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5_전라도_운암강

장편소설 운암강 [06] - 김여화

忍齋 黃薔 李相遠 2007. 8. 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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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운암강의 작가 김여화님의 허락을 얻어 제 어머님의 고향 전북 임실 운암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운암강을 올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란장미 주]

 

 

장편소설 운암강 [06] - 김여화

 

 


 

제목  [6회] 강변마을들-3
등록일  2001-09-29
 
그녀는 읽어내리던 원고지를 한켠에 밀어놓고 멍청한 눈빛으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본다.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지영은 불켜진 사무실에서 안나수녀가 자신이 쓴 원고지를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어젯밤 병원으로 모셔갔던 베드로님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죽음을 앞에 둔 사람 앞에서 어쩌면 그렇게 침착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지영을 못견디게 만들고 있었다.
"언제나 안나 수녀님은 그랬어 원장님보다 더 침착한 모습으로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노인들을 바라보곤 했는데..."
지영은 안나수녀가 그녀의 모친에게만은 그렇듯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안 것은 원고지를 메꾸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아니 그 노인이 안나수녀님의 모친이라는 사실조차도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었다.
"원장님 저 궁금한게 있는데 여쭈어보아도 되죠?"
언젠가 어리광을 부리듯 궁금증을 풀기위해 원장님을 조른적이 있었다.
"왜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지 말해보아"
"안나수녀님 말씀인데요. 왜 다른 분들한테는 관대 하시면서도 그 한분 한테는 언제나 화가 나신 모습인지 이상해서요"
"그래? 그럴 수 밖에 없으시겠지"
"왜요? 그분만 특별히 밉기라도 하신건가요. 저한테 하시는걸 보면 그러실 분이 아닌데 너무 궁금해요."
"나도 몰라 왜 그럴까? 밉게보일 일을 하신게지"
원장수녀님은 그져 웃고만 있으셨다.
"지영아!"
"네?"
"너도 부모님이 미울때가 있었지 않니? 보고싶기도 하지만 원망 같은거 말이다"
"네에? 물론 부모님 원망 많이 했지요. 그래서 죽고 싶었는데요."
"그래 안나 수녀님도 지영이 처럼 그런거 아닐까? 수녀라 할지라도 너와 똑 같은 부모도 계실테고 나이가 더 들면 좀 갠찮아진다만 아직 안나는 어리거든"
"원장님 안나수녀님이 지금 몇인데 어려요?"
"내가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안나가 너를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야"
지영은 원장님의 너와 같다는 말을 듣고 부터는 늘 벼르고 있었다. 물론 쉽게 말문을 터 놓을 수녀님이 아니었지만 어느날 그날도 안나수녀는 문제의 할머니가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쓰자 화를 벌컥내고는
"지영아 네가 좀 도와드려라"
말 끝에 쌩쌩 찬바람을 날리며 방을 나서고 말았다. 그런 안나를 지영은 먼 발치에서 열린 문틈 사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환자는 중얼중얼 누구에겐가 육두문자로 욕을 하고 있었는데 지영은 사무실로 올라가 기어이 입안에서만 뱅뱅돌던 궁금증을 묻고 말았다.
"안나수녀님은 참 이상하세요?"
"뭐가 말이냐?"
"왜 하필 그 노인께만 그렇게 냉정하게 하시는지"
"내가? 그랬었니? 그랬다면 부끄럽구나.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분만 보면 왠지 미운생각이 살아나거든? 나 나쁜 사람이지? 난 벌을 받게 될거야"
그말 끝에 돌아서는 안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음을 지영은 눈치채고 말았다.
"지영아 내가 어린 너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구나 미안하다 그건 말이야 너와 같은 처지였거든 헌데 나는 30년이나 지난 아직도 세상의 연을 버리지 못했는가보다"
"그럼 혹시 수녀님 어머니라도 되시는 거예요?"
안나수녀님는 대답대신 책상에 널린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녀님 대답 안 하셨잖아요?"
"음 그래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 나도 무척 그리워했었지 이곳에 모시고 올 때 까지만해도 말이야. 자꾸만 부딧치면서 노인이 고향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새록새록 피어나는거야, 미움이란게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다는거 너도 알겠지? 우리 사인 그런거야"
지영은 그제야 어렴풋이 안나수녀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고 틈이 날때마다 아니 그의 모친이 정신이 말장 할 때마다 안나수녀의 고향이야기를 들추이곤 했었다. 애석하게도 고향 그 이상의 것 아니 안나수녀의 어린시절 기억은 그의 모친조차도 말하지 않는다는걸 지영은 알게 된 것이다. 훗날 지영이 원고지를 메꾸기 시작하면서 안나수녀가 그의 모친을 모셔오는 문제로 무척 괴로워 했었다는 사실과 원장님이 두분의 사이를 화해라는 명분으로 요양원에 모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안나수녀님이 언제부터 고향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는 알수 없었다. 어쩌면 모친을 모셔 온 뒤 부터 였을 거라고 짐작만 될 뿐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모친이 치매까지 겹치면서 틈만 나면 잿말을 이야기 할 때부터 였을 거라는데 지영은 결론을 내린다.
허면 지영의 책임은 점점 무거워져 가고 있었다. 안나수녀님이 못다한 이야기를 자신이 다 해야만 했기 때문에... 하지만 안나수녀는 어느 특정인을 택하라는 주문도 겸하셨다. 사실 처음부터 그건 안나수녀께서 결정 해 놓은 아우트라인이라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지영은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영은 원장님이 안나수녀도 너와 같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를 꽤 오랜날 생각하고 곱씹어 보았었다. 그것은 지영이 자신의 과거, 부모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떠 올릴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곤욕이었다. 그러나 지영은 안나수녀님의 말대로 그분의 고향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만 싶었다. 이제라도 수녀님의 들리지 않은 긴 한숨을 멈추게 하고만 싶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모를 기억해야 했고 그때의 일을 다시금 떠올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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