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08]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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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08] - 김여화

 

 


 

제목  [8회] 연고지-2
등록일  2001-09-29
조회수  17회
연고지-2


기수는 이제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느 아버지 요즘 이상하다" 는 말을 여러번 들은 듯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노여움을 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처음 그가 부임해 올 때 반가워 하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 되어 있었다.
이제사 아버지의 얼굴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는다. 그가 고향으로 발령을 받고는 가족들을 두고 집을 떠나 있는다는 것이 좀은 맘이 놓이지 않았지만 한편은 두 노인만 살고 있는 형편에 막무가내로 함께 살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 죄책감이 고향에 있는 동안이라도 정성껏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업무에 바빠 사실은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기린봉 아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담배를 물고 아버지의 모습을 새겨본다. 돌아보니 그 옛날 아버지의 모습은, 요즘 그가 출근해서 맞닥뜨리는 용담의 수몰민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그래 맞아, 그거야 ! "
"예 부장님, 무슨 말씀이신 지요. "
"그거였어, 우리 집 노인네께서 말씀하시려는 것 말이야. 왜 여직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 차를 돌려 전주 사무실로 가자, 그래 해답이 있을거야 "
차는 마이산 남쪽을 돌아 탑사 입구를 지나치고 있다.
"조금 더 가다가 마령 소재지로 들어가는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전주로 나갈 수 있어 전주 표지판만 보고 가면 돼"
"저는 모처럼 옥정호 순환도로를 드라이브 하게 돼서 좋아 했더니 좋다 말았 습니다. 부장님. "
"거긴 언제 일요일날 함께 가자고 "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
"자네는 내가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
"예 ? 아 예, 잘 모르겠는데요. "
"오늘같이 저렇듯 물리적인 힘에 서로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 말이야 "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
"이사람이 청문회 나왔나 ? "
"죄송합니다. 부장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려워서요. "
"그래, 그 사람들이 소중히 챙기는 것 말야. 그걸 챙겨주면 어떨까 ? 보상금 도 문제지만 대대로 살던 고향을 비워주어야 하는 그 허전하고 쓸쓸함 말이야, 같 이 아파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야. 우리집도 그랬으니까 "
"부장님 댁이요 ? "
"그래 벌써 30년이 넘었지. 그때 나는 고등학생 이었어 "
"부장님이 전북에 연고가 있으시다는 말은 들었지만 ... ... "
"들었지만 몰랐다 이거지 ? 우린 섬진댐 수몰민이잖은가 "
"예? 그럼 고향이 운암이란 말씀이군요 "
"옥정호 가슴에 해당하는 입석리 잿말, 옛날 운암의 소재지였지 "
"그러셨군요, 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당연하지, 오늘 처음 말하는 거니까. 난 그때 도시로 나가는 것이 꿈이었네 그 저 그 꿈을 이루게 된 것만이 좋았지. 헌데 좋다는 내색도 못했어. "
"왜요 ? "
"아버지 때문이었어 "
"어른이 안 가신다고 하셨군요 "
"왠걸,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일을 많이 봐주셨거든"
"주모자셨군요 "
"주모자 ? 그래 어쩌면 그렇게 표현 하는 것이 더 옳은지도 모르지, 실제로 아 버지는 보상문제 같은것도 앞장서서 해결을 하셨고 남의 일도 일일이 처리해 주는 아무튼 동네의 대리인이랄까 ? 거 있잖은가 사법서사 같은 "
"예에 ... "
"그땐 문맹인들이 많았으니까, 거의 계산에 어두우셨지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 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었어. 우리것만 제대로 보상 받으면 되 지 동네사람들 찾아 다니며 그럴 필요가 뮈 있는가 싶어서 말야"
"학생이셨으면 기억이 생생 하시겠네요 ? "
"아니, 난 전주에서 집엘 가지 않았어. 잊어버리려고 애썼지. 다만 기억 나는 것은 여름방학 때 동네 앞 산까지 붉덩물이 넘실넘실 차 오르던 생각이 나는 데 그건 정말이지 독사가 혓바닥을 낼름낼름 사람들을 삼킬 것만 같았지. 붉덩물을 보면 소름이 쫙 끼치곤 했어. 동네가 금새 물이 잠긴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가서 바라보던 생각도 나는데 머리카락이 온통 뽑히는 것 같이 말이야. 그 동네는 수몰 지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서 잠기게 되니까 어른들이 누군가를 향해서 욕을 해대던 기억도 나는군
"사실 그것은 측량 미스였어 대단한 착오였지 "
"당시에도 여기처럼 데모도 하고 그랬습니까 ? "
"데모 ? 그래 데모라고 해야되겠지 도청앞까지 관솔불을 들고와서 연좌 시위를 했다고 하니까 난 그때 가보지는 못했어 "
"궁금 한데요 ?"
"그래 그때 전북일보는 동진강 도수로공사 통수식을 알리는 보도를 했어 축제 무드에 들떴다고 했고, 그후에 운암 소재지가 다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설 상가상으로 괴질까지 번졌다고 보도했던 기억이 나"
"참 한 쪽에서는 물 때문에 춤추고 한 쪽에서는 물 때문에 사람이 죽을지경이 고, 물이 참 무서운거죠? "
차는 어느새 소양면에 가까워 오고 있다.
소양에서 전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은 언제나 복잡하다. 서부 우회도로가 뚫리는 바람에 이 지역은 사거리가 되어버리고 근처에 인후 아파트가 있고 주변의 도로공사로 인해서 차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짜증나게 만들기 십상이다. 두 번의 신호대기에서도 건너가지 못한 기수는 차에서 내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짜증나는 길이군, 내려서 택시 탈까 ? "
"예? 택시오 ? 부장님도 참 "
"저것봐 ! 택시들은 무단으로 진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사무실로 가실거죠 ? "
"글쎄 어쩔까 ?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 "
"부장님 어디 편찮으신데 있습니까 ? "
"왜, 내가 일찍 퇴근 한 대니까 이상한가 ? "
"예, 더구나 ... ... "
"더구나가 뭐야 ? 걱정되나 ? "
"예 안되는건 아닙니다. "
"이사람 소심하긴, 가서 전해 ! 아무말도 없이 중간에서 내렸다구 "
"예 ? 내리시게요 ? "
"그래 좀 걸어가야겠어. 어릴 때 객기를 부리며 헤매던 길을 오늘은 생각하는
로댕이 되어 걷고 싶네 "
"그럼 가시는 근처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니 �찮아! 시내버스를 타면되지. 아무거나 타구서 가는 방향이 아니면 내려서 다시타고, 아니면 해질 때 까지 걷든가. "
"부장님, 길을 잘 찾으실지 모르겠는데요 . "
"이봐 나는 아직 40대라구 눈감아도 훤해 !"
기수는 모래내 근처에서 내려 터덜터덜 걷는다.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알 수 없는 회한이 밀려온다. 한 달 전 부임해 온 뒤로 이렇듯 할 일 없이 걷는 것은 처음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갖는 해방감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세 번이나 변했을 30여년 동안 한 번도 오늘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주 시내의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그 옛날 모래내 이곳은 개울물이 검의튀튀한 채로 흘렀고 몇 몇집 골목 끝에는 허허벌판의 논들이 펼쳐져 있었다. 올망졸망 구멍가게들이 들어서고 겨울밤에는 리어카에서 쏟아내는 카바이트 냄새와 불빛들은 살을 에일듯한 차가운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현란함이 왜 그리도 싫었던가.
그것은 잿말 간좌촌 앞에서 보았던 여름이면 연례행사로 견디어 내던 물난리 성난 독사같은 붉덩물, 물머리가 잠깬 누에머리 처럼 머리채를 흔들고 울타리 가상으로 기어 올라오던 비암대가리, 카바이트 냄새는 비암 냄새 처럼 느끼하고 흙내 풍겨오는 밤 바람에 불꽃이 춤을 추면 비암이 혀를 낼름 하듯 어딘지 음산하고 축축한 눅이마냥 기분나쁘던.
카바이트 불 꽃은 간좌촌 도마촌 강변을 쓸고 치마폭 펼치듯 퍼버리고 앉은 미친년마냥, 큰 물 속에 한가닥 실날같은 희망을 매달고 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낭창낭창 붉덩물을 도리깨질 하던 사람의 애원, 살려 달라던 목메임.
그러다가 물속에 영원히 나무가 일어서지 못한채로 삼켜버리던 순간처럼, 불꽃이 흔들리다가 꺼지면 거기 불 꽃잎 끝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가 눈 깜작할 새 없어져버릴 것 같은 싸늘한 겨울밤에 느끼는 하숙방의 텅빈 외로움까지 그것은 친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외로움 때문이고 시궁창에 빠진듯한 알량한 자존심 운암 촌놈이란 명칭 때문이었다.
그는 걷던 길을 되돌아 조금 내려 가다가 지금은 복개 되어있는 시꺼먼 개천의 모래내 옛날 형무소 방향의 길을 찾는다. 높다란 담장 아래를 걷다보면 으시시했던 그 고갯길, 자꾸만 잰 걸음으로 마음을 졸이며 지나가던 길, 오늘은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고 대형 상가들도 있다.
형무소가 있었던 흔적은 없다. 그 옛날 기수는 밤이면 하릴없이 전주역전 뒤 하숙집에서 중앙시장을 돌아 모래내 까지 어슬렁어슬렁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사
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사거리를 건너면 영동병원과 코아 백화점, 그는 육교를 찾아 인도가 없는 길가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딧치며 길 잃은 아이처럼 기웃거리지만 누구도 기수를 알아보는 이는 없다.
하기사 이곳을 떠난 지가 언젠데 아는이가 있을리 없다. 아직 해는 화산동 산너머에 두어자나 되게 남아 있는데 혼자서 술집을 찾는다는 것도 이상할듯해서 그는 천천히 영동병원 앞을 돌아 샛길로 접어든다.
그 골목길은 예전에는 연탄 공장이 있었고 주변의 집들도 사람도 모두 시커멓게 번들거리며 눈빛만 반짝이던 생각을 하면서 기수는 혼자 웃음을 흘린다. 오가는 사람들중에 자기 외에는 그곳에 연탄공장이 있었던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 ? 하고 궁금한 마음을 챙기면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인 듯 사뭇 기분이 경쾌해짐을 느낀다.
기수는 그 옛날 전주역에서 중앙시장 가는 길의 또랑길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솟는다. 어디쯤일까 ? 그가 가고 있는 길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거기 뚝이 나오고 그 또랑가에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주역전은 측간 조차도 골기와, 검은 모자처럼 무겁게 머리에 엊고 급한 볼일로 허리춤을 잡고 정신없이 뛰어드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문짝마져도 왜그리 두껍게 사람을 기 죽이던지 찌린내 진동하는, 담배꽁초며 사람들이 버린 휴지 공책뜯어 휴지로 사용하고 널부러져 소변기에 수북히 있고 그렇듯 냄새나는 측간 앞에는 기차시간에 맞추어 촌에서 가지고 나오는 곡식이며 빗자루 싸리채반지를 짊어진 사람들.
여름날엔 옥수수 장사 열무장사가 늘어서 있던 기억과 가을이면 홍시 우린 감도 꼬들빼기 같은 것. 다래 머루도 곧잘 구리빛 팔뚝 삐쩍마른 노인들이 들고나와 때 꼬장물 베인 수건을 둘러쓰고 앉아 있었던 곳이다.
그 사람들 틈에 그가 운암사람 만나는 것이 솔찮이 멋적던, 기수의 뒷통수에 대고
"그려 자가 잿말 머시기 외아들"
죄 지은 것 없어도 한마디에 주눅들어 버리던 그것은 기수를 가두는 굴레였고 옥죄이는 수갑이었다.
그는 복개된 지점까지 돌아와 신호등 아래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지점의 가게들중에 유난히 기수를 유혹하던 튀김집들이 생각난다. 찌든 기름 냄새일망정 회가 동하고 군침이 넘어가던 역전앞 또랑 가양으로 중앙시장쪽 그래서 늘 그 앞
을 지나갈 때면 갑자기 시장기가 돌아 잠시 서서 맛있는 냄새를 흠씬 들이마시며 지나가곤 했다.
그때 성심여고 근처 오목대도 생각난다. 무던히도 그 골목길을 서성이던 기수였다. 이제는 희미한 얼굴 윤곽마져도 잊혀진 소녀 강원도 어느 시골 성당 양로원에서 세상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뒷바라지에 세월을 보낸다는 소문이 풍문으로 들리던 그녀의 행적, 기수의 애원에도 그녀는 기수곁을 떠나갔다.
"야, 기수야 빅뉴스가 있다. 너 알고 있었냐? 성심고녀 다녔던 인선이 말이야. 야 그애가 수녀라더라. 나 그 말 듣고 얼마나 놀랜줄 아냐?"
"야 임마 인제 알었냐? 그까짓게 무슨 빅뉴스냐 임마"
기수는 빅뉴스라는 고향 친구의 말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20여년의 전의 일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그녀의 행동 떠나기 전 자신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담담한 눈빛으로 남기고 갔던 소녀다.
"아, 그리운 이름 인선 가여운 소녀"
기수는 마음 저편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전주에 오면 기수는 그녀가 생각났고 그리웠다. 한 번도 사랑한다고 못해 보았던 하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눈빛을 간직해둔 기수는 그 옛날 몹시도 방황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었고 동정이었어 씁쓰레 되뇌인다.
물 차기 전 마지막 설을 쇠기 위하여 갔던 잿말에서의 마지막 밤, 기수는 그의 말에 믿기지 않아서 자꾸만 되물었던 그리고 차례를 지내고는 훌쩍 전주로 나와 몹시도 외로웠던 기수는 끝내 그 소녀를 설득하지 못한채 그녀는 기수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녀가 같은 서울 하늘아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신없이 달려간 곳은 명동 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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