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28]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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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28] - 김여화

 

 


 

제목  [28회] 물돈
등록일  2001-10-15
물돈


진필은 사람들이 떼를 심었던 한 삽 한 삽 세심이 살피면서 사람들이 모두 다 내려간 뒤에도 혼자 앉아 구름들을 내려다보고 앉아있다. 구름들이 들판은 외안날을 돌아 흐르는 강물이 책이살이 턱 밑에 쏘를 만들면서 돌아나가고 내마앞 공사장에서는 성냥갑 같은 작은 차들이 오가고 있는데 진필은 외안날에 물이 찬 다면 하고 어림짐작으로 가늠한다.

저 만끔 독재, 뾰족바위 입석 바위라고도 하는 백련산이 오른팔을 쭉 뻗어 한손에 뿌리다만 흙이 쌓인 듯한 외안날 독재를 연결선으로 외안날이 국사봉아래 용당굴 앞에 한 덩이 떨어진 듯 물이 돌아 흘러가는 모양은 다도해가 저러려니 그는 남해의 섬들을 연상하고 앉았다.
"안가실 라요?"
"으 왜 여직 안내리가?"
"지는 기냥 어르신 따러서 내리갈라고요."

대장장이 김씨다.
"어르신 참 욕뵈�어라우"
"무신 내가 아니먼 누가 혀?"
"그렁게나 말씸이요. 지도 인자 발 뻗고 자겄고만요. 언지나 갈담양반 두 내오 분 걸려서 끌둑 깔둑 �었는디요"
"고맙네야. 돌아가�을 때도 고상 많이 �는디 이?"
"지는 고상 아니당게요. 지가 당연히 모시야지요. 지가 몬자 건방구지게 허자고 헐수가 없어서 어르신 말씸 나시더락 지달렸고만요."
"그렁게 고맙다고 안 헝가? 그나지나 자네는 물돈 나올거 얼매나 된다고 허 덩가? 어�거나 돈 헤평대평 쓰지말고 나가서 전주다가 오막살이라도 사두도록 혀 알었지? 거 누구같이 주막집이다 퍼주지 말고 글고 거간꾼 헌티 넘어가지 말어 그놈덜 허천났응게 돈 있겄다 무조건 사 딜이는거여 돈 필요허먼 우선 내 집으서 갖다쓰고 난중에 갚고 알겄능가? 어리석은짓 허먼 펴엉생 고생여 자식 새끼꺼정"

"예 잘 알고 있었고만요. 그란히도 몬자 수천 아자씨가 그러시더만요. 돈 필요 허다고 딱지 팔아먹지 말라고요."
"겄도 팔아먹게 생�으먼 팔어야겄지만 어따 모닥그릴 때 아니먼 허지 말라는 말이지"
"아매 지덜헌티 나오는 물돈은 확실허지는 않지만 대강 넘덜 것 보아서 계산히 봉게 15만원은 나온다고 허더만요."
"아니 그보다는 더 될거라고 여기는디? 왜냐허먼 평당 물돈 보상액이 있응게 그렇고 또 자네는 식구가 더 많지 않은가? 글고 유실수도 자네는 넘보다 많 고?"
"식구야 머 말은 다섯까지가 세필지 담서요? 그놈의 밤나무 보상은 어찌케 까 다롱가 참 더러서 말도 못헌당게요? "
"그렇지 다섯까지는 1정 5반이고 다섯이 넘으먼 2정잉게로"

본시 논을 필지로 계산할 때 200평짜리 엿마지기가 한 필지라. 허나 산골짝 논은 150평짜리도 한 마지기라 했고 또는 더 많아도 마지기로 계산 하는데 이때에 잿말에서의 한필지는 1,200 평을 말하는 것이라. 그러하니 1정 5반이라 해도 4천오백평으로 까락까락 친다면야 정확하게 스물 두 마지기 반 이지만 세 필지를 1정 5반이라 한 것이라.

필지 계산 하는 것 조차도 들쑥 날쑥 게다가 계화도에서도 필지 계산이 1,500평 한 필지로 치는 경우도 있어 반월 염전과 달랐느니 애초에 물돈 보상을 할 적에 본인이 가고 싶던 않던 어떤이는 운좋게 반월염전 쪽으로 어떤이는 계화도로 이러하여 계화도로 1952세대, 동진 폐유지로는 287세대 반월 염전에 120세대가 배정 된 것이라.

하여 전체적으로 볼때는 579억원이지만 관공서 등을 뺀 일반 주민에게는 20만 팔천원 배정되었던 것을 실제로 지급 되는 물 돈은 15만원에서 17만원에 불과 한 상황이라. 딱지의 값도 천차만별 급하며는 일 만원짜리 일 만오천원짜리 일 만팔천원짜리 더러는 삼만원이라.

이 딱지는 십년거치 30년 상환으로 책정되었다. 딱지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주 정착예정 지정서 라는 이름으로 발행을 하였더니 나중에는 계화도 간척지 일시 경작지정서라 하여 다시 농지 분배증 으로 더 세월이 흐르매 간척지 분배농지 부담금 상환증서로 바뀌어 진다.

뿐만아니라 자유롭게 스스로 이주를 한 집은 전체적으로 볼때는 82세대에 불과하고 강 주변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345세대이니 정부에서 아무리 자유 이주를 종용한들 터전을 잃고 나가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간좌태 거 머시냐 가가 한 번 딱지 팔으라고 왔더만요.?"
"그러게 없는놈덜 딱지 거져 사가지고 떼돈 벌겄다는거 아닝가? 안적 계화도 땅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지우 정착 예정자 지정서를 갖다가 그새를 못참어서 "
"아, 지금 그거 벌쌔 한 장으다 만원 받고 판사람도 있대요. 머 비싸다고 히야 만팔천원인디요"
"인자 난중으는 솔찮히 올라갈 것잉만 어찌거나 내놓지 말고 갖고 있어 들녘논 일정 반이먼 작은가? 어떤놈은 그런담서? 내가 돈놀이 헐라고 딱지 못팔게 허 고 빚준다고?"

"그렇게 말허는 사람도 있기는 헌디요. 그대신 어르신은 넘보다 이자를 질로 싸게 받잖이요? 아 요새 4부가 어딨어요? 넘덜은 6부,7부도 받는당만요"
"거 간좌태서는 7부 안 받는가? "
"어르신이야 머어 꼭 빚으로만 허�간이요? 금방 갚으먼 이자를 안 받으�담서 요?"
"아이 머 매칠내로 갖고온디 어뜨케 받는당가? 언지 내가 고리대금으로 살었가 니?"
"긍게 간좌태서는 어르신보고 욕헌당만요? 사람덜이 자기헌티 돈 안가져가고 어르신헌티 꾸어다 쓴다고라우"
"그렁게 나는 돈이 없잖여 꼭 도와 줄 사람은 못 도와 주는거이 허다허지 머 나사 내것 한 장이먼 되�지 어느세월에 거그가서 농사지여? "
"어르신 지가 그 돈 갖이먼 전주가서 산꼭대기 쬐꼬만 집 하나 못 사까라우?"

"글씨 그까짓놈의 돈가지고 살랑가 몰르겄네 근디 한손에 주얀디 어디 그게 쉬운가 집도 집 나름이지만 저그 노송동 산꼭대기라도 허술헌놈 하나 사 서 난중으 고치감서 살먼되지 안그렁가?"
"글도 쌀이 40짝이여요. 지는 잘 몰릉게로 어르신이 조께 알어봐 주�으먼 어 쩌까요? 사실은 쌀계 타서 노아둔 놈이 조께 있기는 헝만요 "
"그려 그건 내 알어봄세 우선은 암 말도 말고 있어. 때 되먼허게끔"
"소문은 어르신네는 전주다가 집 샀다고 허더만요."
"집을 상게 아니고 기수란놈 땜시 하숙집을 전세로 히놓았지 머 그거야 얼매나 되간디? 전이 나도 계쌀 타서 큰 사우 도와주고 머이 있간디? 그란히도 시방 그 하숙집을 판다는 말이 있어서 내 곧 전주로 나갔다 올라고 헝만 "

"예에- 지가 때 맞추어 잘 말씸 디�고만요?"
"거 사실은 딱지값을 갔다가 30년동안 상환한다고 되야 있는디 그놈의 것도 말이 30년이지 자식대까지 빚 갚어야 할 형편 아닝가?"
"근디 그 거치헌다는 건 멀 말허는지 지같은 놈은 알 수가 있어야지요? 요번날 이 면장이 그러드만요. "
"이 면장이 왔던가? 어찌 왔으까 이? 그것이 10년동안 거치헌다는 것은 예를들 어 10년간은 이자도 없이 기냥 지어먹다가 10년 뒤부터 그렁게 11년째 될 때 부텀 30년동안 갚을 것을 똑같이 균등할로 해마다 갚아나가는걸 말허는 거여"

"예에 인자 말씸 알어 듣겄고만요. 그렁게 난중의 논 값을 오백만원 허면 그걸 30년 갚을 것으로 똑같이 정해서 해마다 낸다는 거고만요?"
계화도 오포 서외리 이주자들은 236세대 파월장병세대 5세대가 배정이 되었더니 30년 간에 걸쳐 입주자 기채상환이 부수 됨으로서 사람들의 이주 의욕을 저하 시켰는데 본시 계화도의 총 시공비 2십9억원의 30퍼센트에 달하는 9억원을 이주자들이 떠 안게 됨으로 3,050정을 대상으로 한 기채상환 부담금을 30년간 상환하도록 예정되었다.

이는 공시비의 3할을 입주자가 부담하는 것으로서 간척공사의 원칙에 의한 것이었는데 평당 부담금으로 환산하면 617원내지 677원의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이들의 부담은 기채상환금 외에 수리조합비 까지 함께 내야하는 형편이었으며 수리조합비는 농지세 보다 많은 액수로 이들 의 앞날에 더욱 검은 구름이 된 것이라. 훗날 오포지구의 수몰민 9세대를 제외하면 227세대가 전매자로 밝혀진다.

"그렇지 그렁게 그것이 논 세필지 물려주는 거이 아니고 빚을 자식헌티 냄기주 는거다 그거여"
"글먼 차라리 딱지를 팔어서 멋을 장만허는게 낫지 않으까요?"
"지우 쌀 다섯가마니 받고 넘겨? 시방 지어 먹는놈을 생각히바 아까서 허겄능 가? 그리는 못허지 "
"허기는 우선 먹기는 꼬감이 달다고 양식도 없는디 그까짓거 종이때기 갖 고 있으먼 멋허겄어요? 우선 보리쌀이라도 팔어 먹어야지요 "
"안적 계화도는 바다로 기냥있단디 그놈에 바다를 언지 막어서 염분을 울궈내 고 농사를 짓겄능가 하대 맹년이지. 앞으로 5년은 더 걸리야 헌다고 봐 나는 한 오년 참고 지내먼 세 필지 그놈 가지먼 안 살겄능가? "

"곧 물 찬단디 아이고 그때꺼정 살아남기나 허겄어요? 당장농사 못지먼 멋먹고 살겄어요? "
"그러게나 말이네 그때 꺼정이 문제여. 그리도 김세완 정도는 나슨펜이여 아이 고 저 존놈의 들판 아이고 아까라 "
진필과 대장쟁이 김씨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일어나 갈공절을 내려온다. 저아래 내마터 앞에서 모래를 퍼 나르는 트럭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용동쪽으로 돌아 내려 가고 있다.
"아 이 면장은 왜 먼자 갔다가 다시 왔대라우?"
"그러게나 말이여 맨날 왔다갔다 험서나 먼 일을 허겄능가?"
"글도 몬자 배 면장보다는 우리 운암 출신잉게 났지 않겄어라우?"
"그렇겄지 그나지나 그놈의 보상금땜시 맨날 우리가 앙앙그리기는 헌디 어디 그놈의 것이 그리 쉬웅가? 자덜은 한 번 샀응게 또는 못주겄다 그것 아닝가?"
"말은 상운암으다가 소재지를 욍기먼 거그 양발이 앞에도 뚝을 막어야 헌담서 요? 더러 집을 짓는 사람도 있능갑더만요"
"자게 행펜대로덜 헝게 여유 있는 사람덜은 짓고 있는갑더만 면사무소도 짓고 있다고 안 허덩가?"

"그런 관 건물은 쉽게 허겄지만 집짓기 밥짓기라는디"
"그렁게 나도 걱정이여 집이 새 것이라 기냥 물속으다 넣기도 너무다 아깝고 조부님이 그 집 짐시롱 참 고상 허�는디"
"뜯어다가 욍기시먼 될거고만요. 대목쟁이 불러서 상애허먼요."
"거 대목쟁이 아는 사람있으먼 하나 �고와바아 이?"
"그러까요? 청웅으다 기별 히야 겄고만요. 전이 임실서 만났더니 넘덜네 집 욍 기고 댕긴다고 허는 갑더만요."
"더러덜 집 짖는 사람도 있는갑더만 "
"집이라고 까지 허겄어요. 칠성이네 작은집도 도로와야 헐랑갑다고 헌당만요.
"간지가 얼매나 된다고?"
"긍게 못산다고 그러등만요. 팽생을 농사만 짖던 사람이 먼일을 허겄어요."

"긍게 덮어놓고 나간다고 헐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어와도 논이 있는가 밭이 있는가 참 기맥힐 노릇이고만"
"그리도 그냥반은 함부로 해평대평 허던 안허싱게요."
"그렁게나 말여 거그는 유실수랑 보상이 좀 되�을걸? 방이라도 얻을놈은 된다 고 헝것 같은디"
"저본때 선조덜 이장헐 때 왔다 감서 그�는개비요. 히 머고 살게 없다고 여그 서는 지게 질이라도 헌디..."

이때에 잿말의 논 한평은 120 원이라. 쌀 한가마 값이 3,700원 이었으니 물 좋은 논은 쌀 스무짝을 주어야 살 형편인 것을 본래 댐 예정토지는 일제하에서 강제성을 띠고 매수를 했기 때문에 운암강 주변의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어야 할 것을 추가보상이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이농 보상비라는 명목으로 정부 예산을 책정하고는 세대당 15만원 정도를 지급하기로 해 놓고서 그마져 여러차례 나누어 주게 된 것이라.

이때 간좌촌 누구는 딱지를 50여장 갖고 있었는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지인들 손에 팔리고 되 팔리는 돈 있는 사람의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라. 전혀 잿말이나 지천리 간좌터 운암땅과는 연관이 없는 사람들, 전라남도 어느 관청의 사람들은 20여장의 딱지를 소유 했다는 사실은 훗날 확인된 일이라. 그들은 딱지를 헐 값에 사 들여 계화도 간척 사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시 수몰지구의 토지는 일제하에서 댐 확장을 위하여 조선 전업에서 기 매수한 토지로 추가 보상은 안된다는 정부의 입장이었으나 해방후 20년이나 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토지개혁법은 상환농지 분배시 경작자에게 년부 상환토록 유상 분배 하였으나 수몰예정지만은 예외로 그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감수했으니 당연히 정부에서 이주 대책을 세워 달라는 것이었고 정부는 원만한 해결을 위하여 토지가의 반절을 특혜보상한다하여 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나누어 지급 한다고 하였다.

위로경작금과 이농비 산출은 지역별로 3등급로 구분하고 1등급는 면소재지 2등급은 소재지와 인접한 리나 국민학교가 소재한 곳으로 그 나머지는 3등급으로 구분되었다. 하여 입석리는 1등급지구 지천리 사양리 쌍암리 금기리는 2등급 지구마암리 운종리 운정리 월면리 청운리 학암리 신평 가덕리 덕암 용암리가 3등급지구였다.

이때에 정확한 계수의 보상비를 들추어 본다면 감나무는 30년생 한그루에 3,360원 20년 이상은 2,625원이며 대추나무는 최고 2,100원 밤나무는 1,152원이요 복숭아는 315원 배나무는 288원 사과나무는 624원 은행나무는 1,200원 호도나무는 660원 잣나무는 900원이요.

살구는 300원 매실은 300원 모과는 405원 자두는 324원 포도는 420원으로 최고치를 산정해 놓았지만 기실 여기에 맞게 정확한 보상이 되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 이곳에는 주로 감나무와 밤나무정도 였으니 그것도 해 묵은 것을 대략 짐작하여 저 나무는 수령이 몇 년이니 얼마, 이런식으로 했고 묘지 이장에 관한 것도 내용으로는 묘지대 지관수수료 제수용품 목도인부 까지 산출한다고 했지만 산출 기준에 딱 맞는 경우가 드물어 까막눈인 사람들이 태반인 세상에 누가 그걸 까락까락 따지랴 대충 분묘 얼마 감나무 얼마 그리 한 것이라.

이주 보상비라는 것도 화물자동차의 소요 대수를 세어 갑종이라면 화물자동차 3대의 운임 9,000원과 인부 삯과 포장비 3,000원 이러하여 12,000원이지만 갑을병정에 정은 화물차 반대 분량으로 1,500원이니 인부 삯 까지 합해야 2,000원이라. 하여 보상금을 지급 할 적에 위경료 이농비 건물 이전비 이주비 영년작물 이라하여 유실수등 분묘이장비 영업권 개답비 간접 피해를 인정하여 건설과 이주비 위적료를 산출하여 3억 7천 8백 9십만원이다.

하여 62년 건설부는 훈령 5호를 발표하여 댐 건설에 공여되는 토지등 지장물에 관한 법을 공표하여 그 기준을 두었으니 이 훈령을 제대로 지켜 단번에 보상금을 내 주었더라면 간혹 나가서 달리 살 방편을 구했겠지만 이것을 이홉번에 걸쳐 나누어 준거라.

게다가 계화도 간척 공사는 댐 준공이 된 연후에야 진행을 하던 것이 69년에 중단되니 간척지는 이들이 물속에 수장되어 집을 뺏긴지 10~ 15년만에야 비로소 농사를 지을 수 있게되니 그동안 년년이 나누어 주는 물 돈은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아 소멸되고 정작 이사를 가려하니 땅도 집도 없는 빈민이 된거라.

누구는 말하기 좋게 잿말사람들을 일러 오랜세월 울궈 먹는다 하였지만 이들은 땅을 잃고 자식들의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워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돈을 벌기 위하여 월남전에 자원하는 젊은이의 수가 늘었을 정도라. 물 돈은 그렇듯 이들의 애간장을 녹여가며 선심쓰듯 하였으니 나라 시절이 그러하다 하였기로 보상금이 아닌 그것은 정녕 물 돈 일 뿐이라.

티끌만한 건더기 하나 없는 물, 흘러가면 절로 흔적없는 물이 아니던가. 뽀송뽀송 마른 한발에 논 밭과 같은 사람들 그들은 굶주리어 피가 밭으고 먼지만 풀풀 날리는 한발의 전답이 었고 한푼두푼 보상비는 너무 보잘 것 없는 물의 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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