 해주었다. 박서방은 설명이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웃음을 보이고 충분치 못하면 얼굴을 찡기는 모습으로 기수 도령에 대한 할아버지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참, 내가 밭이 명자 �고고 오께라우 여그덜 지셔요."
"아니 그럴 것 없어 저그 모지굴다가 전화 히놨어 밥 히놓라고 긍게 일허는 사람 댈로 가지마 이?"
"아이 그리도 집 주인이 외깃는디요"
거둔댁이 두팔을 내저으며 말린다.
"아이고 자네 나 혼저 오먼 치다도 안 보더니만 우리 기수가 옹게 이 사람이 이리 허둥대네 그랴?"
"아이고 글먼요. 그 귀허신 도령이 오라고 히도 안 오실턴디 이렇게 찾아 외깃는디 아이고 지가 밥을 안쳐야 겄고만요. 점심은 여그서 잡솨야히요. 내가 가시게 허간디? "
"그려 고맙네. 우리기수 환대 히주어서"
거둔댁은 인사까지 잊지 않는다.
박서방도 알아 들었는지 미소를 짓고 그들은 다시오마 하고는 모지굴로 가기로 한다. 허나 그대로 있을 박서방네도 아니다. 그네는 입식으로 고친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밥을 하려는 듯 들락거리고 아버지 진필은 만수네로 전화를 걸어 점심을 먹고 가겠다 이르니 그동안 기수는 삼거리 앞으로 나가본다. 담배들이 멀칭 속에서 자라 벌써 잎이 제법 크고 고추를 옮겨심은 밭에는 막대기를 세우고 노끈을 줄로 쳤다.
기수는 최근에 새로 놓인 다리까지 나가 그 아래 들을 내려다보며 앉았다. 그때 잿말에서의 마지막 설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집 고샅은 참 아름다웠어 돌담위에 구기자 넝쿨이 설까지 그대로 빨간 열매를 매단채였고"
가을이면 붉게 익는 감이 탐스럽게 달리고 논마다 나락가리 사이로 뛰어다니며 놀던 시절 기수는 중학교를 전주로 다니면서 부터 잿말을 떠나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옛날 잿말과 같은 아름다운 고샅길은 만날 수 없다.
자연스런 돌다무락의 곡선과 알맞게 끼인 감나무 매화 골담초들 그 아래 저 홀로 자라나던 꽃다지 민들레꽃 이른봄에 담밑에는 봄볕이 앉아 해찰하던 그곳, 그러나 기수가 지금 아쉬워 하는 것은 그때의 그 모든 잿말을 사진으로든 아니면 그림이든 간직하지 못했다는 자신을 향한 원망과 회한에 잿말을 찾기가 두려웠다.
"그리운 고샅인데 잿말은"
나즉히 오물거려 본다.
"아니 이 혹 저어 "
경운기가 기수가 앉은 옆을 비켜가다가 저만끔 서고 아낙이 하나 내리더니 뒤돌아보며 묻는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머뭇거리며 기수가 일어나자 아낙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머리에 썼던 수건과 모자를 벗는다.
"저 몰라요?"
그제야 기수는 그가 명자라는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뒤에는 구리빛 젊은 남정네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40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농부라.
"그래요오. 명자씨 같은데"
"아이고 오빠 명자씨 같은게 아니라 명자요. 여보 당신도 인사해요. 기수오빠"
"안녕허세요? 이 사람헌티 애기 많이 들었는디요."
"예에 지금 아버지 모시고 댁에 왔다가 바람좀 쐬려고 나왔는데..."
기수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미처 털지 못한 담배재가 상당히 타 들어가 있있다.
"아이고 점심 잡수게 집으로 가요."
"그래요. 먼저 가세요. 뒤따라 갈테니까요."
"오빠 가세요가 뭐대요. 매제헌티? 당신먼저 가요. 우리 걸어가께요.
"예? 아 아니"
그녀는 제 남편을 손짓으로 먼저 보내고 함께 걷는다.
"참 오랬만에 오셨네요? 오빠?"
"으응? 그래 여길 와도 산소만 들러서 그냥 가곤 했지"
"매번 다녀갔다는 소리 들으먼 섭섭했어요. 내가 오빠 얼마나 미워했는줄 알 어?"
"그랬어. 아버지가 편찬으신데 모시느라고 애쓰지?"
"아버진 늘 그러셨어. 오빠를 죽기전에 만나야 한다고, 집에 갔으면 울아버지헌티 들었지? "
"으으 그래 난 오늘 첨 알었다. 아이들은 전주에 있다면서?"
"예 공부를 제법 잘해요. 고등학교 다니고"
"애들이 몇이랬지?"
"어어 셋, 아들하나 딸 둘 큰 딸애가 올해 성심여고 2학년이야. 머슴아덜은 중학교 다니고"
"성심여고 ?"
"으 참 오빠 인선언니가 성심여고 출신이지? 나 그언니 사진 봤어"
"그래? 그때 졸업을 못 하고 갔을텐데"
"학교에서 회의가 있대서 갔다가 학교를 빛낸 선배들이라는 사진전시회를 허는디 거그 인선 언니가 봉사헌다는 곳 사진이 있었어"
"그래 그랬었구나"
"몇년 전에 한 번 여길 다녀가기도 했다는데 난 만나보질 못했어. 아버지 산소에 왔다고 했대 엄마한테 인사허고 갔다는디 엄마가 오빠 얘기 했더니 한 번 보고싶다고 하더래"
"그랬어? 그럼 나한테 연락을 좀 허지 그랬어?"
"엄마가 못하게 하셨어. 큰아지매 알먼 걱정허신다고"
"왜 우리어머니가 걱정을 하셔? 인선이 연락하는데"
기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명자를 돌아보자 명자는 반색을 하더니 한풀 꺽인 눈빛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잇는다.
"오빠는 그거 모르지 큰 아지매가 오빠땜시 걱정 많이 허신거? 오빠가 어리서 그 언니를 좋아힛담서? 인선이 언니가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오빠가 맘이 상해서 잿말에 안 오는거라고 나더러 한 번 그러셨어. 그때는 인선이 언니를 말릴수가 없었다고 오빠가 결혼헌 후에도 그게 걸린다고 허싯는디 "
"그래 어머니는 아마 아셨을거야. 아셨어도 모른척 하실분이지"
기수는 다시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랬으리라
"오빠 그때 큰아지매가 인선이 언니 못가게 하자고 오빠네 아버지한테도 말씀을 허셨다가 혼만 나셨다는거 알아? 그리고 인선언니가 수녀가 된 원인도? "
"원인? 무슨 말이야?"
그럴지도 모른다고 기수는 생각한다. 늘 어머니 거둔댁은 기수의 눈치를 살피고 마음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셨으니까 그래서 기수는 내색을 하지 못했었다.
"오빠 어머니가 밥 다 채리셨겄네?"
"어떻게 알지?"
"우리가 점심때 올시간 맞추어서 밥을 허시거덩"
"집을 안팔고 그대로 두었었다는거 동생도 알었었는가?"
"그러엄? 애초에 그런거 알었지? 왜 오빠만 빼돌린 것 같애서 부아나?"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긍게 오빠 인자 큰 아지매 곁에 살 수 있으먼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봐 그분들이 얼매나 더 사시겄어? 난 그렇게 생각해"
"너는 참 효녀구나"
"인자 알었어요? 난 진작부터 효녀였는디 그리서 멀리 시집도 못갔잖아?"
그녀는 기수의 팔을 잡아끌며 가까이 대고 나즉히 말한다.
"오빠 인선이 언니 진짜로 사랑했지?"
기수는 낯을 붉힌다. 명자는 깔갈거리며 먼저 대문으로 들어가고 명자의 한마디에 기수는 머리에서 부터 발끝까지 찌릿한 전율을 느끼며 우뚝 그 자리에 섰다. 정말 명자말이 맞는걸까? 사랑 그걸 사랑이라고 할까? 기수는 고향이라는 단어를 새삼 음미한다.
이렇듯 오랜만에 찾아와도 반기는 이가 있는 탓일까?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더라도 이렇듯 만나서 오빠 동생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잿말 아닌 운암에 있다는거 그래서 고향인가?
뻐꾸기가 자즈러지게 울어쌌는다. 초여름의 햇살은 여린 나뭇잎삭마다 반들반들 윤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 고향은 이런거야 뻐꾸기가 울고 국사봉 골짜기 여름날, 아니면 중래보 앞 냇가"
기수는 나이가 들어도 꿈을꾸면 어린시절 냇가에서 멱을 감고 있었고 어딘지 모를 집 마당에 서면 국사봉 골짜기에서 저렇듯 뻐꾸기가 슬피 울고 있었다. 감나무잎삭엔 유난히도 따가운 햇살이 앉아 이죽거리는 듯 했고
"맞아 꿈속에 그곳이 바로 여기였어"
속내로 중얼거리며 대문을 들어선다.
"아이고 어여와요. 시장헐턴디"
마루에 둥근 상에는 진필과 거둔댁 기수와 명자의 남편이 함께하고 박서방은 따로 상이 차려져 있다.
"아니 왜 같이 잡수게 허지 따로힛능가 이"
"걱정마요. 아버지는 천천히 잡숴야 헝게요. 어서 드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