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27]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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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4467&n=27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27] - 김여화

 

 


제목  [27회] 면례-6
등록일  2001-10-15
면례-6

그들 한끼 점심 말고도 양위분 제물 까지였으니 국사봉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시상의 사람들이 하나 더 내려갈 것을 그�다아"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동이들을 내려놓자 진필은 거둔댁을 불러 부지런히 챙기라고 화를 낸다.
"미리 준비를 다 히놓았어야지 때가 제웠잖여"

"아이고 서방님 여그가 좀 먼디요? 뜨건놈의 국 동오 이고 오니라고 사람 죽겄 고만 그러시오? 시장히도 조께 참어야지 어쩌겄어라우?"
"긍게 아적의 물이랑 다 지고 올라가게 �어야지요"
"아이고 다 그�어라우 근디 모지랜다고 허고 술도 모지랜다고 히서 더 갖고 올라오다봉게 그�지라우 어여 잡수게 양반덜 오시라고나 허쇼"

"아이고 참 저냥반은 어쯔먼 저렇게 자기 생각만 허능고 원 첨봤어라우 성님"
"아이고 암말도 말어 서방님 또 홰 내시겄다"

면례 그것은 사실 대 역사라 죽은 사람의 유택 하나 다시 마련하는데 이리 많은 사람이 나서서 부역을 해야 했으니 사실 그러기에 면례를 쉽게 못하는 것이라 그러기에 효자되기 쉽지 않음이라.

점심을 먹고 성분이 마쳐지자 위안축을 읽고 제물을 진설하고 성분제를 지내는데 평토제와 다른 것은 평토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묻고 성분을 짓기 전에 드리는 제사인 것을 성분제는 오늘처럼 면례를 했을 경우 평토제 없이 쉽게 하기 위하여 성분을 하고 제사를 모시는거라.

이제 자리를 옮겨 모시고 새집을 지었으니 걸판지게 한상 차려드려 제사를 모시므로 제사는 기제사와 같이 지내는 것이 도리지만 이렇듯 높은 산에서는 그 준비하기가 어려우니 간단히 삼실과와 굴비 떡, 전과 나물 서 너가지 새우 두부 무 세가지를 넣어 끓인 삼탕으로 맷밥과 국으로 간략한 제사를 모시게 된다. 동네의 어른이 제관으로 묘제 홀기를 들고 박서방이 집사가 되어 제사를 모시는데 이제 갈담양반 내외는 버들골에서 갈공절 넘어로 이장을 마쳤으니 때 맞추어 진필은 다시 증조부의 묘소와 더불어 사당 정남사우도 그리할 것이매 면례란 이리도 크고 힘든 일이라.

정남사우는 본시 죽천 이국로선생과 진필의 선조 긍재선생 1689년 숙종때 진사등과를 하신 분으로 희안재 선생과 긍재 선생의 아들인 구호 최익성 선생은 1787년 영조 3년에 진사에 합격 하셨던 분이며 1754년에 영조 30년에 임실 현감을 지내신 록동 임성주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으로 고려말에 정남대장군 최 칠석 장군의 사당이라.

태조가 조선을 세우매 칠석선생은 전주로 내려와 은거하니 이태조께서 친히 칠석 선생의 고려말 그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하사금을 내려 오목대에 정남사(征南祠)를 세워 보존케 하셨지만 선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버리자 그 후손과 유림들이 국사봉 아래 입석리에 사당을 중건하고 마을의 사표 오현과 함께 모셨던거라.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훼철당하니 그나마 후에 다시 조촐히 중건 하였던 것이 또 한번 옮겨야만 하는 비운을 맞은거라.

이에 잿말 최씨 문중에서는 이곳에 배향된 세 어른이 계시매 강당골로 위패를 모셔 단을 짓기로 하고 강당골 위쪽 국사봉 턱 바로 아래 단을 짓기로 한 것이라. 위패를 모실 적에는 밤나무로 재질을 사용하고 큰 말동바우 아래 모시는데 그 옛날 이곳에는 해 묵은 백일홍나무가 서 있었다. 이곳이 강당골인 것은 학문을 가르치는 강당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굴 두언터기는 본시 진필의 조상님들의 세거지로 시제답은 물론 제각이 있었으니 비록 진필네만 그러한 것은 아니고 이때에 조상의 산소를 이장하는 것도 동네 굿이라. 오늘은 이집 내일은 저집 하는 식으로다 날이 잡혀서 대장장이 김씨는 날마다 쉬는 날이 없을 만큼 바쁜 동짓달이다.

저 아래 거뜸이 맞은편 모지굴 앞에도 마찬가지라. 산꼭대기 오봉산 턱 밑으로 올라앉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모지굴을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은 이사가는 사람들과 반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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