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41]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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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7647&n=41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41] - 김여화

 


제목  [41회] 밀가루 방천
등록일  2001-12-02
밀가루 방천

잿말 사람들이 밤에 짐을 옮기고 나 앉은 뒤 진필과 같이 자연 이주를 한 사람은 몇 되지 아니하였다. 진필도 사실은 농사짓고 해마다 쌀계 넣었다가 모닥 그려 둔 돈을 큰 사위가 빌려갔다가 갚으니 기수가 하숙을 했던 노송동 철길옆 그 집을 처음에는 하숙을 시키다가 전세로 전세로 했던 것을 사게 되었지 그에게 물돈 조금씩 나오는 것은 푼돈밖에 되지 아니하였다.
남들 보고는 물 돈 쓰지 말라고 말을 했지만 그네는 사실 집 옮겨지을 때에 보태쓰는 용돈에 불과 했다. 집을 짓는 것도 대목장이와 일하는 사람들 품삯으로 나가고 일꾼 밥 해 주자니 가용돈으로 다 써버린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 되어도 움막조차 짓기도 사실은 버거웠다. 지난 가을에 들여놓은 양식이라야 빤 한 것이고 물속에서 건져다 놓은 보리는 여러번 말리기는 했지만 방아를 찧었어도 보리쌀이 뜬 것 같이 생기고 그 정황에 물 닿지 아니한 밭에 감자 같은 것을 심기는 했다해도 그 양이 적으니 그들이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씨앗 망태기까지 비워 먹는 집들이 생기고 물 피해 일찌감치 나갔던 사람들의 소식은 잘되었다는 것 보다는 겨우 몇 달만에 거지가 되었다는 우울한 기별이 오고 갔다.
면사무소가 급히 옮겨지고 학교도 서둘러 옮겼지만 어수선한 것은 마찬가지다. 관공서나 주민들이나 앞날에 대한 불안은 가실 수가 없고 여전히 물돈 문제로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이때에 제일 눈코뜰새 없이 호황을 누린곳이 있으니 그곳은 술집이라.
관공서가 들어서자 거기에 대비한 술집들이 이후 비온뒤에 대밭 마냥 성글게 생겨나고 사실 전주시내에 술집 못지 않는 요정에 버금가는 술집들이 여럿 생기었다.
전주집 운암옥 임실관 저마다 도시에서 들어온 색시가 있어 잿말에서 보다 더한 홍등가를 만들었으니 밀가루 방천 막는 사업과 함께 막걸리집은 물론 주린 사람들의 등치고 거기 그 흰 웃음에 팔린 사람들이 이곳에 터 잡은 아낙들의 마음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게 만들고 있었다.
상운암 량발이 앞 웃새터 아랫새터 새로이 형성된 소재지를 강물로 부터 막기위하여 둑을 둘러쌓는 밀가루 사업이 진행 되었다. 밀가루 사업이 무엇인가? 이는 미국 잉여 농산물법 480조 2를 간단하게 부르는 것으로 한때 밀가루 사업이 바로 그것이라.
잿말사람들의 입은 물론 임실 아니 전국 어디를 가나 밀가루 방천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였는데 전쟁으로 인한 우리의 산업시설은 말할 수 없이 파괴되고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은 말하여 무엇하랴.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정부는 파괴된 산업시설을 어떻게 복구하여 국민이 안정된 생활를 되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급하였다.
하여 정부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1955년부터 1960년 까지 미국에서 도입된 원조 양곡은 315만톤이 넘는 엄청난 양이었다. 미국의 잉여 농산물 도입은 우리 농민들의 농사 의욕을 비참하게 만들었는데 전쟁으로 인한 춘궁기 보릿고개를 감당할 수 없어 이들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으니 이때에 들여온 것이 크게는 밀가루라. 옥수수가루는 보통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급식으로 또는 빵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남아도는 밀가루의 처분은 취로 사업의 품삯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혁명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이 미국 잉여 농산물이라는 밀가루 옥수수는 우
리나라 멀리 갈 것 없이 이웃 남원만 가더라도 사방공사 계단식 논밭의 둑쌓기에 품삯으로 지급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배급을 주어 주린 배를 채우는데 기여를 하였지만 점차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양상이 호전되면서 나중에는 부정의 온상을 만드는 결과로 치달았는데 실예로 어떤 산 하나 사방사업을 하고 나면 거기에 쏟아부은 밀가루는 밀가루 그 자체만으로 차곡차곡 쟁여놓아도 그 산만 하리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지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러려니 민초들은 한 번도 거기에 이의를 달 수 없는 부정부패의 표본이 이것이라.
하나 잿말 상운리의 480사업을 할 적에는 그래도 체계를 잡았다 말 할 수 있었으나 이 또한 모든 사업들이 전쟁후 대단위 사방사업이나 또는 제방과 둑 쌓는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에는 모두 이 480 사업을 투입시켰으니 상운리 마을앞 제방도 그중의 한 건이라.
이때에 밀가루 한푸대를 업자들이 팔아넘길 때 200원 정도로 더러 사업 맡은자가 이쁘게 굴며는 수송허는 단계에서 아예 주조장이나 빵공장 국수공장으로 실어다주고 돈으로 업자에게 건네주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흔하여 온종일 일해야 180원 정도의 품삯으로 밀가루로 줄 것 같으면 하루 일해야 3,6키로를 받게 되는데 닷새를 일해야 20키로 짜리 한푸대를 주니 사실 말이지 집에서 어칠비칠 놀아도 일을 가기 싫어하니 해당되는 면서기들은 죽을 지경이라.
그러하니 온 동네사람들 이름으로 도장을 전부 만들어 가지고 있으면서 이날 저날 돌아가며 도장을 찍는데 이 또한 우스운 것이 사실 도장의 임자는 둑쌓는 근처에 가지 않고 일을 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니 서로가 속이느라 고생이라. 훗날에 이일로 하여 말썽이나고 시끄러운 일까지 벌어지는거라.
이미 도로가 물속에 잠기고 그저 산기슭에 올라앉은 사람들이 다닐 고샅조차 닦여지지 않은때 였으니 사람들은 연일 부역을 나와 갈을 만드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들이 집을 지은 땅은 댐 유휴지 국유지라 불리워지고 비록 국유지라 했지만 면에서는 산전 개간 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기 까지 한다.
더러 유휴지를 개간하여 주민들에게 분배하기도 하였으니 바로 480둑이 만들어지는 상운암 소재지가 들어선 근처의 둑 안이라.
상운리 480사업은 밀가루를 전주까지 실고 나가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 품삯으로 주었던 것이라. 이 또한 밀가루를 실어 내가는 것은 불법이니 지서에서는 실어내가지 못하게 막고, 그러하니 눈속임으로 업자나 관게자들은 지서 사람들 손에 쥐어 주어야하는 끈끈하고 튼튼한 사슬이 생기게 되는거라. 물론 상운리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버는 사람 수고롭지 않고도 벌고 천막에서 쉽게 집을 지어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지가지 사는 것이 말이 아니니 밀가루 배급도 수월히 타먹지 못하였다.
새로 형성되는 새터 근방 들 건너 량발이 앞 동네 외량 쪽으로 두언터 쪽으로 큰 내가 있어 만일에 물이 차면 그 역류로 하여 외량리 앞 들은 물론 신덕의 노적봉 사상암 아래까지 물이 들게 생겼으니 우선은 새터를 물에서 보호하는 둑이 있어야 한다는 소문이 큰 문제거리로 돌았다.
허나 천막에서 생활을 하면서 화전 조금씩 일구고 밭이라도 지어먹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닷새 일하여 밀가루 한포 받는 해종일 방천 쌓는 일을 하기는 싫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 산 깔크막이라도 쳐눕혀 괭이로 꼭꼭 파서 씨알이라도 심는편이 그들에게는 더 절실 하였다.
그러니 둑을 막는 일에 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자연 인부가 없으니 이 둑 쌓는일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이 밀가루를 품삯으로 아직은 물이 차지 않은 땅을 개간하여 이들에게 분배하기에 이른다.
본시 이 밀가루는 미국산이 많았지만 훗날에는 호주산으로 그 나라에서는 소에게나 먹이는 것을 우리는 그도 못 얻어먹을 정도로 비참했던거라.
"아지매 기셔라우?"
"어서와 어쩐일디야? 일 안 나갔능가?"
"예에에 같다 왔고만요."
"머시냐 밭 판디다 지거리 갈었담서 이?"
"배추가 아조 갠찮히요. 인자 숫구락 만 허게 생기갖고라우"
"그려 맹자아부지가 그러드만 그럴종 알었으먼 조께 더 갈을 걸 그�다고 허더 만 이?"
"긍게요. 아, 내가 자꼬 걱정되야서 참깨 심자고 �더니 인자 잘�게 구시렁 거 �싸요. 밭을 조께 더 팠으먼 좋았을턴디"
"참깨도 잘되먼 좋지 안그려?"
"아지매네 꼬추는 좋더만요? 지가 옴서나 둘러 봤어요."
"그 먼디까지 갔어?
박서방네는 염재쪽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집을 지어서 나와 있었고 밤재 넘어가는 길목에 화전을 일구어 엇가리 배추를 심었다 하였다. 가끔씩 거둔댁에게 놀러도 오고 그네는 와서 큰 일은 거들어주기도 하는 거둔댁이 아무리 말려도 박서방네는 그네에게만은 예대로 행하였다.
거둔댁네는 두언터 쪽에 있는 밭 뿐으로 그다지 센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는 논이 없으니 앞으로 양식을 팔아먹기는 다른 사람과 같을 수밖에 없다. 그네는 거뜸이 쪽의 물돈이 나오면 방천 쌓은 그 앞으로 논을 사자고 하고 있지만 돈이 있대서 쉽게 논을 살 수도 없는 옆집도 모르게 거래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그나마 진필로 보면 새터는 일단은 타관이나 마찬가지라.
거둔댁네 집 울안에는 잿말에서 부터 캐온 앵두나무 대추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피우고 있고 봉선화등 다른 꽃들도 함께 이사와 살고 있었다.
"아지매 맹자 아버지땜시 죽겄어라우"
"왜? 에"
"아 요새 여그는 맨 술집이잖이요."
"으흐 술집 댕긴단 말여? 저런 큰 변났네 어쩌까이"
"엊그저끄는 어르신이랑 운암옥에 갔었다덩만요?"
"엊그저끄? 아니 기수헌티 가�다가 이틀이나 자고 엊저녁으 열두시나 되야서 오�는디이? 거 웃샛터 누구랑 작은 불재로 걸어왔다고 허시덩만"
"예? 오매 글먼 위인이 인자 거짓말 까지 헝고만요?"
"아니 박서방도 거짓말헌디야? 흐흣 고년덜이 여우는 여우고만 이?"
"예, 여우는 여우다니요?"
"아, 요새 새로 생긴 술집덜 말여 거그는 여시덜이 산다고 안 허등가 사내만 홀리는 것은 말 헐 것도 없고 물 돈 찾은 사람은 귀신같이 골라서 홀리고 머 알먼 당장에 홀겨버린디야"
"아이고 아지매 그렁개비요. 거짓말까지 험서나 어찌까라우? 이일을 어쩌?"
"멋을 어쩌 잘 알어보고 대책을 세우야지"
"아이고 어쩐다요? 어르신헌티 일러갖고 혼좀 내 주시라고 허셔 주서요."
"참 자네도 남정네덜은 똑같여 이 사람아. 거그서 거그여 조께 반반헌 지집덜 보먼 말 걸고 잡고 말걸먼 품어보고 잡다고 안 허등가"
"긍게 고놈의 밀가루 방천이 문제당게요? 거그 일 나간다고 험서나 가서는 지 우 밀가루 한푸대 받을라고 매칠 일허고 술은 품삯보다 더 많이 마실 것 아녀 요?"
"자네가 봤간이? 술 더 마시는거? 안적 몰릉게 자세허게 물어보고 말 히야지 되잽힌다 이? 엘라 덤테기 만낭게 조심혀. 수 틀리먼 오기 부린다고
이쁜 불여시덜 헌티 자꾸 가먼 어쩔랑가"
새로이 면 소재지가 되어버린 웃새터 아랫새터는 관공서가 들어고 사람들이 집을 옮기면서 날마다 술집이 하나씩 늘어나는데 그것도 전주에서 색시들까지 들
어와 술집에는 더러는 서 넛까지 고용을 하였는데 이들은 곱게 화장을 하고 도시에서 굴렀으니 잿말 순진한 사람들 물돈 몇푼 받은 사람들은 한 번쯤 운암옥을 전주집을 임실관을 안 가고는 배겨 날 수가 없으니
"글먼 어뜨케 히야 허까요? 맨날 따러 댕길 수도 없고라우"
"긍게 어쩌까이 맹자 핵교 갔다 집이 감서나 여그서 놀다 일 끝나먼 같이 따러 가라고 허먼 어쩔꼬?"
"예에 그거 좋겄네요. 역시 아지매는 질이라우 아이고 글먼 될 것 같고"
"긍게 멍청헌 놈 둘이 영리헌 한 사람보다 낫다고 안 혀"
"아지매가 멍청허시간디요 참내"
"두 사람이 뫼먼 그만끔 심이 난다는 거 아녀"
"아지매 480사업이라는 거이 멋허능거대요. 맨날 말 끝마다 480사업이라고 히 쌌더만요. 그걸로다 우리동네 저그 웃 골짝으다 저수지도 막는다고 허더만요? 먼 기계다요?"
거둔댁은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멀 알간이 나도 한 번 그냥반헌티 그렇게 물어봤을거 아닝가? 그�더니 머라고 허신종 알어? 기냥 그렁갑다 허지 여자덜이 다 알라고 허냐고 그거 뜻 알어서 멋 헐라냐고 허시대?"
"그리서 암말씸도 안 허�어요?"
"왜에 멋이던지 확실히 알먼 그말을 함부로 안 쓸 것 아니냐고 멋도 몰르고 아 무 짬생이도 몰르고 쓰는 것 보담은 차라리 알고 안 쓰능게 아니냐고 �더니"
박서방네는 손벽을 짝 소리가 나게 치면서
"그리요 맞어요. 몰릉게 더 자꼬만 궁금증이 더 나요. 아 긍게
그놈에 480이 머 먼 술집이 갈 때 끌고 가는 기곈종 알었당게요? 자게가 무신 전사다냐 머시다냐"
"전사? 아이고 참내 지우 밀가루 한 푸대 받을라고 그 고상 다 험서나"
"고상은 요 지집덜 옆으가서 분내 맡응게 좋아서 그러겄지라우"
"가만봉게 거그 일 히갔고는 운암옥이랑 그런디 못가게 생�더만 거그는 돈 많 은 사람덜이 가는디 디야. 술값도 비이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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