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11]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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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yehwa21&no=2355&sno=3918&n=11 

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11] - 김여화

 

 


 

 

제목  [11회] 물 너울 피어날 때
등록일  2001-10-02
물 너울 피어날 때


"썩을놈덜 줄라먼 한꺼번이나 줄 일이지 아이구"
싸립 짝을 밀고 들어서던 진필이 삽자루를 허청 외양옆에 내던지며 혼자서 하는 말이다. 거둔댁은 정지간에서 저녁을 짓기 위해 모들각지를 부석에 몰아넣다가 물끄러미 마당쪽을 바라본다. 심상치 않음이다. 성정이 불꽃같고 불의를 보면 참지않는 남편의 성품을 잘 아는터라 못본채 여전히 마른 쏘시게를 모들각지 밑에 쑤셔 넣고만 있다.
부뚜막 뒤에 흙벽에다 싸릿갱이 두어개 얽어 한켠에는 조앙물을 떠 놓고 한켠
에는 성냥통이 얹어있다. 가을해는 짧아서 벌써 강정날을 넘어 묵방산을 넘었고 집 뒷켠 국사봉 자락에서 내려온 산 그림자는 어둠을 손짓하고 있었다. 부뚜막에 성냥을 집으러 일어나던 거둔댁은 남편이 정지로 들어오는 기색에 돌아다 본다.
"왜라오? 나락은 물 안 베씁뎌?"
베어 말린 나락은 우선 논 어덕에 줄가리를 치고 혹은 세발가리를 쳐서 한짐내기씩 모닥거려 두었더니 전날 밤 부터 내린 가을비가 해종일 쏟아지니 마치 몹비오듯 여름날 장마비 같이 그네도 걱정을 하다가 가리를 잘 쳐놓았으니 마음 놓고 해 거름에 삽을 들고 나간 것이다.
거둔댁네 논은 마당벌 중래보앞 들에, 책이살이 아래 구름들에 있어서 물 좋기로 일등이요. 수확도 많은지라 그네의 생활은 부자라 할 수는 없지만 남보다는 풍족한 편이었다.
게다가 딸 셋은 일찌감치 시집보내어 서울로 전주로 나가 사는지라 늦동이로 얻은 외아들 기수만이 전주에 하숙을 붙여 두었던 바이라. 벌써 3년째 용수리 사동 앞에 댐 공사를 해오고 있고 이 댐은 지난날 강진 수방리 배소 앞에 막았던 것을 더 내려가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처음 댐이 배소앞에 준공되었을 적에는 거둔댁이 친정 거뜸이에 살 때로 그때만해도 강물은 겨우 센바우 앞 정도나 마근댕이 앞에만 찼으니 비록 거뜸이 앞 들도 물 가까운 곳은 더러 여름이면 큰 물이 간좌촌 동네앞 들과 구성물 마당벌 도마촌을 휩쓸었지만 그네의 논은 떨어진 곳 이어서 심한 피해가 닿지 않았다.
이제 1년인가 더 공사를 하고 댐이 완성되면 진필의 전답들은 물론 간좌터 도마터 강변은 동네가 흔적이 없게 된다는데 물론 잿말 까지 잠기게 되어 모두 이사를 가야만 하는, 그러나 사람들이 떠나가도 거둔댁네는 진필의 옹고집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물이 찰지 알지만 턱 앞에 찰 때까지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 진필의 강단이었다.
"인자 밥을 헝가 진작좀 허지"
"저녁잡수고 어디 가실라요? 제촉허시게 "
거둔댁은 성냥을 그으며 퉁명스레 대답아닌 물음이다.
"돈 나온다고 안헝가 이따가 만수네가 주막으로 온다고 헝만"
"참, 당신은 지발 넘의일에 챔견조께 마쇼. 맨날 주막으는 멀라고 감서나 "
거둔댁은 더 할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말을 끊는다.
"오늘 첨 허는 일이간디? 쓰잘데기 없이 군소린가"
"나락은 조께 어쩌냐고 안 물읍뎌?"
자꾸만 심통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는 거둔댁이다.
"아, 갠찬지 멀 어뗘? 소죽물은 받어놨능가"
"안받어놨능게미 그러요? 새삼시럽게"
진필은 저녁 재촉을 하는 자기가 못 마땅해서 거둔댁이 그런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것이다. 거둔댁 마음은 중 늙은이가 되어 주막에 다니면서 술집 여펜네들 간들어진 웃음에 녹아나는 진필이 내심 불편했고 자꾸만 그네에 귀에 들어오는 진필의 바깥에서의 행적에 속이 상하여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나가려는 진필을 한 번쯤 쐬약박듯 해야 하겠거늘 막상 대하고 보면 남정네 하는 일에 간섭하는 모양같아 참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느때 부터인가 운암장에는 장날이면 서커스단이네 약장사 굿이 간좌촌 앞 갱변에 진을 치고 몇 날 며칠씩 피리불고 북장구를 쳐댔었다. 자연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도 많아지니 객주집도 성하게 되고 누구누구가 어쨌더라.
잿말 장터 앞에는 물론 주막거리가 되어버렸고 소문도 무성 하니 근래에 얻어들은 소문 때문에 심정이 편치 못했다.
그네는 아무말 없이 막 불이 붙어 소르르 소지종이 타오르듯 불꽃이 올라오는 보릿대 쏘시게를 연해 밀어 넣는다. 마당끝 돌다무락 위에는 엊그제 그네가 뽑아 이고 들어온 밥밑콩 한다발이 회푸대 하나 덮어쓰고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날아가지 못하게 하였더니 이틀을 비를 맞고는 비가 개이고 모든 산천의 초목들 물기 걷어내는 바람이 일어나니 한자락 팔랑거린다. 그 위에 떨어져 있던 밤나무 잎도 물기가 마르니 바람에 날려 구르는 모양을 그네는 하냥 바라보고 있다.
처마끝 서까래마다 기다란 장대를 이중삼중으로 걸고 곶감을 깍아 실로 매달아 놓은 것이 이제 막 검게 제 빛을 내려는 때에 짚시랑 끝에서 바람결에 날아드는 빗줄기가 들이쳐 흠씬 젖은 모양이 아무래도 곰팡이라도 피어날 듯 싶은 금방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모양새가 위태롭다. 채반지에 널어진 감고쟁이도 마찬가지이다. 저리 탕이나면 감고지도 맛이 덜한다는걸 거둔댁은 알고있다.
가을비는 조금만 뿌려도 스며드느니 하루만 해가 비치치 아니하여도 금새 모든 것이 썩어버릴 듯 싶은데 이틀이나 장대비로 쏟았으니 다무락 위에 얹어둔 들깻댓며 참깨대 젖지 아니한 것이없다. 거둔댁은 밥솥에 불을 모닥그려놓고 마당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진필은 아예 쇠죽솥에 장작불을 모아놓고 허청 외양앞에서 서성인다. 필시 주막에 서둘러 가려는 눈치인걸 거둔댁이 모를리 없다. 그러거나 거둔댁은 못 본척 저녁에 무 꼬쟁이라도 썰을 양으로 텃밭에서 뽑아두었던 반비득 마른 무를 정지
나무간 앞에서 주워 옹백이에 담고 있다. 정지간 바깥 확독옆에 걸어둔 싸리채반을 내려 부아난 사람모냥 탁탁 확독에 치면서 거미줄을 털어낸다.
저녁 숟가락만 놓고는 밥상 물리기 전에 일어나는 진필이 어제 오늘 그래온건 아니지만 어쩌다 귀동냥 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말이 그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채반지에 무를 씻어 담아 확독위에 올려놓고 상을 차린다. 울툭불툭 발걸음마다에서 묻혀들인 흙덩이가 쌓여 올록볼록 옴팍쟁이가 된 흙은 반들반들 윤기가 돌정도로 닳고 닳아 정지 바닥에 상을 내려 놓고 반찬을 챙긴다. 상에는 겸상이다. 식구가 달리 없으니 언제나 진필과 단둘이 상을 들이지만 본시 애면글면 진필이 자상한 데가 없어 상전에 종마냥 매양 그렇게 밥상을 마주한다.
거둔댁은 무채를 썰어 생채를 만들고 밥상을 마루위에 올려다 놓고는 방에 들일 생각은 하지않고 마루 걸레질 부터 하고 있다. 진필이 소죽을 퍼다 외양에 부어주고 올라가 상을 들여가도 여전히 마루를 닦더니 뚤방에 까지 날아든 집 뒤 밤나무 잎삭을 쓸고 있으니.
"임자 밥 안 먹을텨?"
방문을 열어놓고 진필이 물어도 못들은 척이다. 사실 거둔댁은 부아가 나서내심 퉁퉁 부어있는 것을 유독 진필은 아는지 모르는지 상관치 않은 것이 진필이 상을 물릴 무렵이 되어서야 그네는 솥에서 주걱으로 득득긁은 누릉지 숭늉이 함께든 양푼을 들고 들어간다.
"아 밥 다 식었고만 멋히여. 미운 시어마니 밥상 들이먼 나간다더니 임자가 그 짝이고만 "
"차암, 언지 당신이 나를 시오마니로 알었소? 종이지"
"쯔쯧 말허는 소리허고는"
"허기사 종이 말을 허간디라오 소리를 허지"
"점점 허는말 허고는 저놈의 밴대기 같은 속 허고는"
"그리요. 나는 밴대기라 그러요. 당신속은 호리병이요? 그리서 넘의 속까지 그 렇게 들어갔다온 사람 맹키로 그렇게 잘 따둑거리 주신다요? 호리병 같이 깊 어서라우?"
수저를 들고 밥을 먹을 생각은 아예 없는 듯 방 여기저기를 걸레로 훔치며 하는 말이다.
"아, 밥이나 어여 먹어 낮이도 안 먹었음서나"
"거창히 생각허요 이?"
"왜 오늘 나 헌티 히 보겄다는거여?"
자꾸만 삐뚜루 말꼬리를 잡는 그네를 진필이 눈을 부릅뜨며 하는 말이다. 그네는 대꾸도 없이 그제야 밥상 앞으로 바투 앉는다. 아직은 캄캄한 저녁은 아니므로 방문 하나만 빼시기 열어놓고 밥을 먹을만 했다.
추위도 싸늘하긴 했지만 아직 전기불을 켤 정도도 아니고 그런대도 거둔댁은 바투 앉다가 일어나 방가운데 매달린 전구를 잡고 불을 켠다. 그리고 방문을 닫는다.
잿말에 전기불은 일찍이 왜인들이 칠보 발전소를 건설하여 전기를 생산 할 때 부터여서 그시절 임실 어느 지역이든 흔하게 전기불이 없었는걸 운암 잿말에는 특선으로 설치하였던 것이다. 내마터 앞에 갱변에서 모래와 자갈을 파다가 댐을 막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지난 추석에 바른 창호지가 깨끗한 채로 어린아이들이 없는지라 담밑에 지천으로 피던 봉숭아 잎삭 맨드라미 꺽어다가 여름에 캤던 감자 썩은 것 모아 더 곯과서 우물가 널벅지에 담아놓고 우리고 우려낸 그리하여 널벅지에 가라�은 앙금을 촘촘이 짜인 명주보자기 같은 것에 부어 물기를 말리면 전분가루가 되느니.
해마다 만들어 두고두고 쓰며 풀 쑤어 두둑히 바르고 그 위에 살아있는 것 마냥 이쁘게 꽃무늬를 놓아 창호지를 사각으로 접어 자르고 사선으로 잘라 문고리옆에 삼각으로 세워바르니 풀이 마르면 더엉덩 북치는 소리와 함께 방문짝이 두 짝일 경우 양쪽 문고리에 똑같이 발라 그 모양이 아침 햇살 비쳐들 때 방안에서 바라보면 그윽하기가 꽃향내 같으니 저녁 불빛에 비치어 조촐한 모양새 또한 정성이 깃들고 오붓하여 보기도 좋다.
선인들께서 문을 바를적에 한로절에는 창호지를 바르고 동지절에는 창호지로 문풍지를 바른다 하셨으니 문을 바를때는 꼭이 창호지를 쓰는 이유로 창호지는 바람과 먼지를 막아주는 것은 물론 환기가 되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종이라 하였다.
중국 후한의 채륜이라는 사람이 나무껍질과 마를(麻) 원료로 종이를 만들어서황제에게 올린 것이 종이 만들기의 효시라 하였다던가 종이가 나오기 그 이전에는 돌이나 금속 찰흙 동물의 가죽이나 나무껍질 나무 조각 대나무 같은 것에 기록하였다 배웠으니 우리나라에서의 종이 만드는 기술은 낙랑의 고분에서 옻칠을하여 만든 관속에서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다.
그러하니 중국의 채륜이 제지술을 발명한 것 보다는 5백년이나 앞서있었다고 아니 하였던가 고려시대에도 세종시절에도 한지 창호지를 만드는 관청이 있아고
하였다.
이즘에 청웅의 구고리에서도 밭가양에 절로 자란 닥나무를 가꾸어 겨울이면 쪽 곧은 닥가지를 베어 삶아 껍질을 벗기고 똥을 벗기고 울궈서 창호지를 떴으니 으례껏 추석이 돌아오면 집에서 농사짓던 사람도 창호지 열댓권씩 둘러메고 신덕이나 잿말 더러는 구이까지 호호방문 창호지 장사를 하였던 것이다. 창호지 값이야 돈이면 돈 아니면 보리쌀 더러는 쌀도 받기도 하고 대중이 없었으니 있는집에서 창호지 한권 없는 집에 선사 보내는 것도 잿말의 아름다운 상부상조의 미덕이었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에 문풍지 울어예는 것도 우리네 정서요. 달빛에 비치는 꽃선도 아름다움인것을, 대주 하는 일에 일일이 참견할 수 없는 아낙들의 답답한 심사를 문풍지는 대신 소리내어 울어주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아낙들은 이 문을 바를 때 밋밋한 창호지일망정 소소한 마음을 새겨 꽃잎을 함께 붙인 것이 아니겠는가? 풀에 젖어 마른 꽃 잎파리들은 바르는 사람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더러는 자주빛으로 더러는 붉게 수줍은 미소로 또는 파란색 그대로 말라 이를 바라보는 마음을 꽃물을 들이는 아름다움이다.
거둔댁은 딸들이 시집가기 전까지는 그들이 하는대로 두었다가 지난 추석에 바쁜중에도 일삼아 그리하였더니 친정에 왔던 딸과 사위들까지 구식노인네인줄 알았더니 신식이라며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양을 정지간에서 듣고는 혼자 빙그레 미소만 지었었다.
진필이 그네가 밥 먹기전 일어나 문을 확 열고 나가자 희미한 전구는 파르르르 마치 신굿하던 무당의 손에들린 대나무가지가 그자신도 모르게 신이 내려와 파르르르 몸서리치듯 전깃불이 자지러짐을 느낀다. 거둔댁은 못본체 그대로 양푼속에서 누릉지를 고기잡는 어부마냥 건져 올린다.
"아이구 그놈의 무신 위원횐가 뭔가 날이면 날마다 누구네 일 때문에 무시로 나가니 가리쳐 둔 나락가리는 언지 실어 들일 것이며 어느세월에 �어쟁인단 말인고"
그네의 속내는 일 못 추는 것이 애가 타는데 엊그제 동네 품앗이로 나락�으러 갔다가 얻어들은 아니 얻어 들었다기보다 일부러 큰 댁 손 윗 동서 수천댁이 그네를 불러 나락가리 한쪽으로 돌아가 망설이다가 귀뜸하는 거라던 그 말 때문에 진필을 볼 때마다 한 번 쐬약 박어야지 했지만 어디서 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게다가 아낙네들이 하는말을 믿고 남편을 못믿는다면 그 또한 우스운 일이라. 그처럼 불퉁거리기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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