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09]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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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09] - 김여화

 

 


 

 

제목  [9회] 연고지-3
등록일  2001-10-02
연고지 -3


그날의 그 처절한 순간 두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그녀를 그곳에서 빼어 내오고 싶었던 충동, 그녀는 기수를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두손을 잡았다. 오빠를 무척 좋아 했노라. 잿말을 사랑하듯이 꿈속에서만 그리겠노라.
"그래 그앤 참 이쁜소녀였다."
자신은 기수대신 성모를 택하였다는 그말을 들으면서 널 사랑했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만,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원망스러웠고 그녀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만끔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하얀 수건이 더욱 그녀의 얼굴빛을 희게 만들었던 모습, 그 차갑고 청담한 얼굴빛을 보면서 그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그녀를 욕되게 할 것만 같았기에 삼켜버리고 말았었다.
기수는 겨울 강가 살얼음 언 날선 물 빛 같은 인선의 얼굴에서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떠나온 고향을 찾이 않으리라. 그녀를 떠나게 했던 그곳을 원망하며 다시는 잿말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방황하던 기수다.
이따끔 아버지는 농사지은 쌀을 짊어지고 하숙집에 오셨는데 더러는 버스를 타고 아니면 작은불재를 걸어서 구이로 나와 뚝 넘어에 오시곤 했다. 뚝넘어는 지금의 노송동 기린로라 불리던 전주역전 뒤편이었다.
뚝 넘어에 하숙을 한대서 창피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절대로 하숙집을 가르쳐주지 않던 기수였다. 뚝넘어가 싫어 하숙집을 옮겨 달라고 졸라대던 어린시절, 뚝넘어에는 기수네 일가가 있었고 아버지는 기수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려 먹을
것을 사주마 하시고는 앞장서 성큼 나가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노송동 철길 건널목을 돌아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었던 학 다방을 흘낏거리며 이곳에 와서 도너츠를 사 주셨다.
지금은 개천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다. 배고픈김에 주먹만끔씩 큰 도너츠를 한입에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기수를 아버지는 "체헐라 " 하시며 물컵을 앞으로 내밀곤 하셨다.
그는 도로로 메꾸어 큰 개울이었다는 흔적도 없는 그곳에서 저 만끔 도너스집 국수집 머리속에 추억을 헤집어 펼쳐 본다. 개울 가운데로 좁은 다리가 여러개 있었던 듯 했고 다리를 건널때면 서로 부딧칠까 조심하던 기억도, 아이들과 장난을치며 뛰어 건너다가 근처 어디서 나왔는지 가게집 아저씨의 고함소리에 하마터면 난간도 없는 다리에서 아찔했던 순간들, 여러번 신호가 바뀔 때 까지 그런 저런 기억들을 들추이며 서 있었다.
거기엔 우수에 젖은 그 소녀의 눈빛도 반짝이고 있다.
위로 누나들만 셋이나 되었던 기수에게 아버지는 집안의 대들보라며 그렇게도 정성을 쏟으셨던 기억들이 되 살아나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엄하시기만 했던 아버지, 그 길목에서 도너츠를 사주실 때 만은 그렇게도 인자한 얼굴이 되셨던 아버지를 기수는 한 번도 모시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과 결혼을 해서 지금껏 그는 객지로만 떠돌아 살았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두 분이 전주를 떠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아시는 분이셨다.
기수의 아버지 진필은 구순에 가찹다. 하지만 건강한 모습이다. 계화도에 남아있는 땅과 몇 안되는 원매자로 고향을 떠나와 자리잡았던 노송동집 앞에 기린로가 확장되는 바람에 집을 헐고 상가 건물로 지은 것이 가게를 세놓고 나오는 월세로 두 노인의 생활비는 충당이 되었다.
기수는 한 번도 아버지 진필과 어머니께 용돈이외의 생활비를 드린적이 없다. 자력으로 사시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도 어쩐지 자식노릇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송구스럽게만 생각되어왔다. 단 하나뿐인 며느리가 애써 노인들을 모시겠다고 해왔지만 진필은 극구 사양하는고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입석리 잿말을 떠나온 후로 기수는 아버지로 부터 그곳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들은바 없다. 무조건 입을 다물어 버리시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기수는 신호대기를 하고 서 있는 빈 택시를 탄다. 걸어도 될만한 거리였지만 그는 기린봉 아파트로 가 달라고 주문을 한다. 전주시내에 아파트가 처음 들어서
던 무렵의 아파트는 당시에는 꽤나 좋은 곳으로 알려졌었는데 지금은 기린봉으로 가는 길목이 매우 좁아서 택시가 양측에서 비켜가기도 위태로울 정도로 좁은 골목이 되어있다.
그는 아파트 앞에서 내려 절간에서 해우소를 찾는 중생마냥 뛰듯이 3층으로 올라간다. 그의 부모는 멀리 가지 않는한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곧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입춘을 넘긴 오후의 햇살은 제법 길게 너울을 만들어 창가에 드리우고 화사한 빛을 선사하고 있다. 그 햇살은 분명 봄색이었다. 아버지 진필과 어머니 거둔댁은 창가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듯 앉아 있다가 뜻밖에 들어오는 기수를 보자 깜짝 놀란다.
"아니? 잠깐 들린거냐? 아님 벌씨 퇴근을 허는겨? "
"예, 아버지 오늘은 일찍 들어왔습니다. "
"이? 왜 어디 아픈디 있냐? 거바라 내 아범 너 탈 날종 알었다. 날마다 먼술 을 그렇게 마셔야 ? "
"아, 임자는 가만 있어바! 아범 말을 들어 봐야지 먼놈에 수다여 ? "
"아이고 이 양반좀바아? 내가 긍게 물어보는거 아니요? 먼 수다를 떨어라우"
"그게 물어보는거여? 욱박질르는고만 "
"아 아버지, 어머니 왜그러세요? 저요 아픈데도 없고 무슨일이 생겨서 들어온 게 아니구요, 집에서 저녁같이 먹으려고 왔으니까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 배고 파요? 밥 빨리 해서 저녁 먹게요 "
"이? 그려어 얼릉 밥 히야겄다."
"아참, 밥 허지 마세요. 모처럼 제가 모시고 나가서 맛 있는 것 사드릴께요 "
"이? 나가서 먹자구 ? "
"예 아버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두분 모시고 저녁 사 드린적 없잖아요. 모처 럼 오늘 두분께 효도 하고 싶은데요 "
"흥, 효도? 허긴 그려 그것도 효도지"
"참 영감은 아범이 허는 말에 왜 코똥만 뀌시요 "
"내가 멀 코똥을 뀌여? 좋아서 그러지. 허허 참 "
기수는 아버지 진필의 웃음속에는 우렁우렁 쇠디 쇤 기침소리 마냥 가슴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 아버지의 빈 가슴속이 들여다보이는 듯 싶어 갑자기 짠 하게 저려온다. 아버지의 헛웃음은 마치 아까 본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알 수 없는 그 무엇마냥 왠지 스산하고 나뭇 가지 끝에 설풋한 겨울 하늘처럼 허허롭게
기수의 가슴을 텅텅 두두리고 있었다. 일찍 들어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사실은 차를 회사에 놔두고 와서 그냥 택시로 모셔야 겠는데요 ?"
"걸어가면 어뗘어. 니가 저녁 사 준단디 좋아서 뛰어가래먼 뛰어라도 갈 란다."
"아이고 영감은 아덜모냥 좋아허시우. 늙으먼 아 된다고 허덩만 꼭 맞당게 "
"아니, 임자는 안 좋아서 그런소리 허남 ? 모처럼 하나빼기 없는 아들이 외식 시켜 준다는디 속으로는 싫여도 좋은척 히야지, 안그냐? 아범아 !"
"두 분이 이렇게 좋아 허시는데 여직 못해서 죄송헙니다."
"자자 어여가자. 어디가서 사 줄래 ?"
"기냥 요앞으 가서 짜장이나 사 먹지 머어. 지난번에 니 누가 와서 짜장시키다 먹었는디 참 맛나덩구만 "
"어머니 더 비싼 것도 사 드릴께요. 호텔에 가서요 "
"느 오매가 멀 알어야지야 "
"아이고 느 아버지는 맨날 저런소리 잘 허시더라 이? 생전 데리고 가덜 안험서 내가 몰른다고 구박만 허신단다."
"임자는 입에다 침이나 발르고 말헝가 ? 야들이 해마다 와서 외식 시켜주고 구 경 시켜주었는디 본정없이 맨날 이이이. 긍게 쉬염이 안난겨 "
"아 언지 내가 호텔잉가 머신가를 가 봤가니라우 영감 혼자 댕기와서 자랑히놓 고설람 사우덜이랑 자게덜만 갖다 오시놓고"
기수는 택시를 잡아 뒷 문을 열고 서 있다.
"타세요 아버지"
"그려 호강한번 히보자 "
"죄송합니다. 제 차로 모셔야 하는데 다음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
"누 차먼 어떠냐? 까짓거 아무거나 타먼 되지 "
"대처 그게 먼 상관이냐 "
"호텔 스카이 라운지로 모시겠습니다."
기수는 무척이나 즐거워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전망이 좋은곳에 자리를 잡는다. 겨울 해가 긴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더 좋았다.
"아이고 참 오랬만이구나."
"그리요 차암 좋네요 이 ?"
"드시고 싶은 것으로 말씀하세요. 중국식, 서양식, 아니면 일식도 좋구요."
" 아이고 나는 안 먹어도 좋다야."
"머여? 들어와서 안먹으먼 저 사람덜이 기냥 나가라고 허간?"
"기냥 나가면 어쩌간이요."
"혼나지 멀 어쩌?"
"그렇기야 않지만 진작에 한 번 모실라고 했는데 시간이 나질 않아서요. 오늘 큰맘 먹었죠"
"그려 고맙구나. 바쁜디 우리 늙은이꺼정 챙겨주니라고"
"어머니도 참, 제가 남인가요 ? "
"그려 긍게 고맙지 "
"참 아버지 언제 운암대교로 한 번 모실께요. 요새 빙어회 맛있을때죠? "
"그려 맛 좋지야. 언지 가보자 가서 실컷 먹어보자 "
"많이 먹으먼 배탈나요"
"요샌 거기 잘 안가세요 아버지?"
"이? 나? 으응 어쩌다가 가긴 가지"
내외의 얼굴엔 연신 미소가 묻어나고 그 미소는 마치 봄볕처럼 맑게 그의 가슴을 따듯하게 적셔짐을 느끼면서 기수는 마음속으로 저렇듯 즐거워 하시는걸, 그동안 모른척 해 왔으니 불효막급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 진필이 도너츠를 사 주시며 물을 챙겨주고 지켜보던 때와 같이 반대로 두 노인네의 음식 드시는 것을 지켜본다.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호리 바람처럼 일고 있다.
"왜그랴 ? 얼릉 안 먹고 ? "
"예, 어머니 전 점심먹은 것이 아직 소화도 덜 된 것 같습니다. "
"이? 아까는 배고프담서 빨리 밥 히돌라고 안 �냐 ?"
"아까는 그랬는데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맛있게 드시는걸 보니까 그냥 배가 불 러오는데요 "
"어여 먹어라 참 맛납다. 이 ? "
"많이 드세요 앞으로는 열일 제쳐놓고 한 번씩 모시겠습니다. "
"첨인게 따러오지 맨날 이렇게 잘 먹을수 있냐 ? "
"긍게말요. 가끔씩 먹어야지 부도 나겄다. 안그러요 ? "
"어머니도 외식 몇번 한다고 부도 납니까? 아버지 부자시잖아요 ?"
"부자 ? 그려 너허고 나허고 부자지 "
"예? 아버지는 농담도 하시네요 ? "
"그려 너그 아부지가 지금잉게 글지 소시적으는 참 한량이었어야. 내가 느아부 지 숭좀 보꺼나? 아이고 어찌나 술집 예펜네들이 느 아버지를 좋아 히갖고 야, 말도 말어라. 내 속 썩은거 "
"아버지 지금 어머니 말씀 정말이세요? 아버지께 그런 멋도 있으셨어요 ? 오 늘 처음 알았는데요. 이거 빅 뉴습니다."
"이이- 할망텅구가 애들 앞이서 하늘같은 서방님 곤죽을 맨들고 있구만 "
"아이고 챙피허시유? 나는 시작빼기 안�는디. 다허먼 자진헌다고 허겄수 ? "
"시끄러 그만혀, 다 먹었으먼 어여 인나 가자구 "
"아버지 후식도 나오는데 다 드시고 가셔야지요 . "
"흐응, 너그 아버지가 멀 알어야지야. 소싯적 한량이먼 멋헌다냐 지금 한량이야 지 "
"머셔 ? 할망구 헌다는 소리 허고는. 언지 철들랑가 모르겄다."
기수는 아버지 어머니의 토닥이는 정겨운 모습을 바라보며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고 있다. 유난히 커피향이 개운하다. 국산 차 마시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 커피가 들어온지 이십여년 남짓 한 새 기수도 인이 박혀버렸다. 해서 커피맛을 더 잘내는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던 그였다. 한방울 남은 커피를 입안에 털어 부으면서 기수는 내일은 서울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풋봄 여린 햇살은 스러들면 금새 어둠을 꼬리처럼 매달고 중화산동 산기슭 이름도 모르는 아파트 넘어로 숨어들며 밝은 빛을 삼키우고 어둠을 손사래 치고 호텔아래 저만끔 현란한 광고판은 막 불이 켜지면서 흩어졌다 모아지고 모아졌다 흩어지며 제구실을 하고 있다. 전주시내는 정말이지 엄청난 변화의 물결 우후죽순 처럼 서 있는 아파트 높은 옥상마다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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