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33]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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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33] - 김여화

 


 

제목  [33회] 그리움은 어리동 참꽃 필 적에
등록일  2001-11-29
어리동 참꽃 필 적에

잿말의 봄은 국사봉 남쪽 용당굴 위에쪽 뙤약양지에서 시작된다. 오른쪽 골짜기 막둥이 사랑채 아래 국사봉 강당골 말동바우 아래 눈 녹아 흐르는 개울가에는 어느새 계절이 물 소리로 봄을 알리고 있다. 시안내내 물돈 이야기에 누구는 물 돈 털었다느니 전주로 나가 셋방을 얻었다느니 뉘집 김장짐치가 벌써 떨어져 냇가로 소쿠리 갖고 너멀캐로 나섰다느니 구구헌 소문도 나 쌌더니 사람들의 그렇듯 시끌사끌 세상 돌아가는 틈새에서도 입석리 두언터 어리동엔 소리없이 봄이 들앉아 있었다.

간좌촌 갱변에 맬라초가 꽃을 피우고 설 쇠자 약초 망태기 짊어지고 국사봉으로 오봉산 건지산으로 내달으던 잿말사람들의 망태기에는 더덕이나 산작약 도라지 잔대 삽주라 부르는 창출과 쪽두리풀 등이 담겨져 오고 종피나무 오가피나무 참빗살 나무등 해년에 담방약으로 쓸 것이나 혹은 장에 내다 팔 약초들을 장만해오고 편도선 목이 아플 때 필요한 것들 모과 말고도 각시붓꽃 우산나물도 약이라. 이러한 약이 되는 것 들 백가지를 모두어 함께 가마솥에 고와 달이고 달여서 환을 지어 먹는다거나 감주를 해서 먹는거라

예를들어 각시붓꽃은 편도선에 천남성, 촐람생이라 부르는 이것은 중풍에 쪽두리풀 이라 하는 세신은 두통과 해열제로 골난초라 하는 골담초는 신경통 관절염에 좋아 또는 금낭화라는 며느리 주머니꽃은 이름도 재미있고 따뜻한 계곡을 좋아하는 것으로 뿌리를 약으로 쓰니 구해다 두었다가 서로 이웃간에 필요한 이가 있으면 나누어 주기도 하였으니 오만 가지 풀이 약초로 혹은 먹을 수 있는 나물로 잿말 사람들에게는 귀한 보배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잿말 국사봉 건지산 오봉산에 지천으로 나는 것이 모두 한약재로 쓰이는 것 들이다. 이곳에 흔히 절로 자라는 참빗살나무만 해도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염증에 좋다하여 다발로 베어다가 감주를 해 먹기도 하는 것을 잔가지에 날개가 붙지않은 것은 회잎 나무라 하니 이 참빗살나무는 종피나무와 같이 다발로 묶어 장에 내다 팔기도 하는 것이다.

이봄에 넓은 냇가에 일찌감치 무성히 자라나는 소루쟁이도 잎삭을 뜯어다가 삶아 고기국에 넣어 먹는 것이며 약간의 신맛이 있지마는 이는 삶아 찬물에 헹구면 가시니 나물로 무쳐 먹어도 되는 이 또한 아낙네들의 허리 아프고 신경통에 뿌리를 캐다 감주로 먹는거라.

딱주라 하는 잔대만도 국사봉에 흔히 나는 것으로 봄에는 잎삭을 뜯어 날로 쌈을 싸 먹고 싹이나기 전 뿌리를 캐어 산후조리를 하는 산모들이 약으로 해 먹는다. 뿌리는 날로 먹어도 달작지근 한 것이 더덕과 같으나 더덕은 그 특유의 향기가 있고 딱주는 향기가 없는 것이 다르다.

한강코 (엉겅퀴)는 소주에 담갔다가 땅 파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아픈사람이 먹고 소주에 달걀을 타서 마시는 것도 약이라. 약이 되는 그 무엇이든 일 철 나서기 전에 산천에서 캐고 꺽어다가 삶고 고와서 혹은 감주로 환을 짓거나 그리하여 건강을 지킨 것이다. 뿐만아니라 쇠무릎을 바작으로 캐어다가 삶는데 산과 들에 나는 풀잎들은 약 아닌 것이 없음이라.

운암강 가상 국사봉 넘어 마당재, 강당골 탑성골 오봉산 자락에는 산야초가 없는 것이 없으니 작은 백련산 앞 거뜸이 골짝을 비롯하여 건지산 큰베루 작은베루와 월맹이 노루목재 밖시앙골 안시앙골 산마다 흔한 것이 꾸지뽕나무요.

누에 밥이 모자라면 산뽕 들뽕도 따다 먹이고 노간주나무 다래나무 개암 박달 굴참나무 개비자 굴피나무 노린재 때죽나무 산사 아그배 나도밤나무 피나무 붉은물을 낼 적에 쓰는 붉나무 가막살 쥐똥나무 정금 산초나무 산벗나무 도리깨 열을 만들어 쓰는 물푸레 이팝나무 여름이면 흰꽃으로 산을 눈부시게 하는 산딸나무 층층이나무 산수유 참싸리 조록싸리(고롭싸리) 땅비싸리 광대싸리 조팝싸리가 당단풍 신나무가 지천이요.

진달래는 어느 산에든 있고 국사봉 바위에는 바위채송화가 흔한데 찔레꽃 향기는 강물을 춤추게 하느니 물가상에는 물봉선 씨앗동 씀바귀 미나리냉이 강아지풀 그 종류가 수백종이 넘어 집마다 돌다무락 사이로 구기자나무 어울어지고 앵두 자두 골담초 없는 집이 없으며 까중나무는 흔한 것이다.

마당벌 갱변에 지천으로 나는 지충개 같은 것도 꽃 봉우리 쫑긋쫑긋 올라올 때는 미릇 한 것이 그마져 아름답고 운암강 가양 산기슭에는 짐승도 많아서 흔한 것이 토끼 노루요. 맷돼지 고라니며 너구리 오소리가 많으니 족제비도 가지가지라.

두더지 청설모 다람쥐 삵괭이 고슴도치 땃쥐가 사람의 눈에 흔하고 해오라기 꿩은 물론 멧비둘기 뻐꾸기 두견이 소쩍새 쇠박새 진박새와 곤줄박이 휘파람새 꾀고리 방울새 콩새 찌르레기 까치 때가치 말똥가리 솔개 딱따구리 종다리 굴뚝새 올빼미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날 짐승이 둥지를 틀고 강가에는 청둥오리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뜸부기도 한 몫 도요새도 한 몫이라.

강가상에 흔한 것 중에 실비암과 무재수 능구렁이 누룩비암이 숱하게 보이고 독사 살모사 까치독사는 국사봉에 많으니 큰 물이져 집 근처로 올라오는 비암들은 보통은 물비암이라. 본래 비암은 봄에는 위로 올라가고 가을이 되면 밑으로 내려오는 습성이 있으니 운암강 그 주변 잿말은 온갖 들풀과 산야초 동물과 조류는 물론 어류 또한 풍요로운 자연의 보배로운 창고라.

그러나 허기진 사람들 배고픔과 기약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이 차곡차곡 담어져 내려오고 누구하나 냉큼 잿말을 떠나겠다고 나서는 이 없고 그져 저 집은 언제 집을 옮기려나 저 집이 농사 준비를 하는데 나는 무어 못나서 이사를 가야하나 하는 생각들이라 눈치보느라고 아무도 냉큼 일어서지 않고 밤이면 부락 회의를 한다해서 징소리는 더러더러 잿말 골짜기를 울리고 있었다.

잿말에 회의라고 해 보았자 이사를 서두르라는 독촉일 뿐 물 돈에 대한 구체적인 새로운 대안은 있을리 없었으니 답답한 것이 이들 이라. 어차피 간좌촌을 비롯해서 지천리 도마태나 잿말은 물속에 흔적이 없을텐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냥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으나 행여 하는 마음에 밭은 갈아야 했고 외양에 거름은 내야만했다.

그때에 산골 살림살이라야 어디나 같겠지만 두언동 홈태기 이들의 보릿고개는 더 하였으니 산전을 지어먹기 위하여 설을 쇠고 부터 사양리 뒷산 건지산 중턱에 올라가 밭을 일구는데 우선 밭을 일구려면은 밭자리를 다듬게 되는데 밭자리 라야 자기가 생각하는 산중트리 삐알대기 저만끔을 둘러 큰나무를 베어 표시를 해 놓고서 연신 잡태나 작은 나무등걸 까지 톱으로 깨끗하게 비어내는 것이라. 이리하여 나무를 모두 묶어 둥굴리고 치워놓고 위에서 부터 고랑을 만들어 밭을 파 내려오는데 이 일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

제일먼저 한 사람이 밭자리 맨 꼭대기에서 두럭을 만들어내면 다음사람은 위에서 만든 두럭 끝에서 부터 파 내리는 거라. 이는 된 깔크막일 수록 고랑의 높이가 높아지는데 계단식으로 두럭을 만드는 것이다.
더러 놉을 얻어서 한꺼번에 파 내리는 집이 있는가 하면 호락질로 날이면 날마다 이른봄 내내 파는 경우도 있으니 밭 파는 것이 보통 쌩 땅띠기라 하여 힘없는 이는 할 수 없음이라.

봄에 이렇듯 장만한 산비탈 밭들은 노가리 고추를 가는데 씨앗으로 치면 한말 두말은 보통이라. 고추 한 말이면 그 양이 셀 수 없는데 이는 씨앗이 뵈게 나야만 초벌 재벌 속아내어 제자리에 설 것만 실하고 좋은 포기만 남기는 것이다. 산두를 심어도 새 땅이라야 잡풀이 덜 나고 고추도 탈 없이 잘 되느니 묵은 밭은 바랭이나 비름잎 명아주가 많이 나니 지심 메어먹기 힘에겨워 잿말 사람들은 봄이면 쌩 밭 파는 것이 일이다.

잿말은 구성물앞 강정이날 마당벌 구름들이 강변에 밭들이 외배미로 많았는데 그 크기도 보통이 열마지기 여덟마지기 짜리로 있었으나 해마다 큰 물이 지면 한차례 붉은 물이 물머리를 들어 핥어 버리기 일쑤라. 밭에 심는 곡식이야 서숙 아니면 보리나 호밀이니 가뭄이 들면 강변은 물이 닿지 않아 풍년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라.

본시 농사가 가뭄이 들면 씨알이 여물어도 장마가 지면 모든 곡식이 웃자라고 벌드는 것이니 큰 물이 지면 마당벌은 물속에 들고 그곳에 심은 곡식이 물속에서 녹아 없어지기 일쑤였다.
전쟁후 흉년에 잿말 구성물 사람들이 사는 모양은 일찍이 조선시대 세종께서는 한발로 흉년이 들자 구황 피곡방이라는 책을 만들어 그 내용을 경제6전에 기록하였던바 나무껍질이나 풀에 대한 고유의 특성을 예경이나 본초강목에 기록된 것 과 같이 이를테면 느릅나무의 껍질은 조미료로 쓰기도 하고 생것을 찧었을 때 코같이 늘이한 것을 근박힌 환부에 발라두면 근이 녹아 질질 흐르게 된다는

또는 솔잎은 생명을 연장하게 하는 것으로 위장을 튼튼히 하여 곡식보다 좋은 것이라든가 부황을 막기 위하여 된장을 먹어야 한다든가 그 처방을 내놓았는데 이때에 운암강 가상에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나물과 재료가 들녘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한발로 여러해 흉년이 들면 구황식으로 흔한 것이 칡이나 도토리 상수리 소나무 껍질을 생키라 하여 벗기어 먹었으니 독새풀은 물론이고 돌 미나리 자운영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난리가 나서 곡식자루마다 산사람(빨치산) 들에게 빼앗기는데 빼앗긴 것을 저아래 박흔이 까지 더러는 갈담 까지 등짐져다 주고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했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

길고 긴 봄날에 하루 세끼만 곡기를 먹지 아니하면 눈앞이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이렇듯 아른거림을 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사흘 굶어 담 넘지 아니하는 자 없다 했거늘 고구마 감자는 물론 씨앗으로 두었던 나락이며 잡곡까지도 탈탈털어 겨울을 보내고 나면 햇 보리가 나오기 까지 이월 삼월 사월 보리 익을 망종 때 까지 기나긴 보릿고개라 부르는거라.

풋봄에 보리싹을 베어다가 서숙 한 줌 넣고 묽게 죽을 끓이는 것은 그래도 좋은 끼니요. 소나무 껍질에 도토리가루를 섞어 익힌 송키개떡은 떱떠러운 맛이 씹으면 씹을수록 삼켜지지 않는 고역이요. 입에 넣고 혓바닥으로 한 두바퀴 둥글려서 꿀떡 삼켜야 먹어지느니 굶어죽는 것보다는 쉬운일이다.

독새기나 자운영은 된장으로 간을 맞추어 먹으면 곡기가 없어도 먹기가 좋으나 된장이 없어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데 죽기보다는 낳은 일이니 먹는 것이다. 게다가 자운영 같은 것은 두엄이 모자라니 땅심을 높여주기 위하여 논에 일부러 갈아놓았는데 더러 봄에는 주인몰래 베어다가 먹는 것이다.

만일에 주인에게 들키는 날에는 망태기를 뺏기는 것은 물론 매 안맞으면 다행이라. 칡은 캐다가 씻어 찧어 확독이나 독 도고통에 펑펑 찧거든 그 알갱이가 나오는데 그걸 울궈서 전분가루를 가라 앉힌 뒤 개떡을 만들어 쪄먹는데 생긴 것이 시커멓멓게 정내미가 떨어지고 일이 많아 그렇지 칡떡은 그래도 좋은 편이라.

밭가양에 나는 물구 뿌리를 캐다가 삶으면 검붉은 빛이 나면서 찐득거
리는데 이것에 독기가 있느니 둥그레미와 같이 하루씩 고와 대는데 둥그레미는 단맛이 나서 강낭콩이나 팥 녹두을 넣어 끓여 죽처럼 만들어 먹는 것이라.

팥을 넣고 끓이는 것은 팥이나 녹두는 해독하는 작용을 하므로 그리한 것이니 물구죽에는 부러 팥을 넣고 끓인 것이다. 물구가 단맛이 있어 삭카리를 조금만 넣고 끓인대도 달보드롬 먹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물구의 독기로하여 어지럼증을 일으키니 조심하여 먹었음이라.

물구는 밭에 한잎씩 나 있는 개물구도 있거니와 밭가양이나 묵은밭에 오보래기 나니 한 포기만 들엥기면 솔찮히 많고 물구밭은 그렇듯 무더기로 도래도래 나있어 먼길 다리품 팔지 않아도 얻을 수 있었다.
둥굴레는 본시 두자 정도의 키로 자라서 여섯줄의 줄을 가졌는데 가지를 치치 않은 잎맥이 대나무 잎처럼 평행된 상태로 고르게 배열되어 유월에 흰꽃이 피는 것으로 큰 꽃이 피는 왕 둥구레미도 있고 더 자잘한 각시둥구레미도 있다. 운암의 어디든 나는 것으로 약으로 쓸 때 에는 강장제와 이뇨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라.

풋봄에 멜라초 잎삭은 당근잎 처럼 잘게 갈라져 채가 짧고 잎대는 좀 넓은 것이 겨울을 나고 풋봄 설 쇠고 나서 산골짝 밭이나 개울가에서 저 스스로 엄동설한을 견디고 꽃대를 올리는데 꽃의 빛깔은 노란색 열 세잎 네잎으로 눈색이 꽃으로 불리며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산수유꽃 망울과 같은 빛이지만 산수유 꽃 보다는 더 밝은 황금빛이라.

산수유 꽃 보다 더 탐스럽고 본시 숙근생으로 꽃 봉오리가 눈 속에서 피어나니 첩첩산중 사는 민초들이 설 쇠고 첫 번째 입맛을 볼 수 있는 햇 것이다. 자연이 준 이 햇 것은 입맛 돋우는 봄나물로 제격이라. 이 또한 나는 곳에나 나지 아무곳에나 있지 아니하니 음습 한 곳에서 자라 부지런한 나뭇짐에 얹혀와 맛 볼 수 있는 별미라.

운암 강가에 지천으로 노오란 여린 봄 싹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버세 (연추리)삶아 된장국 끓이고 멜라초 된장무침에 보리밥 한그릇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뚝딱 먹어 치우는 산중의 별미다.
그러하나 양식이 없어 흔한 보리밥도 배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은 어찌 운암 잿말에만 그리하였으랴 그때에 여름 철 보리 한가마 갖다먹고 가을에 쌀로 주는 싸댓보리도 성한 것을 보면 우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우리네 가난한 사람들의 고초라.

보리 안 팬 삼월 없다고 보리싹으로 죽을 끓여먹는 시기가 가고 보리패어 모가지 누렁방울 들기까지 그 사이 팅팅 부어 부황이 든 사람들이 어디 잿말에만 있었으랴.
풋보리 알맹이도 덜 찬 모가지 뽑아다가 가마솥에 겅그레 질러놓고 쪄서 가마니 위에 부어놓고 손바닥으로 비비대면 보리 알맹이가 나오느니 햇볕에 말려 챙이질하여 꺼끄락을 없애고 그냥 한 주먹씩 먹거나 확독에 갈아 죽을 끓여서 먹었느니 잿말에 들은 깽번이라 부르는 강가상에 논보다는 밭이 더 많아 보리만 패면 그 배고픔에서 벗어나며 이들은 그렇듯 들풀처럼 살아온거라.

이때쯤이면 논이 없는 집들은 보리밥 한덩이 양푼에 싸가지고 산에 올라가서 내외가 땅띠기를 허는데 배가 고프면 고랑을 파다가 걸리는 칡뿌리를 끊어 참으로 씹고 어떤사람은 고구마 몇 개 삶아 짊어지고 갔으니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집은 다행이 형편이 좋은 집이요.

더러는 흔한 서숙밥이 전부라. 그마져 없는이는 찹쌀 한 가마니 빚내다가 그걸로 쑥떡을 해 먹으며 새 봄 새 땅띠기 다니면서 먹었다는데 그 봄에 쑥이 있을리 없으니 묵정밭에 지천으로 자란 쑥대 밭에서 마른쑥을 훑어다가 그걸 삶고 우려내어 쑥밥도 해 먹고 쑥떡도 해먹는거라 어떤이가 봄 내내 쑥떡을 해 먹으니 얼마나 부자로 저리 떡만 해 먹는가? 고 알아보니 찹쌀을 빚내어서 그리한 것이라.

그래도 서숙보다 쑤시보다는 진기가 있어 더구나 쑥은 흉년에 구황하던 것이므로 그걸 먹고도 새 땅 파기 어렵지 않다더라니 비록 잿말에서만 그리한 것은 아니고 지천리 거뜸이 귀바우골이나 신덕 수천리나 조월리 웅골 그 어디서든 흔한 광경이라.

밭을 팔 때 나오는 띠 뿌리나 메꽃 뿌리도 담방약으로 쓰는 경우가 허다하고 칡뿌리는 집에 가져와 아이들의 양냥이로 쓰이니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등걸 흙 털기 위해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며 아이들이 일을 마다고 꾀 부릴때는 그런걸 캐주어 달래는 방편이라.

땔 나무도 마음대로 못하게 했기 때문에 밭 팔 때 나오는 떼짱 나무뿌리는 모조리 흙을 털어 말리고 해서 바작에 져 날라 땔감으로 하였는데 나무등걸은 비바람에 한데다 두고 말려야 불꽃이 잘 일었다.

산골짜기 홈태기마다 지적지적 물 있는 곳에는 맬라초나 다른 나물거리가 있으니 일하다가 힘들면 가재도 잡고 나물도 캐는 것이 아낙들의 일과였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 일지라도 틈만나면 소쿠리를 들고 들로나가 머우잎 싸랑부리 박조가리 질경이 꽃다지 냉이 보리밥나물 쑥부쟁이 번앵초 꿀풀 선담배풀 지충개 엉겅퀴 고들빼기 쑥 등을 캐다가 모자라는 김치대신이요. 햇찬을 만들었는데 된장품 고추장품 심지어는 간장도 없으면 사다 먹을 수도 없는 시대였으니 있는 집 부잣집에서 갖다먹고 여름에 밭을 메거나 콩을 심거나 품으로 갚아주는거라.

더러 대마를 심으면 삼도 삼어 주고 하였는데 삼을 삼을적에 품앗이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거둔댁도 삼베농사를 짓다가 그만두었는데 그네가 베틀에 앉으면 하도 허리가 아프다 되숙이가 아프다 하여 진필이 삼 농사 짓기를 작파해 버린 것이다.
삼 농사는 주로 아낙들의 욕심으로 여름에 농사지어 베어 삶아 껍질을 벗기어 보관하였다가 틈틈히 베를 나던 것인데 그 즈음 잿말사람들은 삼 농사 짓기를 작파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국사봉 자락에 참꽃 지천으로 피어 잦히고 강변에 물안개 피어오르며 나뭇 가지마다 물 오르는 소리 들릴때면 잿말사람들은 들에서 캐던 나물을 산으로 올라 산나물을 뜯기 시작하니 영등달 지나 삼월이 오면 부슬부슬 봄비 소리없이 산천에 잦아들고 고사리 이쁜손 내밀기 시작 하는데 국사봉 홈태기 책이살이 위 쪽 골짜기는 뙤약 양지로 항시 제일먼저 고사리가 선을 보이고 두언동 자락까지 고사리가 보일 때에는 운암의 산천마다 고사리는 물론 풀잎이 시퍼래지고 찔룩잎 수북수북 길어나니.

이때에 산천에는 온갖 나물이 선을 보이는데 참취는 삶어 그것만 무치면은 조금은 팍팍하고 개미취는 독하여 우려 내야 하며 삽주잎 딱주잎은 물론이요. 종이나물 복지개나물 우산나물 삿갓나물 참취 제비추리를 함께 삶아 무치는데 제비추리 라 하는 것은 섬옥잠과에 속하는 것으로 비비취라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산에 자연으로 나는 것은 보라색 꽃을 피우는게 보통이라.

옥잠화는 피리를 잘 부는 선비와 선녀의 추억이라는 이야기를 지닌 것으로 옛날 중국 석주라 하는 곳에 피리를 잘 부는 선비가 있었거늘 불행한 일을 당하여 처자를 잃고 홀로되어 어느날 밤 마을의 정자나무 위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면서 눈앞에 선녀가 우뚝 서더란다.

깜짝놀라 피리를 멈추니 선녀가 말 하기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로 당신의 소리가 하도 아름다워 한곡조 배우러 왔노라 하니 선비는 선녀의 청을 받아들여 계속 피리를 부니 선녀가 황홀경에 빠져는데 어느덧 달도 기울고 피리곡조도 끝나니 선녀가 고마워하면서 천상으로 올라가겠노라 말하니 선비는 선녀를 보내는 마음이 너무 섭섭하여 무언가 나에게 한가지만 기념으로 주신다면 내 기쁠때나 슬플때나 위로로 삼겠습니다.
하니 선녀는 과연 그렇다는 듯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뽑아 선비에게 주었더니 선비가 너무 감격하여 고개를 들었을 때 선녀는 이미 하늘로 올라가 버렸더란다. 선비가 깜짝놀라 비녀를 땅에 떨어뜨리니 그곳에서 비녀꼭지 모양으로 생긴 꽃이 피니 이 꽃을 옥잠화, 또는 백학선 이라 하거나 비녀꽃이라 일컬었다 전한다.

보통의 옥잠화는 구례 화엄사에 나는 것처럼 비녀 꼭지가 크고 흰 꽃이 있는가 하면 보통의 산에서 피는 이것은 보라색으로 비녀꼭지가 자잘한 것이 특색이라. 더러는 비비취라 하기도 하건만 옥잠화에 전설을 가진 것은 넓은잎 옥잠을 말한 것일테고 이 제비추리는 국을 끓여서 먹어도 되지만 삶아보면 다른 산나물은 푸른데 비해 이것만은 누런 빛이라.

주로 음달이거나 물이 지적거리는 곳에 잘 자라니 국사봉자락 두언동 어리골 탑성골 골짜기 습한 곳에 흔한 것이라. 연보라 꽃빛으로 옥잠화 보다는 자잘한 것이 오뉴월에 피니 순으로 자랄때는 나물로 먹는 것이다.

삼월이 중순에 접어들면 풀잎 피기를 재촉하는 비가 자주 내리니 이 비는 더러 몹비오듯 퍼붓는 경우도 있지마는 거개는 부실부실 안개비라. 안개비 오락가락할때에 고사리 나기가 가장 좋은 조건을 풀 이슬 발끝으로 걷어채며 안개비를 홈초로이 맞으며 고사리를 끊으러 가는데 이렇듯 만산에 지천으로 풀잎 필 적에는 운암의 그 어디든 고사리 취 두릅 참취 미역취 복지개나물 우산나물 삽주나물을 얻을 수 있으니 산나물 고사리 뜯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건지산에 국사봉자락 멀리 경각산 옥녀봉까지 할고지까지 흰둥지는게 보통이라.

흰둥진다는 것은 그만끔 사람들로 산천이 희뜩희뜩 많은 것을 말하니 사람걸려 고사리 못 끊는다는 말이 우스개 말만은 아니라. 그러하나 고사리를 끊거나 다른 나물을 캘 적에도 벨라도 더 손이 재고 발걸음이 잰사람이 더 고사리를 많이 끊는가 하면 잠자리 잡듯 샅샅이 뒤지고 다니면서도 고사리가 눈에 가리끼어 보이지 않는거라.

고사리는 안개비 속에서 더 선명히 잘 보이나 발 옆에 있어도 눈이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라. 봄 고사리 첫 물 끊어다가 그 푸덕진 것을 삶아 하루쯤 널어 말렸다가 손바닥으로 비벼 생조기 올려 끓이면 고사리 보돌보돌 한 그맛이 기가 막히니 이곳에 사람들은 고사리를 끊어서 첫 물 좋은 것은 집안 제사에 쓰거나 귀한 손 올때마다 생조기 넣고 끓여주면 일등 대접이라 일컬었다.

안개비 속에서 산자락 고사리만 따라 가다보면 나중에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길을 잃기 십상이라.
제 아무리 운암에서 나서 자라고 늙었다한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도 놀라 나자빠지는 판국이니 자신이 어느만끔 잿말에서 떠나왔는지 구별하기 어렵다가 어찌어찌해서 길을 찾았다 싶어 내려가보면 타관이거나 이미 구이 정자리가 될 수도 아니면 정읍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은 거개가 이곳은 몇 마장 거리라 해 안에 돌아오거나 밤중 참이라도 하게되느니 혼자서 가기보다는 여럿이 아니면 두엇이 함께 가서 서로 위치를 확인하느라고 안개속에서 외장쳐 부르는 것이 일이라.

다래순이 제법 길어나면 다래순도 연한 끝만 잘라다가 무쳐 먹고 산천에 풀잎이 만발하여 풀색이 짙어지면 수리취 개떡 쪄 먹을 때가 되거늘 수리취는 잎모양은 참 취와 같으나 잎 뒷면이 쑥과 같이 뽀얀 털이라 이 수리취를 잎파리만 뜯어다가 그늘에 반비득 말려 비비면 가루는 떨어지고 실같은 흰줄이 생기니 이것을 살짝 데쳐 쌀을 불려 확독에 갈거나 도고통에 같이 찧어 개떡을 만드는거라. 이때에는 설탕이 귀한 것으로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것이니 삭가리를 넣고 개떡을 손바닥 만끔씩 만들어 가마솥에 겅그래 질러 쪄내는 거라. 쫄깃쫄깃 그 맛이 기막히다.

아무리 지천으로 산나물이 있다하더라도 잿말이나 구성물에 없는 나물도 있으니 그것은 곧 돈나물이라. 이것은 생명력이 아주 강하고 뿌리로 번져 나가는 것이라 밭가양에라도 돈나물이 나기 시작하면 아무리 걷어내어도 습지지 아니하고 곡식밭에 뻗어드는데 무슨 영문인지 잿말 근처에는 돈나물이 자라나는 흔적조차 없으니 보릿고개 된장에 밥 비벼먹을 적에 손쉽게 뜯을 수 있는 돈나물을 잿말 사람들은 월맹이까지 올라가 뜯어오는데 이것을 뜯어오는 것은 아예 넝쿨채 자루에 몇 자루씩 걷어 넣어 지고 오거나 아니면 고개가 자라 모가지가 될 것 처럼 이고지고 오는데 이렇듯 힘들여 걷어오나 다듬어 먹을때는 온 동네 아낙들 다 불러 모으고 제각끔 먹을 만끔씩 다듬어 가져가는 것이 이곳에 후한 인심이라.

보리 누름에 보리밭 가상에 꽃 핀 돈나물 연한 대궁만 뜯어다가 밥물 한종지 받아넣고 싱건지를 담으면 그 맛이 시원하고 상큼하기 말할데 없다. 풋 것 보다는 약간은 쇤 듯한 돈나물 싱건지를 잿말사람들은 짓국이라 불렀으니 그렇듯 나물을 뜯어 먹어도 서로 품앗이 하듯 이번에는 내가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해온 것을 얻어먹는 품앗이의 순환이 이루어 지는바라.

잿말 아니 임실 그 어디에든 무수히 절로 커나는 풀과 나물들 이것은 알고보면 약초 아닌 것 없으니 하다못해 골짜기 어드매 가시덤불처럼 흐드러지게 넝출을 올리는 한삼 덩굴도 칡덩굴 인동덩굴 으름덩굴 댕댕이 덩굴도 약이 되느니 들에서 곽란이 나면 댕댕이 덩굴을 씹게하고 손을 베이거나 벌에 쏘이며는 칡넝쿨 한 줄기 끊어 거기서 나오는 즙을 바르거든 피가 날때는 지혈제로 벌에 쐬거나 쐐기에 쏘였을때는 그것이 곧 해독제라.

쓸모없는 명감 나무도 그 열매 붉은 것은 가루 장만하여 떡고명 붉은 색으로 쓰되 연기없이 타는 나무가 명감나무라. 음식의 색을 낼적에 검은색은 아그배를 말려 가루장만 한 것이니 이이들은 자연에서 얻은 그 모든 것을 소중히 삶에 이용했던 것이다.

너삼이라 부르는 너삼대는 쓴 너삼과 단 너삼이 있으나 이곳에서 나는 것은 거의가 쓴너삼으로 소가 체하거나 여물을 먹지 않고 떼식거릴 때 너삼의 뿌리를 캐어 짖찧어 그 물을 병에 넣어 한 사람은 코뚜레를 잡고 한 사람은 소의 아구를 벌리고 먹이는데 쓴내가 하도 심하여 먹이는 사람도 창자까지 걷어나오는 괴역이라.

더러 사람도 먹지마는 사람은 너삼대보다는 쑥을 찧어 장독에 내다놓아 밤 이슬 맞혀 아침에 먹거나 익모초를 찧어 밤 이슬 맞혀서 먹었으니 이른봄 배고픔과 땅띠기에 지친 심신을 일으키는 보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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