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12]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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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12] - 김여화

 

 


 

제목  [12회] 물 너울 피어날 때-2
등록일  2001-10-02
물너울 피어날 때-2



"이거바 동서, 내 서방님이 노허실 것 같어서 참어 왔네만 저아래 주막에 거시 기있지? 내 입에 올리기도 민망스러서 내가 지금 자네헌티 헌말 우리 그 냥반 헌티는 안 들은걸로 히야혀. 자네헌티 말 헌다고 넌즈시 떠보았더니 갠스리 불난 만든다고 제수씨가 모르먼 모르는채 두는게 좋다고 허시드만. 같은 여자 끼리 동서를 보아... "
동네사람들 그리고 큰댁 아주버님도 알고 있는 사실을 거둔댁 그네만 몰랐다니. 그때야 수천댁 동서말에 그 자신도 알수 없는 엷은 웃음만 보였지만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불쑥 내색도 못하고 있는 중이라.
거둔댁은 혼자서 양푼속에 누룽지를 죄다 건져올리고 구역꾸역 무채를 듬뿍얹어 왼 보래기가 터지게 먹고 있다. 시집살이 할 적에도 한 번도 진필의 말에 반기를 들어본 일 없이 곧이곧대로 순종하는 형의 그네의 풍성한 덕집하며 넉넉한 마음 씀씀이로 하여 시댁어른들로 부터 지천을 들어본바 없으며 항긋허면 손 귀한 집안에 딸 셋을 내리 낳은후에 뒤늦게 득남을 하였으니 어른들께는 그것이 죄라.
그네의 친정동기들은 일찌기 난리통에 전사하여 손이 끊기니 진필은 처가살이 아닌 처부모 드난살이로 장인장모가 세상을 뜨고는 열 댓 마지기 논도 그 차지가 되었음이다.
본시 진필에게도 그만 정도의 전답이 있었으니 진필네는 그 정도면 대농에 속하였은즉 여름내내 놉짓기로 고달펐으니 몸살도 날 만 하였다. 게다가 가을 들어 나락 �으러 다니느라 연일 고달퍼 하더니 이틀 비가오자 누워버린 탓으로 귀뜸이라 들었던 진필에 대한 소문이 몸살아닌 홧병까지 났지만 속내는 내색을 하지 않으니 진필은 그저 몸살난 모양이라 짐작할 뿐 동네 아낙네들의 입살에 올라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모양으로 저녁을 먹자 예의 불이나케 나가는 것이다.
거둔댁은 정지를 치우며 무쇠솥 가시고 부뚜막 닦은 귀명물을 소 구시에다 붓고는 신식 나이론치마 앞에 걸쳤던 앞치마를 털며 씻어두었던 무를 들고 마루에 옮겨놓는다.
그네는 혼자서 무를 자르고 짜개어 썰어 채반지에 담는다. 논이 그쯤 되자 남달리 놉짓기가 많은 그네는 굵직굵직 채 썰은 무를 밤새워 실에 꿰어 매달을 참이다. 그렇게 해야 깔끔하게 마르기 때문이다.
그네의 사칸 접집은 옛시절 시부께서 진필이 갓 결혼했을적에 거금을 들여 지은 것으로 그때만 해도 기둥이 바알간채 깨끗했던 집이라 부엌도 처마끝으로 달
아내어 나무청을 따로 하였으니 넓고 씀씀이도 요모조모 좋았다. 6,25 난리통에 허청이 불탔지만 몸채는 해 입지 아니하여 마루에 딸린 벽 찬장도 튼튼하게 맞추어 달았고 나무청 옆에도 또 하나 벽찬장을 들여 참기름이며 고추가루 어두운곳에 두고 두고 써야하는 양념은 그곳에 두고 쓰니 광으로 나가는 번거로움도 없음이라.
가을이 되면 밭가양에 가꾸었던 냥냥이 콩 팥 깨 같은 것을 거두는 일은 그네의 몫이라. 물론 놉 얻었을 적에 와서 도와주는 박서방네는 예전에는 이웃간에 함께 살면서 일을 거들어 주었지만 일찌기 진필이 박서방을 세경대신 간좌촌에 집 한채를 사서 제금 살게끔 하고나서 놉 얻고 바쁠때만 와서 거들어 주도록 하였으니 그 아낙도 마찬가지라.
다 제금 농사를 짓는데 박서방네는 어울이 논과 산골짝 눈깔배미 두어마지가 전부였다. 박서방이 진필의 농사를 지어주는 것은 여전하였지만 그네는 품삯으로 쳐서 주었으니 박서방네도 남들처럼 농사짓고 또한 진필의 일을 맡아 하는고로 살기가 궁색하기는 하였지만 찢어지게 가난함은 면한 처지라.
거둔댁은 큰 일이 아니면 대부분은 혼자서 내년에 쓸 마른찬거리를 준비하곤 했다. 거둔댁은 날마다 나락다발 들마시며 홀태질을 하고 와서도 밤이면 무채를 썰어 실에 꿰거나 아니면 실고추를 써는데 실고추는 전날 장독위에 내다놓았다가 이슬 맞혀 베보자기에 싸서 두었다가 썰어야만 부스러기가 없이 칼이 잘 먹는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이틀을 누워있다 일어났으니 실고추감을 준비를 못하였다. 해서 무채를 썰어 실에 꿰는 것이라.
뿐만아니라 틈틈이 주어다 놓은 밤도 껍질을 벗겨 물에 담궈 두었다가 채 썰어 깨끗한 보자기에 널어 말려 밤채도 실고추와 같이 준비하여야만 여름을 난다. 날이 좋을 때는 밭에나가 무 시래기도 발겨 쳐다가 저녁에 군불 땔 적에 삶었다가 소쿠리에 건져 밤새 물기 빠지면 뒤뜰 빨래줄에 걸어 말려야 한다.
이틀이나 삼일만 두면 바짝 마르는데 어쩌다 해저녁에 걷어두지 아니하고 이슬을 맞히면 시래기가 질겨지니 다 마를 때 까지 아침에 널고 저녁에 걷는일을 반복하여야 했고 다 마른뒤에는 이슬내린 저녁 끝에 차곡차곡 밥바구리에 담아두고 나중에는 밥바구리채 햇빛에 내어놓아 축축한 눅이를 말려 허청 시렁에 올려두는 것이다.
거둔댁네 허청 한칸은 이렇듯 가실이면 쉴새없이 부지런을 떨어만든 마른것들이 그득그득 밥바구리 소쿠리에 담긴채 시렁에서 겨울을 난다.
뿐만이 아니다. 장독의 빈 항아리마다 채워진 밑 반찬들도 가실에 마련해야하
는 것이니 깻잎도 벌써 소금물에 삭혔다가 밤채 실고추 참깨 듬뿍얹어 한잎씩 켜켜이 쌓아 눌러두었고 구들구들 말린 무도 따로 간장에 박아 감 장아찌 따로 무 장아찌 따로 풋고추도 소금물에 삭혀 된장단지 밑에 묻어두니 여름에 묵정밭에서 캔 물굿잎도 삶아 그늘에 말렸다가 절여 고추장밑에 눌러놓았다가 연해 묵혀서 이용하니 거둔댁네는 크게 반찬걱정을 하지 않아도 이듬해 여름내내 놉 부릴 때 써 왔음이라.
진필이 있어 살갑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일 없고 그렇대서 서운하지도 않은, 그런대도 들어오면 오는갑다. 나가면 일 때문에 나가는 갑다 했었더니 시앗까지 보게 생겼다는 말을 수천댁이 귀뜸한 것이라.
이른 새벽 닭이 울면 일어나 텃밭으로 뒤꼍으로 돌아다니며 동동거리고 다닐적에 진필은 동네일이다. 누구네 일이다 붙어있지 아니하니 그저 그러려니 하냥 생각한 것이 그네는 자신이 귀가 솔찮이 어둡다 느껴지고 눈치코치 채지 못하는 쑥맥이었구나 싶어 신열이 나는 것이다.
전 부터 소문에는 장터 근처에 술집에는 쥐 잡아 먹은 고양이 처럼 새빨갛게 입술 바르고 분냄새 진동하는 여자들이 많아 잿말 남정네들 무슨일 낼 것이라는 농 지껄이를 해 왔지만 하필이면 일 낼 사람이 진필이라는게 오장이 뒤틀리고 육보가 뒤집히건만 행여 설마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는지라 참고참고 속내를 비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마루밑에 있던 누렁이가 컹컹 짓다가 마는 것이 누군가 온 모양인데 아마도 자주놀러 오는 사람인양 누렁이가 사람다리에 제몸을 비비며 킁킁대는 소리에 거둔댁은 똑똑똑똑 썰던 칼을 멈춘다.
"누구 오셨어라오? "
"이- 나여"
마루에 올라오는 소리는 그네가 칼을 놓고 일어나고 있을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는 수천댁이다.
"형님이 어쩐일이라우? 진지는 잡수고요?"
"자네가 좀 이상허다고 서방님이 가보라고 허시서어"
"지가 어쩌간디요?"
거둔댁은 도로 앉으며 쑥스러운 듯 쪽진 낭자를 만진다.
"이틀이나 누워 있었담서? 몸살이지 밤이나 낮이나 일을 히 싼게 어디 몸이 배 겨나겄능가? 밥은 먹었고?"
"성님은요."
"나도 시방 밤조깨 까다가 놓고 왔고만"
"심심헝게 같이 앉어서 까게 갖고 오시지요. 이거 저녁내 실이다 뀌얀디"
"그리여 자네는 부지런히서 이렇게 헝게 여름네 그 놉짓기 다 허지. 나는 지울 러 갖고 허기실여"
"성님도 참 밸 말씀을 다 허시네요. 성님은 진작 다 히 놓�담서요?"
"긍게 쬐께 �지 자네같이 이렇게 많간디?"
"서방님 헌티 머라고 �능가?"
"아니요. 머라고 헐수가 있어야지요. 기냥 심통부리는 말로 나락 물 베었더냐고 물었지요. 머라고 험서나 지헌티 가시라고 히요? "
"이이 기냥 안으서 조께 아�게빈디 성수씨가 조께 굽어다보라고 그러더만"
"별일네요. 성님? "
"긍게 조께 미안혔던 모양이지"
"그러겄지요. 뒤가 켕기먼요. 그나지나 성님 자세허게 좀 말씀좀 히바요. 딱히 머라고 헐수도 없고 참-내 "
"사실은 나도 설마 서방님이 그럴랴다 허는중여. 들리는 말이 그 작것이 여러 사람을 지목을 �당게 내 직접 물어보덜 못히서 말여"
"아니 고것이 여러 사람을 어떻게 헐라고 지목을 �다요?"
"그게 긍게 아래뜸 순자가 가서 머리끄뎅이를 잡고 흔듬서나 이실직고 허랑게 고것이 글씨 서방님허며 여러 남정네들을 지목험서 다 내서방이다고 �디야"
"아이고 쑤악히라 시상의 저 죽을구멍을 팠고만요 이"
"언청 야물지게 잡고 대잡응게 지발 너그 서방은 밸로 좋도 않더라고 험서 말 을 그렇게 �디야. 더 잘난 남자덜 많은디 그 못난이를 내가 멋이 부족히서 얻었겄냐고"
"참 당돌헌 예펜네도 다 있지 시상의"
거둔댁은 오히려 기가막혀 말문이 막힌다.
제아무리 촌구석 술집에서 하냥 웃음을 판대서 그리도 턱없이 당돌헌 말을 했을까 싶은 것이 아래뜸 순자라면 어렸을적 거둔이서 시집온 손아래라. 시집살이가 거둔댁네 만은 못하여 늘마다 남편과 티격태격 본시 살기가 곤하면 부부간이라도 오가는 말들이 곱지않고 뉘 원망이라든가 남자가 변변치 못하다든가 아니면 여자가 칠칠치 못하다해서 투닥거리게 마련이라 순자 남편도 얌점한 축에는 못들어서 떠벌리기 좋아하고 튀밥튀기를 잘하여 마누라 대하기를 우숩게 대하니 순자역시 남편 대하기를 우숩게 하는것이라 술집에 드나들며 시끄럽게 하였던지 그네
가 냉큼 달려가 혼구멍을 내고 말았으리라. 거둔댁은 빙그레 웃는다
"성님 순자라먼 그러고도 남지라우. 글고 순자 냄편이 사실은 여자덜을 무턱대 고 숭도 없이 좋아허고 함부로 허잖이요."
"그려 그거야 나도 글매 그런 생각허지 긍게 고것이 순자 약 올린다고 너그 서방것 좋지도 않더라고 혔겄지 아이구 못씁것덜 "
"순자나 거 술집 여자나 똑같을 건디? 순자는 멋이거나 참덜 안허닝게요."
거둔댁과 수천댁은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내 혼자 생각이지만은 서방님이 허투로 행동허시거나 말을 허실분이 아닝게
너무다 맘 쓰지말어"
"그러기는 허지만 머 그런말 있잖이요. 늙은말이 콩 마다더냐고. 글고 남자덜 속을 생전 내놓덜 안헝게 알 수가 있어야지요."
"자네도 그런말 헐종 아는가?"
"성님 시방잉게 글지 지도 여자라우."
"그려 자네야 참말로 여자지 질쌈 잘히여 음식솜씨에 바느질도 머 못허능게 있 어야지 시어른덜 공대 잘혀 근디 말여 남정네덜은 여자가 조께 여시같이 히야 좋다고 안 허덩가 "
"긍게 여시허고는 살어도 소 허고는 못산다고 허잖이요."
"그려 그려 그런말 있지"
"글먼 지도 인자 여시노릇을 좀 히보까요?"
"자네도 그럴지랑 알간디?"
수천댁과 거둔댁은 밤이 깊어 새벽녘으로 이울때까지 썰은 무를 실에 뀌고 있다.둘이는 저녁내내 서로 웃다가 한탄을 하다가 채반지를 웃목으로 치우고 함께 누웠다.
더러더러 수천댁은 놀러왔다가 자고 아침에 일찍 가기도 했으니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성님 참말로 그 양반이 고것을 이뻐 �으까요? 그리서 고것이 그 양반 아를 가졌으까요? "
"글씨 어떻다고 꼭 말은 못허겄지만 고것이 애를 가진 것은 참말잉가 보더만"
"만약으 그�다먼 성님, 어찌야 헌대라오."
"설마 서방님이 글씨. 글지만 서방님 안적 한창땐디 이 ?"
"아덜이 알먼 챙피히서 어쩐대라오 기수란놈 알먼요"
"안적은 암말도 말어바 서방님 말을 일단 들어야 헐텅게 글고 우리집 양반이 지 한 번 대놓고 물어본다고 �응게"
"넘부끄러서 어쩌까이"
"고것이 글고 순자헌티 머리끄뎅이를 잽힝게 급히서 둘러붙일 수도 있잖여. 그날 쌈헌디 누가 글더리야. 순자 서방이 새복이먼 주막으서 나가는걸 보 았다던가 머라든가 근디 뉘 입에서 봤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안적 못알어봤 응게"
"금방 소문 나겄지요. 아를 나먼요. 산달이 언지간이?"
"정월이라고 허덜야"
거둔댁은 한숨을 쉰다 손윗동서 수천댁 말대로라면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요. 중요한 것은 남편 진필이 참말로 술집 아이를 귀애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가 그것부터도 확인해야 할 일이다. 젊어서부터 백호 한량이라 부른지라 내놓고 떠버릴 수도 없는 일 아직은 속을 끓이더라도 참는 수 밖에는 없느니 시월 비온뒤의 밤바람 우수수 우는 모양이 어수선하다.
뒤꼍 밤나무 잎삭들이 앞 뜰로 돌아나와 마당을 구르는 소리가 수런수런 간간히 먼 고샅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릴뿐 인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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