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44]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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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50&n=44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44] - 김여화

 


 

제목  [44회] 불고개를 넘는사람들
등록일  2001-12-02
불고개를 넘는 사람들

잿말을 떠나 새해가 된지 스무날쯤 지나 정작 음력 정월 초하루가 낼모레인 섣달 그믐 밤 염재 사는 박서방네가 거둔댁을 찾아온다. 그네는 지난 여름 박서방이 노름한 돈 때문에 밀가루 방천에 나가 번돈 다 주고도 모자라 딱지까지 뺏겼다는 사실에 생병이 나서 여러날 여러달 머리를 싸매고 앓아누웠더니 겨우 섣달들어 정신을 수습하고 이제 겨우 바깥 출입으로 나 다니는 행세라.
밤재 넘어에 심었던 엇가리 배추 팔아 재미를 보았지마는 모두 그네의 약값으로 나가고 결국 가을부터는 양식도 팔아 먹어야하는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논이 없으니 논 농사를 짓는이도 없을뿐 아니라 두태 조금씩 심은거야 겨우 집에서 쓰는 정도이니 살림에 도움은 되지 못하였다.
거둔댁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잿말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비록 진필네나 박서방네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니 보상금 나누어 주는 것은 겨우 양식 팔면 되는 것을 박서방은 그나마 날렸으니 분통이 터진 그네가 몇 달을 누운거라.
"아니 그게 무슨 소리여? 누가 어디를 가아?"
"저 거 머시냐 동네사람덜이 면사무소로 죄 몰려가서 농성이다냐 머를 히야 헐 판이대요."
"아니 글먼 사람덜이 또 데모를 헌다는거여? 아이고 어쩌까이 날 안질라 춘디 어쩐다냐?"
"그리서 맹자 적아버지도 두껀옷 챙기도라고 히쌌더만요. 어르신도 가시는지 모르겄네요."
"동네사람덜이 다 가먼 당연히 가시겄지 왜 에?"
"아예가서 면에가서 누웠자고 헌대요."
"아이고 지랄 어쩌끄나 이 춘디 가서 어쩔라고 그러까이"
"� 사람은 양석을 얻어갖고 왔는디 그것도 없응게 난중으 간 사람은 못갖고 왔잖이요?"
"그건 그렇고 자네는 좀 어떤가"
"지우 견딜만 히요. 대처 아지매 말씸대로 그리봤던들 내몸만 상헌디요 이?"
"그려 인자 참어야지 어쩌 적이라도 좀 부쳤능가?"
"귀찮어서 안 헐라고 힛더니 맹자란년이 옴마가 맨들어 주먼 지가 붙인다고 히 싸서 그러라고 �어요."
"아이고 고것이 그리도 지지배라고 이? 그럴지랑 아네"
"곧잘히요. 적도 얌전시럽게 이쁘게 맨들어요."
"잘�어 떡조께 갖고가 나도 지우 지양 모실 것만 조께씩 �어. 기수란놈도 손
도 안대능고만. 고놈자식이 추석으도 아무것도 안 먹고 글더니 잡을놈"
"아이고 인자 팔어논 양식은 다 떨어진디 설쇠고 살라먼 걱정이고만요."
"농사를 짓다가 안 지어버링게 요상히서 양석도 왜 자꾸만 더 먹는 것 맹이여 이?"
"예에 아지매 해풍게비요. 전이 넘덜이 그런말 허먼 나도 멀그리야고 �는디 팔어다 먹어봉게 참말로 더 해퍼요. 모다덜 쌀조까씩 싸고 장작도 따로 갖고간 다고 빠개고 그런대요."
"그렁게 날도 춘디 큰일이고만 이? 맨날 데모나 히야 조께 우리덜 말 들어중게 안 헐수가 있어야지 이? 우는 애기 젖 한 번 더 준다더라고 그식이지머"
"긍게 나쁜 사람덜이지라오. 여그 물 빼다가 평야부놈덜 살린다고 우리는 아예 죽어라 헝게 우리도 사람인디 지렁이도 밟으먼 꿈틀 헌다잖이요?"
"맞는 말이여 지금 우리는 이거 대궐이라고 안혀"
"아, 저그 산내 장금리 사람덜은요 거지거지 상 거지대요. 농사를 안징게 품 팔어 먹을디도 없고 애초부터 지우지우 산 사람덜이라 꼴이 말이 아니다요. 시 상에"
"여그도 그런 사람 많어. 저그 사양리랑 모지굴이랑 글도 움막이라도 친 사람 덜은 났겄지"
"맨날 데모만 헝게 면서기덜이 죽을라고 헌대요. "
"그 사람덜이 먼 죄겄어? 헌디 그리도 또 누구보고 하소연 허겄능가"
"먼자도 쉰재고개서 붙잽히서 돌아왔잖이요?"
병오년 정월 초 이틀 면사무소에는 40여명의 마암리 주민들이 몰려와서 구호대책을 요구한다. 이들은 면사무소에 있던 보리쌀을 나누어 주어 돌아갔지만 다시 다른 부락 사람들이 몰려와 배고파 못살겠다고 아우성 치는데 면사무소 직원들도 속수무책 어찌 할 수 가 없다.
터전을 잃은 이들은 나갔다가 도시에서 살지못하고 거지가 되어 버려두었던 움막을 찾아드니 아직 뜨지 못했던 사람들은 더욱 불안하여 일어서지 못하고 설이 돌아왔어도 굶고 앉아 있자니 답답한지라 모두 면사무소로 몰려가 농성을 벌이는거라. 비단 장금리 사람뿐 아니라 잿말 간좌터 지천리 월맹이 사람 모두 그러하니 이때에 전북일보는 쌀 다섯 가마에 이주예정자 지정서라도 팔아 자식새끼 밥을 지어 주겠다는 비참한 보도가 나간다.
이들은 군청으로 군청으로 몰려가보기도 하지만 노루목재 지나 학산이앞 쉰재날망에 이르면 군청직원들과 경찰이 나와 진을 치고 있어 다시 돌려 보내지기를
거듭하고 한전 사무실을 점거하고 며칠씩 연좌 농성을 벌이지마는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은 움막으로 돌아와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여러차례에 걸쳐 사람들은 연좌 농성을 벌리거나 면사무소로 몰려가 단체 행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유로는 달랐다. 무엇 한가지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 없고 날마다 시일만 끌고 있는 정책을 비난하기도 했고 언떤 사람의 비리땜이기도 했고 개화도 토지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쯤에도 개화도 물막이 공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하니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토지는 바닷물이 남실거리고 있었다.

여름비는 폭우로 쏟아지고 있었다. 올데 갈데 없이 움막에서 간척지 땅의 농지 분배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수마는 혀끝을 낼름거리고 있었다. 당시에 4천 오백만원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히며 상운리가 다 물에 잠기고 있었다.
"아이고 어쩐대라우 저그 맹자네는 어찌케 되�어라우?"
"머시 어찌케 되야 보먼 몰릉가 저 앞에 물 보먼"
거둔댁네집은 그래도 조금 높이 위치하여 마당까지는 아직 물이 차지 아니 하였으나 고샅까지 붉은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건너 사양리 앞은 물론 480둑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벌건 바다가 되어 있었다.
"아니 여그는 갠찬다고 �잖이요? 말뚝이 저그 모종뒤에 백�는디 시상에"
"애초에 잘못 된거여 말뚝을 잘못 박었등가 아니먼 어떤놈이 암서나도 혼날깨 미 거그다 박었등가"
"어쩌끄라오 이일을 어찌야혀"
상운리는 지옥이 다를다 없다. 붉은 물이 넘실거리고 사람들의 통곡하는 소리가 담을 넘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비가 와도 정녕 사람들은 타물탐 설마 샛터까지 물이 차지는 않겠지 했던 것이라. 하여 누구든 물이 찰 것을 염려하여 가재도구를 옮기거나 걱정하는 이가 없었다.
이미 아랫쪽은 지붕이 뜨기 시작했고 논과 밭이 물에 잠긴 것은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지만 눈뜨고 못볼지경이 되어있다. 신문기자들이 계속 들어와 저 높은 산중터리에서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고 그들도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취재를 하고 있었다.
이때에 아흔 일곱 집이 전부 무너지고 논 2백여정보 밭 150정보가 완전 침수되어 농사를 망쳐버렸다.
이들 주민 1200여명은 직접 피해든 간접 피해건 우선 당장 구호대책을 세워달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수몰선 내의 보상은 계획에 없었다는 전라북도가 책임 회피를 하고 나서자 이들은 당초 수몰선인 면사무소 앞 까지 물이 차 올라온 것을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 책임을 촉구 하고 나서기에 이른다.
이는 분명 측량 잘못이라. 즉각 측량 착오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지만 산넘어 산이라고 천막 하나에는 서너집이 임시 거처로 삼고있으니 그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
"거 집이 사다둔 약 머라도 없는가?"
어느정도 물이 빠진 뒤 거둔댁은 젖은 이불을 널어 말리느라 마당에 서 있으니 진필이 급히 들어오며 묻는 말이라.
"약이요? 먼 약을요?"
"아, 저 입석리 천막에 있는 머시냐 가 말여. �이 아프다고 누워 있는디 먼 병 인종도 모르고 여럿이 앓고 있능개비여 군이서 방역반을 보냈다는디 거그는 안 적 물이 안빠져서 가도 못허잖이여?"
"아니 글먼 당신은 약이 있어도 어뜨케 갖다 줄라고라우? 글고 먼 약인종도 몰 르고 어뜨케 갖다준대라우?"
"아, 거 배 아플 때 먹는거랑 청심환이랑 좀 있는대로 주어바 아무거나 말여 우선 가서 멕이바야지 "
"글도 먼 뱅인지도 몰르고 줄 수도 없잖이요?"
"아, 의사도 와서 먼뱅인지 모른단디 하도 답답헝게 이러는거 아닝가?
괴질이디야. 문병열 박사도 보고는 종을 잡을 수가 없디야. 장질부사 같기도 허고 아닌 것 같기도 허고"
"당신이 거그꺼정 가실라고라우?"
"내가 어뜨케 가 거그서 사람이 왔응게 보낼라고 허는거지"
진필은 거둔댁이 챙겨주는 약들을 받아가지고 나간다. 거둔댁이 주는 약이라고 해야 겨우 설사를 멈추게 하는 지사제나 열을 내리게 하는 해열제에 불과한 것을 그렇대서 그 약을 먹고 딱 맞아 낫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을 군에서도 문박사를 보내 진료를 나섰지만 물이 차 있어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 많았으니 그곳에서 배를 타고 사람이 나오기 전에는 그곳 상황을 알 수가 없는 고립된 육지속의 섬이라.
거둔댁네는 어쩌다 사위들이 응급약으로 쓰라하여 해열제 같은 것 페니시린
같은 것을 보내주어 곧잘 사람들은 약을 사러 갈 수 없을때는 거둔댁한테 와서 얻어가곤하여 사람들은 담방약으로 다스려 보다가 안되면 달려오는거라.
"아지매 집이 지셨네요?"
"어 어여와 어찌 자네는 짐덜 죄다 말렸능가?"
"말리기는요. 왜 맹자적아버지가 어쩌끄부텀 아프다고 기냥 누워서나 인나지를 안히요. 열이 갑자기 올르다가 또 내�다가 초악걸린 사람맹이 오솔오솔 떨린 다고 이불을 덮어도라고 �다가 저리요."
"이? 글먼 저그 입석리 사람덜 같이 아프다능거여?"
"예에 그런당게요. 먼농의 뱅인지 아이구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리서 열내리는 약 조께 주시라구요."
"아이고 지랄 금방 다 주서서 보내버�는디 어쩌끄나 어?"
"누구를 보내요?"
"입석리서 누가 왔디야 거그 사람덜이 죄 그렇게 누워있디야."
"예에? 아이고 어쩌까요? 이 글먼 머 사람덜이 글더만요. 괴질이다냐 머이다 냐 전염된담서요? "
"내이 ! 괴질은 무신 괴질 다 약이있고 진찰 히 보먼 알턴디"
"아이고 어찌야 허까요 이?"
"가만 있어바 혹간 하나라도 빠졌을랑가 몰릉게 내 찾어보께"
아랫새터 둑 앞에 들어있던 물이 서서히 빠지자 붉덩물이 �어버린 그곳은 볼상 사납다.
빗자리로 싹싹 쓸어내린 것과 같이 들판은 매꼼하였다. 물이 나가면서 가라 앉았던 흙은 잡초위에 모 포기 위에 뿌연 흙가루를 입혀 놓은 듯,용수리에서는 수문을 열어 연일 물을 내보내고 하류까지 이어지는 수마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면사무소에서는 긴급히 천막을 배정받아 우선 급한대로 천막에 들어갔지만 천막이 모자라니 서너 집이 어울어서 천막 생활을 해야했다. 도 당국에서는 도지사의 특별지시로 수몰선을 재측량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고 상운리 사람들은 천막에서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저 어르신 계싱기라우?"
거둔댁과 박서방네가 돌아보니 이장이라.
"예에 저그 입석리서 사람이 왔다고 약가지고 나가�는디"
"예에 오시먼 말씸 디리주세요. 내일 저녁의 가기로 �응게 준비허시라고
요."
"어디를 가시는디요?"
"예 그렇게만 말씸을 디리먼 아실것이고만요."
이장은 궁금하게도 그리 말하고 고샅으로 나가버린다.
"또 데모간다는 말잉가? 먼소리여 시방 "
"아이고 그렁개비요. 참 날마독 큰일 났네요."
"그렇게라도 히야지 어쩌 시방 우리가 사능거이 사능거인가? 그 존놈에 땅 다 물속에 넣고 한쪽으서는 터지게 농사지어 춤추고 우리는 배 곯아죽고 "
"그리요. 허기사 아지매네도 양석 팔어 잡수지라우? 아이고 시상의 아지매네 가 누군디"
"아니 박서방이 아프담서?"
어느새 왔는지 진필이 마당에 들어와 있었다. 거둔댁은 약을 찾느라고 방에서 반짓고리를 뒤적이고 박서방네는 마루에 걸터 앉아 있었다.
"예? 예에 어르신 외�어라우 그게 긍게요. "
"거그도 문박사 가보라고 �응게 이따 가실 것이여"
"어찌케 아시고유"
"이장이 집집마다 조사 댕�능갑더만. 가봉게 누웠더리야 근다고 헐레벌떡 뛰어왔더랑게 "
진필은 마루에 걸터 앉으면서 담배를 꺼낸다.
"금방 여그 이장이 왔다갔어라우"
"어 만났어 고샅이서"
"또 데모허로 간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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