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을 남발하는 정책
'녹색 세탁(Green Wash)'이란 말이 있다. 녹색이 아닌 것에 녹색을 덧칠해 속까지 녹색인 것처럼 만든다는 뜻이다. 석유 메이저 셸(Shell)이 작년 2월 냈던 신문 광고가 그런 말을 들었다. 셸은 자기네 오일샌드 정제 프로젝트가 '지속 가능한(sustainable·환경에 부담 주지 않는다는 뜻)'사업이라고 내세웠다. 캐나다의 정제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를 걸러내 콘크리트 제조와 꽃 재배에 쓴다는 것이다. 그 광고는 공장 굴뚝에서 꽃송이들을 토해내는 그림을 배경 그래픽으로 활용했다. 그걸 보고 국제 환경단체들이 영국 광고표준협회에 제소했다. 배기가스의 극히 일부만 재활용하는 것이면서 친환경적이라고 홍보하는 건 녹색 세탁이라는 것이다. 광고표준협회는 셸에 광고 중단 명령을 내렸다.
환경에 이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건 기업만이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정부가 최근 잇따라 경제 살리기 정책에 '그린 뉴딜'이라는 제목을 붙여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주 50조원짜리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녹색 뉴딜'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한 반응은 정부 기대완 딴판이었다. 말이 녹색이지 전국을 토목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녹색'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바람에 괜한 비판을 자초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경제를 살리는 속성 효과를 내는 데는 토목이 효과적일 수가 있다. 정부가 그런 사정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게 낫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에 '녹색'을 덧씌우려다 보니 무리수가 나온다. 서해 인천에서 동해 고성까지 전국 해안을 따라 폭 3m, 길이 3100㎞의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는 계획이 그렇다. 1조2400억원이 드는 사업이다. 자전거는 왜 바닷바람을 쐬면서 해안으로만 달려야 한다는 말인가. 도시 사람은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자동차는 세워놓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자전거도로 활용도 측면에선 지방도시를 골고루 연결해주는 게 백 번 낫다. 자전거를 몰고 절 구경, 유적지 구경도 하면서 가끔씩 바닷가 항구로도 나갈 수 있게 하면 된다. 자전거도로를 다 새로 만들겠다는 발상도 납득할 수 없다. 지방엔 기존의 자전거도로도 있고 어쩌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가는 한가한 도로들도 많다. 비포장길이면 어떤가. 이런 길들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하면 1조2400억원 가운데 우수리 2400억원만 갖고도 멋진 자전거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1조원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진짜 녹색 프로젝트'를 해볼 수가 있다. 정부가 세우겠다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세계 최첨단의 지능형 에너지 도시를 건설해보는 것이다. 집집마다 태양광 설비를 갖추고 가정과 사무실의 가전제품과 조명기구는 IT기술로 연결시켜 언제 가동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지능을 갖게 한다. 도시 빌딩들을 블록 단위로 묶어 하천물을 냉각수로 쓰는 냉난방 시스템으로 에너지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그 녹색도시가 세계 사람의 관광 명소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자전거길 만드는 일자리는 사업이 끝나면 사라지는 일자리다. 녹색도시 프로젝트에서 훈련된 인력과 축적된 노하우는 다른 도시로 퍼져나가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갈 것이다.
녹색 아닌 걸 녹색으로 포장해서 내놓는 홍보가 몇 번은 먹힐 수 있다. 자꾸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 그때는 국민이 정부가 하는 말은 뭐든지 뒤집어 보거나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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