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29]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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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29] - 김여화

 

 


 

제목  [29회] 마비막 설
등록일  2001-10-15
마지막 설 마지막 설


갑진년이 저무는 섣달 그믐 그밤이 지나면 을사년이 시작되는 정월의 초하루다. 때는 65년 2월 1일 일진은 정해를 맞는다.
잿말사람들은 섣달에 한전 사무소로 삼삼오오 몰려가 그곳의 휴게실을 점령하고 하룻밤 묵어 연일 농성을 벌이고 열 두가지의 조건을 붙여 데모를 하였더니 경찰관들을 동원 강제 해산 시키니 주모자를 색출한답시고 조사를 벌이고 뒤숭숭 한 상태에서 새해를 맞는 감회는 남다르고 이제 이곳 잿말에서 차례를 올리는 것으로는 마지막이다.

실로 500여년 잿말이 생기고 나서 부터 평화롭고 정말로 아름다운 국사봉과 강
과 넓은 들이 있어 풍요로웠던 구성물 앞 마당벌 구름들이 이번 설을 쇠고 나면 미구에 해가 가기전에 수장되리라.

저 멀리 묵방산 넘어 자시라지는 해는 잿말 구성물 사람들의 이렇듯 의미깊은 아쉬운 쓰리고 애리는 가슴을 알고나 있는지 무장무장 저홀로 묵방산을 넘고 있다.

북쪽은 깍아지른 낭벽에 남서쪽은 펑퍼짐한 것이 퉁실퉁실한 강정날, 둠벙쏘 바로 위에 옮겨진 양요정은 잎삭떨군 나무들이 두팔을 올려 산날망에 도열하고 화려한 문양에 윗 중방마다 청용이 꿈틀거리는 듯 연꽃이 피어나는 듯 푸르른 소나무와 호랑이가 포효하듯 그린 양요정.

정유년 광무원년에 쓰여진 三州 李敬, 鄭俊夏의 詩판이 걸리고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는 이건비가 세워지고 대목을 맞이하여 잿말 장터는 더욱 싸구려를 외치는 장사치들의 목소리가 높아간다.

서커스단 가설극장이 갱번에 들어서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거둔댁네는 모처럼 외아들 기수가 설을 쇠러 들어와 있고 철질했던 들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진필과 기수 부자가 떡메 치는 소리도 요란스레 모처럼 사람사는 집 같이 활기가 넘친다.

저녁 까치가 뒷켠 밤나무 가지에 앉아 코끝을 에이는 찬 바람을 가르고 있다.
"꺄깍 꺄깍 꺄꺄깍"
수천댁이 들어오다가 부자가 떡메를 치고 있는 정겨운 모습을 보면서 반긴다.
"기수야 까치가 너 왔다고 히쌌는다 이? 아이구 우리새끼 총각 다 되야버�네"
"큰어머니 어서 오세요. 큰 아버지도 안녕하시지요?"
"그려어 오늘 왔냐? 공부허니라고 얼굴이 쪽 빠졌는갑다 이?"
"아니요 엘라 살이 쪘는디요?"
"머시 살이쪄야 너그매가 속 상�겄다. 아이고 지랄"
"성님 어서 오시기라우. 멋조까 장만 허�어요?"
"이이 적 조께 부쳐놓고 나오는 질이고만"
"긍게 지가 머래요 적도 기냥 여그서 붙이갖고 가시랑게"
"아이고 우리도 조상 지신디 기나마 설이 마지막이 될랑가 모른디 집이서 꼬신 네 풍기야 가신덜이 감읍 헐 것 아닝가?"

"참 성님도 어서 들어오시서 떡이나 맨들으시야 겄어요 기수는 가서 큰아버지 헌티 인사 디리고 인절미 따솨서 잡수게 뫼시고 오니라"
"아니 내가 댕기오마 기수는 느어매랑 같이 있거라이"
"아이고 서방님이 먼 일이시디야? 시상의 오늘은 어찌 저렇게 자상허싱고 이"
"저희 아부지 본래 자상허신디요"
"그려 ? 아이고 나는 첨 봤다야"

진필이 기수대신 수천양반을 데리러 나가고 나자 수천댁은 진필의 태도에 놀라고 또 놀라 자꾸만 진필이 돌아나가는 고샅을 돌아다 본다.
"아이고 성님 눈빠지시겄네 고샅 치다보다가"

기수가 가서 수천댁의 팔을 붙들어서야 그네는 기수에게 이끌리듯 마루로 올라온다. 마루에 빨아서 던져둔 걸레는 꽁공 얼어 장작개비 같이 발 끝에 걸리자 저만끔 마루를 미끄럼을 타고 방에는 안반이 놓여있고 콩가루를 수북히 뿌려둔채로 안반위에 찰밥을 부어 놓는다. 거둔댁은 반절은 으깨어진 찰밥덩이가 소복이 앉고 그 위에 다시 콩가루를 붓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납작하게 만들고 있다.

"그려 기수야 떡 먹게 앉어라 이? 참 맛나겄다. 전주서 핵교 댕깅게 좋쟈 ?"
"아니요? 엄니가 히주는 밥도 못얻어 먹잖이요"
"그려 그거사 아무리 잘 히주어도 하숙밥이 너그매 히주는 밥기다 대겄냐? 그 나지나 인자 여그서는 마지막 설 쇠랑갑다."
"글지요 댐이 12월에 준공헌대니까 음력은 설 쇠기 전이지요"
"그려 너그집은 저그 쌍암리로 욍긴다고 안 허냐"
"예 그리요 엄니?"
"그려어 니 맘에 들게 너그 아버지가 텃밭도 큰 놈 사�단다"
그네는 입을 함박꽃 처럼 벌리고 웃는다.
하지만 기수의 낯색은 그리 반갑지 않은듯

"몇 평이나 되간디요? 글먼 전주다가는 집 못사시겄네요?"
"아니 너그 하숙집 말여 그거 살라고 허싱갑더라 너그 매양이 사 두라고 헝게 벼 앞으로 갠찮디야"
"그리요? 먼자께 매양이 와서 글더만요. 저도 들었어요. 곧 철뚝 욍긴다고 허더만요"
"그려 그렁게 기수 니가 불편시러도 참어야 혀 알었지?"
"저야 불편히서 글간디요? 학교 가까운디"
"안적 몰르겄다만 너 아버지가 무신 생각이 있으시겄지 돈 나온다고 히야 머 얼매 되간이? 너그 큰 매양이 빌리간 돈 준다고 그렁갑더라"
"암 주겄지 쟁인돈 띠어먹겄능가? 앙그냐 기수야? 너 같이도 앙그러겄지?"

"그럼요. 매양덜은 모다 양심적이잖이요."
"긍게 너그 오매가 복 아니냐? 너만 굉부 잘히서 존 각시 얻어서 잘 살먼 � 겨"
"큰 어머니는 공부 잘허먼 좋은 각시 얻간이요?"
"글머언? 그리서 너그오매 심성 착헝게 잘 봉양히라 이? "

거둔댁은 인절미를 썰고 수천댁은 만져 콩가루를 묻히면서 재미가 난다.
"기수야"
"예? 큰어머니 왜요?"
"야야 너는 애인 없냐? 이렇게 큰 총각이 되�는디?"
"아이구 성님은 아덜 보고 먼 말씸을"
"아이고 어쩡가 물어바야 알지 안 물어보먼 이놈이 말 헐 것 같응가?"
"말허먼 멋허고 안허먼 어쩔라간디?"
"이 ? 언지 소리도 없이 오�대라우?"

"거 임자는 씨잘데기 없이 어른이 되야같고 애기 보고 헐 소리여?"
수천양반이 들어오다가 수천댁을 바라보며 핀잔을 주고 거둔댁은 웃는다. 기수도 별로 싫은 기색이 없이 웃자
"어 요놈보게 참말로 있능갑다?"
"큰 아버지 건강허세요?"
하면서 일어나 꾸벅 절을 하는데
"절이 그게 무어냐 정중히야지"
진필이 이번에는 한마디 하면서 들어선다.
"죄송헙니다. 큰아버지"

기수는 다시 일어나 수천양반 한테 절을 하고 옆에 앉아 있다.
"낼 아적으 지양모실 밤이랑 치고 히야지"
"아이고 이따가 허먼 되지라우"
수천댁이 진필의 말을 받고 거둔댁은 접시에 떡을 담아 밀어 놓는다.
"우선 떡이나 잡솨요. 머시 그리 급허요 이?"
"그리요 서방님은 머시 급허시오? 기수 애인 있능가 부텀 물어봐야 헌당게"
"참 인역은 씨잘데기 없는 소리를 히쌌능가"
수천양반은 수천댁을 나무라며 눈을 흘긴다.
"기수 너 여자 친구있으먼 이실직고 히라. 그리야지 큰오매가 너 잠재우지 아 니먼 오늘밤 안냉기시겄다."

마침내 거둔댁도 거들고 만다. 그네는 수천댁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끝끝내 얼러
볼 것이라는 짐작에서다.
"없어요. 공부허니라고 언지 여자사겨요"
"아이고 이놈 거짓말 허능 것 조께바 너 니 나이가 �이냐?"
"열 일곱요."
"근디 이놈아 니 어매 말처럼 새기는 처녀가 없겄다 이?"
"아이고 큰 어머니는 왜그러세요. 진짜로 없당게요"
"어라야 원어니 없겄다. 우리 민수란놈은 너보다 더 애릴때부텀 가시내덜 쫓아 댕기더만"
"있기는 있는디 장개갈 여자는 없어요"
"이? 장개는 일찍 갈랑갑네? 내가 너그 아버지 너그매 쫓아댕긴 야그 히주랴?"
"예에?"
수천댁의 말에 진필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니 수천양반이 혀를 끌끌 차면서
"기수야 큰오매 �히 앉지마라 물들어 못쓰겄다. 인자 망령까지 났능갑다."
"큰 어머니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허�는디요?"

기수는 수천댁의 팔을 잡아당긴다. 수천댁은 말을 해줄까 말까 거둔댁의 눈치를 살피고 오랜만에 두 집은 모여 앉아 살갑게 웃음꽃을 피운다.
수천양반네도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서 살고 있는지라 막차로나 올 것을 기다리며 거둔댁 인절미 만드는 것을 거들어 주고 있다. 그렇듯 갑진년의 세밑은 무장 깊어 한해를 사위며 스러지고 있다.

수천댁과 수천 양반이 막 차 들어올 때 쯤 차부로 나가고 거둔댁은 여전히 정지에서 내일 아침 차례 지낼 나물을 볶거나 음식을 준비한다.
콩나물 시루도 정지 부뚜막에 얼지않게 올려놓고, 엊그제 여럿이 어울려 만들어 나누어온 두부 몇 모 옹백이에 담아 물을 채워두고 정지 아궁이 앞에서 해우를 굽고 앉아있다. 방에서는 도란 도란 기수와 진필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가끔씩 크게 웃는 소리도 들린다. 전에 없이 진필은 기분이 좋은거라고 거둔댁은 짐작한다.

갑진년은 그렇게 이울고 있었다. 국사봉을 비롯한 호암산 강정날 나라산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칡흙 속에 집집마다 훤희 밝히는 잿말, 저 아래 간좌촌에도 섣달 그믐을 맞은 불빛이 어둠속에 가물거린다. 불과 몇 시간 후면 역사적인 대 운암댐이 준공도 되기전에 수몰되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그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는 꿈도 꾸지않은 참상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기수는 수천댁과 수천양반이 차부로 나간뒤에 살금 살금 뒤를 따라 나간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다. 아래뜸 인선이가 막차로나 올려는가 싶어서이다. 인선, 그녀는 성심여고에 들어가 이제 설쇠고 나면 2학년이 되는데 이따금 전주에서 만나는 길이 있어도 서로 말도 못 붙이고 마음만 설레이던 그러면서도 언제나 기수는 그녀가 학교가는 길목으로 먼저 나가 기다리곤 했던 소녀다.

정말이지 수천 큰어머니 말씀대로 애인이라고 해야 할는지 기수의 풋사랑은 그렇게 싹트고 있었다. 섣달 그믐날이 월요일로 학교들이 거의가 정상수업을 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가 낮에 차를 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막차로는 오리라. 낮에 오면서 인선네 집을 기웃거려 그 앞으로 돌아올 때 까지도 인선이는 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녀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이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그래 큰어머니 말씀대로 그녀는 기수의 애인일지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에 간직한 이성에 대한 그리움 기수는 풋사랑에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 말을 건네지 못할지라도 그저 바라보는 것 만도 가슴이 뿌듯하고 저려오던 인선에 대한 기수의 가슴앓이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서 살아온 내성적인 기수의 눈에 생기있고 발랄하던 인선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녀의 말수는 뚝 끊겨 버리고 어쩌다가 버스안에서 만나더라도 아는체를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작은 입술을 꽉 다물어버리고 무심히 차창밖을 내다보던 인선은 찬바람 맞으며 청초하게 피어나는 흔하디 흔한 구절초 희디 흰 시리고 가녀린 들꽃이었다.

인선의 눈빛은 해맑았다. 봄비 맞은 산천 초목들의 청쾌한 잎삭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그의 아버지는 꿈과 미소도 함께 모두어 걷어가 버린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런 인선을 생각만 하면 기수는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은 아픔이 밀려왔다. 인선이 국민학교에 다니던 가을 그녀의 아버지는 강정이쏘 앞 모정 정자나무에 목을 매달았다고 했다.

기수는 그 사실을 가을 농번기 방학으로 잿말에 와서야 알았다. 가슴이 찡하게 차디찬 피가 흐름을 느겨꼈었다. 아버지 진필과 거둔댁은 인선을 불러 중학교라도 가려면 남의집을 알아보마 하고 인선의 뜻을 묻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인선이 돌아가고 나서야 어머니 거둔댁으로 부터 인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듣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녀의 가난은 중학교에 다닐 처지가 되지 못하자 기수의 큰 누이네 먼 일가집 독실한 천주교신자의 집에 들어가 잔심부름과 함께 수양딸로 보내지게 된것인데 그곳에서 성심여고에 주선을 하여 이제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라. 인선은 어려서부터 무척 기수를 따랐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는 웃음기가 가셨다는 것도 기수는 늘 마음 아파했다. 어쩌다 만날때마다 인선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뿐 말수를 끊어 버렸었다.

어쩌다 오목대 근처의 그녀가 살고 있는 골목으로 나가 기다리다가 심부름 다녀오던 그녀를 만나는 것이 기수의 유일한 낙이었더니 최근에는 날이 추워지자 길에서 만나는 것 조차 어려워지고 말았던 것이라.
그녀가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한다는 소식은 잿말에 와서 들은 바라. 동네방네 딸내미 공부 잘한다고 떠들어 댄다던 말을 아버지 진필이 하숙집으로 와서도 전 하였고 잿말에 오면 거둔댁이 그러하였으니 기수는 한 번도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한 번 만나면 꼭 물어보리라.
"너는 공부해서 뭐가 되려느냐"고

기수는 차부의 한쪽 모퉁이 그녀가 지나갈 길목에 서 있다. 저만끔 수천 큰어머니가 아들며느리의 짐 꾸러미를 받아들고 함박 웃음을 짓고 계신다. 기수는 큰어머니를 피하여 돌담 뒤로 몸을 사리다가 수천댁이 손주들의 손을 잡고 어둠속에묻히자 다시 나온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마지막 인선이 힘에겨운 걸음으로 기수가 서 있는 고샅쪽으로 오다가 어슴푸레 어둠속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우뚝 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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