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07]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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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07] - 김여화

 

 


 

제목  [7회] 연고지
등록일  2001-09-29
조회수  22회
연고지

"따르릉"
전화 벨 소리가 넓은 사무실의 적막을 가른다. 휑뎅그르. 특별한 도시의 사무실과는 좀 동떨어진 무어 가구하나 새 것은 없고 낡아빠진 철 책상 몇 개만이 놓인 급조된 현장사무실은 어디나 그렇듯 이곳 용담 사무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즐거운 분위기의 사무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기수의 주장이었으나
요즘 들어 사무실은 즐거울 수가 없다. 직원들은 모두 막노동꾼이나 진베없고 겨우 심부름 하는 여학생 하나가 근처의 집에서 나다닐 뿐이다.
하루라도 무슨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 요즘 기수가 근무하는 현장의
상황이다.
"따르릉 "
냉큼 전화를 받지 않고 앉아 있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전화를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다.
"거 전화 받는 사람 없나 ? 아무나 벨이 울리면 받아야지. 뭣 들 하는 거야 ? '
기수의 한마디 일갈에도 예닐곱 남은 사람들은 그러는 기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그의 사무실은 계가 다섯의 계원은 각각 여섯명씩 삼십여 명이나 된다. 모두들 제각기 출장을 갔거나 아니면 볼 일을 보러 나갔을테고 짐작이 되는 바는 있지만 기수는 직원들의 얼굴을 �어보며 다시 한 번 고함을 친다.
"아 , 그런다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
"저어 그게 아니구요, 그 전화는 부장님께서 직접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제서야 기수는 자기가 들어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퍼뜩 떠 올리며 수화기를 든다.
"예 최기숩니다. "
"아니, 거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아까부터 최부장 찾았는데 말야 전갈을 못 받았나 ? "
"아 - 예, 방금 들어왔습니다. "
"여러말 할 것 없고 빨리 현장으로 나가봐! "
"�니까 ? "
'이번엔 심상치 않어, 직원들 시키지 말고 직접 나가, 해결을 해 "
"예 알겠습니다. "
기수는 전화를 내려 놓으며 박계장을 찾는다.
"박계장 전화 왔던가? "
"예, 왔습니다만, 사태가 악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원의 대답에 기수는 담배를 한 개피 꺼내 문다.
정천에서 주민들이 집단시위를 한다고 하여 박계장을 비롯한 일부 직원들을 내 보내고 자신은 사무실 일 처리 때문에 나가지 못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다녀온 길이었는데 그 사이 보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연일 계속되는 대책회의와 잦은 주민들의 민원처리로 간밤에도 저녁대신 술 몇 잔 마신 것으로 숙면을 못하다가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했던 기수는 갑자기 점심 먹은 것이 살아 올라오는 걸 느낀다.
"젠장 이거야 원, 빨리 공사가 끝나 버리든가 해야지, 사람이 살 수가 있나 ?위에서는 위에서 대로 아래는 아래 대로, 이거 도데체 우리는 뭐 란 말야 "
부장의 불평에 남아있는 직원들은 대꾸 할 생각을 못한다. 주민들의 편에 서면 뭘 얻어 먹었길래 그러느냐고 고깝게 볼 것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매여 있는 몸이 위에서 하란대로 할 경우에 조상대대로 뼈를 묻고 살아온 이 지역 사람들과 왠수 척을 짓게 되니 힘 없는 직원들이야 데모하는 곳에 나가 보았던들 이편도 저편도 못들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낙하산식 인사로 새로 부임한 기수를 그저 멀건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사실 데모하는데 나가 보았자 언제나 협상은 결렬되고, 악에 밭친 그네들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주민들은 한푼이라도 더 건져야 할테고 보상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단가를 낮추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 이다.
유능하고 일처리 야물시럽기로 이름난 기수가 이곳 용담 관할로 부임해 온 것은 한달 남짓이다. 많고 많은 직원들 중에 왜 하필이면 기수 였는가, 그것은 전북이라는 연고 때문이었다.
매일 벌어지는 주민들과의 마찰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 보겠다는 회사측의 입장은 동향인 기수를 꼽을 수 밖에 없었다. 또 그것은 타 지역에서의 협상때 기수의 탁월한 협상경력을 인정해서 특별히 파견된 일테면 회사는 기수의 능력을 높이 사 원만한 타협을 위한 특사로 발령을 낸 것이다.
기수는 직원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엄동설한 나신으로 서 있는 도로가의 나무들은 더욱 처연스레 앙상한 가지를 사시나무 떨듯 보인다.
빛바랜 함석 지붕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심정, 잎 떨어진 고목 감나무 가지 끝에 서린 저 시린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봄은 기약하는 소망? 물밑 고향 울가에 서 있는 처량한 사람들을 위한 애절한 기도를 가지끝에 물었는가.
진안에서 용담 방향의 도로는 무주U대회 개최로 급히 마무리 지은 도로가 조금은 어설프다 싶게 주변 정리가 덜 되어 있다. 대덕사 들어가는 입구의 황동마을도 수몰 예정지이다. 안천 까지는 12km가 되지만 상전면 주변과 동향면까지 이어지는 수몰 예정지 표지판을 기수는 무심히 읽고 있다.
이곳은 불로치 터널 앞 까지도 예정된 물 밑 고향이 될 판이다.
연일 이어져 보도되는 기사 거리는 수몰민들과의 협의되지 않은 내용들이 여과 없이 신문지상에 게재되어 기수 역시 신문을 뒤적이는 것 부터 겁이 날 정도였다. 누구는 해 주고 누구는 안 해주냐.
보상 대상 농작물도 이것은 되고 저것은 되지않은 식의 복잡 다양한 사안들이 그대로 실려 그들을 곤혹 스럽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도되는 사진을 보면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담배만 물게 마련이다. 기수는 차안에서도 일체 입을 열지 않는다.
엇그제 신문에 보도된 안천면 상낙마을 노인들의 우수어린 사진속에서 기수는 어딘지 설어뵈지 아니한 혹여 꿈 속에선가 낯 익은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30여년전 기수는 고등학생으로 아버지가 잿말을 떠나는 것을 그토록 거부하던 모습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그날을 떠올리며 고향으로 부임해온 뒤, 그때의 모습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용담면의 화려했던 옛 문화를 직접 돌아보면서도 그 옛날 그의 고향이던 잿말을 간직 해 두지 못했던 그 객기의 젊은 날이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부임해 온지 한 달이 다 되건만 밥도 먹는 둥 마는둥, 게다가 수몰민들과 충돌로 정신없이 지냈다.
처음 고향으로의 전근 임명장을 받고 떠올린 것은 아버지의 노안이다. 이제는 팔십이 넘은 아버지의 주름깊은 얼굴, 입석리를 떠나올 때의 아버지는 패기 넘치는 젊은 노인으로 대접 받았을 때다. 그토록 앞장서 버티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가고, 입석리 지천리 그의 너른 전답이 거뜸이 박곡앞 들 가운데 가 물 밑에 묻히면서 아버지의 패기 만만한 얼굴은 분노와 수심에 함께 가라 앉았다.
도시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도 기수는 오늘처럼 아버지가 안쓰럽게 떠오르기는 처음이다. 요즘에 와서, 늙으신 아버지 곁에서 생활하며 직접 용담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수몰민들과 잦은 부딧침으로 곤경에 빠져들어 아버지의 젊은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 제발 그만 히요. 그런다고 댐 막는 일이 중단 되는 것도 아니 잖이요. 다 보상히 준다는디 머시 억울허다고 그리싸시요."
"뭐여 ? 이놈아 보상이먼 다냐 ? 나가서 펜히만 살먼 되간디, 대대손손 조상들 꺼정 이장을 히야 허는 이판에, 주먹만 헌 놈이 멋 안다고 지껄여 ? "
"별 수 없잖이요. 아버지가 그렇게 앞장서서 일 히준다고 누가 고맙다고 헐종 알어요. 뒤에서는 다 욕 히요 요옥."
"머셔? 언놈이 욕혀 ? 머라고 욕허댜 ? 으 머라고 욕혀 이놈아 "
그때 기수는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 진필에 대해서 수근대던 말들을 차마 아버지 앞에 그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동네사람들은 그의 아버지 진필이 뭔가 얻어먹고 일을 봐 준다는 등 사람 봐서 일한다는 아버지에 대한 온갖 억측들을 들었기 때문에 남의 일에 나서는 아버지가 정말로 미웠었다. 기수의 어린 생각에 한푼도 얻어먹은 것도 없으면서 사람들의 오해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 아버지 말씀이 맞다. 애들은 어른들 일에 나서는 법 아니다. "
어머니 조차도 기수의 입을 막아 버리곤 했다. 훗날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 아버지를 욕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을 보아주고 그 댓가를 요구하는 것을, 아버지 진필는 거저 대신 해주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도 그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찾아와 인사를 해서이다.
"나 도둑질 헐라고 허는 것이 아니다. 저놈덜은 눈먼 놈 돌라 먹을라고만 허는디, 내 동네 사람 돌라 먹는 꼴 보고만 있으란 소리여 ? "
아버지의 노기띤 음성이 저만끔 펼쳐진 물가에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섰다.
이번에 수몰되는 이 지역의 사람들은 2,864 가구에 12,600여명이다. 월계 마을은 87가구 전체가, 안천의 경대 마을은 46가구 전체가 물 밑 고향이 된다. 용담 면에서 열 세개 마을, 안천면이 11개 마을, 상전면 20개 마을과 정천면 18개 마을 주천면 4개 마을과 진안읍의 가막마을과 언건 마을까지, 이주민들을 이주시킬 단지만도 258필지에 이르는데 그동안 보상 문제만도 골머리를 앓아 왔다.
처음 보상을 받은 주민들은 그들대로 이유가 있고, 또 영농 보상기준 문제도 보상용 농작물을 일부러 심는 사태까지 일어나 결국은 하천 예정지 고시일을 기준으로 정하고 그 시기 이후 보상은 불가 방침을 결정하자 주민들은 연일 반발하는 데모까지 강행하고 있는 탓이다.
용담댐은 운암강 토지를 매수 할 때 함께 매수한 곳이지만 이곳은 86년 한전측이 조건없이 원주인에게 무상 양여를 해 주었던 것을 이번에 공사로 재 매수하는 경우이다.
한전은 땅주인들이 수 십년 농사를 지어먹으면서도 정부에 내는 세금은 한전측이 물게되자 어차피 그럴바에는 원주인에게 돌려주자는 뜻으로 이전비용까지 나라에서 부담 돌려준 것을 사실 운암과는 반대의 경우라.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충주댐 기공식에서 운암강 섬진댐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하여 충주는 충분한 보상과 또한 거기에 따른 순환도로 이주대책에
만전을 기하라 지시하여 그리한것으로 용담댐도 당시에는 댐을 막을 예정이 없다하여 그리하였으니 수몰지역의 흔적은 신석기 청동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삼한시대 이후의 마을들은 그 내력을 기록하기 위해 일부의 역사가들은 발이 닳도록
수몰지역을 더트고 있는 실정으로 누구든 만나는 사람마다 보상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을 붉히는 실정이었다.
"명당에 계시는 조상님들을 물이 무서워 괜스리 옮기다니, 나는 죽어도 못혀"
"어르신 제발 고집 꺽으시야 되야요. 물이 차서 조상님 산소가 물속에 들어가 는 것보다야 미리 안전한 곳에 모시는 것이 후손된 도리 아닙니까 ?"
"시끄러 잿말 뒷산은 절대 물 속에 안 잼겨어. 걱정마. 나 돈 필요 없대도 "
"제발, 어르신이 먼저 허셔야 다른 사람들도 따러서 헌다고 허잖이요. "
"머셔 이런 고연, 지우 댐배값이나 던져줌서 파내라고 헝게 그러지 나는 조상 님들 손 못대야! 안대야 ! 조상 함부로 허먼 천벌을 받는겨 "
기수는 아스라히,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지난날 아버지의 노기 충천한 모습을 떠 올리며 도리질 친다.
"이봐, 차 돌리자구 사무실로 돌아가세 "
"예 ? 현장에 안가시구요 ? "
"가본들 무슨 뾰쪽한 수가 나겠어 ? 시간이 가야지. 가다가 어디가서 소주한잔 하고 가자구, 기분도 그런데 "
"예 그러죠. 어디로 갈까요 ? "
"운암 어때? 매운탕이나 한 투가리 허고 가자구 "
"예 ? 운암이라면 너무 멀지 않을까요 ? 퇴근 시간은 멀었지만요. "
"운암이 뭐가 멀어, 마령으로 나가면 금방인데, 그리고 말이야. 운암 소재지에 서 대교쪽으로 순환도로가 뚫려서 드라이브 하기에 딱 좋거든 ? 국사봉 오봉산 밑에 가보라구"
"예에. 그쪽으로는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
"사무실에는 가다가 전화 하면 되지 "
기수는 차를 돌리게 하고 담배를 끄집어내 불을 붙인다. 오늘따라 몹시도 마음이 수런거리는 까닭이다. 간밤에도 아버지 진필은 돗수 높은 안경너머로 신문을 뒤적이며 기수가 저녁을 먹고 씻고 나설 때 까지 앉아 있었는데 그가 거실로 나오자 일어서 안방으로 들어가고 만다.
아버지는 기수가 올 때 까지 기다리는 듯 싶은데 정작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라 치면 먼저 일어나 들어가 버리곤 해서 그의 어머니 조차도 뜨악한 얼굴로 바라보
곤 했다.
"느 아버지가 요즘 이상히 졌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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