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18]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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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4456&n=18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18] - 김여화

 

 


 

제목  [18회] 맴씨,솜씨,맘씨는-4
등록일  2001-10-15
맵씨,솜씨,맘씨는-4


"아이고 그리도 양반덜이 가먼 안 근대라오. 잘 갈쳐주기도 헌다드만"
"머 양반이라고 그러겄능가? 혹시나 머 철사라도 하나 집어가껨시 그럴터지맹"

"아니라오. 거둔양반 보고 난중으 물어 뵈겨요. 그 어른도 가 뵈�능갑더만"
"글씨 몰러, 생전가야 어디 갔다 왔다고 말씸을 안 허싱게"
"안적은 갠찬겄지만 내년 농사 짓고는 우리도 집을 욍기던지 아니먼 이사 나갈 준비를 히야 헌다고 글더만요."
"그러게나 말이여. 이 존집이 다 물 속으서 썩겄구나 생각헝게 우리같은 여자 덜은 머 상에라도 허겄능가 멋허겄능가? 기냥 아깝고 원통헐뿐이지"

"거뜸이 어르신은 이 집을 뜯어서 욍긴다고 허싱갑더만요? 두언동 쪽으다가 요."
"한번 운을 띠시길래 나는 안 들은 척 �어 내가 알어서 별 뾰족헌 수도 안날 거고 그거 욍길라먼 대목쟁이가 � 달 살어야 허고. 머 고대로 욍긴다고히서 쉬운일 잉가?"

"그리요. 양반덜이 알어서 허시겄지요. 저본때 얼핏 들응게 맹자아부지 보고 내 년 봄에나 내년 봄에나 그리야 헐랑갑다고 허시길래요. 양요정도 욍긴대요."
"그까짓놈에 보상금 얼매되지도 않은걸 년년이 나누어서 준다먼 멋하나 장만허 기를 �능가 어쩌겄능가"

"그리도 아지매네는 본래 땅이 많응게 좀 낫겄지요. 지 같은 것덜은 참말로 푼 돈빼기 안되야요."
"그만큼 손해도 많잖응가? 그으 존놈의 구름들이 밭이랑 용당굴 논 어디가서 렁것 다시 사겄어? 계화도 것은 당장은 염끼 땜시 나락도 못심는디야. 대처
짜서 나락이 살겄능가? 조상님 산소도 욍겨 모시야지 헐일은 좀 많응가 아이구 시상으"

"긍게요. 누가 글더래요. 서방이 물 돈 나온놈을 조께 썼던 모양이요. 책이살이 가서 둥굴어 버리야지 못산다고요."
"긍게 그놈의 주막덜이 많응게 탈이랑게 무신 놈의 약장시 굿은 맨날 들어오는 고 돈 조께씩 받은거 다 발라 먹을라고 그러는거지"
"긍게 말여라오. 내가 지 영감보고도 그�고만요. 주막가서 술마시지 말라고요. 얼릉얼릉 나락 �으고 메주도 끼리야 허고 후딱후딱 허고 이장이랑 히얀다고 요. 지도 고년 대사만 치루먼 후딱 메주 끼리고 꼬창도 담어 뻐릴라고요. 지껏 후딱 히놓고 거덜어 디리께라우."

"그려 부지렝히 허고 그리야지 맨날 박서방네 신세만 지네"
"아이고, 거뜸이 아지매도 그런말씸 마시기라우. 지가 맨날 신세지지라우. 모다 얻어다 먹고 지가 기냥 히 디리간디요? 기냥 히 디린다고 히도 품삯 쳐서 주심 서나 엘라 지가 천번 만번 절히야히요."
"내가 부처님이간디? 산 사람헌티 천번만번 절히여?"

"아지매 꼬깜 말여라오. 안적 덜 말러갖고 분도 안 낳넌디 어쩌까요? 이렇게 날이 빨리 날종 알었으먼 더 먼야 깍을 것을... ... "
"참 그것이 어디 때 맞추기가 쉬운가? 서리좀 맞은뒤에 깍어야허고 조께 늦으 먼 물러 번지고 만약으 깍어도 어지오늘 비가 너무다 옹게 또 시커멓게 되�잖 여? 인자 자꾸 늦어서 깍기도 에룰것여"
"분은 안 났어도 햇 것잉게 기냥 써야겄지요?"
"그리야지. 가실에 대사 치루먼 다 그렇지머 그건 시안에 추워야 분 나잖여?"


잿말의 감은 태반이 먹시다. 감이란 것이 하도 여러종류라 그저 잿말에 지천으로 섯는게 감나무인걸 기중 제일 달고 맛있는 감이 수시감이요. 먹시, 만아, 장둥이감, 뾔쪽감, 남양수시, 월이감, 팔봉시 감중에 제일 귀한 것은 남양수시라. 남양수시는 청웅 옥전리 원가전에서 퍼지기 시작하였다 알려져 있는바 조선 인조때에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중이던 남양홍씨 참판공 홍석방이 심어 종자를 퍼뜨렸다 하였다.

원가전의 이름을 붙여 가랏수시로 더 잘 알려진 수시감은 임실에서 물론 인조대왕께 진상하여 씨가 없고 달아 임금께서 대단히 즐겨하셨다는 본시 남양수시는 나무자체가 하늘로만 크고 옆으로 가지를 늘일줄을 몰라 전지 아니면 감맛을 못
보느니 껍질이 얇고 단맛이 좋아 이른 가실부터 피감으로 팔려 아무나 맛보지 못하였다.

남양수시 해묵은 나무는 몇 길이나 되기 때문에 본래 감나무가 약해서 사람이 올라가 삭정이를 밟고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누구든 수시감 나무에는 오르지 아니하는 것이라. 더구나 왜정시에는 일인들이 허천나게 찾아내 가져갔다 하고 남양 수시감은 크기가 주먹같고 물이 많아 그 감미도 유다르고 향긋한 것이 모든 감중의 으뜸이라. 피감으로 겨우네 두기는 어려웁다.

월이감은 본래 올 되는 것으로 추석 명절이 오면 발갛게 낯이 나는데 맛이 없어 이른가실에 따다가 울궈 먹는 것이 보통이라. 곶감을 깍으면 좋지만 서리올 때까지 두면 다 물러 빠지니 환영받지 못하는 감이다.
무명베 검정물 들일 때 찧어서 감물을 들이기도 하였으며 똘감은 늦게 따서 삐져 지붕에 제멋대로 던져두었다가 서리맞고 이슬맞혀 걷어두면 시안에 양냥이로 좋았고 먹시는 여러번 서리를 맞히고 가실일 다 거두고 나서 집 뒤안에 간자세개를 똑바로 세워 묶고 세 가쟁이를 벌려 세우고 이른봄 병아리 새끼 깨이고 한쪽으로 치웠던 덕가리 장태를 세 가장이 위에 올려 짚타래를 깔고 먹시를 담아두었으니 이는 쥐들이 올라가 망칠까 염려해서이니 서분, 서뇨를 피하기 위함이라.

짚 타래 그위에 하나 엊혀 덮어두고 시안내내 눈속에서 꺼내다 귀한 손만 대접하였으며 먹어도 그 맛은 변함이 없어 주모있는 집에서는 정월 초하루 제사 상에는 물론 이월까지 피감을 맛 보기도 하는 것이라. 눈속에서 감을 구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감 접을 붙일때도 사람들은 모두 수시감을 붙이고 감나무에 붙인 단감은 제맛을 다 해내지만 괴염나무에 단감을 접 붙이면 어중간한 단감도 떫은감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니 이 또한 신중히 하였던바라.

육이오를 넘기고 모든 것이 부족한지라 잿말 사람들은 괴염까지도 늦가을에 가지를 통째로 꺽어다가 초가지붕 위에 다무락 위에 얹었다가 겨울에 주념부리로 삼았으니 곶감 깍은 감 껍질도 따로이 챙겨 말려 떡 찔 때 떡 가루에 버무리는 귀한 것이 되었으니 귀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곶감은 어중간히 말랐을적에 내려 접는데 너무 마르면 접기가 힘이들고 너무질어도 안되는 법 그 적당함을 눈여겨 살필 일이라. 잿말사람들은 뒷동산에 지천으로 자라는 싸리 꼬쟁이를 일삼아 베어다가 열 접 스무접씩 꿰어 칡으로 한 접씩 묶어 처마밑에 걸어 말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운암장 임실장은 물론 불재 넘어 전주장 남부배차장에 갈 적에도 몇 꼬쟁이 가지고 나가 용돈으로 썼음이라.

"앞 산 뒷 산 싸리비 나무는 곶감 꼬쟁이로 다 나갔네"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라.
이렇듯 곶감은 잘 접어 꼭지를 떼어내고 다시 손으로 만지작거려 납작하게 만든 뒤 가위나 아니면 칼 도마위에 놓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베리는데 걸리는 씨는 연해 빼내버리고 잘게 썰어진 잎삭을 하나는 위로 비틀고 한잎은 아래로 바꾸어가며 비뜰어서 꽃을 만들어 목판이나 찬합에 담아 폐백 음식중에 한가지로 쓰는거라. 곶감은 처음 말린채로 그대로 장독 항아리에 넣어두면 여러날이 지나야 분이 나지만 손으로 여러번 만져 접어두면 이틀만 지나도 분이 하얗게 나는 것이니 이 분은 그야말로 곶감 특유의 포도당인 것이다.

또는 통째로 씨를 빼 내고 대신 호도알을 자근자근 두두리어 통째로 빼낸 호도 알맹이를 곶감 속에 넣어서 손바닥에 놓고 가만가만 만지면 동글동글 되는지라 호도알조차 한꺼번에 곶감을 도마위에 놓고 반으로 뚝 잘라보면 호도알 제멋대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다. 더러는 이렇게 만든 곶감을 찬합에 담는거라.

다른방법은 곶감을 씨를 빼낸 통째로 그속에 통밤을 깍아놓고 가위로 살짝 꼬집듯이 찝어 찝어진 곳에 잣을 끼우면 잣송이가 되는법 이를 솔방울 곶감이라 부르는거라. 더러는 쇠고기를 대추씨처럼 만들어 기름에 튀겨서 속을 박기도 하였으니 거둔댁의 손끝은 이렇듯 한없이 새롭고 이쁜 것을 만들어내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네는 시안이면 박서방네 명자를 놀러오게 하여 명자로 하여금 야무진 손끝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또한 명자도 거둔댁을 따라 시키는 것 거둔댁 하는양을 흉내내곤 하는바라.

이 아이 명자는 박서방네 넷째딸로 생긴 것이 이쁘장한 것이 제법 영악하여 어려서부터 거둔댁이 귀애 하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짚어내는 명자는 생김생김도 순한 모양이 초롱초롱 눈빛이 어여뻐서 그네는 간좌촌으로 가는 인편이 있으면 명자좀 보내라 하여 함께 밤이 이울때까지 놀다가 그냥 자고가기 일쑤였다. 거둔댁은 딸 셋 모두 시집가 도시로 나가사니 외손녀 손자라도 쉬이 만날 수 없는지라 명자를 손녀에게 하듯 딸 가르치듯 하였던 것이다.

"부지렝히 일 추어야 헐턴디 큰일이고만 저 냥반 늘마독 임실이나 나가심서 하 이고"
"인자 바짝 히 버리야지라오. 나락은 놉사서 헌디요 머"
"대충 놉덜 좀 알어바아. 언지 날 나는가 이 ?"
"선조님 모다 욍겨모실라먼 아지매 미리 준비허실 것도 많은디라오?"
"당초 안허신다고 �쌌더만 어쩔라고 그러시는가 원 내 그냥반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우선 자네가 놉덜 날 나는거 알어보먼 내가 쥔양반헌티 이암을 딜이 볼텅게 "

"예 걱정 말기라오. 그란히도 거멍굴서 시집온 거 머시라고 허더라 그 각시가 물어보더만요. 아지매네 나락 �으먼 가서 히 디리얀다고"
"으 칠성이 각씨 말이여? 우리것 훑으먼 신랑이랑 같이 온다고 �어 저 본때 근디 참 야 이불이랑은 꼬매놨다고 혔지? "
"봄이 히놨지요. 전이부텀 거그서 우리아를 맘에 있어라고 �싸서요. 혹시 몰러 서 솔래솔래 준비를 �어요. 거그서 가실 이약을 �었거덩요 "
"잘�어 얼매나 다행잉가 이 바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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